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문초를 시작하면서 주리를 마구 트는 것이야 기본 중에 초보적인 수준이다. 기겁한 엄사봉이 큰일이다 싶어 통사정했다.
“아이고, 대리사경님, 한 번만 봐주세요.”
“어허! 저놈의 가벼운 주둥이. 꼴도 보기 싫으니 주둥이 막고 심문해.”
엄사봉은 이제야 선착장에서 함부로 주둥이 놀린 뒤탈이 표면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문한다면서 주둥이를 막고 시작하라니 사지를 모조리 바수고 그제야 물어 본다는 뜻이 분명하다. 온전한 몸상태로 형틀에서 풀리기는 틀렸다.
늦으면 다리나 팔이 부서지는 병신이 된 후가 풀리게 되니 엄사봉은 기겁해서 실토했다.
“대리사경님, 사실 제 동료인 감찰어사가 여기로 와서 소금 재고를 뒤지려고 하면 뇌물을 쉽게 받아먹는다고 알려줘서 먼저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그게 다인가? 그거야 자네가 그저 꾸민 이야기 일 수 있지 않나. 북경까지 연락해 확인하기도 힘이 드는데. 그러니 보다 구체적이고 본관이 쉽게 확인이 가능한 진술을 하게.”
먼저 이렇게 말하고 최인범은 장거웅에게 명령했다.
“장 어사는 뇌물을 받아먹으려고 공직을 이용하려던 엄사봉을 엄하게 문초하시오.”
“예이.”
그러자 감찰어사에서 졸지에 피의자 신분으로 변한 엄사봉은 형틀에 매여 곡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아이고 나죽네.”
같은 동료인 장거웅이 문초하니 그저 가볍게 주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엄사봉은 크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명령을 내린 최인범은 계속해서 이소소에게 효녀 소소전을 구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대리사경인 최인범이 아주 열심히 사건을 재조사하며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엄사봉에 대한 문초를 끝낸 장거웅이 보고했다.
“다른 배후는 없고 처음 진술한 내용뿐입니다. 다만 노모가 너무 아파서 고려인삼을 사다 주기 위해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옵니다.”
“알았소. 그럼 그저 미수에 그친 일이니 벌금형 정도가 좋겠군. 날로 소금을 먹으려고 했으니 소금 100석을 물러내고 끝내기로 하지.”
“예이.”
최인범은 이런 판결을 내리고 나서 제형안찰사에게 서류를 넘겨 서명을 받았다. 미수에 그친 내용이니 사건이 벌어진 제남에서 처리하고 끝낸다는 뜻이다.
이런 판결을 내리고 이번에는 풀려난 엄사봉에게 지시했다.
“너를 문초하며 너무 가볍게 심문한 장거웅도 본관이 보기에는 같이 나누어 먹으려는 죄가 있어 보이니 엄 어사가 문초 해.”
“예?”
이런 황당한 심문 방식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장거웅은 어찌해서 이런 방식으로 심문하는지 눈치를 챘다.
첫 번째는 감히 상관인 최인범을 감시하며 전서구를 이용해 위로 보고한 강상의 죄를 범했다고 슬며시 벌을 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금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걸리는 사람은 모두 소금을 토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래도 본가가 여유로운 부자다 보니 장거웅은 재빨리 거짓으로 자복했다.
“제가 소금을 같이 나누어 먹을 욕심에 그리했으니 벌금을 내겠사옵니다.”
“알았어. 그렇다면 자네도 소금 100가마를 벌금으로 내고 여기서 조용히 끝내도록 하지.”
두 어사를 이렇게 먼저 심문해서 소금 200가마를 채우고 나자 최인범은 즉시 지시했다.
“너무 어지러우니 종이를 가져와 바를 정(正)자로 따로 기록해. 작대기 하나에 소금 50가마로 계산해서.”
“예이.”
참으로 황당한 재판이고 재조사의 심문 방식이다. 하지만 일단 소환되어 구석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오금이 저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보기에 별로 죄가 될 일도 아니다. 그런 감찰어사들이 소금을 100가마씩 벌금으로 물어내게 되자 모두들 사색으로 변했다.
‘우린 이제 다 죽었군. 벌금을 안내면 죽게 생겼어.’
보아하니 무조건 불려온 사람은 최소한 소금 50가마는 내야 혐의에서 풀리게 생겼다. 그래서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자 하나 같이 그만한 소금은 쉽게 내 놓을 정도의 재산을 지닌 사람들만 먼저 소환했다.
다음에 호출되는 사람들은 엄 어사와 장 어사가 담당했다.
사실 먼저 소환된 사람들이야 모두 피라미에 지나지 않는 하급 군관이나 또는 허접한 상인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오명의 장부에 기록된 수량과 그들이 내놓아야할 수량을 다르게 전에 진술했으니 감찰어사를 속인 죄가 있었다.
채권자인 이오명이 감옥에 들어가고 나서 채무상황을 엄사봉이 확인했다. 그러자 자신들이 관아의 소금 창고에서 빌린 소금의 양보다 적게 진술해서 창고에서 반출된 소금의 양보다 적었다.
“전과 진술이 틀리지 않나?”
“죽을죄를 졌습니다.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
“아무리 봐줘도 벌금형은 면하기 어렵군.”
수량을 정확하게 진술한 사람도 그 동안 이자를 내지 않은 것도 죄가 된다. 그들도 벌금으로 소금 50가마를 물어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최인범 옆에 있는 큰 종이에 써지는 바를 정(正)자의 수는 점차 늘어났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최인범은 즉시 벌금형에 처한 죄수들에 대한 처리를 명령했다.
“모두 가벼운 벌금형이지만 일단 죄인의 신분으로 확정됐으니 감옥에 가두시오. 그리고 벌금이 모두 납부되면 풀어 주도록 하고.”
“에이.”
“저들은 국가 재산으로 며칠이라도 먹여 살릴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오늘부터 굶기도록 하고.”
“그렇다면 사식을 넣어 주는 것은 어떠한지요?”
“그건 안 되지. 그러다 누가 독약이라도 넣어서 죽어 버리면 형옥을 관리하는 형리가 곤란해 지지 않나? 일단 내 허락이 없으면 사식이나 면회는 일체금하도록 해.”
최인범은 이쯤 처리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이소소에게 지시했다.
“자네는 아비를 모시고 집에 돌아가게. 여전히 횡령 혐의는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니 명심해. 자네를 봐서 내가 나서기는 하지만 죄 값은 받아야 하니 집에서 기다려. 우선 문초를 받으면서 다친 상처를 치료도 하고.”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비단 1000필의 증서를 넘겨주며 뭔가 따로 지시를 내렸다. 처음에는 놀라던 이소소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이 되자 최인범은 이소소가 적어 놓은 ‘효녀 소소전’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문초는 두 어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다시 확인하는 것이니 소금을 얼마나 빌리고 갚지 않은 수량을 정확하게 말하시오.”
“저는 200가마 빌려 100가마 갚고 이자를 포함해 120가마가 남았습니다.”
“그럼 처음 진술과 다르니 150가마를 내놓으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아무튼 크게 봐주는 것이니 앞으로 이런 실수는 다시하지 말도록 하시오.”
“예이.”
중간 정도 되는 관리나 중급 군관 그리고 중간 정도 규모인 상인들만 들추고 보니 벌써 소금이 8000가마로 늘어났다. 1만석이 있어야 할 창고에서 8할이 채워진 것이다.
그제야 최인범은 1천석을 내놓겠다고 주장하는 산동성의 행정 분야 지방장관인 포정사를 따로 만나 물밑 협상에 들어갔다.
최인범은 부드럽게 포정사에게 권했다.
“포정사께서도 이제 소금을 내놓으셔야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창고에서 포정사께서 빌려간 소금은 모두 1500석이던데 그게 틀립니까?”
감찰을 받는 가운데에도 포정사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져간 소금의 양을 속였던 것이다. 이미 사건의 전말을 잘 아는 이오명이 풀린 상태니 이제는 오리발을 내밀 수 없게 되었다.
“좋습니다. 그럼 1500석을 내어 놓지요.”
“포정사께서는 숫자도 잘 기억을 못하시고 계산에 조금 어두운 모양입니다. 그동안 이자도 있고 억울한 사람에게 덤터기를 쉬우려는 사실도 있으니 다른 사람과 형평을 고려해 2천석을 내놓아야 되죠. 제가 보기에는 그래야 정상적인 계산입니다.”
속이야 너무 쓰렸지만 포정사는 소금 2천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구두로 내놓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니 결국 그는 그동안 오래 포정사를 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착복해 모아둔 전(田)을 모두 기어 내놓아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소금 창고에는 최고의 품질은 아니지만 정량인 1만석의 소금이 채워지게 되었다. 결국 재조사를 시작한지 10일이 자나서 이룬 결과다.
그러나 소금만 다시 채웠다고 끝날 수는 없었다.
최인범은 집으로 돌아가 치료하던 이오명을 다시 소환해 결말을 내고 있었다.
“관리 책임자로 공금을 유용한 죄를 인정하나?”
“예, 어떤 처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소금창고 관리책임자로 공금을 마음대로 유용한 이오명에게 벌금으로 2천석의 소금이 부과되었다. 그 역시 그만한 재물인 전(田)을 내어 놓고 일단 공금 횡령죄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별도로 공금을 유용한 죄가 적용되어 관직에서는 면직되었다. 또한 죄가 가볍지 않다고 판결해서 곤장 50대를 처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사형 선고를 받았던 그로써는 실로 너무도 가벼운 처벌이다.
“철갑웅, 네 형제들이 교대로 쳐.”
“에이.”
곤장이 무려 50대라 함부로 치다가는 병신이 되거나 죽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삼형제에게 명령해서 소리는 요란하지만 큰 타격이 없는 방식으로 볼기를 치도록 조치했다.
죽을 사람을 힘들게 살려놓고 다시 때려죽이는 사태가 벌어질까 은근히 걱정했다. 그래서 삼형제에게 단단히 주지시키고 있었다.
“곤장을 잘 쳐라!”
“넷! 염려 마세요.”
삼형제는 힘도 좋지만 그만큼 무술실력도 높아 충분히 위장할 수 있었다. 매를 치는 것도 다 요령이 있고 상당한 기술을 요한다.
‘준비는 시켰지만 한 대만 잘못 맞으면 즉사하는 수도 있어.’
그래서 최인범은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볼기를 홀라당 까지도 않고 옷을 입혀 엉덩이에 두툼한 쇠가죽으로 방어하게 배려해 주었다. 몇 번 치면 물고기 부레에 넣은 돼지 피가 터지도록 조치도 해두었다.
드디어 덩치 큰 삼형제의 곤장치기가 시작되고 그들의 외침은 한 대만 맞으면 죽을 듯이 요란했다.
“이얏!”
퍽!
“으윽!”
아프다고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연기하려니 그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안되겠다 싶은 이오명은 별수 없이 몇 대 맞고 완전히 기절해 버리는 방식으로 두 눈을 꼭 감고 누어서 매를 맞았다. 그러자 이런 모습을 보던 다른 죄수들은 덜덜 떨고 있었다.
‘저런 덩치가 힘차게 때리면 몇 대만 맞으면 죽을 거야.’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태형의 집행이 모두 끝나자 최인범은 크게 외쳤다.
“기절했으니 우마차에 싣고 나가!”
“넷!”
횡령사건의 주범인 이오명만 곤장 형을 받은 것은 아니다. 창고를 책임지던 창고장이나 보초를 서던 하급 군관들도 곤장을 20대 정도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