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탐욕으로 벌어진 참극>
바닷가에 위치한 염전에서 벌어진 전투는 지속됐다.
왜구들은 자신들과 상대하는 적이 불과 몇 명이 되지 않자 화살을 날리는 최인범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와! 잡아!”
“와!”
크게 소리치며 병장기를 들고 언덕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왜구들은 하나 둘 최인범이 날리는 편전에 박혀 죽어갔다. 그리고 가깝게 접근한 왜구들은 철병웅의 언월도에 베어져 죽어갔다.
“탓!”
휘익
“크악!”
창을 든 왜구들이 창을 던져보지만 모두 빗나가고 철병웅의 언월도나 화살에 죽어버렸다. 워낙 개인별로 전투력에서 차이가 나다보니 왜국들은 그저 호랑이 앞에 양과 같이 너무 허접했다.
“후퇴!”
드디어 동료들이 죽어 수에서도 딸리자 일부 왜구는 뒤로 돌아 급하게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도 삼형제의 언월도의 매서운 공격에 모조리 죽어버렸다.
사각!
“컥!”
삼형제가 매섭게 휘두르는 언월도에 왜구들의 목이 싹둑 잘라져 땅에 뒹굴었다. 붉은 피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잘라진 머리가 땅에 뒹굴었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해안은 아비규환의 모습으로 변했다. 전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치열했다, 처음에는 언월도를 다소 어설프게 다루던 삼형제는 전투가 약간 지속되자 더욱 익숙하게 다루며 휘두르는 동작이 매서워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왜구들의 목을 댕강댕강 잘라 버리는 형태로 전투는 지속되었다.
획!
“칵!”
쉭!
“크악!”
왜구는 아무런 보호 장비가 없이 벌거벗은 놈들도 많았다. 아랫도리에 하얀 천 조각만 걸친 왜구는 너무도 쉽게 삼형제가 휘두르는 언월도에 죽어버렸다.
“으아악! 아악!”
어수선하고 무질서하던 전투가 모두 끝났다. 사방에서 부상당한 왜구들의 신음소리가 요란했다.
최인범은 마을 사람 중에 혹시 ‘살아 있는 사람이 있나? 하며 소금창고로 들어가 자세하게 살폈다.
“헉! 여기도 떼로 죽어 있네.”
소금을 쌓아두던 커다란 창고 안에는 50구 정도의 썩어가는 시체들이 보였다. 밖에서는 부상당한 왜구들의 비명소리가 요란해졌다. 그러나 그런 신음소리도 얼마 지속되지 않았다.
최인범과 삼형제가 창고나 집안을 먼저 살펴 혹시 생존자가 있나 확인하는 사이에 변수가 생겨 버렸다.
왜구로 위장한 병사들을 포로로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부상당한 가짜 왜구들은 서로 죽이거나 또는 단검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 버렸다. 부상당한 왜구들이 자살을 택할지 생각하지 못하다가 모조리 죽은 후에야 최인범은 약간의 아쉬움을 토했다.
“비밀을 지키겠다고 서로 죽이다니 정말 지독한 놈들이야.”
“죄송합니다.”
“됐어, 어차피 포로로 잡아도 처치하기 곤란했는데.”
왜구들의 정체가 다소 이상해 포로로 잡아서 밝혀보려고 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확인할 필요성이 없었다. 이미 이곳에 난입해 염전의 어민들을 살해한 가짜 왜구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명나라 군사들이 왜구로 위장했어.”
“주인님, 왜구가 아니라 명나라 군사들입니까?”
“그래, 이놈들은 소금이 욕심나서 왜구로 위장하고 염전을 습격한 거야.”
“그렇군요.”
막상 왜구들과 직접 교전해 보니 분명 왜구가 아니었다. 죽어가면서 토하는 비명이나 다급할 때 토해내는 음성은 모두 명나라 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왜구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는 명나라 군대가 사용하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주변에 왜구라면 타고 오는 배가 있어야 하는데 배도 전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왜구의 난입으로 위장한 명나라 군사들의 잔악한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전투가 끝난 전장을 살피던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빨리 몸을 수색하며 화살을 모조리 회수해.”
“넷!”
다른 적들이 또 있을 수 있으니 빨리 화살을 회수해야 대적할 수 있다. 최인범이나 철씨 삼형제는 왜구들의 몸에 박힌 화살을 회수했다, 가끔은 왜구들 중에 갑옷을 입은 녀석의 품속을 뒤졌다. 은자나 또는 신분을 증명할 뭔가를 찾기 위해서다.
“에이, 다들 가난한 놈들이군.”
허접한 은자도 전혀 지니지 않은 빈털터리들이라 소득은 전혀 없었다. 다만 몇몇 놈 갑옷을 입고 죽은 자들의 품에서 신분 패는 찾았다.
“이놈은 백호소의 수장이군.”
백호소는 100명의 부하를 지휘하는 명나라 무관이다. 그러니 굳이 포로로 잡아 신분을 확인하지 않아도 이번에 난입했다는 왜구는 모두 가짜다. 그러니 근처에 주둔중인 천호소 정도 이상인 명나라 군대가 동원되어 일시에 3개 마을을 습격했을 수 있었다.
“소금을 운반이 가능한 주변 숲을 모두 살펴봐!”
“넷!”
해안가의 어촌 마을에서 내륙 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나 또는 수레가 이동 가능한 곳을 수색했다.
“여기 마차자국이 보입니다.”
부하가 흔적을 찾자 최인범은 급하게 다가가 확인했다.
“확실하게 명나라 놈들이 습격하고 왜구로 위장했어.”
흔적들은 이미 시간이 지나 흐릿하지만 자세하게 살피니 마차를 움직인 길이 분명했다. 무거운 소금을 옮긴 마차자국이 내륙 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바닷가는 흔적을 지우고 숲으로 들어가서는 미처 지우지 않아 흔적들이 사방에 남아 있었다.
‘더 이상 확인은 불필요하군.’
전투가 모두 끝난 염전인 어촌마을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가짜 왜구들의 시신도 50구나되지 어촌에서 살고 있다가 살해당한 주민들이 200명이나 넘게 모두 죽어 있으니 전장은 비릿하고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초겨울의 바닷가는 무척 차갑고 쓸쓸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시체들을 살폈다. 옹기종기 촌락을 이루는 초가들의 안으로 들어가 보고 기겁했다.
‘헉! 집에도 시체들이 널렸어.’
집집마다 한 두 구의 시체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이미 죽은 지 10여일이 지난 것이 확실했다. 악취가 진동하자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더 뒤질 것 없어. 다른 마을로 가보자.”
“넷!”
워낙 많은 시신들이라 어찌 처리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시체를 수습해 주는 것도 일단 포기하고 말에 올라 다소 멀리 떨어진 다른 마을로 갔다. 그러자 다른 어촌 마을도 집안이나 마당에는 어김없이 썩어가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이미 죽은 지 상당히 오래되어 보였다.
이런 형태로 보아 이곳에서는 명나라 군대가 적어도 1000명 이상이 일시적으로 동원되어 염전인 3개 마을을 습격했다. 그들은 어촌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많은 소금을 탈취해 간 것이 분명했다.
최인범이 멀리서 소문을 듣고 왔으니 이미 흔적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어촌사람들까지 살해하려던 가짜 왜구들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그나마 흔적도 찾기 힘들 뻔했어.”
썩어가는 시체를 방치하면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시체들을 모두 소각해야 된다. 염전을 운영하던 어민들은 모조리 죽었다. 현재로는 시체를 집안에 넣고 불을 지르는 것이 최선이다.
“시체를 집안에 넣고 불을 질러.”
“넷!”
제일 북쪽의 마을로 가서 먼저 시체들을 집안에 넣고 불을 질렀다.
화르륵! 화르륵!
불은 거세게 일어나며 거친 바닷바람을 타고 빠르게 마을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집들이 너무 좁을 공간에 모여 있다. 또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설들이 집이나 갈대들로 이어졌기 때문에 마을 전체에 불이 붙었다.
명나라나 조선 시대 널리 쓰이던 소금 생산방식은 자염(煮鹽)이다. 자염이란 대형 가마에 염도가 높은 정수된 바닷물을 넣고 끓여서 만드는 소금을 말한다. 아직은 순수한 천일염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이런 사실을 목격하고 문뜩 조선으로 돌아가면 남해안 지역에서 천일염을 생산해 볼 사업구상이 떠올랐다.
‘돌아가면 반드시 시행해 봐야 되겠어.’
새로운 사업이니 명나라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조선을 강한 나라로 만들려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신기술은 조선에 먼저 보급해야 되니 이렇게 결심했다.
북쪽부터 시체들을 집안에 넣고 불을 질러 소각하며 남쪽으로 이동해 마지막 마을까지 불을 질렀다. 일부 소금은 자루에 넣어 여유로 끌고 다니는 4필의 말 등에 올려놓았다.
“순무사님, 남아 있는 소금은 어쩌죠?”
“누군가 가져가겠지.”
“아깝네요. 비싼 값을 받는 소금인데.”
“아까워도 할 수 없어, 무거운 소금을 모두 차지하려다가는 목숨이 위험해.”
최인범의 판단에는 이미 불을 질렀으니 마을을 습격한 명나라 군사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숨어서 명나라 부대를 확인할 계획이다.
“저쪽으로 가서 숨어.”
“넷!”
일행은 약간 지대가 높은 숲속에 숨어서 기다렸다. 이윽고 기마병과 보병으로 이루어진 명나라 군사들이 바닷가로 몰려 왔다. 무려 500명 정도가 몰려와 주변을 자세하게 살폈다.
멀리서 말 탄 장수를 살펴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역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근처에 주둔 중인 천호소 수장인 정천호가 저지른 가짜 왜구 난입 사건이 확실했다.
‘근처에 주둔 중이면 평소에도 잘 알건데. 너무 잔악하고 지독한 놈들이야. 아직 어린 아이까지 모조리 죽이고.’
죽은 시체들은 어린아이나 노약자가 대부분이다. 젊은 장정들이나 부녀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예로 부리던가 아니면 팔아먹기 위해 끌고 간 것이 확실했다.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간 거지?”
많은 의문이 생겼지만 더 이상 확인은 불가능했다. 어촌 마을로 진입한 군사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으니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인면수심을 지닌 놈들이라 내가 무슨 벼슬을 하던 저놈들을 지금 만나면 우릴 죽여서 살인멸구를 시도할 것이니 우선 이 자리에서 피하는 것이 좋아.’
최인범은 이렇게 판단하고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빨리 소주로 가자.”
“넷!”
이곳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회안으로 가야 군대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정황을 다시 자세하게 살펴볼 생각이다.
‘회안이라고 안심하기도 그렇군.’
서주(徐州)의 군대도 반란을 모색하고 있는 정확이 포착된 상태다. 더구나 염전에서 과감한 군사 행동을 벌이는 것으로 보아 반란을 모의하는 무리의 규모가 상당할 수도 있었다.
지금 가려는 회안(淮安)에서도 가짜 왜구사건에 대해 발설하면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반란을 모의하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암살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