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범선의 잠입과 탈출>
일단 소총을 챙기자 다음으로 필요한 탄알이나 또는 화약 주머니들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챙겼다.
모두 가지고 가서 발사 실험을 해야 한다. 화약 제조 기술자를 구하기 전이라 꼭 필요한 물품이다. 화약이나 탄알이 없으면 소총은 그저 막대기에 불과했다.
귀를 기울여 주변을 살펴도 선원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배로 침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다닥! 다다닥!
조심스럽게 움직이지만 소음은 아주 크게 귀에 들려왔다. 큰 덩치로 무거운 물건을 들고 급하게 움직이다가 보니 소음이 크게 들린 것이다.
그러자 최인범은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조심해서 움직여.”
“넷!”
철갑웅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최인범은 갑판으로 올라오는 계단 입구에서 대검을 꼬나들고 지켰다. 누구라도 갑판 위로 올라오는 기색이 보이면 목을 잘라 버릴 심산이다.
이때 갑판에서 천천히 돌아다니던 백두가 선실로 들어와 구석에 있는 나무상자로 다가가 냄새를 맡고나자 코를 벌름거리며 작게 짖었다.
컹! 컹!
“쉿!”
무심코 그냥 지나치려다가 백두가 짖자 나무상자로 다가가 대검을 이용해 뚜껑을 열었다.
“이게 뭐야? 환약 같은데?”
시커먼 환약과 같이 생긴 동그란 물건이 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다소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순간 생아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카오에서 굳이 이곳까지 와서 밀무역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 보다 마약인 생아편을 거래하기 때문이다.
코가 예민한 백두는 강한 냄새를 풍기는 생아편을 쉽게 알아낸 것이다. 최인범의 생아편을 발견하자 눈은 어느새 탐욕으로 일렁였다.
‘아편이면 큰돈벌이가 되겠어.’
조선 같으면 마약이라고 판단해 그냥 바다에 버리거나 또는 불로 태워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명나라니 큰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 아직 아편을 금지하지 않으니 이것도 가져가는 것이 좋아.’
필요한 소총을 충분히 구했으니 빨리 철수해야 된다. 하지만 최인범도 사람인지라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많은 생아편을 발견하자 불연 듯 욕심이 생긴 것이다.
아편은 명나라에서 의약품으로 취급되어 상당히 고가에 팔리는 물건이고 때로는 약으로 사용도 하니 귀중품이다.
‘좋았어, 남경으로 가져가서 이신생에게 아편을 넘겨주면 되겠어.’
어차피 이신생과 자신은 밀거래를 했으니 이번에도 그를 통해 생아편을 남경에서 팔기로 결정했다.
“이 나무 상자도 옮겨.”
“넷!”
나무 상자는 모두 10 상자라 상당히 무겁고 부피가 많았다.
“칸! 조각배에 짐이 너무 많이 실리네요.”
“아직은 충분해.”
작지만 모든 물건들을 조각배에 충분히 실을 수 있어 서둘러 같이 날랐다. 범선으로 침투해 충분히 챙길 것을 챙겼다고 판단한 최인범은 그제야 선장실을 뒤졌다. 몇 가지 서책도 챙겨 자루에 담았다.
‘여기에는 없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선장실에서 보이지 않자 슬며시 조타실로 올라가 그곳을 자세하게 살폈다.
‘여기 있군.’
조타실에는 선장실에서 찾다가 없었던 항해일지와 커다란 설계도 뭉치. 기타 서류와 조잡하지만 해도나 기타 지도들이 있었다.
작은 나침반도 있어 필요한 것을 모조리 자루에 담아 챙겼다. 벽의 책장에 있는 수많은 책들도 바쁘게 챙겼다.
‘이거야 말로 보물 창고군.’
새로운 정보가 절실하게 필요한 최인범으로는 선장실의 물품 모두가 보물이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빨리 범선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선원들이 보초도 없이 모두 술에 취해 잠들어 있으니 최인범이나 철갑웅은 더욱 물건들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이때 철갑웅이 있는 선장실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쨍그랑! 와장창!
세상살이에서 과욕을 부리다 보면 항상 큰 화를 불러온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급하게 선장실로 달려갔다. 선실 안에는 약간 불이 났다.
‘이런, 저 자식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철갑웅이 아까부터 욕심내던 은쟁반이나 은촛대를 급하게 자루에 챙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선장실 탁자에 있는 유리로 만들어진 호롱을 떨어트려 깨트린 것이다.
‘저 녀석이 일부러 불을 냈나?’
두 사람은 바닥에 불이 붙는 것 같아 급하게 껐다. 범선에서 불이 나면 잠자던 선원이나 색주가로 같던 선원들이 모두 깨어나 자신들을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다.
다행히 작은 불길이라 쉽게 껴졌다. 선실 안에서는 약간 역겹게 느껴지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자신도 재물을 탐냈지만 철갑웅도 귀해 보이는 물건에 눈이 멀어 그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최인범은 인상을 쓰며 싸늘한 저음으로 나무랬다.
“너! 죽을래?”
당황한 철갑웅은 허리를 숙이며 급하게 답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너무 급한 상황이라 부하의 실수를 계속 나무랄 상황이 아니다. 빨리 탈출해야 되기 때문에 이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빨리 배를 몰고 먼저 떠나! 선원들과 약속한 장소로 가서 빨리 짐을 옮겨 놓고 출항할 준비를 해.”
“넷!”
철갑웅은 정신없이 은제품들이 들어 있는 자루를 매고 급하게 밧줄을 타고 범선에서 내려 조각배에 올라 빠르게 멀어졌다. 노를 젓는 동작이 아주 빨랐다. 아무래도 자신의 실수로 저질러 들키게 되자 마음이 너무 급했다.
철갑웅이 조각배를 타고 범선에서 떠나는 동안. 아래층의 선실에서 선원들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호롱불의 유리가 깨지며 큰 소리가 들리자 무슨 일인가하고 살피러 올라왔다. 귀찮다는 생각에서 인지 계속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궁시렁 궁시렁.
계단이 있는 입구에서 귀를 기울여 보니 선원 2명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소리가 크게 들리자 깊이 잠들지 않은 선원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이 전혀 들리지는 않았다.
소총만 도둑질 했으면 조용히 사라질 수 있었으나 과욕으로 선원들이 잠에서 깨어나 갑판으로 올라오니 잠시 고민했다.
‘어쩌지? 죽여야 하나?’
지금 상태로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하면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리되면 갑판으로 올라오는 선원들이 알 수 있으니 수영해서 멀리 도망치기는 어렵다.
범선으로 따라 올 수는 없지만 선원들이 동원되어 해안으로 따라오면 도망칠 길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망망대해인 먼 바다로 수영해서 나갈 수는 없었다.
침착하게 움직이던 최인범은 약간 당황했다.
‘올라오는 선원들은 죽이는 수밖에 없어!’
선원들이 눈치를 채기 전에 소리 없이 죽이고 탈출할 요량이다. 선원들이 갑판만 살피고 내려가면 그대로 도망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동작을 보이면 죽여야 한다.
소리 없이 선원 둘을 거의 동시에 죽이는 것도 약간 힘들다.
실수라도 하면 선원들이 소리쳐서 동료들을 부르게 생겼다. 그 때문에 일단 숨어서 2명의 선원들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에효! 도둑질 하려고 들어 왔다가 졸지에 살인까지 하게 생겼어.’
포르투갈 선원들이 과거에 범선을 끌고 다니며 남쪽에서 노략질을 했던 무슨 짓을 벌였던 그들은 지금은 단순한 밀거래를 하는 민간인 신분이라 조금 망설였다.
그러나 선원들이 약간 불쌍하다는 동정심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순서가 어찌 되었건 선원들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생겼다.
최인범의 눈에서는 진한 살기가 풍겼다. 선원을 단 칼에 죽여야 안전하게 범선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처음 계획에 선원들을 처치하면서 소총을 구하려고 했으니 크게 잘못된 작전은 아니다.
갑판의 화물 더미 옆에서 숨어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 같이 바짝 웅크린 자세로 흑혈검을 빼들고 선원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선원 2명은 갑판 위로 올라와 화물더미를 만져보며 두리번거렸다. 큰 소리가 났지만 아직 어디서 들린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가 났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잖아. 도둑고양이가 찾아왔나보군.”
“올라 왔으니 살펴보자고.”
“그러지.”
갑판을 살피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자 두 선원은 선장실로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선장실로 들어가면 엉망으로 변했으니 소리를 질러 동료를 부를 수 있었다.
다다다!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자 선원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놀란 표정인 두 선원의 목을 노리고 흑혈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획! 획!
“큭!”
“컥!”
십자 베기로 크게 휘두른 흑혈검에 선원들은 목덜미와 어깨가 깊게 배어지며 붉은 피가 품어져 나왔다. 목이 반으로 잘라져 크게 소리치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토기 위해 그르륵 그르륵 하며 아주 작은 소음만 토했다.
쿵! 쿵!
선원들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갑판 위에 쓰러져 버렸다. 목이 반으로 잘라지자 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갑판 위에는 붉은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이제 흔적을 지울 수도 없게 되었다. 무기나 아편들을 훔치고 선원들까지 죽였으니 이제 최대한 빨리 멀리 달아나는 것이 최선이다. 일단 죽은 선원들의 사체를 바다에 힘껏 던졌다.
풍덩! 풍덩!
탈출하기 전에 범선에 불을 질러 포르투갈 선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됐다. 그러나 불을 지르려고 해도 불씨가 없으니 그것도 힘들었다.
‘뭐로 불을 지르지?’
부싯돌이 품속에 들어 있지만 그건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니 급한 상황인 지금 당당에 불을 피울 수는 없었다. 조금 전에 불을 끄고 다시 불을 지르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침투작전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최인범은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의 중간에 걸려 있는 작은 호롱불이 눈에 확 들어 왔다.
후다닥!
빠르게 계단으로 다가가 아래의 통로를 조심스럽게 살피자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실에서 지내는 선원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흑혈검을 겨루고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서 보니 안에는 화포가 있고 화약도 보였다. 화약을 이용해 완전히 범선을 폭파하는 방법보다는 선장실에 불을 지르는 것이 제일 좋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