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알았어, 뒤에서 따라다니고 함부로 앞으로 나서지는 마.”
“넷! 조심하겠습니다.”
이곳은 치안 상태가 양호해 함부로 화물선을 도둑질할 수 없었다. 두 사공과 철갑웅은 은제품을 전당포로 가져가 팔고 은자로 화물선을 구입했다. 선주에게 다소 후하게 많은 은자를 넘겨주자 바닥이 평평한 바지선 같은 화물선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대운하로 들어서면 이제는 돛보다는 노를 저어서 이동해야 한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노를 저을 사공을 추가로 구해야 한다.
“교대로 계속해서 노를 저어야하니 인부 6명을 구하시오.”
“예!”
화물선은 두 사람이 노를 저어서 간다. 그 때문에 교대로 노를 저어야 하니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최대한 범행 현장에서 멀어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여러 명의 인부를 구해 운하로 접어들었다.
“먹을 것을 구해야죠.”
“알았어, 빨리 가서 음식을 사오고 말 먹이도 사와.”
“넷!”
철갑웅은 두 사공과 같이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며 혹시 자신들에 대한 소문이 들리는지 살폈다. 시장의 상인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남쪽 해안가에 검은 산적들이 나타났다고 하네.”
“뭐? 검은 산적?”
“얼굴도 검고 피부나 머리카락이 모두 까만 도적이 떼 지어 나나타서 말 목장을 털었다고 하더군.”
“뭐라? 말이 얼마나 사라졌는데?”
“무리는 약 20명 정도 되는데 목장에서 100필이나 되는 말을 도둑질해 안개 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거야.”
말을 100필이나 탈취에서 타고 멀리 달아났다면 그들은 이제 단순한 산적이 아니다. 말을 타고 있으니 정말 위험한 마적으로 변한 것이다.
산적과 마적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산적은 어느 한 지역에서 거점을 잡고 활동하지만 기동성이 좋은 마적은 활동범위가 넓고 어디로 이동할지 모른다.
“마적이면 작은 마을이 피해가 심하겠어.”
“아무래도 그러겠지.”
대부분 큰 도시에는 군사들이 지키거나 또는 성채가 있으니 소규모 마적이야 겁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군사들도 주변에 없고 성채가 없는 작은 마을은 마적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변할 수 있었다. 물론 대도시의 주변에 있는 작은 마을들도 마적의 출현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서 화물선으로 오게 된 철갑웅은 이런 사실을 자세하게 보고했다. 듣고 있던 최인범은 그들의 정체는 알 수 있었다.
‘분명 범선에서 지내던 흑인노예들이 모조리 도망친 거야.’
흑인노예들이 도망쳤으니 자신이 저지른 행위는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으니 빨리 멀리 달아나는 것이 최선이다.
더구나 이제 다른 길은 없으니 대운하를 따라 최대한 빠르게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았다.
최인범이 대운하를 이용해 바르게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항주 남쪽에서는 흑인노예로 구성된 마적들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검은 마적이 100명이나 된다고?”
“그렇다고 하더군.”
“어떻게 20명이라더니 하루에 100명으로 불어나?”
“그야 잘 모르지 본시 100명인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20명에 불과하던 무리가 어느새 100명으로 대폭 늘어나 작은 마을을 습격하고 이동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그들의 수가 대폭 늘어난 이유는 마을에서 살던 노비들이나 일반 백성들이 마적무리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남쪽의 기근이 너무 심하다보니 마적들이 마을로 쳐들어오자 일부 청년들은 마적무리에 합류해 같이 약탈하는 처지로 변해 버렸다.
이틀이 지나자 항주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소문이 퍼졌다.
“이번에도 목장을 털어 말을 200필이나 탈취했다고 해.”
“뭐라! 벌써 그렇게 수가 늘어났어?”
“살기가 어려우니 백성들이 모두 도적으로 변한 거야.”
마을 사람들은 무섭게 세력이 커지는 마적들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마적들이 날 뛰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렵던 살림살이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마적들은 앞으로 점점 규모가 커지겠군.”
“당연하지. 이젠 큰 마을도 습격하고 있어.”
처음 20명에 불과하던 무리는 하루가 다르게 규모가 커져 버렸다. 아무 연고가 없는 우두머리들인 흑인노예들이라 마을을 습격해 얻어지는 재물은 모두 부하들에게 넘겨주었다.
항상 윗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수탈만 당하던 하층민들은 이런 사실 때문에 무리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었다.
관아에서는 우두머리들이 모두 검은 색이라는 점 때문에 흑마적이라고 칭했다. 마적을 소탕하기 위해 남경에 있는 조정으로 급하게 연락하게 되었다.
남경에는 별로 실권은 없지만 조정과 비슷한 통치기구를 항상 유지하기 때문에 연락한 것이다. 그러나 남경은 강소성과 산동성 남쪽에서 출현한 반란군 무리들 때문에 장간의 남쪽 지역으로 병력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명나라는 사방에서 반란군이나 도적의 무리가 출현해 매우 혼란한 상황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자 지방에서는 북경의 조정으로 보내는 세금을 전혀 올려 보내지 않고 있었다.
“썩은 조정에 왜 아까운 세금을 보내.”
“당연하지. 보낼 것 없어.”
지방의 수령들이 각자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방탕한 황제라는 소문이 널리 퍼지고 관료들의 기강이 허물어졌다. 지방마다 있는 관료들이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대륙은 다시 여러 조각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었다.
한편 대운하를 통해 남경으로 가려던 최인범은 남쪽에서 흑인노예들이 결성한 마적들이 출몰하고 상황이 급변하자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남경으로 가지 말고 계속 운하를 따라서 북쪽으로 가!”
“알겠습니다.”
장강으로 접어들자 그동안 채용했던 인부를 돌려보내고 새로 인부를 구했다. 더 빨리 이동하기 위해 2개이던 노를 3개로 늘리고 인부도 9명을 새로 채용해 장강 북쪽으로 접어들었다.
일단 범행 현장에서는 완전히 벗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남쪽이 흑인노예들 때문에 점점 혼란해지자 소멸되어 가던 반란군이 또다시 세를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부지런한 소의 해라는 신축(辛丑)년(1541년)인 정월 대보름이 지났다.
대륙을 남북으로 관통해 북쪽의 북경까지 통행이 가능한 대운하로 접어들었다.
최인범은 9명의 인부들을 계속해서 교대로 채용했다.
전에 같이 움직이던 인부인 사공을 돌려보내게 되자 최인범은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인건비를 넉넉하게 둬서 고향으로 돌려보내.”
“넷!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니고 있는 재물이 많으니 조금 후하게 선심을 쓰고 있었다. 그래야 계속해서 우수한 인부를 채용할 수 있었다. 인부들은 일정 구간을 이동하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시간을 3명이 노를 저어 가는 3교대 방식으로 밤낮없이 이동했다. 말을 타고 쉬엄쉬엄 가는 속도보다 빨랐다. 최인범은 드디어 회수(淮水)와 대운하가 만나는 회안(淮安)에 도착했다.
대운하 주변 고을에는 상인들이 많이 활동한다. 그 때문에 북경이나 또는 남경 그리고 더 먼 지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조금만 신경 써서 정보를 수집하면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선착장의 여각으로 가서 상인들에게 술을 사주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던 철갑웅이 화물선으로 돌아와 급하게 보고했다.
“주인님!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운하 지역도 안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뭐라?”
“반란군들이 가끔 운하지역 작은 현을 공격해 약탈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보고를 받자 먼저 떠난 설화 일행이 걱정되어 물었다.
“고아들의 소식은 들었고?”
“넷! 그들은 이미 산해관을 넘어 완전히 명나라에서 떠났다고 합니다.”
“어떻게 상인들이 그런 소식까지 아는 거지?”
“워낙 많은 이국인 고아들을 데리고 가기 때문에 산해관이나 천진에서 내려온 상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살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보고에 최인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어.”
고아들에게 명나라 옷을 입혔더라도 푸른 눈이나 또는 피부색이 전혀 다르다. 그러 보니 너무 특이한 모습이라 구경거리가 되어 상인들 사이에 이야기들이 많이 떠돈 것 같았다.
아내인 설화의 소식이 제일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명나라에서 사간다고 했던 비단도 사가지고 갔고?”
“넷! 설화 아가씨가 천진에서 워낙 많은 비단을 한 번에 사서 떠나자 요동으로 비단을 파는 상인들이 대부분 알고 있더군요.”
“알았어. 설화가 무사히 명나라를 벗어났으니 우리만 안전하게 떠나면 되겠군.”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설화는 필요한 고급비단을 사서 돌아갔다. 양까지 사가라고 했지만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일단 어린 고아들과 같이 무사히 산해관을 넘어 동쪽으로 떠났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동해야 되는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었다. 안전을 위해 많은 부하를 딸려 보냈지만 걱정되었다.
‘명나라는 무사히 떠났지만 요동에서 무슨 사단이 벌어질지 모르겠어.’
철갑웅은 계속해서 북쪽의 소문들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의견을 제시했다.
“주인님! 우리도 배를 버리고 육로로 이동하는 것은 어떤가요?”
이런 제의에 최인범은 고개를 저으며 답해 주었다.
“가지고 있는 짐이 너무 많아서 그건 곤란해. 육로라고 해도 어차피 강들이 많아 자주 배를 이용해야 되니 지금처럼 화물선으로 운하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제일 안전해. 많은 짐을 수시로 움직이면 외부로 우리 행적이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
“그렇군요. 짐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화물선에 짐이 많다보니 속도도 다소 느려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았다. 지금까지는 별로 위험하지는 않지만 이곳부터는 반란군이 활동하는 지역이라 느린 속도는 조금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회수 북쪽에서 반란군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 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방법으로는 많은 물건을 가지고 이동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소총이야 반드시 가져가야 하니 한 정도 처분할 수 없었다. 범선을 털면서 덤으로 생긴 생아편을 처분하기로 했다.
‘생아편은 자루에 넣어서 이동하기도 그렇고 다른 방법으로 재물을 가져가는 것이 좋겠어.’
생아편은 비에 젖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또한 습기가 차도 안 되기 때문에 조금씩 나누어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혼란한 시기다 보니 사람들은 마약의 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부상자의 치료를 위해 생아편도 사용하기 때문에 남쪽보다 북쪽이 더 고가로 거래되고 있었다.
‘전에 비해 가격이 3배나 올랐다니 처분해 버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