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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98화 (198/519)

198화

부대지휘관인 정천호와 같이 보급창고로 가서 그곳에 비치된 쇄자갑옷과 투박해 보이는 언월도를 인수했다. 쇄자갑옷이나 언월도는 창고에서 제일 큰 것으로 골랐다. 대신 두둑한 은자를 정천호에게 넘겨주며 당부했다.

“본관이 급해 미쳐 상부의 명령서가 없이 인수한 갑옷과 무기이니 그대는 내가 준 은자를 가지고 새로 갑옷과 무기를 구입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냥 무기를 달라고 해도 하급 지휘관인 정천호가 넘겨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굳이 하급자에게 비루하게 무기를 얻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은자를 넉넉하게 넘겨주고 자신이나 부하들이 필요한 장비나 무기를 여러 벌 인수했다.

삼형제는 모두 정식으로 군사나 군졸도 아니고 자신의 개인적인 호위병이라 이렇게 처리했다.

필요한 무기를 충분히 인수하고 나자 최인범은 부대를 떠나 운하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 화물선으로 돌아와 삼형제에게 지시했다.

“이제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쇄자갑옷을 입고 다니도록 해. 방패로 이용이 가능한 대나무 갓을 쓰고 다니고.”

“알겠습니다.”

조선은 대나무로 만든 갓이 삼각형이다. 이곳 명나라에는 평평한 형태의 갓은 마치 방패와 비슷했다. 유사시에는 갓은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 공격을 방어하는데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어차피 원거리에서 날리는 화살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다. 그 때문에 대나무 갓은 최인범이나 두 어사 그리고 그들의 수행원도 모두 지니게 되었다. 또한 여유분도 충분히 준비해 화물선에 설치한 나무로 만든 숙소의 출입문 앞에도 비치해 놓았다.

‘접근전은 부하들의 무력이면 충분하지만 원거리에서 하는 저격은 항상 조심해야 해.’

자신이 저격에 능하다보니 그런 암습이 제일 무서웠다.

전에는 갑판에 천으로 만든 천막을 치고 지냈지만 그것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추운 날씨에 눈이나 혹은 비가 오면 너무 불편하다고 판단해 나무판자로 상자형의 숙소 2개를 마련했다. 큰 개집과 같은 형태라 운하를 운행하는 사공들이 사용하는 숙소와 거의 비슷했다.

이런 준비를 하자 엄사봉은 은근히 걱정되어 물었다.

“순무사님, 운하 주변에 화적들이 자주 출몰한다니 많은 곡물을 싣고 가는 화물선들이 안전할지 잘 모르겠네요. 화적들은 곡물을 노릴 것 같은데요.”

“화물선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들이야 모두 인근의 고을에 주둔하는 군사들이 운하 주변으로 와서 항상 호위하게 되니까.”

“아하, 군대에 협조를 부탁하면 되겠군요.”

“수시로 운하 주변의 부대로 사람을 보내 협조를 받도록 해. 나는 뒤에서 운하를 따라 천천히 따라갈 것이니 둘은 화물선과 같이 서주까지 가도록 해. 이동하다가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면 운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오는 상인들을 통해 수시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정3품으로 대리사경이나 순행남경순무사라는 막강한 위치다. 얼마든지 주변에 많은 호위병을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다닐 것으로 예상해 가정제는 소요되는 경비로 고급비단 1000필을 보낸 것이다.

최인범은 그런 비단을 모두 이오명에게 넘겨줘서 일종에 투자를 했었다. 수중에 재물이 들어오면 그냥 지니고 있지 않고 항상 남에게 넘겨 투자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최인범은 항상 빈털터리 신세로 지내고 있었다.

‘돈도 절약되고 편하고 좋지.’

많은 부하를 이끌고 다니며 지나가는 고을의 수령들이나 백성들에게 위세를 떨기보다는 간편하게 다니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대비를 철저하게 하고 남쪽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떠날 준비를 모두 끝내고 나자 장사웅이 보고했다.

“대리사경님, 저희는 먼저 서주를 향해 떠나겠습니다.”

“군사들이 지켜서 안전하더라도 항상 조심하세요. 그쪽의 인심이 험악하다니 조심해야 합니다.”

“넷!”

두 어사들이 곡물이 가득 실린 화물선들과 같이 먼저 떠났다. 수많은 화물선이 길게 꼬리를 물고 떠나는 모습은 장관이다. 운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인 사공에게 큰 소리로 작별하고 있었다.

“아버지, 남경으로 가면 선물 사와요.”

“알았다. 어머니 모시고 잘 지내라.”

남경에는 진귀한 물건도 많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도 많이 이런 작별을 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문뜩 그런 작별을 보고 나중에 자신은 뭐를 사서 여자들에게 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

‘혹시 진주 목걸이가 싸면 그거나 사다 줄까?’

그러고 보니 여자들에게 선물을 사준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생각하면 여자들에게 받아만 먹는 사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남쪽으로 떠나는 부하들이나 화물선들을 배웅하고 최인범은 제령에서 하루를 더 시간을 보내며 준비했다. 전에 소모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화살도 사고 언제고 비상식량으로 사용이 가능한 육포도 충분히 준비했다.

드디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자 화물선 2척은 천천히 남쪽으로 이동했다. 조용히 떠나는 화물선이라 그런지 누구하나 배웅하는 사람도 없었다.

최인범 일행이 타고 가는 화물선은 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었다. 전에는 마구간 시설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말 10필 넣을 마구간이 나무로 칸막이를 만들어 설치되었다.

남은 공간에 건초나 콩을 적재한 상태라 사공들의 수는 모두 각각 6명씩으로 늘었다. 두 명씩 노를 저어서 3교대로 근무하게 된다.

화물선들이 남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갑판에서는 삼형제의 무술 수련이 시작됐다. 새로 사서 입은 쇄자갑옷이 몸에 익숙해 질 필요가 있다. 또한 새로 구입한 언월도를 사용하는 무술을 수련해야 한다.

“탓! 타닷!”

휘익! 휘익!

몇 번 반복해서 먼저 시범을 보이고 삼형제가 따라서 배우는 중이다. 부하들이 무술을 수련하자 최인범은 목마를 만들어 안장을 올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마상 무예를 익혔다.

휘익! 휘익!

언월도를 좌우로 휘두르며 무술을 수련했다. 때로는 일어서거나 옆으로 몸을 누이며 활을 쏘는 연습을 했다. 쉬지 않고 무예를 수련하자 사공들은 다들 놀라고 있었다.

‘대단한 분이야. 무술도 저렇게 뛰어나다니.’

본시 선비가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무예도 끝없이 반복해 수련하지 않으면 유사시 써먹을 수가 없다.

최인범이나 삼형제는 틈만 나면 무예를 지속적으로 수련했다.

지루해진 최인범은 가끔 흑혈풍과 적혈풍을 타고 운하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빠르게 내달리며 마상 무예를 수련하는 경우도 있었다.

적혈풍은 새로 애마도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말이다. 색깔이 흑갈색인 말이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비록 흑혈풍 정도로 능력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마라고 부를 정도로 우수한 암놈이다.

한편 최인범이 대운하를 통해 남쪽으로 이동하는 중. 북경의 자금성에서는 제남에서 최인범이 보낸 보고서 때문에 조정이 또 다시 들썩이고 있었다.

자금성의 건청궁에서는 가정제가 신료들을 모아놓고 국사를 논의했다.

약간 이상한 정신세계를 지닌 가정제는 아직은 가끔 직접 정사를 돌볼 정도는 됐다. 그는 최인범의 보고서에 대한 회답을 결정하기 위해 모였다.

골치 아픈 사건을 마무리를 잘 했다고 보고서가 올라오자 그제야 후궁들의 치마폭에 처박혀 있다가 건청궁으로 와서 신료들을 부른 것이다.

가정제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신료들에게 말했다.

“어떻소. 짐의 판단이 정확하지 않았소?”

“폐하, 신들이 너무 최인범 순무사의 능력에 대해 몰랐습니다. 순무사가 이렇게 쉽게 사건을 해결하다니 역시 폐하께서 잘 보시고 임명하셨사옵니다.”

“폐하의 결단에 감복할 따름이옵니다.”

북경의 조정은 점점 충신은 사라지고 간신들만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중에 제일 심한 사람은 아무래도 엄숭이라고 볼 수 있었다.

조금 권력에서 밀리나 싶지만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미녀를 황궁으로 들여보내고 다시 가정제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순무사로 떠난 최인범이 소금 5000가마 밖에 없는 제남에서 소금유용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또한 북경에서 시급하게 필요한 소금을 5000석을 보내자 가정제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최인범을 중이 쓴 자신의 행동 잘했다는 것을 증명하자 가정제는 또 기분이 우쭐해졌다. 또 다시 푼수 끼가 발동해 최인범의 승차를 거론했다.

“그대들이 해결 못한 복잡한 문제를 쉽게 잘 처리한 공로가 있는 순무사에게 뭔가 해줘야 되지 않겠소? 내 생각에는 순무사에 붙어 있는 수직을 이번 기회에 때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는데.”

가정제는 정3품인 최인범의 품계를 한 단계 더 올리자는 뜻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조정의 대신들은 기겁하며 이번에는 모두 합심해서 반대했다.

“폐하, 그건 아니 되옵니다. 그런 식으로 마구 올리다 보면 나중에는 자칫하면 왕을 만들어 주는 상황으로 처하게 되옵니다.”

“폐하! 그는 이미 높이 올려 줬으니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통촉해 주옵소서.”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하지만 가정제는 고집을 부렸다.

“최 순무사를 왕을 시키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이요. 짐처럼 혼자만 하게 되는 황제도 아니고 왕이야 나라 안에는 흔하지 않소.”

“폐하! 왕이라뇨. 그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가정제는 드디어 최인범을 왕으로 만들어 버릴 생각을 했다.

나라의 통치를 그냥 마치 장난이라도 하듯이 제 멋대로 그때그때의 변하는 기분에 따라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명나라는 이미 구제 불능의 상태로 점점 변하고 있었다.

뭐 대단한 발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굳이 필요도 없는 최인범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묘안을 짜내고 있었다.

이미 마약 성분이 든 비약을 자주 먹어 가정제는 편집증 환자와 같이 묘하게 변했다. 그래서 대신들의 주청이야 그냥 지나가는 개가 짓는 정도로 흘리고 자신의 생각만 줄 곳 고집했다.

“짐의 생각에는 순무사를 왕으로 만들려면 아무래도 먼저 황족이 되어야 하니 일단 내 수양아들을 삼는 것은 어떠시오?”

“예, 수양아들이라면 왕자로 봉한다는 겁니까?”

“그렇소. 4촌이나 6촌인 적당한 공주를 택해 내 수양딸로 삼으며 동시에 순무사와 혼인시키면 왕으로 만들어도 별로 무리가 없어 보이는데.”

가정제는 드디어 황실의 족보마저 자신의 마음대로 마구 바꿀 심산이다. 그러자 대신들은 다들 기겁해서 반대하고 있었다.

“폐하, 그건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폐하, 통촉해 주옵소서. 순무사를 왕자로 만든다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자칫 황제의 부인인 후궁들이라도 나누어 준다는 식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속이야 검게 썩어버렸더라도 그래도 명나라는 예의를 중하게 여기는 성리학으로 무장된 통치이념을 지닌 나라니 대신들은 기겁했다.

“폐하, 이런 법도는 없사옵니다.”

“무슨 소리인가? 왜 그런 전례가 없다는 건가. 조선국왕도 짐이 군왕으로 만들어 주고 있으니 이상할 하등에 이유가 없는데.”

“폐하, 그것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옵니다.”

“허! 짐이 보기에는 그게 그거 같은데.”

가정제는 딱히 최인범이 마음에 들어서 왕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며 그저 옹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쓸 대 없는 집착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대신들의 반대가 극심 하자 가정제는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신하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나서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추는 엄숭을 따로 만나 슬며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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