240화
“그렇지는 않아. 욕이야 들은 만하니 듣는 것이고.”
이런 응수에 자순은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아니? 왜 대장군께서 욕을 먹어요?”
최인범은 자신이 먹는 욕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본시 남들은 죽어라 공부하거나 무술을 연마해 합격하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기만큼은 힘든 과거시험을 통과해 벼슬을 받는 것이 보통이잖아.”
“그거야 명나라도 마찬가지지요.”
“다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벼슬을 하는데 나야 호랑이나 산적만 잡아서 너무 쉽게 검교직이지만 정7품인 사정까지 올랐으니 자신들과 비하면 거저 벼슬을 받은 셈 아닌가?”
“그래도 명나라에서 이룬 성과가 너무 크잖아요.”
“그렇지도 않아. 더구나 명나라에서도 술이나 먹고 장원을 해버려 벼슬하게 되었으니 그들이 보기에 너무 억울하고 세상사가 자신들에게만 불공평한 점들이 많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욕을 얻어먹어도 싸지.”
이렇게 답하지만 사실 최인범도 사람인지라 악담을 들으면 은근히 열이 난다. 그러나 이제 조선의 사업들을 정리하고 봉황성으로 떠날 요량이라 굳이 대응하거나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떠날 때는 말없이.’
이제는 모든 정황으로 보아 조선을 떠나야 한다. 그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미 조용히 떠나기는 틀려버렸다. 명나라에서 암살 배후로 조선 왕세자의 외숙부인 윤임 대감을 지목했다. 다구나 정식 외교문서로 기록해 조선을 압박하고 있으니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쯤 조선 조정을 발칵 뒤집혔을 것이고 조정 대신들도 크게 술렁일 것이다. 요동에서 벌인 암살미수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명나라의 부마도위가 된 이후의 사건은 그냥 넘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여러 가지로 시끄럽고 말들이 많을 거야.’
또한 자신은 명나라의 부마도위가 되어 신하로 변했다. 그러니 조선의 선비들이나 관료들 중에는 자신을 시기하거나 욕하는 부류들이 많을 것 같았다. 아무리 태연하려고 신경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선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가정제의 이간계가 성공한 셈이야.’
떠나기로 결심한 최인범은 자신을 비난하는 조선 백성들의 질타보다는 풍기에서 벌인 사업을 어떤 식으로 정리하느냐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아직은 완전히 떠나기는 곤란해.’
사업이나 어떤 부하들 때문이 아니라. 꼭 조선을 떠나서 살아야 해야 되는지 고민 중이다. 당초 계획이야 조선에서 살면서 조선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명나라로 갔었다. 그런데 일이 중간에 많이 뒤틀려 이제는 조선에서 살기가 힘들게 변해 버렸다.
‘세상사가 뜻대로 다 되는 경우가 없어.’
전에는 심복부하이던 배도치나 그의 부하들이 순순히 봉황성으로 떠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천먹쇠를 비롯한 풍기의 동물농장에 있는 녀석들이 어찌 나올지 몰라 은근히 걱정이다.
‘억지로 데리고 갈 수는 없고. 그 녀석들이 없으면 새로 시작해야 하는데.’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인삼재배 사업과 소총 부대의 양성을 말하는 것이다. 최인범은 당초 배도치 무리를 모두 소총부대로 양성하려고 그에 걸맞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 녀석들을 데리고 가야 내가 편한데.’
배도치나 그의 부하들을 봉황성으로 데리고 가면 소총부대의 조교이자 교관으로 부리면 빨리 병사들을 양성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하면 새로 직접 소총부대원을 양성해야 하니 은근히 걱정하는 것이다.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면 너무 재미가 없어.’
풍기에서 시작한 인삼재배도 한해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여기서 중단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으로 변해 자신의 계획에 큰 자질이 오니 머리가 어수선했다.
무엇보다 제일 큰 문제는 월녀가 운영하는 상단에 대해서다. 월녀도 이제 혼인할 나이가 되었으니 좋은 혼처를 마련해 시집을 보내야 된다. 지금 당장은 적당한 좋은 남자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좋은 남자라는 기준을 뭐로 정해야 될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월녀가 봉황성으로 오려고 할까?’
최인범은 월녀는 그냥 조선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다. 봉황성은 지금은 조용할지 모르지만 변수가 너무 많은 곳이라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험한 삶을 살게 할 필요가 없어.’
잡다한 생각을 하던 최인범은 예성강에서 한강을 거슬러 마포나루로 가게 되는 배가 도착하자 올랐다. 당초 목적한 개성상인은 만나지 못하고 배를 전세로 빌려 세 사람만 타고 떠나게 되었다.
예성강 지역에서 소금을 마포나루로 나르는 배다. 그래서 배에는 가마니에 들어있는 소금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바다에서는 작은 풍랑이라도 만나면 매우 위태해 보일 정도로 작은 배로 이동했다. 그래도 황포 돛으로 가는 배는 서쪽에서 부는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배가 빠르군.’
여울이 많은 강화도 북쪽을 지나 서서히 이동하는 소금 배는 드디어 한강에 이르게 되었다. 여름이라 물이 많은 한강은 바람의 힘만으로 이동이 어려워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한강변에는 여름 철새들이 수없이 많고 갈대가 넓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조선시대로 떨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처음으로 한양을 가기 때문에 약간 흥분되었다.
‘한양의 모습이 어찌 생겼는지 정확하게 볼 기회가 생겼어.’
전생의 역사서에 나오는 임진왜란의 격전지인 행주산성이 보였다. 행주산성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수난의 역사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살심이 생겨 활을 만지작거렸다.
‘왜놈들은 죽여야 해.’
한강변의 김포에는 무수한 갈대가 있고 근처에는 여름철새인 왜가리가 보였다. 살심이 생기자 사냥을 하기위해 최인범은 활을 꺼내들어 시위를 걸고 사공에게 지시했다.
“사공, 잠시 배를 멈추시오.”
“넷!”
강가에 배를 멈추고 활에 통아를 걸어 짧은 화살인 편전을 왜가리를 노리고 날렸다.
쉬익! 퍽!
먼 거리나 짧은 화살은 아주 정확하게 왜가리의 몸통을 관통했다. 그러자 백구가 번개 같이 배에서 뛰어내려 달려갔다. 죽은 왜가리를 몰고 오면 다시 화살을 날리는 식으로 연신 사냥을 했다.
사공은 이런 뛰어난 활 솜씨에 놀라 외쳤다.
“와! 신궁이시군요. 혹시 봉황성에서 오신 부마도위님이 아니십니까?”
“왜 그렇게 판단하시오?”
“부마도위님의 활 솜씨는 조선에서 제일이라고 하니 그리 생각하는 겁니다. 특히 편전을 잘 쏘신다고 소문을 들어서 알지요.”
이런 사공의 말에 최인범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최인범은 10마리의 왜가리를 잡고 나자 배는 다시 이동해 드디어 마포나루를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 도착했다.
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려 하늘을 온통 벌겋게 물들였다. 고개를 들어 붉어진 황혼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다시 사공에게 지시했다.
“저쪽 강변에 멈추시오.”
“손님, 조금만 더 가면 마포 나루인데요.”
“우리는 여기서 오늘 밤을 보낼 것이니 배는 마포로 가시오.”
한강 북쪽에 배를 멈추게 하고 최인범 일행은 배에서 내렸다. 편전을 쏘아 잡은 왜가리의 껍질을 벗기고 모닥불을 피워 구웠다. 그가 왜가리를 굽는 동안 철갑웅과 자순은 빠르게 야영천막을 쳤다.
어느새 밤은 점점 어두워지고 구은 왜가리를 먹으며 자순에게 슬며시 물었다.
“자순, 이번에 조선에 왔으니 조선에서 역사서를 찾아볼 것인가?”
“넷! 저는 조선에 있는 역사서를 모조리 모아서 봉황성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모든 조선의 역사서를 말인가?”
“그렇습니다. 최대한 많이 찾아서 새롭게 역사서를 집필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 혼자는 어렵고 조선에서 같이 역사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선비들도 최대한 구해볼 생각도 있고요.”
“꿈이 너무 야무지군.”
역사서를 집필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실 재물도 많이 필요하다. 자순이 쓰려는 역사서는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새로 써보려는 것이다.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답하는 모습을 보니 오래 전부터 벼르던 일 같았다. 자순은 그것을 증명하듯이 자신의 포부를 말했다.
“저야 본시 역사서를 좋아하니 그런 작업을 해보는 것이 평생소원이죠.”
“방대한 역사서를 집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군.”
“제가 젊으니 평생 사업으로 지금부터 시작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자순은 조선은 물론 왜의 역사서도 구해서 새롭게 조선이나 북방민족의 역사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미 자금성에 비치된 많은 역사서를 필사하거나 또는 몰래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물론 별도로 구해서 가지고 온 역사서도 많다고 했다.
이런 말에 최인범은 그가 진짜 자신을 따르려고 결정했다는 기분이 들어 물었다.
“자순, 자네는 명나라에 충성하지 않나?”
갑작스럽게 묻는 말에 자순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부지게 답했다.
“소신은 앞으로 오직 대장군만 주군으로 모십니다. 이미 북경을 떠날 때 각오하고 모두 정리해서 왔습니다.”
“그것을 내가 어찌 믿나? 자네와 비슷한 소리를 하던 놈이 나를 죽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었는데.”
“주군, 믿어 주세요. 소신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최인범은 전에 자순이 자신에게 이간계에 대응하기는 가장 좋은 계책한 고육계에 대해 슬며시 거론했다.
“그래, 이제 한양에 다 왔으니 내가 어떤 방식의 고육계를 써야하나?”
갑작스럽게 이렇게 묻자 잠시 고심하던 자순은 자못 심각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다부지게 말했다.
“주군, 먼저 성리학의 논리를 버리세요. 그리고 최씨 성을 버리셔야 합니다.”
“뭐라? 나보고 윤리와 도덕인 성리학과 조상과 고향을 버리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고육계를 쓰기 위해 전혀 생각지 않은 것을 버리라는 말에 최인범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 봐라! 당차게 말하네.’
성을 버리라는 뜻은 이제는 철저하게 독자적인 행보를 하라는 뜻이다. 즉 조선을 버리고 봉황성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어 큰 야망을 가지고 웅지를 마음껏 펼치라는 뜻이 분명했다.
최인범은 그에 대해 답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왜 나에게 성리학을 버리라는 건가?”
“그건 제왕(帝王)이란 무치(無恥)기 때문입니다. 제왕은 성리학의 기본 윤리인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을 과감하게 버려야 큰 뜻을 이루게 됩니다. 특히 새로 창업하는 제왕의 경우 특히 더 그렇습니다.”
자순은 결국 최인범에게 조선을 버리고 나라를 새로 건국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거추장스러운 조선에 충성하는 마음이나 또는 지인들과 어떤 우의가 있더라도 다 버리라는 뜻이다.
“자네는 결국 나를 만고의 역적으로 만들어 조선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게 하려고 황제의 밀명을 받은 음흉한 밀정으로 나에게 접근했군.”
“그건 주군께서 판단하시고 결정할 사안이죠. 소신은 이미 주군께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했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자 옆에 있는 철갑웅도 슬며시 나서며 다부지게 말했다.
“대장군, 제가 알기로 조선에 친척도 하나가 없는데 망설일 필요가 있나요. 보아하니 조선에는 대장군을 시기만 하고 고리타분한 생각만 하는 선비들이 득실거리는데요.”
“허! 너 입조심을 항상 하라고 몇 번을 내가 강조했지? 왜 그런 무서운 말을 네가 함부로 하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