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230화 (230/519)

230화

눈알이 파랗게 생긴 여자가 음침한 창고 안의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창고에는 말이나 소에게 사용되는 도구들이 즐비했다. 손에는 가죽으로 만든 짧은 채찍을 들고 백삼수를 매섭게 노려보자 겁이 났다. 고분고분 답하지 않으면 창고에 있는 도구들이 어쩌면 잔인한 고문기구로 사용될 것 같았다.

“이름은?”

“백삼수입니다.”

겁에 질린 백삼수는 여자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자신의 과거에 대해 물어보던 여자가 나가면 바로 멍석말이인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퍽! 퍽!

“으으윽!”

매타작이 시작되면 반드시 재갈을 물리니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온 놈이 축 늘어지게 두들겨 패고 나면 한 참 지나서야 여자가 들어와 다시 물었다.

묻고 패기를 반복하고 더구나 이미 답한 내용도 다시 반복되었다. 밥이나 물은 아주 잘 먹이며 심문은 계속되었다.

죽을 듯이 패고 묻기를 반복했다. 백삼수는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실을 그대로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전에 말한 내용과 아주 조금만 달라도 안 된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때는 어김없이 여자는 밖으로 나가고 매타작이 시작되니 거짓을 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백삼수는 며칠간 창고에서 심문을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네놈은 본시 내 남편의 수족이었으니 이제부터는 내 수족으로 살아. 내가 보기에 네가 지금 조선으로 돌아가도 별로 살길이 보이지 않아. 그러니 내 명령에 따르는 것이 좋아.”

“알겠습니다. 마님.”

매 타작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본시 겁이 많고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백삼수는 자신을 살려주는 대신 수족으로 부린다는 말에 그저 감복할 뿐이다.

‘휴! 겨우 살아남긴 했어.’

이미 여자를 농락하는 재주도 뛰어나고 방물장사하며 여자들을 섭렵하던 모든 사실까지 토해냈다. 당연히 엄숭의 애첩을 날름한 사실이며 그녀와 친구인 다른 대신의 첩실들도 공략한 비밀을 토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새로운 주인으로 변한 여자는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내 주변에는 거치적거리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 그러니 네가 그 여자들을 재주껏 포섭하도록 해.”

“여자요?”

“그래. 자금성에서 온 시녀들이 10명이 있으니 네 재주껏 포섭해.”

지독하게 두들겨 패더니 처음 부여된 임무는 천상으로 보내주는 형식이다. 백삼수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이 여자는 진짜 단수가 높아.’

외부로 나가지는 못하지만 창고에서는 풀렸다. 백삼수는 즉시 몸에 좋다는 인삼도 먹고 보약도 먹였다. 물론 백삼수는 태향 무역 행수로 은자가 많으니 모두 사먹어야 한다.

백삼수는 우선 몸을 약간 추스르고 나자 황궁에서 오게 된 여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제일 처음 시도하는 방법이 하녀로 변장하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시녀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30대인 여자에게 접근해 다리를 주무르고 아마도 해주며 지극 정성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에 밤이 되자 시녀의 방에서 같이 자게 되었다.

이후의 일이야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30대인 시녀는 다음날부터 여자로 변신한 백삼수를 만나면 묘하게 엉덩이를 흔들거나 다리를 비비 꼬았다. 그런 뒤에는 그 시녀와 친한 다른 시녀와 셋이서 같이 잠을 자고 한 명씩 공략해 나가고 있었다.

백삼수는 하루에 한 번씩 새로운 주인인 소피아를 만나 보고했다.

“마님, 5명은 완전히 포섭했습니다.”

“그래? 같이 잠을 잤다고 여자를 수족처럼 부릴 정도로 포섭됐다고 할 수는 없지.”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실수한다면 목을 잘라도 좋습니다.”

“믿어보지.”

그저 재미로 여자를 취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백삼수는 목숨이 걸린 중요한 작업이다. 그 때문에 조금의 실수라도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니 본시 지니고 있는 여자를 녹이는 재주나 또는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큰 물건으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창고에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지내는 것에 비하면 이런 상황이야 지상낙원이다.

드디어 황궁에서 왔던 시녀들 10명을 백삼수가 모조리 공략해 수족처럼 부릴 수 있게 포섭했다는 보고를 받자 소피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자를 후리는 재주가 이토록 튀어나니 대장군께서 너를 살려두라고 하신 것 같군.”

“마님, 대장군께서 저를 살려 주신다고 하셨나요?”

“그래, 그분은 이미 떠나기 전에 네가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어. 틈만 보이면 배신하는 짓은 너무 괘씸하지만 인연이 깊다며 반드시 살려주라고.”

이런 설명에 백삼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군이 살려주라고 이미 명령했는데 그동안 죽일 듯이 팼으니 여자가 보통 독한 것이 아니다. 우선 죽일 듯이 미구 패고 나서 설명하는 지독한 여자와 비해서 너무 후하던 최인범을 배신한 것이 정말 후회된다.

‘아고야, 내가 호랑이를 피하려다 결국 더 무서운 암호랑이를 만났어.’

소피아는 마지막 점검이라도 하듯이 지시했다.

“네가 여자들은 포섭한 것이 확실하게 증명할 필요가 있으니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해.”

“마님, 어떤 정보를 수집해야 완전히 포섭된 것으로 보나요?”

“그거야 네가 포섭한 여자들이 물어오는 정보를 들어야 내가 평가하지.”

“알겠어요.”

어떤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도 없으니 스스로 소피아에게 유용한 정보를 수집해야 된다.

백삼수가 소피아의 손아귀에 들어가 새롭게 첩자로 길들여지는 중 어느새 여름이 되었다.

이미 황궁에서 왔던 시녀들은 모두 돌아갔다. 떠날 때는 모든 시녀들이 한 결 같이 첫사랑의 남자인 백삼수를 붙들고 처절하게 울었다.

“흐으윽. 가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만나기로 하지.”

백삼수는 울면서 매달리는 시녀들을 어루만져주면서 달랬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가운데 그나마 백삼수에게 희망이 있다면 황궁으로 돌아가는 시녀들이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이 시녀들이 내 배경이 되어 줄 거야.’

이 무렵 최인범은 조선으로 가는 명나라 사신 행렬과 동행하고 있었다. 그가 다다른 곳은 요동의 안산이다. 다소 편하게 이동하던 그에게는 새로운 난제가 발생했다.

요하를 건너 요동 땅에 들어서자 넓은 들판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요하를 건너기 전에 명나라에서 보낸 기마병 1천명을 대동한 사신들과 만났다.

조선으로 떠나는 사신의 정사로 환관인 동창관리로 1품 태감인 진상이 임명되어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대장군, 저희와 같이 가시죠.”

“그럽시다.”

진상 태감은 아주 뚱뚱하고 양쪽 볼이 축 늘어진 모습이고 눈을 쭉 째져서 초승달 모양으로 아래로 굽어 아주 탐욕스럽고 음험해 보여 완전히 비호감이다.

‘생긴 것이 이름과 같이 진상으로 생겼어. 조선은 앞으로 저 놈 때문에 머리 좀 아프겠어.’

정사인 진상을 보자 갑자기 식욕이 떨어질 정도로 비위가 상했다. 더구나 물건도 달리지 않은 놈이 무슨 여색을 그렇게 밝히는 것인지 수시로 여자타령을 했다. 대공주를 따라가는 예쁘고 젊은 시녀들에게 계속 눈길을 주며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말이야 달리 토하지만 찢어진 입이라고 계속 나불거리고 있었다.

“요동에 오니 못생긴 여자들만 많아 앞으로 대장군은 무슨 재미로 살지 염려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젊은 대장군이 은근히 걱정 되서 하는 말입니다.”

대공주의 남편인 부마도위에게 감히 이런 수작을 거니 아무튼 여색은 무척 밝히는 놈이 확실했다. 자신에게 접근해 자꾸만 뭘 알아내려고 말을 거는 진상 태감이다. 같이 가지만 호감이 가지 않아 약간 떨어져 이동하고 있었다.

사신단 행렬에 반가운 인물도 있었다. 명나라 사신단도 정사와 부사가 있다. 정사는 1품 태감인 진상이고 부사에는 기마병을 지휘하는 도독첨사(종2품)인 팽추평이다.

최인범이 반가워한 인물은 자금성에서 만났던 환관인 자순이다. 그는 서장관인 3품으로 같이 가고 있었다.

“대장군, 정사와 부사는 모두 심계가 깊은 사람들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알았소. 그렇게 하리다.”

최인범은 자신에게 부마도위가 아닌 대장군으로 계속 부르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알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요하를 건너 야영하고 나자 바로 정향 대공주가 있는 막사로 찾아 갔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시녀장이 막사 앞에서 막아섰다. 얼굴도 도도한 빛이지만 입으로 매우 건방진 말을 토했다.

“대장군, 아직 대공주님께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시니 돌아가세요.”

“뭐라? 그것이 무슨 뜻인가?”

“대공주님은 지금 몸이나 심기가 매우 불편하십니다.”

아무리 지체가 높은 대공주라고 하지만 남편이 처음으로 만나려고 하자 냉전하게 거절하니 황당했다. 순간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서장관인 자순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장군, 그동안 잠잠하시더니 어인 일로 갑자기 대공주님은 만나려고 하시는지요?”

“내가 그동안 너무 바빠서 확인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그렇소.”

자존심이 상한 최인범은 정향 대공주의 막사에서 멀어져 자신이 머무는 막사로 갔다. 졸졸 따라 막사로 들어온 자순에게 물었다.

“헌강왕은 도대체 연세가 몇 살이나 됐소?”

이렇게 묻는 이유는 늙어서 난 딸이라 너무 귀엽게 키워서 버릇이 없어서 이런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순은 놀라운 대답을 했다.

“헌강왕께서는 지금 30살입니다.”

“뭐요? 헌강왕이 그렇게 젊다는 말이요?”

“대장군께서는 황실 족보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군요.”

최인범은 아비가 30살에 불과하니 정향 공주의 나이는 이제 10살도 되지 않았다고 짐작해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주 어린 여자와 혼인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진상 태감이 토하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정확하게 알 것 같았다.

“휴우! 어린 애와 혼인을 하다니?”

이런 중얼거림에 이번에는 자순이 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이 동그래져서 놀라고 말았다. 분명 정향 공주는 나이가 전혀 어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혼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다.

명나라의 명문가에서는 보통 12살이 되면 혼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황실이나 왕부에서는 그것이 통상적인 결혼 적령기로 판단한다.

남자가 어리면 대부분 여자의 나이가 서너 살이 많고 남자의 나이가 18세 정도로 많을 경우는 여자의 나이가 4-5살 어리다. 아무튼 남녀 모두 다소 늦더라도 16세 이전에는 대부분 혼인한다.

자순은 전에 만나서 느끼고 있지만 대장군이 다른 분야에서는 모두 뛰어나지만 여자 문제에서는 다소 미숙해 보이는 터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장군. 정향 대공주님은 지금 연치가 대장군과 5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뭐라? 그럼 지금 16세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헌강왕께서 10세에 혼인해 14세에 정향 대공주님을 보셨으니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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