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이미 정향 대공주가 대공주부를 만들어 놨다. 그 때문에 데리고 온 100명의 고아들은 모두 저택에 살게 했다. 집이 너무 크다가 보니 약간 부담스러웠다.
‘식구도 없는데 집이 너무 거창하군.’
정향 대공주가 거처로 사용하는 안채와 별도로 사랑채라고 칭했다. 자신의 숙소로 사용하면서 모든 고아들을 그곳에 머물도록 했다.
50명의 소녀들은 모두 사랑채에서 지내는 자신의 시녀로 삼고 50명의 소년들은 호위병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치를 내렸다.
“철병웅은 앞으로 고아들의 군사훈련을 담당해.”
“넷!”
소녀들도 기본적으로 군사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건강하게 자라게 할 필요도 있다. 표면으로는 시녀지만 언제고 무기를 들고 자길 보호할 호위병이 될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이다.
이어서 봉황성에서 10리 떨어진 북쪽에 건주위 총감부 좌위를 설치했다. 장익덕을 대대장인 소령으로 임명하고 4개 중대로 나누게 했다.
“말이 충분하니 2천명인 대대를 만들어서 4개 중대로 나누고 1개 중대는 압록강의 의주 건너에 있는 단동으로 가서 압록강 하구인 나루터를 완전히 장악해.”
“넷!”
최인범은 일단 자신에게 부여된 건주위 총감이 조직할 수 있는 좌우위 설치를 명령했다. 그런 조치가 끝나자 봉황성주이자 발해요동 도독의 자격으로 기본적인 군사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요동으로 접어들면서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 공주의 가복 출신인 장천중에게 보병 2000명으로 구성된 도독 직할 보병 대대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보병만으로 대대를 만들라는 명령에 장전중이 물었다.
“대장군, 도독 직할부대는 보병들만 있나요?”
“왜? 다른 부대가 필요한가?”
“봉황성을 지키려면 포병부대도 만들어야 되지 않아요?”
“대포가 있어야 포병을 만들지 않나? 그만한 재물이 없는데 뭐로 포병을 만드나?”
“그건 그러네요.”
장전중도 대대장인 소령으로 임명해 봉황성을 수비하는 방어부대를 편성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부대만 편성하고 병사들이 주로 하는 업무는 성곽을 보수하고 교대로 성문이나 대공주부의 외부에서 번을 서는 업무만 주어졌다.
도독의 자격으로 명나라의 향직인 벼슬을 부하들에게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북경으로 보고해야 되기 때문에 일부러 벼슬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대공주부의 문관을 담당하게 되는 자순이 걱정되어 물었다.
“대장군, 군사들에게 벼슬을 내려야 되지 않나요?”
“봉급을 줄 재력이 전혀 없잖아. 그러니 일단 집단 급식 방법으로 숙식만 제공해. 조세가 들어오는 가을에 벼슬도 정하고 보수도 정할 것이니 그렇게 알아.”
“알겠습니다.”
“불만이 있는 병사는 언제고 전역을 신청하라고 해. 그리고 꼭 지금 보수를 받아야 하는 군사들은 모두 정향 대공주에서 책임지게 하고.”
“대장군, 그게 가능한가요?”
“대공주가 책임지지 못해서 그렇게 안 된다면 모조리 북경으로 돌려 보내던가하고.”
아직도 오만하게 행동하는 정향 대공주에게 불만이 많다. 그러니 명나라에서 데리고 온 병사들을 일일이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더구나 조선으로 가서 형편을 알아야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중계무역이라도 해서 재물을 모을 수 있다. 재물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으니 지금은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장주한이나 홍성철은 안경제조, 천일염 생산, 무기생산, 광산개발, 망원경 제작, 의료사업에 대해 둘이 협조해서 관장하도록 조치를 내렸다. 아울러 통화에서 가져온 감자를 심도록 지시했다.
“아직은 식용으로 쓰기가 곤란하니 내년 가을까지는 무조건 종자로 사용해.”
“알겠습니다.”
봉토지에서 조세를 걷어 봐야 도독부 소속인 보병들의 유지비와 봉황성의 보수나 또는 관공서 운영비로 충당되니 사실 남는 재물은 없었다.
수확철인 가을이 되어 요동지역에서 거두는 조세의 일부가 들어오면 조금은 여유가 있어 사업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별로 기대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빈 껍질만 있는 봉토지야.’
새로운 작물인 감자를 빨리 근처의 농가에 공급해야 조세 수익이 늘게 생겼다. 본래 의도와는 달리 신품종을 주로 요동지역에 보급하는 결과를 가져오자 은근히 속이 쓰렸다.
‘일이 아주 고약하게 되어 버렸어.’
행정 조직은 손대지 않고 목표한 그대로 군사권만 확실하게 챙겼다. 재물을 모으기 위해 신품종이나 새로운 광산 개발 등만 확실하게 챙겨 놓았다. 천진에서 가져온 군복만 나누어 주고 보니 보유한 군수품도 바닥이 났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벌어야 뭐든 할 수 있었다.
많은 업무를 빠르게 진행시키다 보니 밤이 늦도록 사랑채에서 심복부하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자순이 봉황내의 봉토지인 토지 대장을 가지고 설명했다.
“대장군, 신품종인 감자는 직할 봉토지인 밭에 심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은 신경 쓰지 않아 몰랐지만 봉토지인 토지가 상당히 많았다. 국유지에 해당되지만 버려진 토지로 밭으로 개간해야 된다.
“가축이 많으니 밭으로 개간하기는 어렵지 않으니 그곳에 심기로 하지. 보병 부대원을 동원해서 개간해서 감자를 심어 봐. 기마병들은 말로 밭을 갈아주어 돕도록 하고.”
“넷!”
천일염을 생산하기 위한 부지는 아무래도 압록강 하구는 염도가 낮아 서쪽 지역의 해안으로 정해야 한다. 현재로는 그곳이 최적지다.
“장주한이 현장으로 직접 가서 염도도 측정해 보고 부지는 기마병과 보병을 보내서 만들어.”
“알겠습니다.”
“바닷물을 끌어 올려야 하는 수차도 미리 제작해 두고 염전 바닥을 깔 자기도 충분히 생산해 두도록 해.”
“넷!”
군사적인 문제야 그런대로 대대장들이 알아서 조치한다. 장주한과 홍성철이 수행하는 업무는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어휴! 할 일은 너무 많고 책임을 줘서 시킬만한 사람은 없으니 정신이 없어.’
그래도 하루 종일 직접 챙기다 보니 어느 정도로 업무는 정리되었다. 그러자 이제 조선으로 떠날 생각으로 철갑웅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는 조선으로 가야 하니 철갑웅과 철을웅은 여진 출신으로 호위병 20명씩을 선발해. 말을 타고 가니 기병대에서 무술이 제일 뛰어난 병사로 차출해. 물론 조선말을 잘하는 병사야 되고.”
“넷!”
자순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순은 먼저 조선의 의주로 가서 내가 입국하는 절차를 밟도록 해.”
“대장군, 어떤 직책으로 들어가시려고요?”
“나는 전에 조선에서 받았던 벼슬의 신표인 마패가 있으니 그런 정도면 충분해.”
조선을 떠나기 전에 검교직인 정7품 사정(司正)을 하고 있었으니 그 신분으로 한양으로 갈 생각이다. 최인범이 이렇게 말하자 자순은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장군, 그건 정말 곤란합니다. 명나라의 벼슬을 내세우고 싶지 않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만 부마도위께서 그런 낮은 신분으로 돌아가시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깁니다.”
자순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최인범은 기어이 검교직인 사정이란 벼슬을 가지고 입국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 생각은 확실하니 의주로 가서 그렇게 협상해.”
“알겠습니다.”
“공연히 불편하게 엉뚱한 직책을 내세워 협상하지 말고.”
“명을 따르겠습니다.”
개마고원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또는 암살을 획책한 윤임도 건재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명나라 사신이 한양으로 가 있을 때 가보는 것이 안전을 위해서는 좋다고 판단했다.
일반 무직으로 이동할까도 생각했지만 무장한 호위병을 데리고 가려다 보니 검교직인 사정이란 벼슬로 입국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역참도 이용하려면 그 벼슬은 달고 내려가야 해.’
혼자 몸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조선에서 좋게 생각할리 없다. 최소한이라고 보는 40명 정도를 호위병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다. 그래야 필요하면 수시로 역참의 말을 이용하거나 직접 부하를 보내 봉황성으로 연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철갑웅이 다가와 보고했다.
“대장군, 호위병의 선발을 끝냈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출발하지.”
“넷!”
최인범은 40명의 호위병과 철씨 형제를 데리고 서둘러 단동으로 향했다. 그리고 단동에서 기다리는 자순을 만나 같이 의주로 떠나게 되었다.
“의주에서 뭐라고 하던가?”
“검교직인 사정으로 입국한다니 조금 당황하더니 결국 그렇게 하라고 승낙하더군요.”
“알았어.”
오랜만에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일단 전쟁을 벌이지 않고 압록강 북쪽을 차지했으니 이만하면 명나라로 가서 벌인 사업들은 엄청나게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 성과가 너무 크다가 보니 조선에서 어찌 받아들일지 은근히 걱정이다.
‘한양으로 가서 보면 알겠지.’
한편 대공주부의 안채에서는 남편이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으니 정향 대공주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집만 덩그렇게 크게 만들고 나서 남편이 오질 않으니 오히려 썰렁하고 여름이지만 차가운 냉기가 가슴을 스치고 있었다.
‘나를 기어이 버리려고 하나 봐!’
이곳에 오고 보니 이미 여진족 족장 딸인 설화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걱정되었다. 가만히 분위기를 보니 조선으로 갈 것 같았다. 조선에는 또 얼마나 많은 여자가 있는지 모르니 마음은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혼인했다고 해야 첫날밤도 보내지 못한 처량한 처지라 기가 팍 죽어 버렸다.
‘친정으로 연락해 해결해야 하나?’
그랬다가는 진짜로 이별할 수 있으니 그것도 어렵다. 더구나 동쪽으로 갔다가 돌아오며 말을 4천필이나 가져오자 설화의 위세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자신과 비슷한 나이인 예쁘고 어린 시녀들을 50명이나 공주부로 들어오게 하자 더욱 심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향 공주는 시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랑채로 가서 부마께 전해 내가 만나고 싶다고.”
“예.”
오만하던 시녀장도 상황이 점점 꼬여가니 이제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급하게 사랑채로 가서 부마를 만나려고 하나 최인범은 이미 단동으로 떠나버렸다.
당황한 시녀장은 남아 있는 철병웅에게 급하게 물었다.
“어마! 부마께서 떠난다는 기별도 대공주님에게 하지 않고 갑자기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