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최인범은 이미 여자에게 암습을 당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전투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숨어서 노리는 암살범은 대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에이,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이때에 반란이 일어나려고 그래.’
속으로 투덜거리며 부하들과 같이 산길을 이용해 회안 쪽으로 향했다. 잔악한 어민 살해 현장을 떠나 회수(淮水)에 도착했다. 회수 강변을 따라 회안(淮安)으로 향하기 위해 산길을 가던 최인범 일행은 은밀해 보이는 강변에 20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자 매우 놀랐다.
‘뭐야? 저건?’
운하에서 다나는 배들과는 다른 특이한 모습의 배들이 보였다.
“왜구들이군.”
옆에 있던 철갑웅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순무사님, 노략질이 전문이라는 왜구들은 저렇게 요상하게 생겼습니까? 체구들이 너무 작아서 그런지 꼭 원숭이들 같네요.”
“네가 보기에 그렇게 보이냐?”
“그렇습니다. 어려서 아랍에서 본 원숭이와 똑 같습니다.”
자신들이 우선 덩치가 크고 왜인들이 명나라 사람들 보다 작으니 그저 소인 부족을 보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철씨 형제들은 그런 왜구를 바라보며 여전히 신기하다는 표정들이다.
“순무사님, 조그만 체구에 칼은 길고 더구나 여러 개를 차고 다니는 군요. 아까 만났던 왜구의 모습과 조금 다른 모습이군요.”
“보기에는 허접해 보여도 독종들이니 조심해야 돼.”
“그렇군요. 하긴 덩치가 적어도 독종들이면 싸움은 잘하는 경우가 있죠.”
돛이나 배의 형태 그리고 선원들의 모습을 보니 분명 체구가 작은 왜구들이다. 더욱이 놀란 것은 왜구들이 타고 온 배에는 많은 명나라 백성들이 갑판에 있었다. 그리고 강변에는 명나라 군졸들이 100명 정도가 포진해 있으며 왜인들과 뭔가 거래하고 있었다.
‘관군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밀무역을 하다니 기가 막히는군.’
급하게 이동하던 최인범은 왜선을 발견하자 말에서 내려 수풀에 숨어 지켜보았다. 보아하니 군졸들이 자국민인 명나라 백성들을 노예로 팔면서 왜구들에게서 뭔가 받는 것이 확실했다. 거래하는 품목들이 매우 궁금했다.
‘뭐지? 은괴인가?’
은은 왜에서 많이 생산되고 명나라에서 고가에 거래되니 이렇게 판단했다.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최인범의 눈은 어느새 반짝이고 있었다. 만약 많은 상자들에 은괴가 들어 있다면 저 무리를 공격해 자신이 필요한 재물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자신의 행적을 정확하게 남들이 모르니 털어서 은괴를 차지해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렇게 판단하자 최인범은 기회를 보아 털기로 결심했다.
‘좋았어. 완전히 털지.’
여러 개의 무거워 보이는 나무상자는 왜선에서 내려져 명나라 군졸들이 포진된 곳으로 옮겨졌다. 둘이서 낑낑 거리며 나르는 것으로 보아 역시 나무상자에는 무거운 은괴가 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설마 돌덩이가 들어 있지는 않겠지.’
거래되는 물건은 그 이외에도 여러 종류다. 하지만 모두 나무상자나 종이로 포장되거나 큰 자루에 들어있어 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최인범은 침착하게 숨어서 기다렸다. 서두른다고 잘되는 법은 없으니 습격하기 좋은 때를 기다렸다. 더구나 적은 부하로 습격해야 하니 특히 신중해야 한다.
‘욕심이 너무 앞서면 실패하고 여기서 오히려 당하는 수가 있어.’
매우 초조했지만 그래서 꾹 참고 기다렸다.
잠시 기회를 노리는 동안 이미 쌍방 간에 밀거래는 모두 끝났다. 서로 술잔을 들더니 뭔가 약속하기 위해서인지 서류를 주고받았다.
‘하는 짓으로 보아 한 두 번 거래한 것이 아니야.’
조직적으로 오래 밀거래를 했다고 판단되자 더욱이 털어야 된다고 다짐했다.
이윽고 왜인들은 서서히 왜선을 움직여 하류 쪽으로 떠나고 있었다. 손까지 흔드는 것으로 보아 왜인들은 거래에 매우 만족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모습을 숨어서 계속 바라보던 최인범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전투 준비!”
“넷!”
이미 떠나버린 왜선이야 추적하거나 또는 화공을 펼쳐 격침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불과 100명에 불과한 명나라 군사들은 얼마든지 부하들과 같이 격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격 준비를 하는 동안 큰 변화가 생겼다.
‘어라! 동작도 빠르게 움직이네.’
명나라 군사들은 왜선이 멀리 떠나자 인수한 화물을 말에 싣고 빠르게 이동했다.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이동하고 있는 군졸들을 조심스럽게 추적했다.
“도대체 이놈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회주 쪽으로 가는 데요.”
강변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군사들은 드디어 고개를 넘어 회수(淮水) 지류에 있는 아주 작은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병사들은 나루터에 있는 운하에서 흔히 보던 화물선에 화물을 실었다.
은괴가 무거우니 배를 이용해 회안으로 가져갈 모양 같았다. 단순하게 소탕만 목적이라면 회안으로 가서 직위를 이용해 병사를 동원해서 압수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그렇게 해봐야 개인적으로 아무런 이득도 없으니 중간에 털어버릴 요량이다.
‘등신 같은 가정제에게만 좋은 일 되게 할 것 없어.’
이런 판단하고 물건이 이동되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물건을 모두 인계하고 나자 화물선에 10명 정도 군사만 올라타고 나머지 병사들은 모두 다른 쪽으로 멀리 떠났다.
이런 모습을 숨어서 바라보던 최인범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됐어. 우리 저 배를 미행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머물면 그때 털자.”
“예? 배를 털어요?”
“배가 털려도 저 놈들은 밀무역을 해서 어디로 가서 함부로 하소연도 못해. 그러니 우리가 털어서 물건을 가져도 돼.”
“알겠습니다.”
최인범의 이런 황당한 지시로 삼형제는 너무 이상했다. 분명 명나라의 고위관리인데 왜 이러는지 약간은 이해되지 않았다.
‘약탈이나 하려면 벼슬은 왜 하시는 거야?’
이들은 아직까지 조선과 명나라 관계를 정확하게 모른다. 더구나 최인범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이야 더더구나 모르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서운 주인께서 명령을 내리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설사 털더라도 짐을 옮기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철갑웅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순무사님, 보아하니 회안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우선 짐을 운반할 말부터 더 사서 준비하고 터는 것은 어떻습니까?”
“말을 구해?”
“예, 오면서 보니 말을 많이 기르는 곳도 보이던데요.”
4명이 10명의 허접한 군사를 처치하고 터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짐이 너무 많아 운반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철갑웅이 이런 제안을 하자 최인범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알았어. 너는 우선 가서 말을 사서 돌아 와 물건은 남은 우리들이 털거니 그렇게 알아.”
“넷!”
“빨리 돌아와.”
“알겠습니다. 속히 돌아오죠.”
말을 사오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다른 호위병들이 합류라도 하면 털어 도망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래서 즉시 공격해 털어 먹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완전히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배에 탄 병사들은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자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최인범은 눈이 좋으니 멀리 떨어서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회안까지 가버리면 곤란한데.’
이대로 회안까지 이동할까 은근히 걱정했다. 그러나 서쪽으로 향하던 화물선은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은밀한 강변에 정박했다.
병사들은 모두 화물선에서 내려 한가하게 고기를 구워 먹으며 긴장을 풀었다.
주절주절.
고기를 구어서 술과 같이 먹으며 서로 뭔가 대화를 나누며 희희낙락거렸다. 아마도 무슨 좋은 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들은 바로 옆 갈대밭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대화를 들어보니 염전에서 살고 있던 여자들을 잡아서 강제로 겁탈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고 있었다.
이런 대화를 듣자 최인범은 분노했다.
‘죽일 놈들·······. 관군이라는 놈들이 자신들의 죄 없는 백성을 무참하게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여자들을 강제로 겁탈하는 것도 부족해 결국 왜놈들에게 노예로 팔아먹나니.’
국적이 어디냐를 떠나서 사람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서서히 분노가 치밀자 눈은 점점 살기가 가득해 졌다.
당초 재물의 취할 욕심 때문에 습격할 결심을 했다. 하지만 군졸들의 잔악한 행위로 보아서도 모조리 참하고 싶었다.
‘저런 놈은 재판도 필요 없어. 그냥 즉결 처분이지.’
밀 무역에 양민학살 거기에 부녀자를 겁탈한 죄가 있으니 죽어도 싼 놈들이다. 그들을 잡아서 재판을 열더라도 모두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를 지었으니 모조리 죽이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겨울이라 날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자 기다리던 최인범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제 접근을 시작해.”
“넷!”
아직 깜깜해지지는 않았지만 곧 어두워지게 생겨 서두르고 있었다. 활로 공격하려면 너무 어두우면 기습 작전을 펼치기가 어렵다. 어둠 때문에 한 놈이라도 도망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사사삭! 사사삭!
최인범은 병사들이 정박한 곳의 옆에 있는 갈대밭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군졸들과 불과 30보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다. 조심스럽게 화물선이나 또는 강변으로 올라와 고기와 술을 먹고 있는 병사들의 수를 다시 확인했다. 사공 노릇을 하는 병사를 포함해 모두 12명에 불과했다.
굳이 병사들의 수를 확인하는 이유는 혹시 전투를 벌이다가 도망치는 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인범은 병사의 수를 확인하고 작전을 지시했다.
“내가 먼저 사공 2명을 저격할 것이나 너희 둘이 정면으로 돌격해 죽여.”
“넷!”
사람의 키 높이로 울창하게 자란 갈대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최인범은 두 부하들이 돌격할 준비를 마치자 활을 슬며시 당겼다. 화물선에서 갑판에서 서성이고 있는 두 녀석을 향해 연달아 화살을 날렸다.
쉬익! 퍽!
“크악!”
쉬익! 퍽!
“컥!”
불과 50보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서 날리는 화살이다. 그러자 화물선에 타고 있던 병사 2명은 크게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