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229화 (229/519)

229화

남들은 고귀한 신분이라고 칭송하는 귀비가 되었지만 사는 재미가 전혀 없었다.

이제부터 뭐하면서 살지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속마음을 털어 놓자 왕미령이 조심스럽게 권했다.

“마마, 그분이 남긴 소설이라도 자주 보세요.”

“알았어.”

최인범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여러 가지 한문소설을 틈틈이 써서 한부씩 필사해 왕미령에게 넘겨주었다.

이어서 최인범이 알려준 바둑에 대해서도 말했다.

“시간도 많으니 자금성으로 들어가 바둑도 배우세요.”

“그게 좋겠어.”

자금성에서 두 여자가 시녀들과 찾아오게 되자 어찌 되었건 고려 여각은 바빠졌다. 주방에서 새로운 음식인 합돈거를 만들어 보여주자 두 여자는 맛을 보고 놀랐다.

“어머, 이건 특이한 맛이 나네.”

“그렇게 맛이 있어요?”

“빵이 너무 커서 입을 크게 벌려야 먹으니 남들 보기는 흉해 보이지만 맛은 너무 좋아.”

명나라에는 빵이란 그저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만두와 찐빵이 고작이다. 그러나 새로 생산되는 빵은 유럽식으로 밀가루에 계란과 우유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전혀 맛이 달랐다.

최인범은 명나라로 와서 여러 가지 면에서 크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바둑대회를 여는 풍토도 만들고 한문 소설을 널리 보급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합돈거 판매도 그중에 하나로 새로운 빵을 등장시키고 떠났다.

한편 명나라의 조정에서는 부마도위를 암살하려는 사건을 빠르게 종결지었다. 사건의 전말은 실제와는 상관없이 조선국의 우의정인 윤임을 배후로 확정했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윤임을 명나라로 소환해 오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조선의 윤임을 잡아 오도록 합시다.”

“그럽시다. 감히 대국으로 와서 부마도위를 암살하는 음모를 꾸몄으니 그냥 둘 수 없소.”

“사신을 보내도록 하죠.”

조선의 윤임 대감은 명나라 사신으로 왔을 때 요동에서 여진족을 동원해 최인범을 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부마도위인 최인범을 왜와 조선의 자객들을 동원해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조사를 끝냈다.

건청궁에서 부마도위의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기다리고 있던 가정제는 이미 사전에 계획한 그대로 대신들에게 하명했다.

“동창의 진상을 조선 사신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으니 속히 사신단을 구성해 보내시오.”

“예이.”

“조선의 한양으로 가서 반드시 윤임을 붙잡아 오시오. 사신단은 정예병인 기마병 1천명을 데리고 가시오.”

기마병 1천명을 선정한 이유는 빠르게 이동해 조선으로 보내서 조선국왕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한양에서 임무를 끝내면 조선과 국경에서 가까운 봉황성에서 머물며 부마도위인 최인범을 견제하는 무력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가정제나 엄숭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것처럼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이이제이 수법으로 사용하는 외교 전략이 크게 잘 못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최인범은 조선과 접한 건주여진에서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봉황성을 그에게 넘긴 것은 요동 땅을 거저 넘겨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충수를 두어 이미 만주는 최인범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의 수중으로 떨어진 다는 것을 몰랐다. 더구나 알게 모르게 최인범이 남쪽의 보타도로 가면서 했던 행동들 때문에 명나라 백성들이나 유림에서는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생겼다.

북경에서 조선의 중신인 윤임 대감을 추포하기 위해 사신단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기마병 1천명과 같이 떠나고 있었다. 그러자 그런 소문은 빠르게 북경과 천진으로 널리 퍼졌다.

천진의 관아로 끌려갔다가 무죄 방면된 백삼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다가 이런 소식을 듣자 기절하듯이 놀라고 말았다.

‘헉! 이제 나는 죽었어.’

자신은 전혀 피해가 없는 계책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윤임을 체포하기 위해 군사까지 조선으로 보낸다니 뭐가 크게 잘 못되었다.

‘윤임 대감이 다급하면 분명 암살단을 매수한 나를 지목할 거야. 정말 큰일 났군.’

명나라에 있어도 자칫하면 개장수가 실토해 버리면 사건의 배후라고 지목되어 죽게 생겼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윤임이 저 살자고 자기를 범인인 주범으로 지목할 수 있으니 오고 갈 곳이 없게 생겼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개장수가 그렇게 빨리 체포되고 얼굴까지 그려서 수배령을 내린 것으로 보아 최인범이 사건의 전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장군은 이미 내가 암살단을 보내 사실을 알고 있을 거야.’

최인범의 성품을 잘 아는 백삼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사신단보다 빨리 한양으로 가서 손을 쓰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 월녀라면 대장군께서 너무도 끔찍하게 생각하니 그 애를 먼저 만나서 어떤 수단을 쓰던 포섭하는 수밖에 없어.’

백삼수는 최대한 빨리 조선으로 돌라가기 위해 천진 항구로 가게 되었다. 최인범이나 사신단 보다 먼저 가기 위해 배를 타고 돌아갈 계획이다.

백삼수가 천진 항구로 가는 동안 발해여각에서는 소피아가 정향 대공주가 떠난 저택을 돌아보고 하녀들에게 명령했다.

“괴한들이 침입도 했었으니 빨리 이곳으로 안방의 짐을 옮기도록 해.”

“넷!”

정향 대공주가 완전히 떠났지만 그녀가 돌아오면 항상 쓸 공간은 비워둬야 된다. 그래서 가장 큰 방은 별도로 놔두고 조금 작은 방으로 짐을 옮기도록 했다.

정향대공주가 사용하던 저택이라 규모도 크고 방이나 창고도 많았다. 자금성에서 오게 된 시녀들 10명이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헌강왕부에서 데리고 온 시녀들은 모두 정향대공주가 데리고 떠났다. 감시 역할로 자금성에서 오게 된 시녀들은 남겨놓아 황궁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자금성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녀들에게 짐을 옮기라고 지시를 내리고 나자 소피아는 산해관까지 따라갔던 호위대장인 타말을 보며 지시했다.

“대장군께서는 조선의 상인을 그대로 두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놈이 뒤에서 암살범을 보낸 것 같으니 빨리 수배해서 잡아들이도록 해.”

“넷! 그놈을 미행하고 있으니 언제고 잡아들일 수 있습니다.”

“대장군께서 호위무사를 늘리라고 했으니 되도록 몽골, 여진, 조선 출신 여자와 혼인한 무사들을 골라서 채용하는 것이 좋겠어.”

“소 부인의 명을 반드시 수행하겠습니다.”

최인범이 있을 때는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된다. 하지만 지금은 떠났으니 소피아는 백삼수를 잡아들이기로 했다. 오래전에 남편과 같이 동업도 했다니 그놈을 잡게 되면 남편의 과거를 알 수가 있어 잡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도대체 무슨 약점이라도 있어 그런 못된 놈을 살려두려는 거야?’

남편의 주변에 여자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자 문제로 약점을 잡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소피아는 남편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관심이 많다가 보니 그만큼 남편에 대해 알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라도 백삼수를 잡아서 문초해볼 생각이다. 더구나 전과 달리 명나라에서 벼슬을 받은 처지라 얼마든지 직접 무사들을 호위병으로 데리고 있을 명분이 생겼다.

‘그 놈이 보낸 암살범들 때문에 황금보다 더 아까운 잠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반드시 잡아야 해.’

남편이 떠나고 나니 같이 보낸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처음이야 그저 한 번 품어주는 것으로 황송했다. 하지만 막상 부인이 되고 보니 같이 보낸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진 것이다.

‘괘씸한 놈이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그런데 성깔이 보통은 넘는 소피아는 자신의 행복한 시간을 갈아 먹어버린 그놈을 그냥 둘 수 없었다.

타말에게만 추포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본시 무술 실력이 뛰어난 하녀들에게도 명령했다.

“너희들도 그놈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잘 익혀두고 발견하면 잡아들이도록 해.”

“넷!”

“개장수처럼 관아로 넘기지 말고 반드시 별장으로 끌고 와. 그놈은 내가 직접 문초할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소피아는 백삼수도 잡아들여야 하지만 최인범이 떠나기 전에 알려준 새로운 음식인 합돈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타타르 부족은 멀리 유럽과 교류가 있어 유럽식인 빵을 제조해 식용으로 사용한다. 그런 빵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중간에 양념을 넣고 먹어보니 너무 맛이 있었다.

노점 형식으로 판매해야 잘 팔린다고 했다. 그러니 싸게 만들어 항구나 사람의 이동이 많은 곳에 지점을 개설해야 된다. 빵이나 모든 재료는 발해여각 내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하고 지점에서는 그저 판매만하는 방식이다.

‘빵이나 튀긴 고기가 너무 식으면 곤란하니 빵은 한 시간마다 마차로 지점으로 돌아다니며 공급하고 다진 고기는 지점 내에서 튀기는 방법이 좋겠어.’

천진은 발해만과 접한 항구도 있고 북경으로 통하는 운하는 물론 남쪽으로 가는 대운하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천진에는 화물을 운반하는 노무자들이 많았다.

최소한 그들이 합돈거를 사먹을 정도는 싸게 공급해야 사업은 성공하게 생겼다. 그래서 소피아는 우선 재료를 싸게 공급 받기 위해 대량으로 물건을 납품 받는 구매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싱싱한 채소를 공급할 농부를 찾아서 데리고 와.”

“넷!”

소파아가 별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동안. 백삼수가 드디어 천진항에 나타나 조선으로 떠나는 배를 알아보고 있었다. 멀리 조선의 해주에서 왔다는 선주를 만나 흥정했다.

“조선까지 가는데 얼마면 되겠소?”

“삯이야 쌀로 3가마만 주면 돼요.”

“너무 비싸지 않소?”

“무슨 소리요. 가면서 먹지는 않을 생각이요? 배 삯이 싸다고 보는데요.”

“알았소. 그럼 언제 출발할 거요?”

“내일 출발이요.”

이런 식으로 선주와 흥정을 막 끝내고 있는 순간 갑자기 옆에 건장한 청년들이 둘러싸며 크게 호통 쳤다.

“백 행수, 어디로 도망가시나? 우리와 같이 발해별장으로 가야 되겠어.”

“내가 왜 그곳으로 갑니까?”

눈치가 빠른 백삼수는 재빨리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포위된 상태라 도망칠 길은 전혀 없었다. 이제 죽었다는 느낌이 들어 백삼수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사정했다.

“한 번만 봐주시오.”

“잔말 말고 순순히 따라와. 얻어터지고 따라오지 말고.”

오라를 채우지는 않았지만 청년들에 둘러싸여 백삼수는 순순히 대공주부의 발해별장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는 그저 부드럽게 다루더니 대문 안으로 들어서고 나자 상황은 돌변했다.

호위대장인 타말이 크게 명령을 내렸다.

“저놈의 입에 재갈부터 물리고 우선 멍석말이부터 시작해.”

“넷!”

멍석마리는 외부에 상처는 없지만 안으로 골병이 드는 매타작이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멍석으로 말아서 둔탁한 몽둥이로 마구 팼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백삼수는 쉬어터진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마당에서 신나게 두들겨 맞고 나자 백삼수는 안채의 커다란 창고로 끌려갔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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