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드디어 대장군의 부인이 되어 너무 좋았다. 그동안 공연히 마음 졸인 것이 허망하기는 했다. 이런 생각과 더불어 소피아의 몸은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후폭풍이 강하게 몰아쳤다. 계속해서 몸을 미세하게 부들거리며 떨었다.
“아으으음!”
후폭풍의 길고긴 여운을 느끼며 소피아는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온몸을 쩍 펼치고 서서히 잠이 들어 버렸다. 벌어진 다리 사이에는 붉은 빛이 보였다.
오랜만에 진하게 토해낸 최인범도 힘이 약간 소진되었다. 땀으로 뒤범벅인 몸을 옆으로 살짝 굴려 소피아의 위에서 벗어났다.
이때 밖에서 크게 개가 죽을 듯이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깨개갱! 캐갱!
여각에서 키우는 암캐를 백두가 덮치는 것이 분명했다. 강한 힘과 능력을 지닌 백구는 가끔 주변에서 떠나 외출이라도 하면 어김없이 주변의 암캐들이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백두도 나를 닮았나? 하필이면 지금 저러냐?’
잠시 이런 생각을 하며 최인범은 어느새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직은 이곳이 노리는 적이 많은 적지의 한 복판이다. 약간 흐트러진 최인범이나 백두가 방심했다. 호사다마라고 주변에 호위병이 하나도 없는 최인범의 이런 사소한 방심은 큰 화를 불러 올수 있었다.
저택의 안채 앞에 있는 사랑채 지붕에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10여명에 이르는 검은 그림자들은 소리 없이 지붕에서 내려와 마당을 지나 안채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사삭. 사사삭.
아주 빠르고 소리 없이 민첩하게 어둠을 이용해 움직이는 모습으로 보아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들이 분명했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최인범이 잠든 안방으로 점점 다가갔다. 검은 복면을 쓴 괴한들은 손에 긴 장검을 들었다.
몇 개의 방을 통과해야 안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미닫이문을 열었다.
어둠을 이용해 안방 가까이에 침투한 괴한들은 빠르게 접근했다. 그러나 최인범은 진한 정사로 깊이 잠들어 아직도 괴한들이 접근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때 미닫이문이 열리며 작지만 요란하게 작은 방울이 흔들렸다.
딸랑! 딸랑!
작은 방울이 울리자 이어서 저택의 전체가 들리는 큰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두웅! 두웅!
북소리와 울림과 동시에 저택의 곳곳에서는 호롱불이 켜지며 무장한 호위병들이 튀어나와 빠르게 안채 쪽으로 내달렸다. 일부는 속옷 차림이고 일부는 옷을 온전하게 입고 있었다.
“적이다!”
“잡아라!”
와글와글
크게 소리치며 젊은 호위병들이 검이나 창을 들고 안채로 달려왔다. 이어서 젊은 시녀들도 칼이나 활을 들고 모여 들었다. 모두 50명이나 되는 남녀로 구성된 가솔인 호위병들이 안채로 달려오자 괴한들은 당황했다.
목표로 노리는 안방 가까이에 침입했다지만 최인범의 무력이 워낙 뛰어나니 죽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세가 너무 불리하다고 판단한 우두머리는 즉각 명령했다.
“틀렸다! 철수해.”
이제는 두 개의 미닫이만 열면 된다고 판단했으나 마지막에 와서 경고방울 때문에 실패했다. 그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빠르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쉬익! 쉬익!
“크악!”
“으악!”
괴한들은 밖에서 기다리던 여자들이 쏜 화살에 몇 명이 이내 꼬치가 되었다. 그러자 괴한들은 정신없이 밖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워낙 많은 호위병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싸울 수는 없었다.
저택은 조선의 가옥과는 달리 별도로 담장이 없었다.
저택의 담장부분인 외부는 모두 높은 건물들이 지어져 있다. 그 때문에 괴한들은 쉽게 도망칠 수 없었다. 그나마 몇 명은 마당에 놓인 물건을 딛고 지붕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들이 쏜 화살에 벌집이 되어 지붕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크악!”
“악!”
쿵!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망치던 괴한들이 마당에 굴러 떨어지며 신음을 토했다. 그들은 쓰러지는 동시에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하고 사지를 바들거리더니 죽어버렸다. 보통의 경우 화살에 부상당하면 그래도 오래 버티다가 죽는데 너무 빠르게 숨을 거두고 있었다.
이때 곤하게 자고 있던 최인범이 조금 늦게 대충 잠옷을 걸치고 흑혈검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뭐야!”
“대장군! 자객입니다.”
방울이 울리며 일어났지만 벌거벗고 자던 중이라 아무리 급해서 그냥 나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옷을 대충이라도 입다가 보니 조금 늦게 밖으로 나왔다.
침입한 괴한들이 빠르게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상당한 괴한들이 너무 쉽게 죽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늘게 신음성을 토했다.
“흐음, 독한 놈들이야. 독약을 먹고 자살하다니.”
조금 늦게 소피아가 나왔다. 그녀 역시 급하게 비단속옷 위에 풍덩한 곰 가죽 외투를 대충 걸쳤다. 자객들이 죽는 모습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대장군, 한 놈도 살리기가 틀린 것 같죠?”
“그렇군. 자객들이 모조리 죽어 버렸으니 누가 보냈는지 알기가 어렵겠어.”
“죽일 놈들 하필이면 오늘·······.”
남편과 벌거벗고 곤하게 자는 행복한 시간을 빼앗은 놈들이다. 만약 살아 있다면 살을 한 점 한 점 도려내야 직성이 풀리게 생겼다.
‘어떤 불한당 같은 놈이 감히 방해를 해?’
문뜩 멀리 봉황성으로 떠나게 되는 ‘정향대공주가 벌인 짓은 아닌가? 하며 생각했다.
‘설마? 그녀가 대장군을 노릴 리는 없지. 혹시 나라면 모를까?’
모두 10명이 침투해 한 놈도 달아나거나 또는 살아난 놈들이 없었다. 안방 근처에까지 침투한 것으로 보아서는 고도로 훈련된 자객이 틀림없으나 워낙 비상시 출동하는 태세가 잘 준비되어 더 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안방 근처까지 괴한들이 침입을 했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소피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호위대장에게 소리쳤다.
“타말, 도대체 경계를 어찌 세우고 있어 자객들이 안채까지 침입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건가?”
“죄송합니다. 갑자기 공주부까지 경계를 서다가 보니 여기는 안전하다 싶어서.”
“무슨 소리를 하나? 아무도 없는 공주부를 지키기 위해 여기 경계를 소홀하게 하다니?”
“소 부인, 그렇지 않습니다. 자금성에서 보낸 궁인들이 아직 남아있어 대공주께서 머물던 저택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누는 대화로 들어보니 자금성에서 황제의 밀명을 받은 궁인들이 이곳에 아직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최인범은 그런 사실을 알자 조용히 지시했다.
“누구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조용히 하고 사체들이나 잘 살펴. 그리고 독을 사용했으니 검이나 죽은 시신을 잘 다루고.”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안방으로 들어오다가 그제야 밖에서 돌아오는 백구를 보며 한마디 했다.
“에이, 저놈은 꼭 필요할 때는 어디를 나갔다가 오는 거야.”
그러자 대문에서 보초를 서던 호위병이 이내 답했다.
“대장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이상합니다. 저택에는 조선에서 들여온 진돗개 수놈이 여러 마리가 있는데 저녁에 모두 밖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뭐라? 진돗개도 모조리 밖으로 나가?”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 어슬렁거리던 개장수가 암캐를 많이 데리고 있었습니다.”
분명이 개장수가 발정 난 암놈을 끌고 와 진돗개나 풍산개를 밖으로 유인해서 경계를 소홀하게 유도한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무심코 투덜거렸다.
“개를 암놈만 키던지 해야지 수놈만 키워서 이런 사단이 벌어지게 해.”
최인범의 말에 소피아가 이내 응수했다.
“대장군, 경비견으로 키우는 암놈들도 많아요. 모두 백두와 접해서 임신 중이라 따로 후원 쪽에서 키우고 있사옵니다.”
소피아는 최인범이 수놈만 키운다는 소리에 조금은 이상하게 들려 굳이 설명하는 것이다. 그녀는 아무래도 자신의 주변에는 앞으로 시녀들만으로 구성된 호위부대를 둬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수놈만 키운다는 말을 듣자 자신이 다른 남자를 접할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할 여지가 많았다. 조선의 왕실이나 명나라 황실처럼 주변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인범은 옷차림이 조금은 허술해서 안방으로 들어와 다시 옷을 정갈하게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 소피아에게 자신이 적어 놓은 서류를 넘겨주며 말했다.
“부인, 내가 보기에 외부에 다른 건물과 연결되어 지붕을 타고 침입하기 쉬운 이곳보다 대공주부로 사용하던 건물이 더 안전해 보이니 그곳으로 침소를 옮기도록 해요. 여기는 상단이 사용하시오.”
“알았어요.”
“암살범을 보낸 무리가 있으니 다음에도 또 쳐들어 올 수 있으니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시오.”
최인범은 이곳 발해 여각이나 산동성의 고려 여각에서 판매할 새로운 음식을 구상해 적어놓았다.
합돈거(合豚巨)라고 이름을 지은 음식은 빵의 가운데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잘게 갈아서 기름에 튀겨 만든 육편과 야채를 넣은 형태다. 하북 지역에는 밀도 많이 나오고 또한 소나 돼지는 대공주부에 속한 토지가 있으니 집단으로 사육해 원료 조달을 하도록 했다.
“함돈거는 만들기도 쉽고 새로운 음식이라 어쩌면 잘 팔릴 거요. 노점 형태로 자리를 만들어 팔아야 손님들이 쉽게 사먹을 수 있소. 그러니 빵이나 육편들이나 음식을 만드는 재료를 여각의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여러 곳으로 싸게 공급해 보시오.”
“알았어요. 그렇게 해보죠.”
“이곳에서 사업이 잘되면 북경에도 여각을 열고 그곳에도 공장을 만들어 차츰 확대하면 될 거요. 물론 산해관도 같은 방식으로 제조하게 해서 운영하면 보급은 빠를 거요.”
새로운 음식을 판매해 보라는 지시 이외에 소피아가 수행해야 할 내용들은 많았다.
그중에 특별한 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건축기술자인 목수와 대장장이나 광산을 개발할 기술자들 봉황성으로 보낼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목수 중에서도 배를 만드는 기술자를 집중해서 모집해 보내도록 했다.
산해관에 있는 여유자금을 보내서 고려 상단과 발해 상단을 합쳐 발해 상단만 운영하라고 했다.
“내가 듣자하니 왕 부인의 오빠가 고려 상단을 운영한다니 앞으로 합병된 발해상단은 왕도정에게 맡기도록 하시오. 부인은 아까 말한 빵 공장을 책임지고 운영하고요.”
“그렇게 하겠어요.”
일단 앞으로 할 사업에 대해 기록해둔 서류를 넘겨주며 설명을 끝내자 어느새 날이 밝아 왔다.
최인범은 서재에서 나와 행랑채 쪽에 있는 마구간으로 가게 되었다.
마구간에는 침입했다가 몰살당한 시신들이 놓여 있었다. 호위대장과 의원이 시체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검시는 해 봤나?”
“넷! 이들은 조선과 왜의 무사들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장담하나?”
“입고 있는 옷을 만든 무명이 조선에서 생산된 면포입니다. 그리고 왜인이라는 것은 치아가 앞으로 튀어 나와서 그렇고요. 또한 상투를 틀거나 밀어 놓은 모습인 두발의 형태로 보아 조선과 왜인들이 분명합니다.”
“그 외에는?”
“속에 입고 있는 속옷도 명나라 복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괴한들이 모조리 죽어버려 배후야 당장 알 수 없지만 자객들의 출신지역을 정확하게 알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