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하지만 엄사봉은 그저 출세할 기회가 생겨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런 엄사봉을 보며 최인범은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분명 여름날에 똥개를 마구 두드려서 때려잡듯이 도적놈들의 끄나풀을 잡아들여 소금을 채워 큰 공을 세우려고 할 것이야. 그러다 어느 놈의 암습에 당할 지도 모르지.’
내 나라도 아닌 곳에서 위험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돈 벌이도 되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아무튼 엄사봉은 신이날 수밖에 없었다.
‘됐어. 나도 승차할 기회가 생겼어.’
감찰어사와 순행첨도어사 대행은 그 위상이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엄사봉은 전에는 함부로 부르지 못하던 고위관리들도 소환해 조사를 벌일 수 있었다.
공직에서 사퇴한다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황제가 그것을 승인해야 자유의 몸이 되니 황제의 교지가 내려올 때까지 제남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순행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이 움직일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최인범으로 또 다시 두 어사에게 당부했다.
“나는 지역이나 천천히 순행하면서 교지를 기다릴 것이니 두 어사들께서 소금 횡령사건을 잘 처리하시오.”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두 어사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제남의 명승지나 관광하려고 관아에서 조용히 떠났다. 온전한 자유의 몸은 아니지만 이제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자 그나마 답답하던 마음이 편해졌다.
화물선이 정박한 선착장으로 와서 관복을 벗고 상인차림인 평상복을 입고 나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근처를 구경이나 하지.”
“넷!”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제남의 성내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제남은 벽돌로 쌓은 높은 성곽이 아주 잘 축도된 도시로 상업이 무척 발달되어 있었다.
매우 번화한 거리를 보며 최인범은 감탄했다.
“여기는 장사하기에 좋은 곳이군.”
“그러네요. 주인님, 번화한 곳이지만 거리에서 떠도는 유민들도 많고 거지들도 너무 많습니다.”
발에 걸리는 것이 거지라고 할 정도로 도시에는 거지들이 너무 많았다. 4개의 문에서 군졸들이 통제한다고 해도 남쪽 기근으로 제남은 유민이나 거지들 때문에 혼잡한 모습이다.
“여기가 이럴 정도면 더 아래로 내려가면 거지들만 보이겠군.”
“그렇겠네요.”
이제 가을이 되어 수확 시기라 기근은 전보다는 덜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남부지역은 가뭄으로 흉년이라니 앞으로 유민들은 더 많이 발생할 것 같았다.
최인범은 도심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크고 화려한 여각으로 들어갔다. 홍차를 시켜 놓고 천천히 마시며 젊은 청년인 점원에게 물었다.
“여기 명승지를 관광하기 위해 안내자가 필요한데 구할 수 있나?”
“있습니다. 안내원으로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습니다.”
“여자가 관광 안내를 해?”
“지금 다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여자들도 돈을 받고 관광 안내를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젊음 점원은 묘한 웃음을 배시시 흘렸다. 보아하니 관광 안내를 해주면서 필요하면 몸도 파는 여자를 소개해 준다는 뜻 같았다.
자신이야 생간만 가끔 먹으면 여자 생각이 사라지니 상관없다. 하지만 여자 구경을 못한 삼형제가 강하게 호기심을 표하자 두 눈 질끈 감고 점원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여자 관광 안내원으로 3명을 데리고 와. 기왕이면 인물이 고와야 좋고.”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구해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점원은 신이 나서 급하게 밖으로 튀어 나갔다. 최인범은 홍차를 천천히 마시며 점원이 여자들을 데리고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여각을 나간 점원은 의외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여자를 낳고 키워서 돌아오나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최인범이 여각에서 홍차를 세 번이나 주문해 마시도록 젊은 점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배인에게 묻자 그는 점원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장담했다.
“아직도 안 오는데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닌가요?”
“글쎄요. 저도 너무 늦으니 조금 이상합니다. 그 녀석의 가족들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 관광 안내를 전문으로 합니다. 친척들도 많아 안내원을 쉽게 데리고 올 수 있는데 안 오네요.”
최인범이 여각에서 마냥 기다리는 동안 밖으로 나간 젊은 점원에게 사실은 일이 생겼다.
신이 나서 여각을 떠나 급하게 친척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향하던 그에게 인상이 험악하게 생긴 관원이 나타났다. 그는 젊은 점원을 붙잡고 매섭게 노려보면서 물었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나?”
“손님이 여자 관광 안내원을 구해 달라고 해서요.”
“여자 관광 안내원? 저쪽의 탁자에 앉아 있는 젊은 분이 그렇게 주문하더냐?”
“예. 3명을 구해 달랍니다.”
“알았어!”
그런 말을 토하고 나자 젊은 점원은 졸지에 관원에게 끌려갔다. 무작정 관청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 안내에 필요한 여자는 관원이 주선해 준다고 했으니 마냥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관청 옆 벽에 기대어 잠들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제야 미모가 뛰어난 여자들 3명이 가마를 타고와 관청 앞에서 내려 점원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릴 그 손님에게 데리고 가. 우리가 관광 안내원을 할 것이니까.”
젊은 점원은 관광 안내원을 한다고 나서는 여자들의 미모가 너무 돋보이자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보기에 너무 미인들이라 젊은 점원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들이 관광 안내를 해요?”
“그래, 그러니 빨리 데리고 가면 돼.”
젊은 점원은 다소 이상해 보였지만 3명의 미녀들을 데리고 여각으로 돌아갔다.
최인범은 젊은 미녀들과 같이 돌아온 점원을 보자 즉시 누군가 기회에 못된 수작을 부린다고 판단했다.
“관아에 다녀왔냐?”
“예, 관아에서 저 여자들을 안내원으로 쓰라고 해서.”
“알았어.”
“며칠 같이 다녀야 하는데 가능하냐?”
“당연하죠. 여자들이 관광 안내를 하는 경우는 보통 그것이 기본입니다.”
어차피 부하들의 객고를 기회에 풀어줄 심산이라 최인범은 순순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누가 여자들을 보냈는지는 알아야 해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들 여자들과 오늘부터 같이 다니며 누가 보낸 것인지 알아내. 대충하는 거짓이 아니고 진짜 누가 보냈는지 정확하게 알아내야 해.”
“알겠습니다.”
아주 저렴하다고 생각되는 은자를 넘겨주고 5일 간 관광 안내를 해주는 것으로 약속했다. 그래서 최인범은 그나마 남아 있던 은자를 모두 털어서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미 해가 떨어지기 직전인 석양이 지고 있다.
먼 곳으로 가기는 곤란해 가까운 천불산으로 가게 되었다. 도착하니 이미 해가 떨어져 산을 오를 수는 없어 여각에서 묵게 되었다.
자연히 삼형제는 각자 미녀를 끼고 방으로 들어가고 최인범은 혼자서 여각에 있는 마작 판으로 끼어들었다. 그러자 그런 최인범을 미행하던 젊은 청년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인, 저를 좀 따로 만나지요.”
“신분도 잘 모르는 댁을 왜 내가 따라가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여기서 말해 보시오.”
“대인, 소금 때문에 생목숨 50명이 죽게 생겼으니 한 번만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소금 때문에 50명이 죽는다니 옆방에서 이야기를 해보시오.”
생긴 것이 조금 평범해 보이니 자그마한 체구에 다소 곱상하게 생긴 청년이다. 그러나 눈빛은 매우 초롱초롱해서 재기는 있어 보였다.
옆방으로 가서도 입을 열지 않던 청년은 최인범이 결국 자신을 따라서 여각을 나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대인, 저는 이곳 승선포정사사에서 참의로 있는 이씨 성을 가진 분의 아들입니다.”
참의라면 승선포정사사에서 상당히 고위직인 종 4품을 지내는 관리다. 그런 사람의 아들이 일부러 찾아와 심각하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최인범은 호기심을 표했다.
“혹시 이번에 드러난 소금을 횡령한 사건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대인, 저희 가족을 살려 주세요.”
무작정 살려달라니 뭐라 답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이미 관직에서 물러난다고 사직서를 쓴 상황이라 설사 돕고 싶어도 돕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최인범은 자신이 이미 공직을 사퇴했다고 말하고 부드럽게 충고했다.
“어떻게 된 사실인지는 모르나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지금 관아에 있는 장거웅 어사를 만나 보시오. 그러면 이야기를 듣고 참작해 줄 겁니다.”
“대인께서 직접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주시면 안 됩니까?”
“안됩니다. 이미 사퇴한 사람이 나설 수는 없지요.”
이미 그 사건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단오하게 거절하는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마작 판으로 가서 다시 판에 끼어 마작을 두었다.
청년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옆에 앉아서 계속 기다렸다. 눈빛은 초롱초롱하지만 때로는 강해 보이면서도 매우 여린 기운이 느껴졌다.
최인범은 가끔 청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눈빛으로 보아 분명 너무 억울한 사정이 있어 보이는데. 어디 한 번 들어나 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미 사퇴한 처지로 다시 개입하고 싶지 않아 계속해서 모른 척 마작만 두었다. 밤이 늦었으니 돌라갈 만도 한데 청년은 계속 옆에서 기다렸다.
너무 절실한 표정을 보이자 최인범은 흘리듯이 물었다.
“혹시 관광 안내를 해줄 젊은 여자가 집안에 있어요? 내가 제남에서 명승지를 관광하고 싶은데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니 있으면 한 명을 보내주시오. 그럼 어떤 사정이 있는지 그 여자를 통해 들어나 보죠.”
이런 제안을 듣던 청년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젊은 여자요?”
“그렇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젊은 여자가 안내해 주면 좋죠.”
이런 요구에 청년은 당황하면서 동시에 매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모두 죽는 길 밖에 없다는 정도로 매우 낙담한 표정이다.
그런 청년을 바라보며 최인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허, 성품이 너무 여리며 고지식해 보이는군. 누구나 아예 관아에서 창기를 주선해 뇌물 짓을 하는데 관광 안내를 해달라고 집안의 여자를 보내 달라니 저런 낙담하고 황당한 표정을 짓다니 어지간한 성품이군.’
옆에서 기다리던 청년은 결국 최인범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실망해서 여각을 떠났다. 최인범은 밤이 늦도록 마작을 두며 놀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