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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206화 (206/519)

206화

예측했던 일이라 최인범은 속히 떠나기 위해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닙니다. 일정이 빠듯해 지금 당장 선착장으로 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면 바로 남경을 떠날 것입니다.”

전에는 행선지를 말해 주었지만 이제는 굳이 남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다. 물건을 넘겨주고 그에게 약속 어음만 받게 되면 서로의 인연이야 그것으로 모두 끝낼 생각이다.

“딸아이가 무척 섭섭해 하겠군요.”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날 수 있겠죠.”

자신이 순무사로 계속 근무한다면 도울 수도 있다. 또는 공직을 수행하기 위해 은밀한 협조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공직에서 물러났으니 단순히 거래만 하고 작별해야 한다.

신생 전당포에서 나온 최인범은 서둘러 선창장으로 와서 떠날 준비를 했다.

철갑웅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인, 어디로 가죠?”

“우리는 바로 남쪽으로 가야 하니 준비를 단단히 해.”

“넷!”

장강의 하류로 다시 내려가 운하를 이용해 항주까지 갈 예정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신생 상단의 이신생이 많은 어음을 가지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어음을 받고 밀수품이 적재된 화물선을 인계하고 나자 서둘러 화물선 10척을 이끌고 떠났다. 최종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지자 마음이 너무 급해졌다.

뱃전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남경의 선착장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영파로 가서 정보만 수집하면 조선으로 떠날 수 있겠어.’

그가 남경에서 겨우 하루만 머물고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급하게 떠났다.

남경을 떠나 장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최인범은 두려운 눈으로 자길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겨울은 지금가게 되는 남쪽에서 보내고 나중에 북쪽으로 올라 갈거니 그렇게 알아.”

그러자 제일 나이가 많은 녀석이 앞으로 나서며 당돌하게 물었다.

“주인님, 우리는 나중에 어디서 살죠?”

“지금 말해줘도 너는 잘 몰라.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글도 익히고 무술도 익히면 돼.”

“알았어요.”

많은 아이들이 같이 모여서 지내다 보니 나이가 많거나 또는 개별적인 능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두머리는 생겼다. 그리고 그런 우두머리 밑에서 명령을 복종하는 중간 정도 위치인 패거리들도 생겼다.

그래서 최인범은 소년들을 삼형제의 직속부하로 삼기는 했지만 아이들 스스로 조직을 분리하는 방법으로 나누었다.

분대장을 포함해 10명씩 나누어 5개 분대를 만들고 4개 분대와 1개 소대본부 분대로 나눈 것이다. 그렇게 조직을 짜고 아이들에게도 계급을 부여했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계급이 없었다. 그러나 중간에서 위세를 부리는 녀석은 분대장으로 이등병, 제일 우두머리 녀석은 일등병인 작대기 두 개를 주고 소대장으로 정해 주었다. 소대장으로 정해진 녀석은 무력도 남보다 뛰어나지만 머리도 아주 좋아 빠르게 글이나 조선어를 익힌 녀석이다.

소녀들도 똑 같이 조직을 만들어 두자 이후로는 소년 소녀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였다. 급식이나 또는 보급을 모두 스스로 체계적으로 해결했다.

그러자 별로 할 일이 없어진 삼형제가 슬며시 물었다.

“대인, 그렇다면 저희는 앞으로 부하들이 없나요?”

“필요할 때야 너희들이 지휘하면 되지. 저런 어린 애들을 데리고 전투할 수는 없으니 너희들이야 부하들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그럼 저희들은 뭐하고요?”

“그야 애들 무술을 가르치는 교관이야.”

몇 년은 지나야 소년들은 자라게 되고 필요한 만큼의 무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래서 철씨 삼형제는 그저 훈련 교관처럼 교육에만 전담하게 되었다.

어느새 추운 겨울이 돌아오자 대지는 점점 차갑게 변했다.

남경을 급하게 떠난 장강 하류를 지나 운하를 타고 내려와 항주를 지나 드디어 동쪽에 위치한 영파(寧波)즉 명주(明州)에 도착했다.

드디어 자신이 전부터 벼르고 오려던 목적지에 도착하자 큰일을 이루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도착했어.”

남의 나라에 와서 타의로 하기 싫은 벼슬을 하다가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만감이 교차하고 감개가 무량했다. 그저 흔하게 보던 항구에 도착하자 철갑웅은 이상해 보였는지 물었다.

“대인, 꼭 여기로 와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당연하지. 여기로 와서 꼭 해야 할 업무가 있어.”

“할일이 뭔지 저희도 알 수 있나요?”

“너희들은 말해 줘도 잘 몰라. 너희들은 애들 훈련이나 신경 쓰면 돼.”

“알겠습니다.”

철씨 삼형제는 주인인 최인범이 많은 소년소녀들을 사더니 이곳으로 오자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왜? 여기로 오신 거지?’

자신들이 판단하기에는 이곳이 특별한 어떤 의미나 또는 인근의 항주보다 좋아 보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비인 아이들을 비싸게 팔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이상하시네. 전하고 틀리게 설명도 자세하게 안 해주시고.’

전과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철갑웅은 형제들과 같이 주인인 최인범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최인범은 계속해서 말을 타고 바닷가를 이동하며 뭔가 찾고 있었다.

“이상하시네. 대인께서 뭐를 찾는 거지?”

“형님, 제가 보기에는 배를 찾는 것 같은데요.”

“그건 나도 아는데 도대체 무슨 배를 찾으려고 저렇게 바쁘게 다니시냐는 거야?”

“필요한 배를 찾나보죠.”

바닷가를 돌아보던 최인범은 매우 실망했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서양인 즉 포르투갈의 배는 만날 수 없었다. 도착과 동시에 아무리 해변을 돌아다니며 찾아도 서양 선박은 보이지 않았다.

‘썩을, 내가 크게 착각한 거야. 포르트갈 선원들이 여기로 오기는 하지만 명나라의 해금 정책 때문에 밀무역으로 교역한다는 것을 깜빡 잊었어.’

이곳에 도착하면 포르트갈 선원들의 서양 선박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그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

‘잘못하면 오래 머물게 생겼어.’

노비인 아이들만 옆에 없으며 멀리 남쪽인 광동성으로 내려가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기에는 거리도 너무 멀고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았다.

‘내가 너무 성급했어. 아이들을 너무 많이 산거야.’

대규모로 변한 일행이라 전과 달리 함부로 움직이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이동을 멈추고 여기서 임시로 터를 잡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이곳 영파(명주)는 동해안과 접하고 북쪽으로 항주만이 있는 절강성(浙江省)의 중요한 항구도시다. 육상과 해상의 요충지로 대륙을 찾아오는 해외 무역상들이 붐비는 곳이다.

전에는 회개라고도 부르고 또한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는 해민(海民)들이 집단해서 모여 사는 곳이다.

오래전 명나라는 영락제 시절에 정화 함대의 해외 원정 이후 해금정책을 실시했다.

그 때문에 살길이 어려워진 이 지역의 백성들은 멀리 다른 나라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곳 명주(영파)는 화교들의 뿌리인 고장이다.

최인범은 벼르던 영파에 도착하자 해변을 돌아보고 나서 서양 배를 찾지 못하자 제일 먼저 아이들이 장기간 지낼 집부터 마련하기로 했다.

바닷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조금 높은 언덕에 위치한 허름하지만 규모는 아주 큰 집을 빌렸다. 장기적으로 지낼 예정이지만 내년 봄에 해동되면 조선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월세로 집을 빌렸다.

“여기서 겨울을 지낸다.”

“와! 좋다.”

좁은 배에서만 지내던 아이들은 큰 집을 보자 모두들 신이 났다.

겨울철을 보낼 집이 마련되자 아이들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군사훈련을 받게 되었다. 낮에는 주로 검술, 궁술, 승마, 격투기를 배우고 저녁에는 천자문을 비롯한 훈민정음을 배웠다.

당연히 조선어도 가르치고 구령이나 명령은 조선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소녀들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소년들과 똑 같은 훈련과정이 진행되었다.

‘소소한 것들은 스스로 배워서 알게 될 거야.’

어리지만 노예로 험하게 살아서 그런지 아이들은 모든 일을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신경 쓸 일은 남아 있었다.

‘병이 제일 무서워!’

먹고 자고 입히는 문제야 돈으로 해결이 되지만 건강 문제는 그것만으로 부족해 의원을 불러와 건강 검진을 해주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고아들은 집에서 정착해 생활하자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다가 보니 그중에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하하! 호호!”

고아원이라고 명명된 집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었다.

목적지인 영파에 도착한 최인범은 계획에 약간 차질은 생겼다. 그러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마음 한 구석에는 흐뭇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파도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는 해변에 있는 영파 여각.

최인범은 오늘도 영파 여각에서 여러 명의 상인들과 마작을 두고 있었다. 마작을 두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상인들에게 슬며시 물었다.

“배를 잘 부리는 선장으로 은퇴한 노인이 근처에 있습니까?”

“그런 노인이야 여기에 많지요.”

최인범은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찾는 대상에 대해 말했다.

“조선말도 하고 또는 왜 말도 하는 사람이 필요한데요.”

“조선말도 하고 왜의 말도 하는 무역선의 선장을 하던 노인은 찾기가 조금 힘들 겁니다. 그런 사람은 이곳 보다는 주산 군도에 있는 보타도로 가야 찾기가 쉽지요.”

“그런 노인을 만나게 되면 저에게 말해 주세요.”

“알겠소.”

영파주점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최인범은 외국으로 다니며 무역했던 경험이 있는 선원이나 또는 선장을 찾았다. 그들을 찾아야 주산군도(舟山群島)로 가서 밀수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들은 너무 배타적이라 내가 혼자 가서는 접촉하기가 어려워.’

명나라는 해금정책을 쓰기 때문에 어민들이 개인적으로 일정한 규모 이상인 배를 건조하는 자체를 완전히 봉쇄했다. 그러나 일부 어민들은 몰래 숨어서 배를 건조해 밀무역을 하고 있었다.

마작을 두다가 자신에게 더 유리한 바둑을 두는 상인이나 관료들과도 친해졌다, 주로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단순히 서양 배만 수소문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사라져 버렸을지 모르는 대형선박 기술자들도 찾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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