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더구나 정향대공주가 주변의 저택은 지낼 임시 거처로도 사용한다. 그 때문에 안채 옆에는 상당한 크기의 건물까지 매입해서 활용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안채 옆에 있는 고급스러운 저택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쪽 집에는 식솔들이 너무 많군.”
“그렇습니다. 하인과 하녀들이 무려 100명이 같이 지내고 있사옵니다.”
“뭐? 그렇게 많아? 그들은 뭐를 먹고 살고?”
먹기야 당연히 밥을 먹고 살겠지만 살림살이에 필요한 재물은 누가 충당하냐는 의미다. 질문의 요지를 정확하게 알아들은 소피아는 즉시 답해 주었다.
“대공주님께서 친정인 왕부에서 가지고 오신 보석이나 은자 등 재물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자금성에서 혼수로 가져온 비단이 1000필이나 되고 토지나 기타 재물들이 아주 많아 그것으로 유지합니다.”
“알았어.”
가정제가 전에는 남쪽으로 보내며 비단 1000필을 하사했다. 이번에는 여자를 포함해 많은 재물을 보냈다니 분명 뭔가 중요한 임무를 부여할 요량 같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이지?’
최인범은 아직은 부마도위라는 직책이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옆의 저택에서 지낸다는 정향대공주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고 산해관의 왕미령이 운영하는 사업에 대해 물었다.
“산해관의 사업은 잘 되고 있나?”
“예, 그곳의 고려여각이나 전당포도 아주 번창하고 있어요. 저택의 규모가 여기와 비슷해졌어요.”
“그래? 혼자 사는 살림집이 그렇게 클 필요가 있나?”
“대장군, 그곳은 요서와 요동에서 찾아오는 상인들이나 조선에서 육지를 이용해 찾아오는 상인들이 장기간 머물 경우가 많아 그렇죠.”
“그래도 집이 클 필요는 없지.”
“대장군, 산해관에서 왕 대부인께서 운영하는 사업이 잘 되지만 전에 조정으로 몰수당했던 친정 재산을 모조리 돌려받게 돼서 늘어났습니다. 친정 식구들이 주변에서 같이 살고 있고요.”
“몰수된 재산을 돌려받았다니 다행이군.”
자신이 품은 여자가 스스로 살 여력이 있다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이제 부터는 과연 황제가 어떤 요구를 자신에게 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골치 아픈 업무를 시키려고 이렇게 후하게 재물을 보내 주며 수작을 부리는 거야?’
건주위 총감으로 임명하고 직접 지휘랄 군사를 2000명이나 보냈으니 분명 요동 지역에서 무슨 사단이 벌어진 것 같았다. 2000명의 군사들이 있다면 고위직인 장군이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군사들을 지휘하는 책임자는 누구요?”
“그런 고위직은 별도로 없어요. 그저 대공주께서 거느리는 가복들이 가끔 주둔지로 찾아가서 살피는 정도고 벼슬이 낮은 군관들만 있어요.”
“감시하는 놈도 없다는 거요?”
“없지요. 대공주께서 데리고 있는 가복들은 다들 무술 실력이 높은 군관 출신들인데요. 대장군의 행동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면 그들이 자금성으로 연락하겠죠.”
“무슨 소리인지 알겠군.”
이미 벌어진 일이고 또한 당장 거부하고 도망칠 여건도 아니다. 그러니 내막을 알아보려면 북경으로 가서 조정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양유승 대인과 바둑을 두며 이야기를 들어 봐야 되겠군.”
그러기 위해서는 북경으로 가야 하지만 그것이 함정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소피아에게 지시했다.
“북경으로 사람을 보내서 양유승 대인을 이곳으로 모시고 오시오.”
“알았어요. 바로 사람을 보내지요.”
어떤 목적이 있던 북경으로 가지 않고 바로 산해관을 들려 조선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래서 소피아에게 슬며시 물었다.
“황제가 내린 교지는 있을 것 아니요?”
“대장군. 그거야 당연히 정실부인이신 대공주마마께서 지니고 계시지요. 내용은 제가 읽어 봐서 대략적으로만 압니다.”
“대략이라니? 교지 내용이 복잡한거요?”
“그렇습니다. 제가 한문이 약간 서투르고 내용도 아주 길어 다 기억을 못해요. 그러니 대공주 마마를 만나서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알았소. 뭐 굳이 교지를 안 봐도 짐작은 가니 나중에 보도록 하지.”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의학공부도 하며 안경이나 또는 렌즈를 제조하는 공정을 배우라고 지시했던 두 부하에 대해 물었다.
“장주한과 홍성철은 지금 어디에 있소?”
“그 사람들은 지금 산해관에 머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지내더니 설화 아씨가 오시자 조선으로 양과 말을 보내야 한다고 하며 산해관으로 갔어요.”
그들도 쉽게 떠날 수 있게 산해관에서 머문다니 다행이다. 이제 가정제의 의도만 정확하게 파악해서 그냥 떠나도 말리지 않는다면 바로 떠날 생각이다.
최인범은 우선 군관들을 만날 생각으로 철갑웅과 같이 발해여각을 떠나 주둔지로 향했다.
전에는 밭으로 사용하던 곳에 있는 주둔지다.
넓은 대지에는 야외용 천막이 무수하게 세워져 있었다. 최인범이 상인차림으로 나타나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알아보는 초급군관이 있었다.
“대장군, 어떻게 연락도 없이.”
“그냥 들린 거네.”
아직은 완전히 해동되지 않아서 천막 주변에는 모닥불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알아본 군관은 전에 몽골까지 같이 갔던 젊은 군관이다.
“여기 군관은 몇이나 되나?”
“모두 50명입니다.”
“그럼, 군관들만 모이라고 해.”
“넷!”
사령관인 최인범이 나타나자 군관들은 다들 비무장 상태로 있다가 허겁지겁 쇄자갑옷을 입고 도열했다.
“말은 없나?”
“전령들이 사용하는 말이 10필이 있고 천막과 식량을 나를 마차 10대와 소가 10마리가 전부입니다.”
“뭐야? 마차 10대가 전부라고?”
“그렇습니다.”
최인범은 군관들을 데리고 천막들을 자세하게 살피며 돌아 다녔다.
밤이 되면 다들 춥게 지내게 생긴 정도로 장비나 보급품은 너무 열악했다. 병사들이 지닌 무기는 대부분 장창만 있고 활도 별로 없으며 일부는 나무패는 도끼를 무기라고 들고 있었다.
“군사들의 수만 많지 보급품은 너무 엉망이야.”
“그러네요. 눈빛들도 다들 트릿하니 말만 군대지 대부분 농민들 같습니다.”
도대체 이런 오합지졸을 데리고 뭐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부랑아인 거지들을 주워 모아서 멀리 추방시키기 위한 짓으로 보였다.
최인범은 군관에게 슬며시 물었다.
“북경에서 군사들을 모았나?”
“넷! 한 달 전에 모집해서 모은 겁니다.”
최인범은 자신의 짐작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정향대공주가 가지고 있는 재물로 군사들을 먹여야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더욱 열불이 났다.
‘무슨 개수작들인지 두고 봐야겠어.’
이렇게 판단하고 이번에 닥친 난관을 어떻게 벗어날지 고심하고 있었다.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최인범에게 그나마 제일 계급이 높은 백호(종6품) 2명이 다가와 보고했다.
“대장군, 여기 군제 편성표가 있습니다.”
“그래? 어디 봅시다.”
건주위 총감부에서 거느릴 군사조직은 거창하게 2개의 위로 구성되었다.
명나라의 군제는 백호가 제일 하급 조직이다. 백호 10이 모여 천호소로 정했다. 그리고 천호소 5개가 모여 위로 조직된다. 백호군관은 사실 제일 낮은 계급에 속하지는 않은 중급 군관이다.
2개의 위를 거느리게 되는 건주위 총감은 편제상으로는 1개 위가 약 5000명이라 2개 위의 규모라 1만명 정도의 군대를 거느릴 수 있도록 해놓았다.
‘편제만 거창하지 실제로 병력은 전혀 없는 군사조직이야.’
북경의 부랑아나 또는 일부 전쟁포로나 범죄인을 모아서 우선 2000명을 채워서 데리고 요동으로 가라는 것이다. 요동으로 가서 스스로 알아서 자립하라는 뜻이다.
주둔지를 돌아보니 자금성에서 벌이는 속셈이 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기도 안차는 짓을 계획하고 있어.’
최인범은 일단 휘하 장병이라는 점 때문에 이들이 명나라에서 버림 받은 처지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어린 고아들도 사서 개마고원으로 보냈으니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간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뭔지 모르는 음모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여유롭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차라리 잘 됐어. 명나라에서 대우가 좋으면 그들에게 충성하게 되니 버림받는 사람에게 잘해주면 나중에 잘하면 크게 써먹을 수 있어.’
당장 어떤 강한 군대와 전쟁을 벌일 상황만 아니라면 문제는 간단했다.
‘필요하면 모두 정착시켜 농민으로 부려 먹어도 돼.’
이렇게 판단하고 나자 너무 어수선하고 복잡하던 머리가 차츰 맑아졌다.
병사들 중의 일부는 늙었지만 그들은 1할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20대 초반이거나 10대 후반이라 그런 점은 마음에 들었다.
“젊은 병사라 훈련을 시키면 훌륭한 군사가 되겠어.”
“그렇습니다. 대장군. 보기보다는 튼튼한 놈들입니다.”
일단 머리수가 많아야 뭐를 하던 할 수 있다. 모두 데리고 가서 정착시키거나 또는 군사로 조련해 보기로 결정했다.
이곳에서야 자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요동의 동쪽으로 가면 상황은 변할 것으로 판단했다.
최인범은 주둔지에서 병사들과 같이 지내기로 결정하고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철갑웅, 백호장이나 군관들과 같이 부대를 다시 편성해.”
“대장군! 어떤 식으로 부대를 나누죠?”
“일단 기본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은 500명만 따로 모아서 2개 중대를 조직해.”
이미 고아들을 현대식의 군대조직으로 편성을 해보아 쉽게 알아듣고 있었다.
“칸! 중대장은 백호장으로 정하고요?”
“그래, 지금으로는 그것이 최선이야.”
“알겠습니다.”
현재 중급군관인 백호장이 2명이라 그들을 중대장인 지휘관으로 정해서 2개부대로 편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