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여기서 말하는 큰 소금장수란 제남에 있는 포정사를 칭하는 음어다.
포정사란 한 성을 통괄하는 위치로 조선으로 따지면 관찰사에 해당되는 종2품 벼슬아치다. 그러나 조선과 달리 사법이나 군사에 관한 권한이 없는 행정 관료다.
그런대 포정사가 관리책임이 있는 소금의 재고량이 실제 조사를 해보니 턱없이 부족한 것이 밝혀졌다. 그러니 포정사는 정7품 하급관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보를 듣자 최인범은 산동성의 포정사는 참으로 한심한 인물로 판단되었다.
‘황제나 중앙조정 신료가 모조리 썩으니 지방 정부도 모조리 구린 냄새가 진동하는군.’
먼저 산동성으로 이동해 잠잠하던 엄사봉 감찰어사가 이제야 자신의 책무인 감찰업무를 조금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배를 갈아탄 것도 같았다. 그게 아니면 동료인 장거웅의 승차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이유도 아니면 또 다른 꼬리 자리기 일환으로 일을 벌일 수도 있었다.
엄사봉에게 포정사가 쩔쩔 맨다니 큰 건을 잡은 것은 확실했다.
황하 남쪽의 감찰업무는 엄연히 최인범이 지휘해야 하는 위치라 조용히 지시했다.
“대인, 제남에 돈 벌이가 그렇게 좋다니 우리도 빨리 그리 사서 한탕 크게 벌어봅시다.”
“그러죠.”
제남으로 가려면 황하를 타고 하류로 내려가야 한다. 그 때문에 술이야 배에서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으니 배로 돌아갈 생각이다.
배에 사공도 있고 부하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최인범은 여각에서 파는 닭 요리도 잔뜩 사고 술도 사서 화물선으로 오게 되었다. 돈 잘 버는 상인을 꼬여 돈을 벌 생각이던 여자들은 사라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침을 뱉었다. 큰돈을 벌었으면 펑펑 쓸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등신같이 보였다.
‘퇴! 처먹을 것도 없는 것들이 허세만 너무 심해.’
두 사람이 같은 화물선을 타고 나자 드디어 화물선은 황하를 운항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술판이 벌어졌다.
“장 어사, 이번 사건은 아주 잘 마무리 했소.”
“어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대로 밝힐 생각만 했지 이런 편법으로 해결할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습니다. 방법이야 약간 다르지만 아무튼 죽여야 할 놈들은 다 죽이게 됐지요.”
무리하게 자신이 모두 해결하려고 했으면 자신이 먼저 죽을 수도 있는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발을 빼 그들이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했던 것이 주요했다.
최인범은 제남으로 가서 다시 만날 엄사봉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은 본시 엄숭의 끄나풀이 아니요?”
“아, 어사님은 엄사봉을 그렇게 보셨군요. 물론 엄숭의 비호를 받아 벼슬길에 나서기는 했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렇게 밀착된 사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하급관리인 그 사람이 고위관리인 포정사를 그런 정도로 몰아세워도 되나요?”
“아, 그건 폐하께서 소금에 절인 인육이 나왔다는 사건이 터지자 지방의 관아에 보관된 소금 재고량을 모두 철저하게 파악하라는 엄명에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중앙 정부에서 심하게 서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제의 측근인 엄숭과 동창까지 심하게 마찰이 일어나는 중이다. 중앙 정부의 보편적인 정치적인 세력 판도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는 최인범은 장거웅에게서 많은 정보를 듣게 되었다.
아무튼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고 간신이 있어야 충신이 나타나는 법이다. 북경의 조정은 난신과 충신 사이에 격렬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원 역사대로면 결국 황제가 엄숭 편을 드는데·····. 이제 세상이 너무 빠르게 달리 변하고 있으니 어찌 될지 감을 잡기 힘들군.’
여기에서 최인범이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원 역사에는 유만의 의원이 전염병 치료를 위해 힘을 쓰게 된다. 그 바람에 황하 이북에서는 전염병이 널리 퍼지기 않았다. 그러나 최인범이 우연한 기회에 인육거래사건을 표면으로 완전히 들추었다.
유만의는 명나라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고 멀리 북쪽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 때문에 황하 이북까지 전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그런 전염병이 퍼진다는 소문이 멀리 알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최인범의 행보 때문에 나비 효과처럼 명나라는 원 역사와 많이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술을 마시고 뱃전에 누워 흐리던 날씨가 맑아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심한 갈등이 생겼다.
‘내가 지금 남의 나라에서 뭔 짓을 하는 거야? 전에는 마적을 털어 재물이라도 많이 벌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고 너무 한심하군.’
벼슬자리야 아무리 높아져도 조선으로 돌아가서 오히려 불편할 것 같으니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시기하는 무리가 생겨 골치가 아픈데 명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돌아가면 그것이 더욱 심해진다고 판단했다.
전에 비해 고생은 몇 배를 더하고 수중에 들어오는 재물이라고는 허접한 은자에 불과했다. 이제 수중에 지니고 있는 은자가 거의 사라지고 없다가 보니 문뜩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뜩 재물을 하나도 모으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다 태려 치우고 조선으로 돌아갈까? 그것도 아니면 훌쩍 먼 나라로 떠나버려?”
이런 말을 토하자 옆에서 앉아 있던 장거웅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어사님, 조선으로 꼭 돌아가셔야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관직생활도 비교적 순탄하게 하시는 중이니 그냥 명나라에서 사는 것도 좋아 보이는데요.”
최인범은 장거웅의 말에 이내 답해 주었다.
“아닙니다. 나는 이번에 영파만 다녀오면 반드시 조선으로 돌아 가야합니다.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여자들이나 식솔들도 많이 있어서.”
“그렇군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최인범은 취기로 이내 잠이 들었다.
그가 잠들자 장거웅은 자신의 배로 돌아가 배 안에 있던 전서구인 비둘기를 북쪽으로 날렸다. 자신이나 최인범의 근황에 대한 소식을 북경으로 알리고 있었다.
도찰원에서는 최인범이 초원에서 마적을 소탕하는 등의 우수한 전투력을 보이자 그를 주목했다. 또한 여러 가지 재주가 많다는 것을 알자 알게 모르게 감시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최인범은 조선에서 유학을 오게 된 외국인이다. 나중에 그가 명나라에 어떤 이득을 줄지 해를 끼칠지 모르기 때문에 감시하고 있었다.
장거웅이 전서구를 날리지만 최인범은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남으로 가면 첨도어사를 사퇴해 버려야 되겠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돈벌이가 안 되는 첨도어사는 실속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더구나 행동도 자유롭지 않다보니 공직을 더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최인범 일행은 화물선으로 이틀을 이동해 드디어 산동성(山東省)의 성도인 제남(濟南)에 도착했다. 제남에 도착한 최인범은 조정에서 받은 관복으로 갈아입고 우선 포정사를 만나 인사했다.
수인사를 끝내고 나서 이곳에서 직무감찰을 하는 엄사봉 감찰어사를 만났다.
“엄 어사, 여기에 보관되어 있어야 되는 소금이 많이 모자란다고요?”
“그렇습니다. 모두 5000석이나 모자랍니다.”
말이 5000석이지 실로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소금이 양산되는 해안가는 모르지만 내륙으로 가져가면 미곡을 10배로 바꿀 수 있으니 엄청난 재물이다.
너무 큰 재물이 중간에 사라졌다니 급하게 물었다.
“뭐요? 그렇다면 창고의 총재고량의 반이나 되는 수량이지 않소? 그렇게 많은 양이 모자라도 아직까지 포정사가 전혀 몰랐다는 건가요?”
“어사님, 그동안 재고량을 조사할 때는 위에는 정상적으로 소금가마를 쌓고 아래에는 모래를 담은 가마니로 채워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은 흔히 미곡 창고에서도 벌어지는 수법이다. 물론 미곡의 경우 가마니 안에 모래를 넣어 무게를 채워 놓기도 한다.
“그래서 포정사는 뭐라고 합니까?”
“이건 자신이 포정사로 근무하면서 벌어진 일도 있겠지만 전임자 때부터 벌어진 일이라 모두 자신이 책임지기는 곤란하다고 하옵니다.”
“뭐요? 포정사는 임무를 부여 받으면 재고 조사를 안했답니까?”
“소금가마가 너무 무거워 그냥 가마니 수만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런 대답에 최인범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들 떨어진 포정사의 답변이지만 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건이다.
하긴 큰 재물이 보관되어 있으니 창고와 관련된 이놈 저놈이 다투듯이 오래 빼먹다 보니 벌어진 대형 공금횡령 사건이다. 횡령한 규모가 너무 크자 쉽게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포정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1000석은 자신의 임기 중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판단해 그것만 토해 놓겠다고 합니다.”
“창고관리를 책임진 놈들은 어떻게 나오고요?”
“그야 죽여도 내놓을 재물이 없다고 주장하며 빼돌린 재물의 출처에 대해 모두들 함봉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소금재고량 부족 사건은 남이 이미 손을 댄 밥그릇이라고 판단했다.
최인범은 자신이 덕주에서부터 추적해 조사했던 소금을 나르던 도적놈들의 제남조직과 연결 고리에 대해 슬며시 알려 주었다.
“엄 어사, 여기 자료에 나온 놈들을 족치면 조금은 모자란 소금을 매워질 거니 그렇게 아세요.”
“알겠습니다. 우선 그 놈들부터 잡아 들여서 소금을 되찾아 보겠습니다.”
감찰업무가 무조건 지방정부의 비리만 캐서 목을 자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때로는 지방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감찰어사가 직접 해결해 주는 경우가 있었다.
드디어 자신이 순행첨도어사로 업무를 시작할 곳에 황하 남부지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공직을 그만둘 결심을 했으니 북경으로 장계를 올리게 되었다.
장계에는 대규모로 소금을 빼돌린 공금 횡령사건의 관련자가 고위층이며 광범위하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수행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이참에 공직에서 사퇴한다고 사직서를 북경으로 보냈다.
‘황제나 조정의 관료들이 모두 바보가 아니라면 진짜로 능력 있는 고위층을 보내서 해결하겠지.’
이렇게 판단하고 일단 공직에서 사퇴하다고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기왕에 이번 사건을 조사 중이던 엄사봉에게 전권을 일임해 버렸다.
사퇴서를 제출한 최인범은 한가하게 제남의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두 어사를 만나 조용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나는 이미 첨도어사 직을 사퇴한 입장이니 그대들이 모두 알아서 처리하시오.”
엄사봉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저희들에게 전권을 위임하신다고요?”
“그렇소. 그러니 두 분이 앞으로 이번 사건을 알아서 처리하면 돼요. 특히 엄 어사는 처음 비리를 발견했으니 전권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엄사봉은 졸지에 막강한 첨도어사의 권한을 위임 받게 되자 신이 났다. 그에게는 이번 사건을 잘 처리하면 출세할 좋은 기회를 만났다.
‘골치 아픈 사건인데 엄사봉은 멋도 모르고 신이 났어.’
이번 사건 역시 깊이 파고들면 분명 동창 조직과 연결되어 벌어진 공금 횡령사건이다. 그러니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래서 최인범은 속편하게 살고 싶어 미련 없이 공직을 사퇴해 버렸다.
‘어지간하면 대충 마무리 하겠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큰 금액이야.’
염전은 누군가 복마전이라고 했다, 많은 이득금이 걸려 있는 염전이라 제일 비리가 많은 사업이고 환관들의 큰 돈줄이다. 그러니 함부로 뒤적거릴 사건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