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저도 잘 압니다. 염려 마세요. 그보다 영파는 뭐로 가실 거죠?”
“운하를 통해 배로 가야지. 아무튼 화물선 두 척은 있어야 되니 돈부터 모아야 된다.”
“돈을 뭐로 벌어요?”
사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만 했지 벌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공직에서 완전히 사퇴가 되면 바둑이라도 둬서 크게 한탕을 해보련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가정제가 바둑을 좋아한다니 그놈과 둬서 한탕 해먹으면 적당한데.’
다른 놈들 보다 기왕이면 약간 돌아버린 정신을 가진 가정제라 잘만 요리하면 큰 재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마음이 수시로 바뀌는 녀석이니 함부로 접근해 도박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인물이다.
‘주제에 아내들도 마구 죽이는 놈이니 함부로 옆에 있다가는 다칠 위험이 너무 많아.’
아무튼 황제도 그렇지만 환관들도 무시 못 할 무력이나 권력을 지닌 놈들이 황궁에는 너무 많았다. 최인범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미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짧은 인연이라 그저 이름은 알 필요가 없고 그저 직업을 물어보았다.
“뭐하며 먹고살아?”
“여각에서 일합니다. 이번에 관아에서 많은 재물을 준다고 해서 오게 됐어요.”
“얼마나 받고.”
“대인 그건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아무튼 생각하시는 것 보다 우리는 비싼 몸이랍니다.”
기녀들 사이에는 어떤 규칙이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 가치를 두고 서로 간에 위계질서가 있었다. 나이나 뭐는 다 필요 없고 화대를 얼마나 많이 받느냐가 그들의 서열이었다.
이소소는 처음에는 자신의 말에 흥미를 보이던 최인범이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산에 오른 이후로 여자들에게 관심을 두고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자 고민이다.
‘어쩌지. 내가 여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내 이야기를 들어 준다고 하더니 정말 증명해야 하나?’
막상 증명을 생각해 보니 난감했다. 벌거벗어 보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앞가슴을 보이기도 그랬다. 그러니 아래를 벗어 보인다는 것은 더욱 곤란한 문제다.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분명 여자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여자라는 증명 방법에 대해 한 참 고민하던 이소소는 드디어 혼자서는 결정하기 어려워 다소 뒤에서 산을 내려가는 여자를 잡고 물었다.
“여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려면 어떤 방법이 제일 좋소?”
“어머, 총각도 여자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그거야 아주 간단하지. 그냥 밤에 침실로 들어가서 홀라당 벗고 한바탕 하면 확실하게 증명되는 거지.”
사람이란 본시 아는 데로 말하고 생각하는 법이다. 기녀로 사는 여자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답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튼 틀린 말을 아니지만 여염집 여자로 그 방법은 차마 하기가 어려운 증명방법이다.
산에서 내려와 일행은 다른 명승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고민하던 이소소는 뒤에서 가고 있는 최인범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인, 전임 포정사가 현재 무엇을 하시는지 혹시 아세요?”
“아니? 나는 그런 조정의 인물들에 대해 몰라.”
“그렇군요. 전임 포정사인 서만평은 지금 도찰원의 수장인 도어사로 있사옵니다.”
“뭐요?”
도어사는 정2품 관리로 장관급에 해당된다.
감찰기관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니 매우 놀라고 말았다. 아무튼 이소소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복잡해지고 있었다.
감찰기관의 수장인 도어사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관련자는 너무 고위직들이다.
“그래서 도어사의 명령으로 아버님이 감옥에 들어 간 거요?”
“아닙니다. 감옥으로 들어간 일이야 엄 어사님이 직무감찰을 하시며 소금 재고량이 부족하자 조사한다고 일단 가둔 것이죠.”
“그럼 왜 도어사는 들먹이는 거요. 내가 보기에는 거론해 봐도 별로 도움이 될 사안이 아닌데.”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무슨 짓이고 벌이게 생긴 상황에 도어사를 거론하자 약간 호기심이 생겼다. 주저하고 있지만 분명 무슨 또 다른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최인범이 자신의 말에 호기심을 보이자 이소소는 다시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사실 도어사 자제분과 저는 정혼한 사이입니다.”
“뭐요? 그렇다면 도어사를 찾아가 사정하면 해결될 수도 있지 않겠소?”
“그거야 예전의 일이죠. 사실 한달 전에 도어사께서는 파혼하자는 서찰을 보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듣자 최인범은 사건이 처음 어떻게 시작된 지 알 수 있었다.
수해로 소금이 사라지자 두 관료가 공모를 해서 일단 황제의 문책을 모면했다. 그리고 서로 배신하지 않는 다는 뜻으로 자식들을 정혼자로 만들었다.
이렇게 판단한 최인범은 그저 흘리듯이 평했다.
“내가 보기에 도어사께서 소금이 부족한 것이 드러나 문제가 생기자 정혼자가 변심한 것 같소.”
최인범의 말에 이소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그저 침묵했다. 이런 이소소의 표정에 최인범은 다소 이상했다.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게 아니라 이상했다.
‘이건 또 무슨 사연이 또 있나 보군.’
최인범은 들으면 더 복잡해지자 이후로 이소소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기녀들과 대화를 나누며 명승지를 돌아다녔다. 황제로부터 교지가 내려와야 다른 고장으로 갈 수 있어 기다리는 것을 겸해 주변의 명승지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황궁에서는 최인범이 보낸 장계이자 사직서를 놓고 격렬하게 논의가 있었다. 도찰 어사인 서만평은 사직서를 낸 최인범의 요구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폐하, 사직을 받아들여 그를 해임해야 하옵니다.”
이런 요구에 황제는 묵묵히 침묵했다. 그러자 엄숭이 나서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폐하, 이제야 임지에 도착한 최 어사가 사직한다고 하는 데에는 그곳에 너무 큰 사건이 터지자 손을 때려고 하는 것이니 사직서는 반려해야 다탕하옵니다.”
양쪽에서 전혀 다른 의견들을 주청하고 있지만 황제는 나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큰마음으로 고위직으로 임명해 내려 보냈는데 중간에 관둔다고 하자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괘씸한 놈이야. 짐의 호의를 이렇게 거절하다니.’
그래도 많은 미녀를 자신의 품속에 안겨준 인물이라 좋게 대하려고 했더니 그것을 모르고 사직서를 내자 열불이 났다. 그래서 황제는 순순히 사직서를 받아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변덕이 아주 심하고 요상한 성품인 가정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명을 내렸다. 양쪽 모두 새로 내려진 어명에 다들 기절하듯이 놀라고 말았다.
변방의 작은 국가인 조선에서 온 젊은 놈이 겁도 없이 천하의 주인인 황제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후궁 한 명을 자신에게 받치고 더 높은 벼슬을 받은 놈들도 너무 많았다.
‘흠! 그 놈이 아무래 그게 불만이 있었던 거야.’
지금까지 조금씩 올려 주던 방식으로 벼슬을 올려 줘서는 전혀 감사할 줄을 모르게 생겼다.
가정제는 덩치가 너무 커서 자신을 은근히 주눅 들게 하는 최인범에게 과감하게 벼슬을 높여 주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놈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꺾어 볼 요량이다.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은 가정제는 교지를 내렸다.
가정제는 정3품인 순행부도어사(巡行部都御史)라는 감찰 업무를 하는 직책과 함께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순행도지휘첨사(巡行都指揮僉事), 거기에 더해 판결난 사건을 재조사하는 대리사(大理寺)의 수장에 해당하는 순행대리사경(巡行大理寺卿)으로 임명해 버렸다.
이런 교지를 내리자 도어사인 서만평이나 예부상서인 엄숭이 모두 기겁해서 반대했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조선 출신에게 그런 높은 벼슬은 가당치 않사옵니다.”
“뭐요. 내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거요?”
“폐하, 이런 파격적인 인사는 전례가 없었사옵니다. 더구나 그는 이제 약관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인데요.”
“그대는 무슨 소리를 하나? 그는 임시로 벼슬하는 것인데. 내가 임시직도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하는 처지라는 건가?”
사실 최인범에게 주는 벼슬은 정식이 아니다.
순행이란 글이 붙어서 한시적인 벼슬이다. 가정제가 순행이란 벼슬을 생각한 것은 황제의 명으로 지방의 업무를 감시 통제하다가 이제는 정식 벼슬로 변한 순무 직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기어이 하는 고집불통인 가정제는 극구 반대하는 두 대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약간 광기를 보이는 눈매를 접하자 두 대신은 이내 목을 바싹 움츠리고 말았다.
‘헉! 드디어 꼭지가 돌았어.’
‘이런 때는 암말 안하는 것이 최선이야. 자칫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광기를 보이는 눈매가 나타날 경우 더 이상 반대하다가는 자신들의 목이 순간에 달아나는 수가 있었다.
‘지금은 몸조심할 때야.’
더구나 엄숭의 경우 지금 황제의 눈 밖에 난 상황이다. 그가 눈 밖에 나게 된 이유는 자신이 고심해서 바친 후궁인 엄 귀비가 황제의 요구에 반항하자 덤으로 점점 신임을 잃었다.
가정제가 엄 귀비에게 몸에 좋은 단약을 줬지만 그것을 거절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인육과 수은을 넣어서 만든 단약을 먹으라고 주자 내용물이 뭔지 잘 아는 엄 귀비는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이다. 인육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수은 중독에 걸리면 어떤지 아니 죽기가 싫으니 거절했다.
두 대신들이 처음에 반대한 것에 비해 그나마 정신이 어느 정도 정상인 다른 대신들은 파격적인 인사를 대부분 환영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 못할 복잡한 소금 횡령 사건을 외국인이 나서서 대신 처리해 주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다치지 않고 해결되니 최선의 방법이야.’
최인범이 차도살인의 계책을 써서 유민실종 사건을 해결하던 것과 똑 같이 사건이 묘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노회한 명나라 대신들도 그를 이용할 요량이다.
“폐하, 아주 잘 판단하신 임명이옵니다. 소금횡령 사건은 너무 복잡한 이해가 조정의 대신들과 얽혀 있으니 외국인인 최인범 어사가 조사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제일 순조롭고 정확하게 처리될 겁니다.”
“폐하, 그렇사옵니다. 영명하신 판단이옵니다.”
결국 이런 식의 자신들만을 위한 결정으로 가정제가 내린 파격적인 인사는 조정에서 통과되었다. 황제의 교지는 파발을 이용해 빠르게 제남으로 보내졌다.
가정제는 정식벼슬과 다른 특별 보직이라는 이유로 정2품 관직에 해당되는 수직(守職)인 수 순행남경위무사(守 巡行南京慰務事)도 추가해 그에 소요되는 경비를 내려 보냈다.
“비단 1000필을 보내도록 하라.”
황제는 과한 재물을 보냄으로 최인범에게 자신의 막강한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이런 조치에 찬성하던 노회한 대신들도 너무 기가 막혀 다들 후회했다.
“이런 우리가 큰 실수를 했어.”
“폐하의 풍성거리는 성품을 깜빡 한 거야.”
푼수 끼가 다분한 가정제는 황실의 재물을 함부로 후궁들에게 과하게 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사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공연히 단체로 찬성해서 황제의 경제개념이 없는 푼수 끼를 도발시키게 되었다.
특히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호부상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어떻게 그 많은 비단을 매워야 하지?’
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황제 밑에서 호부상서를 하려니 죽을 맛이다. 별 수 없이 기근으로 너무 어려워서 세금을 면제해 주던 남쪽의 관리들에게 명령해 재물을 북경으로 올려 보내라고 압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짜서 나오지 않으면 벼슬을 팔아서라도 매우는 수밖에 없어.’
한편 제남에서 황제의 교지가 내려오길 기다리며 주변의 명승지를 돌아보는 최인범은 이소소에게서 가끔 설명을 듣는 바람에 많은 사실을 알았다.
‘내가 예상한 그대로 사건은 상당히 복잡해.’
모자란 소금을 채우기 위해 이오명은 나름 묘안이라고 판단해 소금을 가지고 고리대금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본시 모자라는 소금 5000석을 일부나마 채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