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이간계와 고육계>
부윤은 객관으로 가서 객고를 풀어야 된다며 고집을 부려 보지만 최인범은 끝내 주막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했다. 하는 수 없이 주막에서 술상을 보고 서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명나라 사신들이 혹시 행패는 부리지 않던가요? 과하게 대접하라거나 뇌물을 달라거나 그도 아니면 무리하게 기생들을 부르라고 안하던가요.”
“과하긴요. 그거야 늘 있는 일입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이어지고 명나라 사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듣게 되었다. 예측한 그대로 명나라는 윤임 대감이 암살을 사주한 배후로 지목해 압박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압박과 더불어 조선에서 해군을 총동원해 산동반도로 출병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것뿐인가요?”
“아니죠. 왜구들의 소굴이라며 대마도를 공격해 왜구를 섬멸하라는 출병 요청도 있었습니다.”
“허! 죽일 놈들일세. 당사자는 아무 말 없는데 그런 사건을 핑계로 그런 허황된 요구를 하다니요.”
최인범이 이렇게 답하자 부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사신의 말에는 부마께서 윤임 대감의 죄를 물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을 했다던데요.”
“뭐요? 그런 말을 해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명나라에서는 자신과 조선의 주상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이간계(離間計)를 철저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등신들이 치졸한 술수만 늘어서.’
명나라는 최인범을 이용하려고 이간계를 쓰지만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물론 영향이야 주겠지만 이미 상대방의 술수를 알고 있으니 이를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술수를 쓴다면 나도 같이 계책을 쓰는 거야. 고수가 놓는 진짜 묘수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지금 요동지역은 최인범의 입장에서 보기에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요동(遼東)의 철령위(鐵嶺衛) 지휘첨사(指揮僉事)는 조선출신인 이씨 가문이 세습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는 훗날 임진애란 당시 조선으로 출병한 이여송의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지휘첨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만 자신의 명령에 순조롭게 복종하는 휘하로 집어넣으면 쉽게 북쪽의 3성을 자신의 손아귀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들이 조선출신이라고 해서 꼭 내 휘하로 들어오라는 법은 없어, 봉황성의 군세가 강해야 그들이 굽히고 들어오는 거야.’
평양 부윤과 술을 마시며 들어보니 지금 조선은 진휼청을 가동할 정도로 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드니 하삼도지역에는 도적들이 들끓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명나라에서 무리하게 출병을 요구하니 참으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개마고원에서 벌어진 사건 대해 물었다.
“대감, 혹시 개마고원지역에 거주하던 여진족을 몰아낸 사실을 아시나요?”
“압니다. 그곳 함경도만 아니라 평안도 지역도 여진족이 내려와 살던 곳이 많습니다. 하삼도에 기근이 너무 심해 그들을 여진족이 터 잡고 살던 곳으로 이주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그곳은 그나마 사냥이라도 해서 먹고 살 방법이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조선이 좋다고 내려와 정착한 여진족을 강제로 몰아내면 되나요?”
최인범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부윤은 응수했다.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다니 금시초문입니다. 본관이 알기에는 강제로 압록강 북쪽으로 몰아내지는 않았지요.”
“그럼 어찌된 내막인지 짐작하시는 바는 없나요?”
“하삼도에서 부랑아처럼 떠도는 중들이나 유민을 추포해서 북쪽의 국경지역으로 보낸 이주민을 너무 많이 보내다 보니 서로 토지분쟁이 생겨 여진족이 떠났다는 것으로 아는 데요. 그리고 국경지역을 완전히 봉쇄한 것은 여진족들의 군사적인 활동이 너무 심해져서 예방하는 차원에서 그리 처리한 것이고요.”
“그렇군요.”
자신이 설화에게 들었던 사실과 조금 내용이 달랐다. 그리고 개마고원을 지목해서 조정에서 어떤 조치가 내려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설화도 나를 조선과 슬며시 이간시키려는 것이 분명하군.’
여진족인 설화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래야 최인범이 자연히 여진족의 진짜 칸으로 변하고 자신의 칸의 부인이 되기 때문이다.
‘설화도 은근히 야심이 많은 여자야.’
잠시 이런 생각을 하다가 봉황성의 대공주부에 있는 고아들의 교육이 걱정이라 부윤에게 슬며시 질문했다.
“대감, 평양은 기생을 훈련시키는 기관도 있어 기예에 능한 기녀들이 많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물음을?”
“대감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봉황성을 봉토지로 받고 보니 앞으로 그곳에서 정착해 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가끔 바둑을 두기 위해 여각에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곳의 여각에는 가무에 능하지 않은 창기(娼妓)에 해당하는 명나라 기녀들만 있어요.”
“그렇군요.”
“다른 뜻은 없고 제가 조선의 문화나 음식을 자주 접하며 먹고 싶어서 그러니 기적(妓籍)에서 빠지게 되는 가무나 서화에 능한 기녀를 봉황성으로 보내서 그곳에 조선식 기방을 열도록 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이런 요구에 부윤은 조선 출신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쉽게 답해 주었다.
“부마도위께서 기녀들이 필요하시다면 내가 권번으로 연락하도록 하죠. 원하는 기녀가 있으면 데리고 떠날 수 있도록 해드리죠.”
“저는 당분간 조선에서 할 일이 있어 그러니 기녀들과 같이 갈 수는 없죠. 더구나 남들이 보기에 제가 기녀들과 같이 봉황성으로 가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으니 먼저 보내시면 됩니다. 기녀가 봉황성으로 가면 제가 세금 감면 등 여러 가지 특혜는 줄 겁니다. 우선 기방을 열 큰 집은 공짜로 제공하겠습니다.”
“그런 좋은 조건이라면 봉황성으로 간다는 기녀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주선해보죠.”
“가무에 능하거나 또는 서화에 능한 예기(藝妓)를 보내야 합니다. 몸을 파는 창기야 너무 흔하니까요.”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최인범이 굳이 가무나 서화에 능한 기녀들을 봉황성으로 보내려는 것은 소녀들의 교육 때문이다.
조선식의 교육을 시키려고 고심하다 보니 조선은 여자의 교육이 전무한 실정이다. 그나마 기녀들이 나름 지식층이라고 판단해 기방을 열겠다는 핑계로 고급 인력인 여선생들을 데리고 갈 요량이다.
먼저 이런 식으로 기녀들을 보내 달라고 제안하고 나서 다음에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봉황성에 새로운 기관들이 여럿 생겨 관리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작 봉황성에는 조선출신은 너무 적어 제가 불편한 점들이 아주 많아요.”
“조선 사람으로 관리를 시키려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평안도 지역에서 최소한 향시에 합격한 선비들 중에 벼슬을 못한 사람들을 그곳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본인이 원해야 이주하는 일이지만 조선에서 선비들이 이주해 오면 그곳에 교육기관인 향교도 열고 또는 관리로 근무하도록 해볼 생각입니다.”
이런 제안에 부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선의 양반들은 과거에 매달려 벼슬하길 평생 고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비들이 아주 많았다. 그런 선비들을 봉황성으로 보내면 벼슬을 준다니 떠나려는 사람이 많을 수 있었다.
부윤은 그곳에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면 결국 조선 영토나 다름이 없다고 판단했다.
‘서로 좋은 계획이군.’
선비들은 어떤 생산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다. 먹고 글만 읽는 선비들을 보낸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었다. 때로 불평하는 말들만 많은 불필요한 존재들이다.
부윤은 좋은 계획이라고 판단해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선비들도 봉황성으로 보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굳이 이런 부탁을 부윤에게 하는 이유는 부윤이 허가증을 써주어야 국경선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명나라로 이민을 떠나는 형식이다. 하지만 봉황성의 특성상 국적을 바꾸는 이민이 아닌 조선국적을 지닌 상태로 단순한 이주민으로 받아볼 요량이다.
이는 이미 의주에서도 의주부윤을 만나 협상한 내용이다.
조정이 아닌 지방 장관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한양의 조정에서는 혹시 정치적인 이유로 이주민을 보내지 않으려는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의주와 평양 부윤을 만나 주민들의 이주를 요구한 것이다.
마침 조선에서 기근이 심하다니 추가로 부탁했다.
“혹시 평양에 집단으로 움직이는 유민들이 있거나 거지나 부랑아들이 있으면 봉황성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요동지역에 제 직할 봉토지는 넓으나 사람이 너무 없어서 그럽니다. 그리 보내시면 그들이 경작할 토지를 얼마든지 소작으로 줄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런 조건이면 보내도록 하죠.”
평양 부윤과 만나서 이런 협상을 끝내고 나자 최인범은 그와 헤어져 대동강을 넘어 다시 한양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란히 말을 타고 가며 자순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북경에서 조선으로 보낸 교지의 내용을 잘 아나?”
“예.”
“도대체 교지 내용이 정확하게 뭔가?”
“첫 번째는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윤임 우의정이 두 번이나 부마도위를 암살하려고 뒤에서 돈을 댔다는 문제로 윤임을 북경으로 소환한다는 내용입니다.”
정말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외교문서를 조선에 보낸 것이다.
‘설마 했더니 너무 직설적으로 윤임의 잘못을 핑계로 압박하는군.’
이렇게 판단하고 다시 물었다.
“다른 내용은?”
“두 번째는 산동 반도의 반란군을 무찌르기 위해 조선국에서 선박 200척과 해군 1만명을 보내달라는 파병요청이고요. 마지막으로는 동해안에 자주 출몰해 노략질하는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로 출병해 조선으로 완전히 병합해 왜구를 소멸시키라는 요구입니다.”
“그것뿐인가?”
“또 있지요. 산동 반도의 반군이나 대마도 출병의 군사들은 모두 부마도위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인 총병관(總兵官)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을 통보하는 것입니다.”
봉황성주 겸 발해요동도독 안찰사 겸 도지휘사 겸 산동 왜 토벌평안 대장군(鳳凰城主 兼 渤海遼東都督 按察使 兼 都指揮使 兼 山東 倭 討伐平安 大將軍)이란 긴 직책의 정확한 업무를 알게 되었다.
세상은 공짜가 없는 법이라 그런지 벼슬을 거창하게 주고 철저하게 부려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내용을 교지에 적어서 보냈다는 건가?”
“대장군, 그렇사옵니다. 만약 조선에서 어떤 식으로라도 출병에 응할 경우는 기병대 1000명과 보병 2000명은 봉황성에서 무조건 왜나 산동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자네는 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저야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대장군의 능력을 믿으니까요. 하지만 북경의 조정이나 사신 그리고 조선 조정은 믿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내게 무슨 힘이 있어 그런 큰 군사작전을 해.”
“대장군께서는 이미 건주여진의 많은 기마병을 거느리고 있으니 가능하죠. 조선에서 선박만 내어 준다면 1만명의 기병을 요동으로 보내거나 왜로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뭐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신만 안다고 판단하던 설화가 지휘하는 흑풍대의 기마병 수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자순이 알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야 원. 앞으로 이놈을 조심해야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