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관청의 재물인 소금을 고리대금업의 자금으로 사용하다 보니 문제점이 많았다. 여러 고위관료가 그런 자금을 빌려 쓰거나 또는 약점이 있다고 판단해 때어 먹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최인범은 대충 이런 정도의 설명을 듣고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나설 수 없는 사건이야.”
“어사님, 제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으시면 제 아버님이 왜 억울한지 잘 아실 겁니다. 그러니 끝까지 들어주셔야 하옵니다.”
“어허, 나는 이미 관직을 사퇴했다니까 그러네. 당초 나와 약조하기는 그대가 여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나?”
“어사님. 제발 한 번 만 부탁합니다.”
진드기처럼 옆에서 달라붙어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최인범에게 사건에 대해 설명해 죽게 생긴 아비의 목숨을 구하려는 이소소다.
‘효자는 효자군.’
물론 엄청난 공금을 횡령했으니 딸인 그녀는 물론 가족들이나 식솔들이 모두 노비로 판결을 받게 생겼다. 그러니 더욱 다급한 입장이었다.
이소소는 속으로 여러 가지 각오를 놓고 고심했다.
‘어차피 노비로 판결나면 내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니야. 차라리 잘 생긴 최 어사님에게 숫처녀를 줘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도 때가 있는 법인데 그만 적당한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벗고 덤빌 기회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전에는 혼자서 여각 방에서 자더니 지금은 달라졌다.
처음에 5일간 기녀들과 어울려 관광 안내를 받기로 했었다.
그러나 삼형제의 튼실한 물건과 지칠 줄 모르는 힘에 반한 기녀들이다.
무료봉사로 관광 안내를 해준다고 해서 10일로 늘여 같이 여행했다. 그리고 주변의 명승지를 다 돌아보자 최인범 일행은 기녀들과의 긴 여행을 끝냈다.
명승지 관광을 끝내고 나자 최인범은 화물선으로 가서 부하들과 같이 지내고 있었다. 당연히 이소소의 역할도 끝났지만 달리 이비를 구명의 길이 없다고 판단하고 계속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고위 관료가 작은 천막에서 부하들과 같이 잠자며 지내니 참으로 이해할 수없는 행동이다.
‘조선국이 예절이 바르고 야만인들이 사는 나라는 아니라던데. 왜 저렇게 험하게 부하들과 같이 지내지?’
더구나 순하게 보이지만 가끔 매섭게 자기를 노려보며 경계하는 백두도 항상 옆에서 자니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겁이 나서 벗고 덤빌 수는 없었다.
이소소는 별수 없이 옆에서 지내며 매일 같이 반찬을 만들어 주며 지냈다. 음식 만드는 솜씨가 별로라 그것도 별로 효과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먹성들은 좋아 잘 먹었다. 주로 닭을 삶거나 복아 주었다.
최인범은 삼형제와 같이 지내며 긴긴 밤에는 계속해서 각종 특공작전에 필요한 무술이나 그리고 군사적인 지식을 전수했다. 호위무사로 써먹기도 하지만 필요한 경우 많은 부하들을 이끌 장수감으로 키우는 중이다.
‘전장에서 내가 항상 부하들을 이끌 필요는 없어.’
이제는 가을이라 밤도 길고 날씨는 전에 비해 추워졌다.
제남은 가을이 되자 점점 풍요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식품들도 많아지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농산물이 모여들었다. 황하를 통해 발해 만에서 생산된 해산물도 들어오자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아비를 만나고 돌아온 이소소가 뱃전을 부여잡고 오열을 토했다.
“흐으윽! 아버님! 이제 우리는 어찌 하라고.”
그러자 관심을 두지 않던 최인범이 슬며시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냐?”
“오늘 제형안찰사께서 아버님에게 사형을 선고하셨어요. 그리고 착복한 소금을 물어내야 한다며 저희가족들과 식솔 모두를 노비로 판다고 하네요.”
“그럼, 전에 50명의 목숨이 달렸다는 이야기가 그 뜻이냐?”
“예, 어사님, 제발 아버님을 살려 주세요. 아버님만 감옥에서 풀리면 모자란 소금은 금방 채워진다니까요.”
최인범은 이런 이소소의 하소연이 여전히 이상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왜 채울 수 있는 소금을 채우지 못하고 자신에게 매달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소소에게 슬며시 물었다.
“소금은 어떻게 채울 수 있다는 거야? 이야기를 해 봐.”
“어사님, 제가 방법은 잘 알지만 반드시 아버님이 있어야 가능해요.”
“뭐라?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만 하는구나.”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 한 번도 찾아와 어떤 보고나 소식을 전하지 않던 엄사봉이 말을 타고 급하게 달려왔다. 그는 도착과 동시 말에서 뛰어내려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크게 외쳤다.
“순행대리사경님, 소인 승차를 감축 드리옵니다.”
이런 소리를 옆에서 듣던 이소소는 참담한 표정을 보이더니 돌연 누런 물이 흐르는 황하로 폴짝 뛰어들어 버렸다.
풍덩!
갑자기 옆에서 듣고 있던 이소소가 강물로 뛰어들었다.
최인범은 순간 ‘이상하네? 왜 자살하지?’ 하는 생각을 떠올리는 동시에 우선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급해 강물로 뛰어들었다.
꼬로록! 꼬로록!
강물에 뛰어들어 흙탕물이 입으로 들어오자 이소소는 이내 정신을 잃어 버렸다. 최인범은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는 이소소의 긴 머리채를 잡아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잠시 정신이 없던 삼형제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두 사람을 갑판 위로 끌어 올렸다. 최인범은 그저 옷만 버렸지만 물을 먹은 이소소는 입술이 파래지고 정신을 잃은 상태로 점점 사지가 굳어갔다.
삼형제는 옆에서 지켜보며 입맛을 당기며 말했다.
“쩝! 너무 빨리 죽었군.”
“에이, 아깝네, 죽어버렸으니 아무 쓸모가 없어.”
이소소는 물속에 빠져 버리자 풍덩한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가 완전히 드러났다.
비록 풍만한 몸매는 아니지만 가슴도 도톰하고 평소에 문사 건으로 가렸던 긴 흑발도 치렁치렁 늘어졌다. 아랫도리인 사타구니도 민민해 굳이 벌거벗겨 보지 않아도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인범은 소소가 진짜 여자라는 사실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몰라서라기보다 어찌 되었건 소소가 여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했으니 토하는 말이다.
“소소가 여자는 여자네.”
최인범의 이런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철을웅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어사님, 소소가 여자란 것을 이제야 처음 알았어요? 소인은 딱 처음 봤을 때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뭐?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그야 소소라는 이름도 그렇고 앉아서 오줌을 싸니 그렇죠. 우리야 서서 싸지만 소소는 항상 숲으로 들어가 용변을 보는 것처럼 앉아서 싸니 여자라고 안 거죠.”
최인범은 여전히 숨을 쉬지 않는 이소소를 구하기 위해 급하게 앞가슴을 두 손으로 압박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깨어나지 않자 서둘러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흡! 푸우!”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으며 코에 귀들 대고 있었다. 숨이 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자 속을 전혀 모르는 부하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어사님은 이미 죽어버린 시신을 가지고 지금 뭐하시는지 모르겠어.”
“그러네. 살아 있을 때 진즉에 가슴도 만져 주시고 그러실 일이지. 이제 죽어 버리자 저러시네. 참으로 이상하고 독특한 취미야.”
부하들이 이런 요상한 말을 토하든 말든 최인범은 급하게 구강대구강인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후! 후!”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이미 말려들어가는 혀를 손가락으로 잡아 빼고 나서 자신의 혀로 감으며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그런 요상한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엄사봉은 더욱 황당한 소리를 토했다.
“허어! 어사님이 정말 독특한 성적인 취미를 가지셨어. 백주 대낮에 그것도 만무 중에 죽은 여자를 시간(屍姦)하려고 하다니.”
세상사란 모르면 가만히 입을 다물면 중간은 간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고 졸지에 직속상관인 부도어사에게 시간을 운운하니 그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정7급과 정3급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은 계급에서 큰 차이가 난다. 조선식으로 따져도 당상관과 참하관의 차이니 엄사봉은 진짜로 최인범에게 찍혀 버렸다.
“후! 후!”
“쿨럭! 쿨럭!”
드디어 강하게 바람을 집어넣고 가슴을 여러 차례 누르자 기절해 있던 이소소가 누런 똥물 같은 황톳물을 토해내고 나서 길게 숨을 토했다.
“흠! 이제야 살아났군.”
이렇게 되자 헛소리를 씨부렁거리던 삼형제의 얼굴이 누런 똥색으로 변했다.
죽었던 여자가 다시 살아나자 놀라 갑자기 항문이 꽉 막혔다. 놀라 변이 항문을 비집고 나오려다가 멈추며 안에서 방출되려던 가스가 위로 치밀었기 때문이다.
덜덜덜.
부하들의 옆에 서있던 엄사봉은 그와는 다르게 반응했다.
진한 푸른색이 얼굴에 나타나며 두 다리를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처럼 마구 떨었다. 유교국가인 명나라도 조선 정도로 강상의 법도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제 나는 죽었어.’
감히 직속상관을 시간(屍姦)이나 하는 천하의 불한당으로 매도해 버렸으니 여기서 당장 목을 자른다고 해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었다.
명나라는 직속상관을 고발하는 경우 강상의 법도를 어기는 행위라고 해서 위법 처리한다.
허울 좋은 이런 유교적인 통치이념 때문에 이번 대형 소금 횡령사건도 오래 비밀이 유지되어 왔고 문제가 더욱 커진 것이다.
부하들의 가벼운 주둥이가 신경이 쓰인 최인범은 아주 싸늘한 경고를 토했다.
“내가 너희들의 말을 신중하게 검토해서 두고 보지.”
“대리사경님, 그게 아니오라.”
“주둥이 닥쳐!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려!”
삼형제는 물론 엄사봉은 찍소리 못하고 입을 꽉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주둥이 달렸다고 어디서 함부로 말하고·····.”
최인범의 성품을 어느 정도 파악한 철씨 삼형제는 이제 정말 큰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은 자신에게 이런 정도로 노여워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보복하는 성품이다.
‘뒤끝이 많은 분인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걱정이야.’
좋은 시절은 이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끝났다는 느낌이 들어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화물선 위에서 이소소가 자살미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관아에 있다가 황제의 교지를 정식으로 받은 장거웅이 부하들과 같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는 선착장에 도착하자 크게 외쳤다.
“어명이요!”
누군가는 교지를 읽어 최인범에게 어명을 전달해야 하니 하급자라도 장거웅이 교지를 서서 읽고 최인범은 땅에 엎드려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