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의심만으로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을 할 수는 없어.’
적이 공격을 시작해야 그제서 반격할 처지라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적들은 이동하기 편한 육지에서 기회를 노리고 자신들은 한정된 공간인 대운하를 따라 이동하니 더욱 불리했다.
“우리가 불리한데.”
“주인님, 우리가 먼저 해치워 버리죠.”
잠시 적을 퇴치할 방법을 모색하던 최인범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적에게 공격할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지나는 도시로 가서 남은 생아편을 팔고 금괴를 가져오자 최인범은 즉시 지시했다.
“빨리 갑옷으로 만들어.”
“넷!”
낮이기 때문에 적들은 두 명만 말을 타고 멀리서 계속해서 따라 왔다.
그러자 적을 퇴치할 작전을 구상해 놓은 최인범은 활을 꺼내서 멀리 하늘 높이에서 날아가는 오리를 노리고 화살을 날렸다.
핑! 쉬이익! 툭!
하늘 높이 날아서 지나가는 오리는 최인범이 쏜 화살에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백두가 빠르게 화물선을 벗어나 땅으로 떨어지는 오리에게 달려갔다.
백두가 사냥한 오리를 물고 화물선으로 돌아오면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 잡았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10마리의 오리를 잡자 주변에서 따라오던 두 놈이 당황했다.
두 명 뿐이라 만만하게 생각하다가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자 생각이 많아진 것이 분명했다.
‘됐어, 저 놈들은 겁이 나서 이제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거야.’
잡은 오리의 껍질을 직접 벗기며 금괴로 갑옷처럼 다 만들자 추가해서 지시했다.
“두 벌이 만들어 졌으니 하나는 네가 입고 다녀.”
“넷!”
이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각자 많은 금괴도 지니게 되자 최인범은 슬며시 지시를 내렸다.
“적당히 한적한 곳에서 배를 멈춰.”
“주인님! 그렇게 되면 저 놈들이 공격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아. 두 놈은 이미 겁을 집어 먹었으니 우리를 지금 당장 공격하지는 못해.”
이윽고 초저녁이 되어 다소 한적한 장소에 화물선이 정박했다. 주위에는 인가도 전혀 없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따라오는 적들이 공격하기 좋은 장소를 일부러 택해 정박했다.
철갑웅은 둑으로 올라가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최인범이 잡은 오리를 단창으로 끼어 구웠다. 인부들과 같이 맛있게 구운 오리를 먹고 있던 최인범은 드디어 움직였다.
다소 멀리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놈들을 노리고 화살을 날렸다.
쉬익!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두 녀석의 옆에 있는 나무에 깊이 박혔다.
“헉! 눈치 챘다!”
두 놈은 기겁해서 급하게 도망쳤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재빨리 흑혈풍에 올라타고 백구에게 명령했다.
“백두! 추적해.”
화물선을 떠나면서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이제 다시 출발해서 계속 북쪽으로 가. 나는 뒤에서 따라갈 것이니까.”
“넷!”
최인범은 백두가 두 산적의 냄새를 통해 추적하자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이런 작전을 펼치는 이유는 자신들을 노리는 무리는 반드시 두 녀석의 보고를 받기 위해 근처에서 모여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낮은 언덕인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숲. 근처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여기에 모여 있군.’
백두를 따라 도적들이 달아난 곳을 추적하던 최인범은 숲에 모여 있는 10명의 무리를 발견했다.
도적의 무리는 분명하지만 아직은 공격해 약탈한 상태가 아니라 마을과 가까운 곳에서 모인 것이다. 무리를 발견하자 말에서 내려 마른 가지만 무성한 풀숲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도적의 무리는 정찰하던 두 놈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두목, 그 놈은 활을 아주 잘 쏩니다. 하늘에서 날아가는 오리를 활로 잡는데 한 번 발사로 반드시 한 마리가 떨어졌어요.”
“정말 그렇게 활을 잘 쏘나?”
“확실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추적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활을 쏘았어요.”
똑똑한 두목이라면 이런 정도의 궁술 솜씨가 있다면 검술 실력도 만만치 않다고 해서 달리 공격할 방법을 구상할 것이다. 하지만 두목은 별로 머리가 좋지 않거나 많은 재물을 차지할 욕심이 앞서서 그런지 미처 그런 점은 생각하지 않앗다.
욕심이 많은 두목은 오늘 밤에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야간에 공격하면 활 솜씨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
“두목,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겁먹을 필요가 없어. 겨우 두 놈인데.”
“사공도 많은데요.”
“그들이야 우리가 공격하면 달아나기 빠를 거야.”
지금까지는 도적의 무리가 자신들을 미행하며 노리고 있다는 의심만 들었다. 그러나 이런 대화로 자신들을 노리는 것이 확실하자 최인범은 어느새 눈에서 파란 불길이 일어났다.
한동안 잠잠하던 살심이 불같이 끓어오른 것이다.
‘너희들은 다 죽었어.’
최인범은 슬며시 모여 있는 무리를 향해 활에 통아를 걸었다. 시위를 힘차게 당겨 짧은 화살인 편전을 날렸다. 편전은 긴 화살인 유엽전과 달라 날아가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최대한 많은 놈들을 죽일 생각으로 편전으로 공격했다. 불과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라 빠르게 날아간 편전은 무리와 다소 떨어진 놈의 목을 관통해 버렸다.
폭! 픽!
목이 관통되자 전혀 소리치지 못하고 쓰러져 바동거리기만 했다. 소리 없이 날아간 편전에 동료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도적들은 여전히 공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두 번째 편전을 날려 잡게 되자 그제야 무리가 눈치를 채고 외쳤다.
“적이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외치던 녀석의 정수리에 편전이 박히자 무리는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두목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크게 외쳤다.
“조심해.”
그러나 조심하라고 외친 두목의 목에도 편전이 깊이 박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이쯤 되자 겁에 질린 무리는 빠르게 말에 올라 도망쳤다.
이미 살심이 생긴 최인범은 도망치는 놈들을 향해 유엽전을 날렸다.
쉬익!
“으악!”
쉬익!
“크아아악!”
계속 쏘아지는 화살에 말을 타고 도망치다 등에 화살이 박혀 말에서 떨어져 죽어 버렸다. 겨우 무리 중에 2명만 살아남아 남쪽으로 도망쳤다. 자신들의 무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상을 초월한 강적이라는 겁이 나서 정신없이 도망친 것이다.
‘너무 허접한 놈들이 신경을 쓰이게 만들었군.’
최인범은 공격하던 숲에서 벗어나 흑혈풍에 올라 대운하를 따라 빠르게 내달렸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지만 대운하를 따라 이동하는 화물선이라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화물선에 오르자 철갑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인님! 어떻게 됐어요?”
“모두 남쪽으로 도망쳤어.”
굳이 여러 명을 죽였다고 발설할 이유가 없어 이렇게 답했다. 일단 자신들을 노리는 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처치하고 보니 다소 허탈해졌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군. 소총을 구한다고 벌써 몇 명이나 죽인거야.’
전쟁이나 정식으로 벌이는 전투 상황이라면 몇 명을 죽이던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 사람을 죽였다는 느낌이 들어 다소 찜찜했다.
‘마적 떼를 잡았으니 큰 죄를 지은 건 아니지.’
그들이 마적이고 이미 지난 일이라고 판단해 훌훌 털어 버렸다. 주변에 위험요소가 모조리 사라진 최인범 일행은 빠르게 화물선을 이동시켜 북쪽으로 향했다.
산동성에서 활동한다는 반란군들은 다시 둘로 분산되어 버렸다. 일부는 남쪽 항구인 청도로 향하고 나머지는 대운하 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멀리 산동 반도의 북부지역으로 집결했다. 넓게 분산되어 지내다 보니 결집력이 약해지자 중요한 항구인 등주로 모여들었다.
소리만 요란하더니 결국 반란군의 군세는 또 다시 위축되었다. 그러나 군세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명나라에서 반란군을 소탕할 군사를 보낼 여력은 없었다.
드디어 제령을 지나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황하에 도착했다. 본시 누런빛인 강물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으니 그동안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 황하를 접하자 너무 반가웠다.
“철갑웅, 빨리 신고를 끝내고 황하를 넘자.”
“넷!”
산동성 지역에서 반란군들의 활동이 있자 황하를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아에 신고해야 된다. 기찰하기 위해 부두에 파견 나온 관원에게 신고하자 매우 놀랐다.
“순무사님,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습니까?”
“왜 무슨 일이 있었소?”
“예, 남경순무사님을 그동안 찾았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명령을 내려 반란군을 소탕하기 위해 순무사님을 그동안 찾았어요.”
“반란군이야 이미 거의 소멸되어 가는데 나를 찾다니 이상하군요.”
가정제가 자길 또 부려먹을 요량으로 찾았던 것 같았다. 변덕이 심한 가정제라 찾았다고 하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 조용히 천진을 거쳐 산해관을 통해 명나라를 떠날 생각이다.
명나라로 와서 필요한 물건도 모두 구했다. 더구나 충분히 재물도 획득했으니 미련은 없었다. 어떤 높은 벼슬이나 좋은 자리를 준다고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최인범은 관원에게 뇌물을 넘겨주며 부탁했다.
“도강 기록을 우리들 이름을 다르게 조금만 바꾸어 주게. 우리 기록을 삭제해 달라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드리죠.”
부패한 나라다 보니 어디고 뇌물은 만연하고 잘 통하고 있었다. 재물이 넉넉하니 부패한 나라서 살기에 때로는 편리한 점은 많았다.
드디어 똥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누런 황하를 넘어가서 그곳에 있는 기찰하는 관원에게 신고하고 하북성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곳에 있는 관원도 황하 남쪽에 있는 관원과 똑 같은 질문을 했다. 이것으로 보아 황제가 자신을 마치 범죄인에게 수배령을 내리듯이 한동안 찾았던 것 같았다. 이미 도강증에 이름을 바꾸어서 넘었으니 관원이 큰 덩치를 보며 의심은 했지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모르게 움직인 것이 잘한 것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