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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26화 (226/519)

226화

관료들은 유달리 청렴한 인물 이외에는 한 계급을 오르기 위해 별 짓을 다한다. 탐욕스런 상사에게는 예쁜 딸이나 애첩을 바치는 일도 흔했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 미인계다. 명절이나 무슨 행사에서 상사에게 거액의 뇌물을 가져다주는 거야 정례화된 평범한 일상이다.

‘앞으로 이곳 발해 여각의 사업을 도우며 재물도 보내줘야 되겠어.’

줄줄이 멍청한 황제로 대를 이어가는 명나라의 경우 그런 뇌물을 공여하는 부패 정도가 너무 심했다. 역사적으로 청렴하고 유능한 관리라고 해도 그런 일상의 뇌물 공세를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래야 평범한 현령자리도 보존하는 실정이다.

가난한 선비는 그런 외물 공여 때문에 벼슬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도저히 뇌물을 바칠 여력이 없으니 하다못해 부자인 친족이 있지 않으면 유지하기가 힘들다.

천진부윤은 그래도 주변에 부자인 친족들이 많아 그런대로 그들의 뒤를 봐주며 뇌물을 북경의 고위층에게 바쳐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편 천진에서 급하게 보낸 파발은 자금성이나 조정으로 괴한들의 습격을 알렸다. 건청궁에서 이런 소식을 보고 받은 가정제는 얼굴이 벌게지며 크게 외쳤다.

“그런 잔악한 짓을 벌이도록 사주한 놈들을 당장에 잡아들이시오. 감히 자객들을 보내 황족이 사는 대공주부를 공격하다니.”

황제가 매우 노한 표정으로 호통을 치자 옆에 있는 엄숭이 얼른 나서며 건의했다.

“폐하! 아무래도 천진의 임시 대공주부는 대공주부의 별장으로 직접 편액을 하사하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그래야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산해관에 있는 왕 부인의 거처도 같이 편액을 내리옵소서. 그리되면 폐하의 성은에 반드시 감복할 것이옵니다.”

“그게 좋겠군.”

“폐하, 산해관의 왕미령은 명나라 출신이니 우대해야 하옵니다.”

“알았소. 별장으로 칭하기는 산해관의 고려 여각의 주택 규모가 조금 부족하지만 왕 귀비의 부탁도 있으니 그렇게 합시다.”

대공주부를 둘이나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공주부는 봉황성에 두기로 하고 천진과 산해관에는 대공주의 별장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대공주부발해별장, 대공주부고려별장이란 다소 긴 편액을 직접 쓰서 내려 보내기로 했다.

가정제는 얼마 전에 왕미미를 후궁인 정1품인 귀비로 책봉했다.

가정제가 비록 정신병자라지만 학식이 높으며 방중술도 아주 뛰어난 왕미미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마음에 쏙 들어 제일 좋아하는 후궁들에게 내리는 귀비(貴妃)로 봉했다. 또한 그녀와 전부터 친했던 왕미령도 조금은 후하게 대하는 것이다.

대공주부의 별장으로 정해지게 되면 우선 그곳의 경비를 서기 위해 군사들이 별도로 100명씩 배치된다. 별장 관리를 위해 시녀들을 50명을 보내게 된다. 궁이 아니고 별장으로 정해진 것은 궁이라는 명칭은 품격에 어긋난다고 해서 별도의 장원이라는 뜻으로 정해졌다.

군사들의 경우 천진이나 산해관에 주둔하는 병사들이 교대로 번을 서도록 조치하고 시녀의 경우는 자체적으로 채용할 것으로 판단해 보내지 않기로 정했다.

“폐하, 다들 지참금을 가지고 사업을 벌여서 부자들이니 그곳에 있는 두 여자에게 내명부의 벼슬만 내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가정제는 평소에는 경제 개념이 하나도 없이 황실의 내탕금을 마구 잡이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정략적으로 시집보낸 정향 대공주에게는 마냥 재물을 쓰지는 않았다.

가정제는 이미 논의되던 사안이라 빠르게 모든 것을 결정했다. 엄숭은 옆에서 계속해서 감언이설로 가정제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폐하, 그래도 여자들에게 품계에 맞는 비단 옷은 한 벌 씩 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

별장에서 실제로 관리하고 살게 되는 왕미영과 소피아에게 종3품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조금 요상한 내명부 명칭인 대공주부 별장부인(別場婦人)이란 직함과 더불어 비단 옷이 한 벌씩 내렸다. 그래서 소피아는 발해별장부인이고 왕미령은 고려별장부인으로 칭하게 되었다.

명나라나 조선 방식으로 해석하면 두 여자는 부마도위로 정1품인 최인범의 첩실이자 별장의 여자 관리인이라는 뜻이다. 첩실이 분명하지만 상당히 예우를 했다. 돈도 전혀 안 드는 내명부의 벼슬이라 쉽게 결정했다.

가정제는 자신이 매우 후하게 베푼다고 자평해 중얼거렸다.

“부마도위의 부인들이 매우 좋아하겠어.”

“그렇습니다. 본시 여자들을 잘 포섭하면 남편이야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니 아주 잘하신 조치입니다. 부마도위는 앞으로 봉황성으로 가서도 계속해서 우리 명나라에 충성하게 될 것입니다.”

“조선출신으로 부마도위를 삼았으니 조선국왕도 난감할 거야. 이제 조선은 물론 여진족도 부마도위를 이용해 견제하면 되니 동쪽에 대한 걱정거리는 사라졌어.”

“그렇습니다. 어쩌면 배신자라고 조선 국왕이 부마도위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되면 부마도위는 우리 명나라에 더 충성할 것이옵니다.”

“암! 그래야지. 족보상으로는 내 사위가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가정제는 문뜩 조선에서도 부마도위로 내정된 사실이 떠올라 그에 대해 물었다.

“조선 왕실에서도 부마도위로 내정해서 정혼했다던데 그것은 어찌 되었나?”

“아직 그대로 놔뒀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국왕이 만백성 앞으로 공포한 공주의 정혼을 취소할 수 없게 됐으니 딸 하나를 평생 혼자 사는 불쌍한 처지로 만들어 버렸어.”

후하게 부마도위로 삼아 줬고 부인들에게도 직첩을 내렸으니 조선 보다는 명나라에 충성할 것으로 판단했다. 가정제는 늘 신하들이 벼슬만 올려주면 충성하니 당연히 그렇게 판단했다.

가정제나 엄숭은 본시 최인범이 명나라 황제나 조선의 국왕에게도 충성심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에게는 그저 지인들만 챙긴다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이제이 수법으로 나름 여진족과 조선국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이런 묘책을 구상해낸 것이다.

두 여자에게 현물로 뭘 주는 것을 없고 그저 허울 좋은 벼슬만 높여주었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 천진의 저택에는 이제부터 무기를 소지한 무사들이 정식으로 상주할 명분이 생겼다.

간교한 엄숭은 조심스럽게 천진의 암살미수사건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가정제에게 건의했다.

“폐하, 정황으로 보아 조선이나 왜에서 저지른 암살 미수사건 같사옵니다. 그러니 빨리 조선의 첩자나 또는 상인들을 잡아 들여야 하옵니다.”

“잡아들이면 동창에서 조사하는 것은 어떻소?”

“그건 곤란합니다. 그냥 지방 관아에서 처리하심이 좋사옵니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방만하게 늘어난 조선의 상단을 줄여야 하옵니다.”

“그게 좋겠군. 조선과 상거래를 늘리다 보니 명나라 상인들이 위축되고 있다고 하니 그것도 이번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지.”

“명을 따르겠나이다.”

이런 조치를 내리고 나자 가정제는 건천궁을 떠나 서궁으로 가게 되었다. 서궁에 있는 왕미미 귀비를 만나기 위해서다. 마음에 드는 귀비라 자신이 내린 조치를 직접 알려주려는 것이다.

서궁의 호화로운 궁에 도착한 가정제는 여관(女官)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부터 5일간이 가임시기로 최적인 상태라는 왕미미를 만나 진하게 정사를 벌였다. 이번에는 분명 왕미미의 몸에서 아들을 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바짝 조이는 좁은 질 안으로 시원하게 방출했다.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왕미미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마도위가 봉황성으로 떠나게 됐소.”

최인범이 출국하기 위해 산해관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왕미미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응수했다.

“폐하, 부마도위께서 임지인 봉황성으로 떠나게 됐다면 산해관에서 살고 있는 제 친구인 왕미령도 같이 떠날 수 있겠네요.”

왕미미의 이런 응수에 가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 주었다.

“그렇게 될 수도 있겠어.”

“폐하, 왕미령이 봉황성으로 떠나면 너무 멀어서 어쩌면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소첩을 그곳으로 보내 주세요. 작별 인사라도 하게요. 그리고 산해관으로 가면 근처의 사찰에 들려 불공을 드릴까합니다. 그곳 사찰에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면 반드시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영험한 장소가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가?”

여자를 무척 좋아하고 탐욕스러운 가정제는 자식 욕심 또한 많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많은 여자와 매일 같이 정사를 벌였지만 슬하에 자식은 별로 없었다.

자신도 어려서부터 약을 입에 달고 사는 정도로 매우 허약하지만 살아남아 있는 자식들도 하나 같이 비리비리했다.

느낌이지만 이번에는 왕 귀비이 가임하기에 최적의 상태라고 한다. 가정제는 만사를 더욱 확실하게 할 요량으로 왕 귀비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도술을 잘하는 사람도 좋지만 부처님도 한번 믿어 보는 것도 좋지.’

명나라 황제들은 몇 대 전부터 일부는 자손을 낳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어려서부터 너무 방종한 생활을 해서 생긴 부작용이다.

“폐하, 단비와 같이 사찰로 불공을 드리러 가겠사옵니다.”

“단비와 같이?”

“그렇사옵니다.”

가정제는 어제는 단비와 진한 정사를 벌였으니 그녀도 임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단비도 가임기간이라니 적당해.’

후궁이 왕자를 보기 위해 사찰로 불공을 드리러 가게 되는 경우 혼자 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후궁들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로 질투도 심하고 황제를 두고 권력 다툼이 심하기 때문이다.

‘왕 귀비가 다른 후궁들과도 사이가 좋지만 둘이 더 친한 것 같군.’

이런 점에서 가정제는 왕미미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진한 정사도 벌였으니 왕미미의 출궁을 허락했다.

“다녀오도록 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왕미미는 가정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즉시 단비인 조씨와 함께 자금성을 떠나 산해관으로 향했다. 입궁한 이후로 처음으로 외출하기 때문에 두 여자는 모두 신이 났다.

더구나 봄에 떠나는 여행길이라 더욱 잔뜩 들떠 있었다. 더구나 엄청난 계략을 숨기고 떠나는 모험이라 느낌은 전혀 다르고 마냥 설래 이고 있었다.

단비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속삭이듯이 물었다.

“그분이 그렇게 크다며?”

“그분이야 본래 뭐든지 크죠.”

“어머머. 그것을 어찌 알고?”

“그야 제가 본시 그분의 시녀로 지냈잖아요. 목욕할 때 옆에서 그 분의 몸을 볼 수밖에 없었죠.”

“어머나? 놀랐겠네.”

“말도 마세요. 말과 같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이런 말에 단비인 조씨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야릇하고 무서운 상상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왕미미는 자신의 첫사랑인 최인범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더욱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전보다 더 멋지게 변했을 거야.’

가정제의 후궁들인 두 여자는 보통사람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계획을 가슴에 품고 최인범이 머물고 있다는 산해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모가 판치는 자금성의 후궁으로 살다가 보니 두 여자들도 어느새 혼탁한 황하의 흙탕물 같이 진하게 물들어 기이한 발상을 하고 있었다.

이미 명나라 황실의 기강은 심하게 무너진 상태다. 조신하고 학식이 높다는 왕미미가 이렇게 심하게 변할 정도로 완전히 허물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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