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순행대리사경의 임무>
심복으로 변한 장거웅은 황제의 조치가 너무 좋아서 크고 낭랑한 목소리로 교지를 읽었다.
가정제는 사직을 신청한 최인범에게 새로운 벼슬이 내려졌다.
정3품인 순행부도어사(巡行部都御史), 겸 순행도지휘첨사(巡行都指揮僉事), 겸 순행대리사경(巡行大理寺卿), 겸 수 순행남경위무사(守 巡行南京慰務事)로 임명한 것이다.
교지 내용을 들으며 최인범은 심경이 매우 복잡해졌다.
‘이런 제기랄, 혹을 때려다가 또 하나 큰 것이 더 붙어 버렸어.’
붙어 버린 혹이란 제일 마지막이 듣게 된 순행남경위무사라는 직책이다.
이 직책도 가정제가 일시적으로 만든 벼슬이다. 기근이 너무 심한 남경을 중심으로 한 남쪽 지역을 순행하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위무해야 하는 직책이다.
소요 경비는 고급비단 1000필로 정해져 이미 북경에서 운하를 통해 운반해 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교지 내용을 듣거나 구두로 설명을 들은 최인범은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 자식 진짜로 정신병자인가 너무 이상하네. 자신이 만백성의 우두머리라면 직접 나설 일이지 왜 벼슬하기 싫다고 사직서를 낸 나에게 이런 어려운 업무를 또 떠넘기는 거야. 백성들이 수없이 죽어가는 마당에 겨우 비단 1000필을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라고.’
다행이 추가로 이어지는 장거웅의 말에 조금 인상이 펴졌다.
“순무사님, 비단 1천필은 순무사님 개인 경비로 쓰시고 이곳에 있는 소금 1만석으로 위무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요? 알았소.”
물론 소금 1만석이야 그저 장부상 수량에 불과하고 남은 수량은 5천석이다. 앞으로 소금횡령사건을 잘 처리해 최대한 회수해서 위무 비용으로 쓰라는 것이다.
‘아무튼 요상한 놈들이야. 이미 소금이 모조리 사라진 것을 잘 알면서도 1만석을 고집하다니.’
최인범은 이제 이곳 산동성에서 임시지만 최고 권력자가 되어 버렸다. 일반 행정을 제외하고는 사법, 군권, 재판, 재정까지 총괄하게 되었다.
안한다고 또 주장해 봐야 멍청한 놈의 더러운 성질만 건드리게 생겨 임무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어 이제 깨어나 너무 황공해 납작 엎드려 있는 이소소에게 물었다.
“소소야. 너 글을 아냐?”
“예, 압니다.”
“그럼 됐어. 너는 오늘부터 임시로 내 여비서로 일해라.”
“여비서요?”
여비서라는 직책을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없으니 혹시 잠자리에서 벌거벗고 시중을 드는 직책인가 해서 얼굴이 어느새 붉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최인범은 아차 싶어서 다시 말했다.
“내 옆에서 개인 참모로 문서를 작성하고 관인을 보관하며 내게 올라오는 서류를 검토하는 서기를 말하는 거다.”
“아, 잘 알겠습니다.”
이어서 관아에서 고급관원이 입는 관복도 보내와 최인범은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에이, 옷이 작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최인범은 우선 약속은 약속이라 이소소를 별도로 화물선의 천막 안으로 불러 조용히 물었다.
“너 왜 갑자기 자살은 했냐?”
“대리사경으로 임명 됐다는 말에 저는 아버님의 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이 내려 온 것으로 알고.”
“대리사가 무슨 직책인지 모르냐? 판결난 사건을 재조사하는 기관인데 왜 죽어.”
이렇게 묻자 이소소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말했다.
본시 판결난 사건을 재조사한다는 대리사다. 하지만 실제 기능에서는 최종적으로 그저 서류만 보고 사형을 확정하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했다. 그러니 대리사 소리를 듣는 순간 오늘이나 내일이면 아버님의 목이 잘리게 되고 자신은 노비가 되게 생겨 자살을 택했다고 답했다.
결국 대리사는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자는 상급 재심사 기관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형을 확정해 버리는 저승사자 역할을 그동안에 해온 것이다.
“그렇군.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이 썩으면 그렇게 될 수 있어.”
이소소의 자살미수 사건은 이것으로 완전히 종결됐다. 이런 사건을 계기로 최인범은 번뜩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돈 벌이 좀 해봐야지.’
뭐 특별한 구상은 아니다. 자신은 이미 소설가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니 강물에 뛰어든 이소소의 행위를 보고 조선에서 유명한 소설인 ‘효녀 심청전’을 차용해 ‘효녀 소소전’을 집필해 비싼 값에 팔아먹기로 결심했다.
‘막강한 힘을 가지 내가 쓴 소설이라면 싫어도 살 것이고. 또 역전 뒤집기로 소소 아비가 풀려나면 인기가 더욱 좋을 거야.’
이렇게 판단하고 나서 이제 관아로 가서 사건을 정확하게 처리할 생각이다. 그러나 관아로 가서 기존의 수사 방법으로 재조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소소의 사정을 들어 보면 쉽게 풀릴 수도 있어.’
이미 여자의 몸이란 것이 증명되고 약속도 했다. 그러니 소소에게 그간에 있었던 소금 횡령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듣게 되었다.
“소소야 처음부터 자세하게 설명해봐.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예, 대리사경님.”
이소소는 전에는 두서없이 설명했지만 이제는 차분하게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소소의 아비는 비록 공금을 임의대로 이용을 했지만 나름 그래도 많은 소금을 채워놓은 관료라고 느끼게 되었다.
“소소야, 이비가 풀려나면 소금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정확하게 무슨 뜻이냐?”
“그것은 아버님이 그동안 관아의 재물을 빌려준 사람들의 명단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함부로 그것을 어사님께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은 그 안에는 뇌물도 같이 기재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같이 기재되어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고 또한 그 장부 때문에 더욱 큰 화를 당할지 몰라서 아버님이 풀려나면 소금을 채울 수 있다고 했사옵니다.”
소소의 말뜻은 채무서류나 뇌물 명단이 같이 혼재된 비자금 장부를 가지고 있으나 암호처럼 써놓아 그것을 온전하게 풀 방법도 없고 아버님이 감옥에서 풀려 나와야 쉽게 푼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로 가져와. 내가 보고 나서 결정하지.”
“감사합니다.”
희망이 사라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가 다시 살아나 희망이 생긴 이소소는 신이 나서 급하게 화물선을 떠나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사라지자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너희들 앞으로 소소에게 아까 내가 입으로 바람을 넣고 앞가슴을 손으로 누른 사실을 절대로 발설하지 마.”
“알겠습니다.”
“주둥이 또 함부로 놀리면 그날로 목을 잘라 버릴 것이니까.”
“넷!”
이렇게 엄하게 지시하는 이유는 명나라도 절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있기 때문이다.
살리기 위해서 벌어진 일이더라도 남녀유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빙자로 이소소가 자기에게 진드기처럼 달라붙을까 염려해 사전에 입을 단단히 봉한 것이다.
‘명나라 여자들도 진드기 짓은 지독하다고.’
효녀로 마음씨야 쓸 만하지만 인물은 별로다. 또한 새로 다른 여자를 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사전에 그런 귀찮은 일을 봉쇄해 버렸다.
잠시 뒤에 이소소가 비자금 장부를 가져와 살펴보던 최인범은 빙그레 웃었다.
‘오홋! 이거야 원 이건 애들도 풀 수가 있는 쉬운 장부네.’
대단한 암호로 사용해 써진 비자금 장부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비자금 장부는 최인범은 알아보기 아주 쉬운 아라비아 숫자로 쓰고 장부에 기록된 이름은 모두 영어인 알파벳으로 적혀 있었다.
‘흠! 일찍 영어를 배워서 그것을 암호처럼 이용했어.’
현대와 표기법이 달라 완전한 해독이야 조금 어렵다. 하지만 그럭저럭 알아 볼 수 있다. 뇌물 수탁자 이름이나 또는 채권 금액이나 이자율 등은 대충 알아 볼 수 있었다.
이름 뒤에 써진 L 자나 LS는 분명 로비 자금을 직접 줬거나 또는 어떤 대리인에게 얼마의 자금을 전달했다는 것을 뜻했다.
중요한 사건 해결의 열쇄를 손에 쥔 최인범은 해결에 나섰다. 두 어사와 임시 여비서인 이소소 그리고 꽁지가 완전히 말린 삼형제나 다른 부하들과 같이 관아로 가게 되었다.
소금 횡령사건의 조사나 재판은 이미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주모자인 이오명은 사형으로 확정되었다. 그의 가족들이나 식솔은 모두 노비로 판결이 났다.
그러나 최인범이 순행대리사경으로 임명되어 관아로 들어왔다. 그러자 그런 판결은 졸지에 모조리 휴지가 되어 버렸다.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재조사하니 그리 아시오.”
“그렇다면 감옥에 있는 사람은?”
“모든 혐의자는 무죄 원칙에 의해 이미 형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재수사하니 모두 일단 죄인이 아닌 것으로 보고 시작하게 될 거요. 물론 이미 조사한 기간이나 서류가 있으니 빠르게 재조사를 끝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안찰사가 동의하면 바로 형도 집행합니다.”
“알겠습니다.”
심문하기 위한 형틀이 여러 개 준비되었다.
또한 최종적으로 형이 확정되면 바로 이 자리에서 처벌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곤장 형틀이 준비되거나 또는 참형을 처하기 위한 망나니도 대기했다. 사지를 6개로 잘라서 처벌하는 능지처사를 위한 형틀이나 소도 준비되었다.
물에 삶아 죽이는 팽자 형을 위해 장작과 가마솥도 비치되었다. 각종 형틀이 바로 옆에 설치된 상태에서 최인범은 의자에 앉아 옆에 있는 이소소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오랜 옛날에 효심이 지극한 소소라는 여자가 있었다.”
“예? 소소요?”
“그래, 너는 그냥 받아 적기만 해.”
최인범은 사실 이미 사건의 내막을 다 알고 있으니 재수사 보다는 개인적인 돈벌이가 더욱 급했다. 또한 모자라는 소금을 어떻게 하면 빨리 채워놓아야 한다.
자신의 추가된 임무인 순행남경위무사 업무를 수행한다고 여길 빨리 떠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형틀들만 요란하게 마련해 놓고 아무도 심문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너무 답답한 엄사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사사경님, 누굴 먼저 불러야 하죠?”
“아, 그렇지 재조사를 시작해야 하니 사건은 아주 처음부터 시작해야 돼.”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장거웅 어사에게 명령했다.
“장 어사가 엄 어사를 문초하게.”
“예, 엄 어사를 문초하라는 뜻은?”
“왜 하고 많은 산동성의 관아 업무 중에서 그리고 또 감찰할 업무가 다른 고을에도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제남에 도착하자마자 소금 창고를 뒤지고 있었나?”
“그건 제 업무라 그렇죠.”
“허어! 무슨 소리인가? 다른 관료들은 그냥 넘어가던 무거운 소금가마를 인건비를 들여 모조리 꺼내서 재고를 확인한 속뜻을 밝히려는 거요. 소금가마를 뒤지라고 한 배후가 있는지 어떤 개인적인 사심이 개입된 것인지 나는 그것부터 알아야 되겠소.”
결국 이런 이유로 엄사봉도 문초를 해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혀 생각지 않은 명령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듣고 보니 딴은 이치에 다는 지시다.
최인범이야 고문을 안 하지만 어디 다른 사람이 같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목적이 따로 있으니 약간은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