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선창가에는 어김없이 선원들에게 몸을 파는 창기가 사는 매음굴이 있었다. 작은 섬이지만 제법 많은 여자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대부분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유곽으로 팔려왔다.
불교 문화권인 동양에서는 선원들이 멀리 항해를 떠날 때는 반드시 항해 사찰로 찾아간다. 무사한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것이 통예다.
서양의 선원들은 대부분 한동안 만나지 못할 여자를 품는 것을 당연하다는 풍토가 있었다. 서로 문화가 다르다 보니 바다를 향해 떠나는 마음 자세가 많이 달랐다.
이런 포르트갈 선원들의 흐트러진 모습들로 보아 내일이나 또는 모래 정도면 범선은 보타도를 떠나 남쪽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자신이 범선 안으로 침투할 기회는 지금 한번 뿐이었다. 실패하거나 성공을 하거나 오늘 중으로 보타도를 떠날 생각이다.
철갑웅은 범선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주인님. 배로 침투하시려면 바다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아 보이네요. 작은 조각배가 있어야 되겠어요.”
철갑웅의 이런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으니 조각배만 하나 준비하고 같이 온 사공들에게 영파로 떠날 준비를 하고 부두에서 기다리라고해.”
“넷!”
어차피 침투해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면 바로 영파로 가서 신속하게 북쪽으로 떠날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장비도 철갑웅에게 넘겨주며 추가로 지시했다.
“밤에 보타도를 떠날 것이니 이 장비를 배로 가져다 놓고 사공들은 지금 저녁식사를 끝내고 꼭 배에서 기다리고 당부해.”
“넷!”
범선의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고 선원들의 수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선원들은 모두 50명 정도에 불과했다.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최소한의 선원들만 있는 것 같았다.
해안에서 술을 마시는 수와 색주가로 간 선원들의 수를 계산해 보니 거의 50명 정도다. 자신이 파악한 수는 대부분 하산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선원이나 또는 노예가 남아 있더라도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범선에는 불과 10명 이내만 남아 있겠어.’
선장으로 보이던 상인도 하선한 상태다. 아마도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방장이나 기타 잡스러운 심부름을 하는 검은 피부의 노예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반 선원이 아닌 노예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들의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검은 피부인 노예들이 커다란 나무통에 술인지 물인지를 담아 범선 안으로 부지런히 선적하고 있었다. 노예들이 물을 나른다면 내일 새벽이면 분명 출항할 것이다.
밧줄과 갈고리 그리고 단검과 장검 등의 무기들을 챙겨 놓고 기다리는 중······.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겨울의 차가운 밤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제 철갑웅이 조각배만 구해오면 침투할 계획이다.
‘드디어 왔군.’
철갑웅이 서너 명 정도가 겨우 탈 수 있을 정도인 아주 작은 조각배를 끌고 해안으로 다가왔다. 해안가 풀숲에 숨어서 기다리던 최인범은 빠르게 숲에서 나와 조각배 쪽으로 이동했다.
다다다다.
빠르게 이동해 작은 조각배에 오르자 급하게 노를 저어서 조심스럽게 범선으로 다가갔다. 백두도 빠르게 조각배에 같이 올랐다.
“배는 빌렸냐?”
“아뇨, 그냥 끌고 왔어요.”
어차피 누가 범선 안으로 침투한 것인지 모르도록 할 계획이라 조각배를 그냥 끌고 오는 것이 좋았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하늘에는 별이나 달도 보이지 않아 어둠이 짖게 깔려 있었다. 선원들은 거의 술에 취해 색주가로 떠난 상태다.
범선 안에 남아 있는 선원들도 대부분 만취해 있었다. 그들은 분명 범선 안으로 들어가 선실에서 잠을 잘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조상님들께서 나를 돕는군.’
두 사람은 조각배를 조심스럽게 이동시켜 바다 쪽에서 범선으로 다가갔다. 범선의 측면에 밀착하고 나자 최인범은 급하게 백두를 두 손으로 들어 힘차게 던졌다.
획!
높이 던진 백두가 범선의 갑판으로 무사히 안착했다. 최인범은 서둘러 허벅지에 차고 있던 대검을 선체에 깊이 박고 밧줄로 연결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조각배를 고정시킬 수 없었다.
“두건 쓰자!”
“넷!”
두 사람은 털실로 짠 검은 두건을 머리에 푹 뒤집어썼다. 눈과 입의 부분만 구멍을 뻥 뚫어졌다.
갑판에 올라가서 포르트갈 선원에게 들킬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소총만 구하면 바로 조선으로 떠날 생각이지만 여기서 들키면 보타도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곳 보타도의 유력자들은 대부분 포르트갈 선원들과 상당히 밀착되어 있으니 매사 조심해야 된다.
‘얼굴을 목격당해 정확하게 아는 것과 모습만 들키는 것은 전혀 달라.’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판단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두 사람이 준비하는 동안 먼저 갑판에 오른 백두가 살피고 나자 작게 짖었다.
컹! 컹!
워낙 우수한 품종인 풍산개라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아무도 없다는 뜻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백두가 짖고 나자 최인범은 즉시 밧줄이 연결된 갈퀴를 위로 던졌다.
획! 철컹!
중간 중간에 매듭을 만들어 놓은 밧줄을 힘차게 잡아 당겨 갈고리가 단단히 고정된 것을 확인했다. 튼튼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빠르게 선체를 타고 올랐다.
“헛!”
턱! 턱! 턱!
가볍게 선체 위로 오르고 나자 뱃전을 잡고 고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자 갑판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해서 침투 사실이 발각되면 배에 남아 있는 선원들이 떼 지어 달려들 염려가 많았다.
10명 정도 남아 있다고 추측만 되는 것이지 정확한 선원의 수를 확인하기는 힘들다. 그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보타도 사람까지 알게 되면 섬이라 탈출하기 힘들 수 있었다.
낮에 갑판에서 일하다가 누워 있던 흑인 노예들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그들도 보이지 않았다. 추운 날씨라 아마도 아래의 선실이나 창고에 있는 것 같았다.
‘흑인 노예들도 갑판에 없군.’
낮에는 감시하면서 힘들게 물건을 나르던 흑인들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술에 취해 있던 선원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보초도 보이지 않았다.
‘보초가 한 명도 없다니 너무 허술하군.’
아마도 그들은 너무 친숙한 지역이라 설마 이렇게 범선으로 침투할 경우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갑판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빠르게 갑판으로 오른 뒤에 슬며시 밧줄을 잡아 당겼다.
흔들 흔들.
신호를 보내자 조각배에 타고 있던 철갑웅도 빠르게 갑판 위로 올라왔다. 철갑웅은 전에 왜 나무에 밧줄을 매고 오르는 연습을 시킨 이유를 이제야 정확하게 알았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침투작전임을 이제야 정확하게 알았다.
‘이렇게 배로 침투해 털어 버릴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거야.’
밧줄을 타고 배로 오르는 벽 타기야 성을 공략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기술이다.
두 사람은 물건이 쌓여 있는 구석에서 앉아 긴장해서 계속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무리 두 사람의 무력이 뛰어나도 많은 선원들이 달려들면 버겁다는 것을 잘 아니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두리번두리번.
두 사람은 동시에 갑판 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러자 그들의 귀에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아래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드르렁 드르렁.
술에 취해 잠든 포르트갈 선원들이 아래의 선실에서 자면서 코를 심하게 고는 소리다. 그런 소음을 듣자 최인범은 자신도 모르게 묘한 미소를 지었다.
‘헉! 주인께서 살심이 생긴 거야.’
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주인의 성품을 어느 정도는 파악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런 미묘한 눈웃음 뒤에는 반드시 적을 잔인하다고 할 정도로 처참하게 죽이는 경향이 많았다.
‘몇 놈의 목 줄기가 따지겠어.’
물론 자신도 남들이 보면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최인범의 묘한 웃음은 무척 무섭게 느껴졌다.
배로 침투한 목표는 소총이기 때문에 최인범은 빠르게 조타실 쪽으로 이동했다.
사사사삭.
범선들은 대부분 조타실 바로 밑에 선장실과 함께 무기고가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동했다.
살며시 문 옆으로 다가가 안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귀를 기울였다. 커다란 선실 안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최인범은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선장이 밖으로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군. 빨리 도끼와 밧줄을 가져와!”
“넷!”
명령을 내리고 나자 문을 살며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장실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 보다 더 고급스럽게 치장되어 있었다.
고급 가죽으로 만든 제품들도 보이고 은이나 금으로 만든 귀한 물건들도 보였다. 구석에는 도자기들도 보였다. 은제로 만든 술잔이나 그릇들이 보이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나무 상자 10개가 놓여 있었다.
‘화물인데 왜 여기다 상자를 놨지?’
화물인 나무 상자가 선장실에 있어 다소 이상해 보였다. 그러나 다른 물건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고 빠르게 무기고로 다가갔다. 무기고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이때 철갑웅이 갑판에 있는 도끼와 밧줄을 고 다가와 말했다.
“주인님! 도끼로 부술까요?”
굳이 무기고의 문을 큰 소리를 내면서 부술 필요는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잘 모르지만 무기고 바로 옆의 기둥에 열쇠가 걸려 있었다.
“부술 필요가 없어 여기 열쇠가 있네.”
“그렇군요.”
열쇠를 가지고 커다란 자물통을 빠르게 열자 안에는 화승식 소총 40자루가 비치되어 있었다. 소총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닌다면 그만큼 재력이 좋다는 의미가 있었다.
아래에는 휴대용 화약통을 비롯해 납으로 만든 작은 총알들이 여러 개의 주머니에 가득 들어 있었다. 긴 도화선도 커다란 묶음으로 있었다.
이곳으로 온 범선의 선장은 제법 큰 부를 이룬 상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아프리카에서 노예도 끌고 가 파니 돈이야 많이 벌었을 거야.’
상선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비무장으로 다니다가 필요한 경우 소총으로 무장하는 것 같았다. 최인범은 귀해 보이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탐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이것들을 빨리 배로 옮겨!”
“넷!”
명령을 받은 철갑웅은 빠르게 10자루의 소총을 챙겨 다발로 묵었다. 그리고 재빨리 갑판으로 나가 조각배에 밧줄로 매어 내리는 방법으로 조심스럽게 실었다.
최인범은 철갑웅이 나르기 편하게 소총을 다발로 묶거나 또는 갑판에 흔하게 있는 커다란 자루를 가져와 화약들을 담았다. 재빠른 동작으로 4번을 이동해 소총을 모조리 옮기고 나자 최인범은 다시 지시했다.
“여기 자루에 담긴 화약과 총알들도 모조리 챙겨.”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