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그렇지요. 명나라에 본시 장과 왕씨들이 많지만 이곳 보타도에는 장보고나 그의 부하들이 살던 곳이라 장과 왕씨들이 많습니다.”
해상왕인 장보고에 대한 말을 듣자 귀가 쫑긋해서 물었다.
“혹시 장보고라는 분의 후손들도 있어요?”
“그렇지는 않고 그의 부하이던 장씨나 왕씨 후손들은 보타도에서 많이 삽니다. 저도 왕씨로 사실 고려가 망할 때 여기로 도망친 왕족이죠.”
“그래요?”
고려의 왕씨가 여기로 피신했다는 말은 처음 들어 호기심을 표했다. 그러자 노스님은 이제는 그저 지난 이야기를 하듯이 설명했다.
“본래 고려의 태조인 왕건은 이곳에서 무역하던 분이 그쪽으로 넘어가서 살던 후손입니다.”
“그래요?”
“더 위로 올라가면 백제의 유민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노스님은 조선이나 또는 명나라 왜에서 활동하는 해외 무역 상인들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이곳 보타도에서 활동하던 백제인들이라고 했다.
세월이 무수하게 흘러 본래 순수한 백제인 후손의 혈통으로 이루어진 무역상들은 아니지만 큰 줄기는 그들이라고 했다.
최인범은 조심스럽게 노스님에게 물었다.
“혹시 정화의 대형 선박을 건조한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려나요?”
“있기는 할 겁니다.”
이런 대답에 최인범은 화들짝 놀랐다. 모든 기술자들이 사라졌다고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놀란 것이다.
“여기에 그런 선박 기술자가 있어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장담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기술자는 남아 있을 겁니다. 그들은 후손에게 어떤 방법으로라도 한번 습득한 고급 선박 제조기술을 물려주려고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사는지 알아요?”
“보타도나 영파에서 살 겁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금지하는 기술을 지니고 있으니 함부로 내색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정화의 큰 배들도 모두 이곳 보타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기술자들이 대형 배도 건조하거나 운항을 담당했죠.”
“그렇군요.”
원나라는 유목민으로 본시 선박이나 항해술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명나라가 대륙을 통일했다고 해서 금방 대형 선박 건조 기술이나 항해 기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주산군도 해민들은 내륙에서 사는 사람들과는 조상이나 생활 방식이 전혀 달랐다. 남쪽에 있는 대부분 항구에서 사는 무역상들이나 또는 더 남쪽의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도 다들 뿌리는 해상왕국이던 백제인의 후손들이다.
최인범은 노스님을 만난 이후로 보타도에서 설화와 지내며 포르트갈 배가 오길 기다렸다. 또한 대형선박을 건조기술자를 은밀하게 수소문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사다난하던 한해가 지나고 신축(辛丑: 1541)년 새해가 밝아왔다.
명나라로 와서 얻었던 높은 벼슬이야 이제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처음 계획한 그대로 조선에서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물건만 구하면 돌아갈 계획이다.
보타도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높은 바위.
넓고 푸른 바다를 지켜보던 최인범은 옆에 있는 설화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권했다.
“설화, 바닷바람이 너무 차가운데 집으로 들어가지.”
바위에 서있는 최인범과 설화는 모두 두툼한 곰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있다. 모자가 달린 등산복 형태로 만들어 입고 있었다. 하지만 높이 솟아 오른 바위에 서있기 때문에 겨울의 바다바람은 매우 차가웠다.
거친 파도가 계속해서 ‘철썩! 철썩!’ 큰 소리를 내면서 바위를 향해 밀려오고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설화의 얼굴은 얼어버려 벌겋게 달아올랐다. 붉고 작은 설화의 입에서는 계속 하얀 김이 서리고 있었다.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에 설화는 엷게 미소를 지으며 응수했다.
“아뇨. 같이 가다리겠어요. 집에 가도 별로 할 일이 없는데요.”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배를 기다리는 일은 무척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고집스럽게 범선이 오길 기다렸다.
자꾸만 일정이 늦어지자 최인범은 약간 짜증이 나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언제나 오는지 모르겠군.’
보타도에서 사는 상인들의 말에는 연초에 포르트갈의 배가 이곳으로 도착하기로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면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신라초라고 불리는 암초가 보이는 곳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새해맞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던 것이 이제 습관이 되어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반드시 획득해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보타도의 남쪽 신라초 부근에서 포르트갈의 선박이 오길 기다라던 중.
새해가 된지도 어느새 10여일이 지나고 있었다.
최인범은 오늘도 설화와 같이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포르트갈의 배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멀리 지평선에서 하얀 돛이 보였다. 여러 개의 돛이 보이자 포르트갈 상인이 타고 있는 범선이 확실했다.
최인범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크게 외쳤다.
“드디어 범선이 오는군.”
최인범의 말에 설화는 바다를 바라보며 응수했다.
“어디요?”
“저쪽 남쪽에 하얀 돛이 여러 개가 보이잖아.”
설화의 눈에는 보지 않지만 최인범은 남들보다 눈이 좋아 범선이 다가오는지 빨리 알아보았다. 그러자 설화는 계속해서 먼 바다를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고 있다는 배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넓고 푸른 바다만 보였다.
‘이상하시네. 내 눈에 배가 안 보이는데.’
조금 시간에 지나자 설화의 눈에 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범선이 흐릿하게 보였다. 커다란 범선은 보타도의 해안으로 점점다가오고 있었다.
최인범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범선을 지적했다.
“저쪽에 배가 보이지?”
설화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물었다.
“칸! 지금까지 저 배를 계속해서 기다리신 겁니까?”
“왜 배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나?”
생긴 것은 다소 이상해 보이지만 크기도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으니 설화는 고개를 저으며 응수했다.
“칸! 제가 보기에는 조금 다르게 생긴 배로 보이기는 하지만 별로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 배 안에 실려 있는 물건들이 아주 중요해.”
“그렇군요. 그럼 빨리 부두로 가서 거래를 해야 되겠네요.”
최인범은 서둘러 배가 도착한 지점인 항구 쪽으로 급하게 움직였다.
명나라에서는 해금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 상인과 밀무역 형태로 거래한다. 그 때문이 범선은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오래 기다렸지만 그들이 자신과 거래를 할지 모르니 조금은 초조했다.
‘명나라 상인들과 거래만 끝나면 바로 출항할지 모른다니 처음 만나는 나와 거래하게 될지 모르겠군.’
최인범은 서둘러 말에 올라 부두로 향했다.
드디어 범선이 다가와 바다에서 돛을 내리고 작은 보트가 내려졌다. 포르트갈의 선원들이 노를 저어서 해변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선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설화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머, 머리가 노란 사람이 있네요.”
“머리카락이 노란 사람을 처음 보나?”
“예. 사람이 저렇게도 생기다니 너무 신기하네요.”
포르트갈 선원들은 보트를 타고 보타도의 해변에 도착하자 기다리던 명나라 상인들과 빠르게 대화를 나누었다.
최인범은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라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상인들이 필요한 물건과 자신이 필요한 물건은 전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전면에 나설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서로 거래하기로 약속이 끝나자 포르트갈 선원들은 보트를 타고 다시 범선으로 돌아갔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범선은 다시 돛을 올려서 부두 쪽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범선은 언제고 출항이 가능하도록 부두 끝에 정박했다. 밀무역이라 상당히 조심하는 것 같았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려나?’
포르투갈 선원들은 빠르게 범선에서 커다란 자루들을 내려놓았다. 선원들이 하역하자 많은 명나라 상인들이 급하게 다가와 물건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비단을 넘겨주었다.
포르투갈 상인은 익숙한 북경어를 사용해 명나라 상인에게 물었다.
“거래할 도자기는 없소?”
“도자기가 필요하면 조금 기다리시오.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포장해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려야 됩니다.”
“알았소. 빨리 포장해서 가져 오시오. 도자기를 가져오면 은괴를 넘겨주겠소.”
커다란 자루에 들어있는 물건은 후추다. 포르트갈 상인들은 후추와 은괴 또는 금괴를 넘겨주고 도자기나 비단을 받는 물물 교환방식으로 거래하고 있었다.
범선 옆에서 잠시 거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슬며시 부두를 떠났다.
‘높은 곳에서 배를 살펴야 되겠어.’
범선의 내부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조심스럽게 갑판 위를 세밀하게 살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모두 검을 들거나 또는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갑판을 자세하게 살펴봐도 소총을 들고 있는 선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인범은 매우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소총을 든 선원은 하나도 보이지 않네.”
“소총요?”
소총이라는 소리에 설화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총 역시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라 매우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범선 안으로 직접 들어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혹시 무기고에 따로 비치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둘러 다시 범선 옆으로 다가가 슬며시 포르투갈 상인에게 말했다.
“배에 혹시 이렇게 생긴 물건이 있소?”
최인범은 포르투갈에서 감자나 고구마를 뭐라고 부르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서 선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포르트갈 선원은 그림을 자세하게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그림과 똑 같이 생긴 물건은 충분히 있소. 얼마나 필요하시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배에서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조리 사고 싶습니다. 먼 나라에서 가져와 특이한 작물이라고 소문을 들어 한번 화초처럼 재배해보려고 합니다.”
화초처럼 기른다는 말에 포르투갈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면 밀을 충분히 가지고 오시오. 우리도 가끔 식량이나 스프 제조용으로 사용하던 중이니 밀이나 쌀 등 식량을 주면 모조리 넘겨주겠소.”
일단 포르트갈의 상인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 천만다행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경우에도 구입할 생각이라 자신의 속심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은 것이 주요했다.
최인범은 금오여와 금육여에게 지시했다.
“빨리 밀을 충분히 가지고 오도록 해. 그리고 소주를 먹게 돼지고기와 소고기도 충분하게 가져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