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225화 (225/519)

225화

<역 이이제이 수법>

최인범은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체들을 살폈다. 조선출신이라고 분리한 시신들의 손가락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분명 궁술을 오래 수련한 흔적이 있었다.

‘암살전문가 집단이군.’

아무리 암살자라고 하지만 10명이나 죽은 사건이다.

그래서 최인범은 의원에게 지시했다.

“관아로 시신을 정식으로 넘겨주고 알리도록 해. 관아에 이번 사건은 외부로는 당분간 소문이 나지 않도록 비밀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자신이야 떠나면 그만이다.

남아 있어야 하는 소피아가 이번 사건으로 귀찮은 일이 번잡스럽게 일어날 수 있으니 이렇게 처리했다. 배후는 보나마나 엄숭이거나 동창의 무리 또는 가정제나 조선의 윤임 대감이라고 판단했다.

암살대를 보낸 배후세력의 실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래도 개장수는 어떤 식으로라도 흔적이 남을 수 있다. 10명이나 되는 무리니 추적하면 그들의 행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장수를 찾아보고 암살단의 얼굴을 그려서 알아보도록 하시오. 관아와 충돌하지 않는 범위에서.”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혹시 가정제가 범인을 잡으라고 수사권을 준다는 식으로 또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해 즉시 소피아에게 당부했다.

“나는 즉시 떠날 것이니 그렇게 알고 나중에 봉황성에 도착해 연락하면 부인은 그때 배로 봉황성으로 와보도록 하시오.”

“알았어요.”

육로로 간다면 봉황성이 아주 오래 걸리는 곳이다. 하지만 배를 이용해서 가면 오히려 빠르기 때문에 이런 당부를 하고 있었다.

소피아에게 오라고 하는 이유는 자신은 봉황성이나 개마고원 그리고 풍기나 다른 조선 땅에서 사업을 벌여야 하니 천진으로 쉽게 올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산해관으로 가서 왕 부인에게도 당부하겠지만 부인들은 서로 협조를 잘하면서 지내시오.”

“그래야죠. 이제 한 가족인데요.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최인범은 다시 안방으로 들어와 중국복장을 벗고 무명으로 만든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군복 안에는 아주정밀하게 만든 쇄자갑을 입었다.

쇄자갑옷도 종류가 많아 투박한 것도 있고 정교하게 그물처럼 만든 고급 쇄자갑옷이 있었다. 재력이 좋은 소피아는 남편의 안위가 걸린 중요한 일이라 최고로 우수한 쇄자갑을 사서 보관해두고 있었다.

최인범이 흑혈풍을 타고 뒤에 적혈풍을 달고 발해여각을 떠나자 문 앞에서 전송하는 소피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제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긴 이별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그런 모습을 골목에 숨어서 지켜보는 중년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중년을 멀리서 조심스럽게 살피는 무리가 또 있었다.

골목에서 살피던 중년은 최인범이 멀리사라지자 이내 발길을 돌려 규모가 작은 여각으로 갔다.

그곳에서 조선의 상인을 구석진 칸막이에서 만나 뭔가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조선의 상인은 아주 곱상하게 생긴 젊은 사람으로 고급 비단옷을 입고 옆에 두 미녀를 끼고 있었다.

급하게 수소문해 개장수를 찾은 뒤에 미행하던 타말은 조선말을 잘 아는 부하에게 지시했다.

“옆으로 가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 봐.”

“넷!”

가까이로 다가가 개장수가 대화를 나누는 상인을 살피니 조선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객들은 확실하게 조선에서 넘어왔다. 더구나 조선상인은 생긴 것이 아주 특이하게 생겼다. 남자가 분명하나 턱에 수염도 한 올이 없고 마치 여자모습과 같이 고왔다.

‘곱상하게 생긴 여자 같은 놈이야.’

중년은 급하게 상인에게 말했다.

“백 행수, 나는 빨리 조선으로 도망가야 하오. 암살 작전은 실패했소.”

“알았소. 빨리 은자를 가지고 산해관을 벗어나시오.”

“고맙소.”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을 모르고 중년은 조선의 젊은 상인에게서 많은 은자를 받고 나자 자리를 떠났다. 중년인은 급하게 말을 타고 산해관 쪽으로 번개 같이 사라졌다.

중년을 미행하던 무리들은 그가 말을 타고 빠르게 사라져 버리자 당황했다. 추적하던 타말이나 부하들은 골목에 모여들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조선에서 온 진돗개장수가 말을 능숙하게 타고 떠나지?”

“대장님, 조선에서 온 무술이 뛰어난 자객이 확실합니다.”

“그렇겠군. 일단 시체들을 관아에 넘겼으니 우리는 저택으로 돌아가 소 부인께 보고하고 산해관으로 개장수 그림과 함께 추적할 사람을 보내야 되겠어. 우리는 여기서 조선의 상인만 계속해서 추적해 보자고.”

“넷!”

관아로 대공주부로 괴한이 침입했다고 10구나되는 시신을 넘겨줬다. 대장군이 지시한 대로 서로 마찰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기서 개장수의 추적은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 개장수가 접촉해 은자를 받아내던 요상하게 곱상한 상인을 추적하기로 했다.

한편 천진의 관아에서는 10구의 시체를 인수하고 이들이 대공주부를 습격한 사실 때문에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뭐라? 이 시신들이 모두 암살자들이란 말인가?”

“그렇소. 단순한 암살자가 아니라 검이나 비수 그리고 표창에 모두 극독이 묻어 있소.”

“죽은 시체들이 모조리 퍼렇게 변한 이유가 독액을 먹고 죽어서 그런 거요?”

“그렇습니다.”

대공주가 머물던 곳에 암살자들이 나타났다니 부윤은 얼굴이 벌게지며 무척 당황했다.

황제가 양녀로 받아들인 대공주라고 하지만 본시 헌강왕의 딸인 공주 신분이다. 황제의 딸인 정향 대공주로 봉해졌으니 사실 황실에서 그녀의 위치는 막강했다.

더구나 친부인 헌강왕은 남명에 있는 지방정부를 관장하는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는 왕이다. 그 때문에 재력도 좋아 언제고 강한 힘을 발휘할 능력이 있었다. 그런 막강한 위치인 정향 대공주의 남편인 부마도위를 암살하려는 대형 사건이 관할 지역에서 터졌으니 큰일이 났다.

자칫하면 치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줄줄이 목이 잘리게 생겼다. 그래서 부윤은 발해 여각에서 시신을 가지고 찾아 온 의원의 검시 결과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듣고 있었다.

“그대 말을 들으니 왜와 조선에서 온 자객들이 틀림없어 보이는군.”

“그렇습니다. 이들이 사용한 독액은 명나라에서 나오는 독이 아닙니다. 멀리 유구국에서 사는 독사가 지닌 맹독에 생아편을 넣어 만든 독이죠. 그래서 몸속에 한 방울만 들어가면 숨을 두 번 정도 토하는 짧은 시간이면 전신이 굳어서 죽습니다.”

“그렇다면 유구국과 잘 통하는 왜놈들 짓이 분명하군.”

“그렇습니다. 배후가 누가 있건 암살을 시도한 놈들은 조선과 왜인들입니다.”

자객들이 들고 왔다는 장검이나 각종무기는 모두 왜인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그리고 치아가 앞으로 튀어나온 형태라 왜인들이 확실했다.

조선 출신들의 경우 상투가 특색이 있고 기타 속옷의 형태나 검은 야행복을 만든 재료인 무명까지 확인해 출신지가 정확했다.

부윤은 정치적인 문제가 조선에서 심하게 벌어져 이런 암살 미수 사건이 터졌다고 판단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인데 부마도위께서 조선으로 귀국하려고 산해관으로 떠났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장군께서야 본시 무술이 뛰어난 무관이시라 이번 사건을 담대하게 받아들이시고 임지인 봉황성으로 떠났습니다.”

천진부윤은 정향 대공주가 은근히 걱정되어 물었다.

“대공주님께서는 놀라시지 않았나?”

“공주님께서는 먼저 떠나시고 대장군께서는 후미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기로 해서 마무리하기 위해 하루 뒤에 출발하게 된 겁니다.”

“다행이군.”

이어서 개장수가 의심스럽다고 해서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디밀었다. 천진의 부윤은 급하게 화상들을 불러 그림을 대량으로 그리게 해서 추포명령을 내렸다.

“산해관 쪽으로 갔으니 속히 파발을 보내.”

“예이.”

부윤은 급하게 북경과 산해관에 파발을 보냈다. 그나마 중요한 용의자인 개장수까지 도망치게 하면 자신은 최소한 파직당하거나 심하면 목이 댕강 잘릴 위험성이 많은 큰 사건이다.

당금 황제는 특이한 성품이라 자신은 엉망으로 행동하지만 황제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중벌로 처리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노발대발하시겠어.”

“빨리 잡아야지 정말 큰일입니다.”

마음에 든다고 해서 일부러 당질을 딸인 대공주로 만들었다. 그런 정향 대공주가 살던 임시 대공주부를 습격했다는 것은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받아들이기 쉬운 미묘한 대형 사건이다.

다급한 입장인 천진부윤은 급하게 파발을 보내고 수배령을 내렸다. 그리고 발해 여각으로 직접 가서 사건 현장을 살피기로 했다.

발해 여각으로 오게 된 부윤은 여각의 주인이자 저택의 관리자인 소피아를 만나자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친 사람이 전혀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한 밤중에 자객들이 떼로 몰려와 매우 위험했지만 다행히 암살자들은 경고 종소리 때문에 쉽게 잡혔습니다.”

“다행이군요. 앞으로 특별히 이곳에 군사들을 보내 자주 순라를 돌게 하겠습니다. 앞으로 관아에 협조할 일이 있으면 뭐든 연락만 해주세요. 뭐든지 협조해 들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종3품인 부윤이라 사실 이국인인 소피아에게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소피아는 재력도 좋지만 이제는 임시 공주부의 관리인이라 무시할 수 없는 위치다.

소문에는 황제께서 부마도위나 정향대공주가 언제고 봉황성에서 천진으로 돌아와 거처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천진의 임시 대공주부를 별궁처럼 예우할 것이라니 더욱 조심스럽다.

더구나 남명의 헌강왕은 천진부윤인 자신에게 천진의 임시 대공주부를 잘 보살펴 달라는 서찰까지 보냈다. 그 때문에 그런 위세도 크게 작용했다.

“부마도위님께서는 지금 임지로 가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렇습니다. 부윤께서는 너무 심려를 안 해도 될 겁니다.”

대공주의 남편인 부마도위는 본시 정1품의 품계를 받는다. 그것은 그저 명예직에 해당하는 무관벼슬이고 실직으로는 건주위 총감으로 종1품의 벼슬이다.

더구나 전에는 2품계인 순행남명순무사까지 역임했으니 부마도위는 벼슬의 경력으로 봐도 천진부윤 정도는 상대하기 너무 어려운 최고위층에 속하는 황족인 것이다.

‘벼슬이란 줄을 잘 잡아야 해.’

중요한 황족이라는 판단에 최인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부윤이다. 한때 황제께서 최인범을 양자로 삼으며 왕으로 봉하려고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더욱이 저자세일 수밖에 없었다.

관료 사회란 본시 어떤 나라고 직급이나 직책에 모두 목을 매고 산다. 천진부윤은 헌강왕의 서찰도 받았기 때문에 튼튼한 동아줄을 잡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만 잘 처리하면 출세는 보장될 거야.’

위기가 분명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에 잘 보여서 진급을 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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