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228화 (228/519)

228화

인상착의를 들어보니 더 물어 볼 필요도 없이 백삼수가 분명했다.

최인범은 자신을 해하려는 무리를 돕는 백삼수를 직접 처치를 하던가? 아니면 그런 약점을 가지고 백삼수를 철저하게 이용할 요량이라 즉시 지시를 내렸다.

“아마, 그 상인은 조선의 첩자를 단순하게 평소부터 잘 아는 사이라 탈출에 필요한 은자를 넘겨준 것 같으니 관아로 보고하지는 마.”

“대장군. 그 상인은 천진에서 검거되었지만 엄숭의 힘으로 금방 감옥에서 풀려 나왔습니다. 그러니 그냥 단순하게 판단할 사안이 아니옵니다.”

“그야 엄숭의 애첩이 뒤에서 힘을 발휘해서 방면한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어.”

“엄숭의 애첩이 힘을 써요?”

“과거부터 나와 동업도 하고 잘 아는 놈 같으니 그런 줄 알고 더 이상은 그 상인의 뒤를 캐보지 마.”

“알겠습니다.”

일단 타말의 이런 보고가 끝나자 철갑웅이 보고했다.

“대장군, 조선에서 왔다는 개장수는 조선의 윤임대감 지시 때문에 대공주께서 머무시는 저택을 정탐만 했지 암살자를 보낸 사실은 전혀 모른답니다.”

“뭐라?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리 말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동창에서 나온 심문관이 계속 윤임 대감이 사주한 사실이냐고 다그쳤다고 하옵니다. 처음부터 조선의 윤임이란 관리를 지목해서 추궁했다고 합니다.”

최인범은 확신을 얻기 위해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개장수가 암살의 배후로 윤임 대감을 거론한 것이 아니고 동창의 관리들이 와서 죄인을 그렇게 유도 심문을 했다는 거지?”

“대장군, 그렇습니다. 억지로 자백을 강요해도 인정하지 않자 강제로 수결을 받아서 동창은 사건 조사를 끝냈다고 합니다.”

이런 보고에 최인범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건의 핵심인물인 자신과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렇게 처리하는 법은 없었다.

“죄인은 어찌 처리하고?”

“죄인은 동창에서 북경으로 데리고 가고요. 들리는 이야기는 이번 사건 때문에 조정에서 조선으로 사신단을 보낸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대장군과 사신단이 같이 가게 한다는 소리도 있고요.”

이런 보고를 받자 최인범은 즉시 부마도위로 선정된 배경이나 또는 암살 사건의 조사 과정부터는 가정제가 개입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암살단을 매수해서 돈을 넘겨준 것은 바로 백삼수고 배후는 윤임이다. 그 뒤에 조사과정에서는 엄숭이나 황제 그리고 동창 조직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백삼수는 본시 왜인들과도 밀거래를 하던 놈이니 허접한 왜인 자객을 포섭하는 것은 쉬웠어. 영악한 그놈은 개인의 영달이나 치부를 위해 엄숭의 첩실도 이용하지만 윤임도 교묘하게 장기의 졸처럼 이용한 거야.’

이놈 저놈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로 상대방을 졸로 보고 이용한 것이 분명했다.

‘건방진 똥 덩어리 같은 놈들이 나를 가지고 함부로 장난질을 쳐?’

왜인의 자객들이 암살에 성공할 경우 가정제나 엄숭은 골치 아픈 조선의 유능한 장군을 죽이는 것이니 만족할 만한 결과다.

자신을 정적으로 판단하는 윤임 역시 마찬가지다. 백삼수 역시 자신의 비밀을 모두 아는 최인범이 사라지니 이해관계가 성립된다.

암살에 성공하면 백삼수는 양국의 막강한 실권자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니 앞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백여우, 그년이 기어이 나를 정면으로 노리다니 이제 겁을 완전히 상실했어.’

물론 실패해도 백삼수는 별로 손해가 없었다. 이번처럼 문제가 생기면 뒤를 봐줄 엄숭의 애첩이 버티고 있다. 암살자를 매수하는 자금이야 엄숭의 애첩이 넉넉하게 내놓았을 것이다.

‘내 무력을 잘 아는 백삼수가 어설프게 왜인들인 암살자를 나에게 보낸 것은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조치야. 그래야 나를 만나면 변명이라도 하게 되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까. 그놈도 전보다 계책을 쓰는 술수가 많이 늘어 제법 머리를 잘 쓰는군.’

가정제가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조선의 사신을 보낸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보나마나 이번 암살미수사건으로 조선 국왕을 압박해 조공이란 형식으로 뇌물을 받으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그만큼 명나라 황실의 자금이 고갈되어 기반이 너무 약해진 거야.’

평소에는 조공무역은 조선이 항상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뭔가 큰 약점이 잡히면 그때는 조공무역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변한다.

조선국에서 왕위를 찬탈하거나 또는 장자 승계가 아닌 왕위 승계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많은 재물을 일방적으로 바치고 명나라로 사신이 와서 북경의 조정 대신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게 된다.

‘결국 내가 무사하게 됐으니 2번째 계책으로 왕세자의 외숙부인 윤임을 잡아가겠다는 협박해서 무마하는 조건으로 결국 많은 재물을 받아 내려는 수작이군.’

명나라에서는 왕세자의 배경인 윤임을 내칠 수 없는 조선 국왕의 입장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명나라에서 이런 음흉한 수작을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결국 나를 통해 한족들이 해외정책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이이제이 수법은 쓰겠다는 수작이 확실해.’

이런 암살사건은 사실 배후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명나라 조정에서는 아주 빠르게 암살 음모를 전에도 획책한 윤임을 배후로 지목했다. 전에 윤임 대감이 요동에서 활동하던 건주 여진족을 시켜 벌인 암살 미수사건과 연결해 압박할 요량이다.

‘더구나 내가 살아서 압록강 접경인 봉황성의 성주이자 부마도위에 건주여진 총감으로 보내게 됐으니 그들은 성공한 계책이라고 좋아하겠군.’

이렇게 판단한 최인범은 상황을 조금 더 지켜 볼 필요성을 느꼈다.

‘이런 큰 정치적인 거래가 벌어지면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도 뭐라도 크게 얻어야지. 그들이 가만히 있는 나를 장기판의 졸로 알고 마구 움직였으니 인건비는 충분히 챙겨야겠어.’

정신적인 노동도 재화의 가치로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최인범은 이번 기회에 한 몫을 단단히 챙길 심산이다.

명나라처럼 조선국에 재물을 직접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광산 개발권이나 또는 염전을 만드는 터를 받아 내던가? 혹은 필요한 사람을 이주할 수 있도록 조선에서도 우려낼 요량이다.

‘어차피 백성들을 살리는 사업을 벌이려고 해도 조선의 조정에서 시비를 걸지 않아야 뭐든지 할 수 있어.’

명나라 놈들이야 이미 어느 정도 우려냈다. 어차피 떠나게 됐으니 조금 한숨을 돌리게 놔주고 나중에 몇 십 배로 받아낼 생각이다. 물론 그것도 가정제나 명나라 조정 대신들이 하는 짓거리를 봐서 결정할 것이다.

타말은 천진과 산해관의 저택이 모두 대공주부 별장으로 결정됐다는 보고했다.

“대장군. 앞으로 별장의 경계는 어떻게 서죠? 외부의 군사들만 믿어야 하나요?”

“그건 아니지. 그들이야 그냥 교대로 번을 서는 정도니 내부에 지금처럼 호위병을 둬야 해. 그러니 타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사들을 영입하도록 해. 특히 첩자가 스며들면 더 위험하니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이제 암살미수사건도 명나라 조정에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봉황성으로 이동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최인범은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빨리 떠날 사람들의 짐을 꾸리도록 해. 모두 마차를 준비하고.”

“넷!”

자신을 이용하려고 시도한 암살미수사건은 이미 종결됐다. 굳게 잠겼던 산해관의 문을 열릴 것이라 열리는 동시에 떠날 생각이다.

최인범은 앞으로 봉황성을 거점으로 삼아 활발하게 무역을 해볼 심산이라 왕미령의 오빠인 왕도정을 만나 당부했다.

“앞으로 산동성과 강소성 지역이 반란군들이 점령하게 되니 소금가격이 오를 거요. 그러니 지금부터 소금 장사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세요.”

“알겠습니다.”

“소금은 무거우니 반드시 운하를 통하는 화물선을 미리 많이 구입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소금은 명나라나 조선이 모두 조정에서 관장하기 때문에 소금 장사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염전을 개발해서 대량으로 소금을 생산해볼 요량이다.

‘천일염만 대량으로 생산하면 큰일을 도모해 볼 수 있어.’

최인범이 굳이 명나라에서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공을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바로 염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를 생산해야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생산 방식으로 바닷물을 농축해 불을 때서 소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햇빛만을 이용하는 천일염을 생산해볼 심산이다.

‘천일염만 생산하게 되면 사업은 크게 번창할 수 있어.’

조선의 남해안에서 천일염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다면 가격경쟁에서 충분히 주변국들과 경쟁력이 있는 유망한 사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최인범은 산해관의 문이 정상적으로 열렸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 떠나게 되었다. 왕미령은 산해관의 문까지 따라와 배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장군. 흑! 흑!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부인. 잠시 헤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요.”

남편과 생이별을 하게 되니 눈물이 저절로 흐르고 있었다.

남녀 간의 사랑이란 정사를 자주 벌 일수록 정은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그동안 자주 접해서 이별의 슬픔이 크게 작용했다.

“나중에 자리가 잡히면 연락 할 것이니 그때 봉황성으로 오세요.”

“대장군, 나중에 언제요? 그곳은 너무 멀어서 가기도 힘든데요.”

너무 슬프게 우니 최인범은 난감했다.

소피아는 그래도 쉽게 헤어졌는데 왕미령은 쉽게 헤어질 수가 없도록 매달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꾸물거릴 수는 없었다. 서둘러 떠나야 먼저 떠난 정향대공주와 합류할 수 있으니 아쉽지만 작별하고 떠나야 한다.

최인범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왕미령을 잠깐 안아주는 것으로 다독이고 말에 올라 빠르게 산해관을 떠났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명나라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흑혈풍에 올라 빠르게 멀리 사라지는 최인범을 바라보며 왕미령을 끝내 서러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으윽! 대장군.”

슬프게 우는 왕미령을 지켜보며 왕도정이 슬며시 다독였다.

“내가 발해 상단을 책임지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발해 상단이 자리 잡도록 해서 너도 배를 타고 봉황성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마.”

“고마워요. 오라버니.”

이별의 슬픔을 뒤로 하고 고려 여각으로 돌아와 다소 어수선하던 주변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기하다가 한 번에 떠났기 때문에 다소 설렁해진 분위기다.

다음날 북경의 자금성에서 귀비와 진비가 여각으로 찾아왔다.

첫사랑인 최인범을 만나러 자금성에서 일부러 산해관까지 어렵게 찾아 왔다. 하지만 만나지 못하게 된 귀비인 왕미미는 한숨을 토했다.

‘후우! 나와는 그런 인연조차도 없는 모양이야. 이렇게 만나지도 못하다니.’

인간사에는 그저 잠깐 스치는 인연도 있고 깊은 관계로 이어지는 인연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기녀에서 풀리게 해준 최인범을 사랑하는 몸으로 황제의 여자가 된 처지라 결국 인연은 이것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왕미미나 왕미령은 위치가 달라 속으로 느끼는 감정이야 조금 다르다. 하지만 사랑하는 임과 헤어진 슬픔은 똑 같아 이심전심으로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기녀의 신분으로 있을 그때 그분 옆에서 같이 지내던 순간들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마마, 저도 그렇습니다.”

왕미미는 그 당시 자신이 조금 더욱 적극적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후회되었다. 남편이 황제라고 하지만 하는 행동이야 이건 시정잡배들보다도 못하고 사내로써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