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99화 (199/519)

199화

“그대는 순무사를 왕으로 만드는 것을 어찌 생각하는가?”

“폐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인데 못할 이유가 없사옵니다. 폐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신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시면 되옵니다. 더구나 북쪽의 오랑캐에게도 왕위를 하사한 전례가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다음 조회에서는 앞장서 주장해 보시오.”

이런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환관의 우두머리인 태감이 슬며시 나서서 반대했다.

“폐하, 예부상서의 간언은 들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폐하, 순무사는 매우 조심해야 될 인물입니다.”

“뭐라? 왜 그를 조심해야 한다는 건가?”

자신의 말에 가정제가 귀를 기울이자 태감은 즉시 옆으로 다가와 가느다란 목소리로 주절 거렸다.

“이미 폐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순무사는 조선에서도 반골 기질이 농후한 사람으로 찍혀 우리 명나라로 도망쳐 왔사옵니다. 그런 사람을 중하게 여기는 것은 나중에 큰문제가 생깁니다.”

“그래? 그가 조금 건방져 보이긴 해.”

“그렇습니다. 그는 폐하에 대한 충성심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반골입니다.”

이런 태감의 말에 가정제는 그제야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들었다. 이미 왕을 시키겠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오히려 최인범이 너무 건방지고 자신에게 해를 끼칠 위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가정제는 정신적으로 이미 남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순간에 변하는 정도로 어떤 의지력이나 깊은 사고력이 없는 허울 뿐인 황제다.

그래도 오랜 통치는 했으니 습관적으로 묻고 있었다.

“그가 반골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소?”

“폐하, 그렇사옵니다. 소신이 확인한 바로는 그는 자주 주변 사람들에게 폐하를 이상하다며 혹평하고 다닌다고 하옵니다. 그러니 그런 방자한 언사를 자주하는 외국인을 중하게 쓰시면 안 되옵니다. 그는 폐하를 권좌에서 내려와야 된다고 떠들고 다닌답니다.”

“뭐라? 감히 그런 반역의 말을 주장해.”

“그렇사옵니다. 증인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폐하 앞으로 불러올 수 있사옵니다.”

증인을 불러 올 수 있다는 말에 가정제는 귀가 더욱 솔깃했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특히 남의 평가를 예민하게 생각한다. 가정제도 남들이 어찌 평하는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더구나 자신의 자리를 누가 노릴 줄 몰라 전전긍긍하는 처지다. 그러니 반역소리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귀를 기울였다.

태감은 그저 흔한 가벼운 모략으로는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드디어 극약 처방에 해당하는 반역을 모의하는 중이라고 거론했다.

“폐하, 순무사가 굳이 남경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이유도 남경을 거점으로 반역 도당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리 내려가고 있다고 하옵니다.”

“뭐라? 그건 누가 제보한 내용인가?”

“산동성의 제형안찰사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옵니다.”

제형안찰사라면 상당한 고위직이니 믿어도 될 만한 증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높은 놈들이 더 거짓을 자주 사용한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귀가 솔깃한 가정제는 점점 태감의 말에 끌려가고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폐하, 단 둘이 있을 때 흘리듯이 들어 명확한 증거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런 언사를 자주하고 반란을 일으키려는 뜻도 은근히 표했다고 하옵니다.”

태감을 일단 의심병만 들게 하고 슬며시 한발 물러나는 말을 토했다.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다 보면 언제 또 가정제가 돌변할지 모르니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미 돌아버린 머리라 아무리 고심해도 정상적인 사고력을 지닌 발상은 나오지 않게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정제는 뭐를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태감, 죽이기는 너무 아깝지 않나? 써먹다가 죽이는 것이 좋지 않아?”

“예? 써먹다 죽인다고요?”

“그래, 자네는 토사구팽이란 말을 잘 알잖아. 그러니 순무사를 개처럼 부려먹고 나중에 잡아먹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리고 그 놈의 신을 과인이 먹으면 제일 좋을 것 같고.”

이렇게 말하자 모함을 하던 태감도 기절하듯이 놀라고 말았다. 개처럼 잡아먹는다고 해서 그저 반역죄로 처형시키려나. 했더니 노골적으로 인육을 먹는 다는 말이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 그걸 잘라서 먹는다고. 이제 진짜로 돌아버렸군.’

황제가 적당히 돌면 유도할 수 있지만 완전히 돌면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은 더욱 어렵다. 언제 황제의 피에 굶주린 독수가 자신에게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모략이라 태감은 다시 모함했다.

“폐하, 그를 불러서 문초하심이 어떠한지요?”

“아니야, 그곳에 양기를 돋우려면 숫처녀와 자주 접해서 기를 모아 놓아야 돼. 그러니 아직 숫처녀인 궁녀를 남경으로 보내 주는 것이 좋아.”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사는 가정제는 이미 반역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최인범의 중심에 달린 몸을 잘라서 어찌하면 잘 먹을 까만 고심하고 있었다.

이러니 태감은 모함을 더 해보고 싶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군.’

아무튼 최인범이 가정제에 대해 속으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건 그런 의중을 표현하거나 또는 그런 행동을 해본 경우는 없었다.

태감이 판단하기에 최인범은 반드시 제거해야 될 대상이다. 자신들의 중요한 돈줄이자 황제가 필요로 하는 단약을 만들 재료를 확보하는 조직을 완전히 망가트렸다. 그냥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태감은 드디어 무시무시한 중상모략을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돌아버린 가정제다 보니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또 시도해 보자고.’

황궁에서 이런 엄청난 중상모략이 벌어지는 가운데 남쪽으로 내려가던 최인범은 새로운 사건을 접하게 됐다.

운하를 통해 남쪽으로 이동하던 최인범 일행은 드디어 서주(徐州)에 도착했다. 서주는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하남성과 접한 평야지대에 자리했다.

운하의 선착장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장거웅과 엄사봉이 급하게 다가와 보고했다.

“순무사님, 빨리 남쪽으로 이동해야 되겠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서주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입니다.”

반란의 조짐이 보인다니 최인범은 화들짝 놀랐다.

“뭐라? 화적 떼가 출몰하는 것이 아니고 반란의 조짐이 있어요?”

“순무사님, 아직은 첩보 수준의 정보만 접하게 되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곳의 도지휘첨사가 반란을 모의 산다는 제보가 여러 차례 들어왔습니다. 저희들이 직접 조사를 해보니 그런 조짐이 보였습니다. 산발되어 있던 군사들이 한곳에 집결 중이고 식량을 모으는 중 입니다.”

최인범은 이런 보고에 놀라 급하게 물었다.

“도지휘사는 그런 사실을 아는 거요?”

“아직 도지휘사는 그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사옵니다. 저희들은 도지휘사가 반란군에 동참할 수도 있어 도지휘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연락하기도 곤란해 순무사님께서 도착하길 기다렸습니다.”

“알겠소. 아직은 준비단계라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결국 반란의 조짐은 확실하게 보이지만 완전히 어떤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다. 또한 누가 반란의 가담자인지 밝히지는 못한 첩보수준이다. 그러니 두 어사는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를 지역의 고위 관료라고 해서 함부로 수집된 정보를 발설할 수는 없었다.

최인범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직접 확인할 필요성이 있어 물었다.

“그들은 어디에서 병사를 집결시키고 있소?”

“근처의 구리산이라고 합니다.”

“확실한 거요?”

“넷! 저희들이 확인한 사실입니다. 병사들이나 군량미가 구리산으로 모여들고 있사옵니다.”

도지휘참사란 각 성의 군사를 총괄하는 도지휘사 아래에 있는 정3품 무장으로 직접 병사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다. 그런 무관이 반란을 모의한다면 단순한 민중들의 봉기나 화적떼의 준동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자칫하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위험성이 높았다. 정규군인 군대가 동원된 반란의 조짐을 보인다면 그들이 제일 먼저 노리는 것은 보나마나 많은 곡물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다.

최인범은 인상을 찌푸리며 명령했다.

“두 어사는 빨리 화물선들을 남쪽으로 출발시키시오. 이제부터 나는 삼형제와 같이 육로를 통해 이동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넷!”

서로 간에 연락을 주고받은 필요성이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최인범이 직접 구리산으로 가서 정탐해서 사실을 확인하면 두 어사가 가는 남경으로 연락해 북경의 조정으로 알릴 생각이다.

직접 정탐 결과를 신속하게 연락할 필요성이 있어 장거웅에게 지시했다.

“전서구를 나에게 4마리만 넘기시오.”

“넷!”

이런 명령을 받고 나서 장거운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둘기를 잡아서 대나무로 만든 새장 속에 넣어 넘겨주었다.

“순무사님, 비둘기의 다리에 달린 작은 통에 글을 써넣고 날리기만 하시면 남경으로 가는 길목의 중간까지는 날아갈 겁니다. 그곳에 전서구를 관리하는 관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전서구로 저에게 연락하게 됩니다.”

“알겠소. 그럼 필요하면 바로 전서구로 연락하지. 최대한 빨리 이동해 남경으로 가시오.”

“넷!”

두 어사는 빠르게 화물선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좁은 수로에 불과한 운하를 통해 많은 곡물을 이동하고 있다. 그 때문에 느리기도 하고 적에게 공격이라도 당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기다.

‘잘못하면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어.’

최인범은 화물선의 사공들에게 남쪽으로 최대한 빨리 이동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자신들이 타고 육로를 통해 이동할 8필의 말을 내렸다. 신속하게 군복으로 갈아입고 무장하자 화물선 2척은 빠르게 남쪽으로 향했다.

대운하 옆에서 사라지는 화물선 2척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삼형제에게 명령했다.

“우린 즉시 구리산으로 가자.”

“넷!”

그곳으로 찾아가서 정탐한 이후에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생각이다.

서주(徐州)는 평야지대에 위치한 역사가 오래된 도시다.

주변에는 낮은 구릉이라고 볼 수 있는 구리산(九里山) 자방산(子房山) 등 구릉성 산지가 둘러싸고 있어 군사적으로나 교통의 요충지이다. 일찍이 초(楚) 나라의 항우가 군사를 일으켜 서초패왕으로 자처하며 도읍했던 곳이다.

구이산으로 이동하던 최인범은 상인들이 머무는 작은 여각으로 들어갔다.

“지배인 방 있소?”

“넷! 사냥을 하시나 보군요.”

“그렇소. 무과를 보려고 무술을 연마할 겸 구이산으로 사냥을 가려는 거요.”

“나리, 구이산으로 가서 사냥을 못합니다. 그곳은 이미 지휘사께서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산 전체를 에워싸고 사냥을 하고 있사옵니다.”

“허, 그럼 어디가 사냥터가 좋소?”

“아무래도 사냥을 하시려면 자방산으로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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