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수많은 인육거래 조직원들이 관아로 끌려오게 되자 그들 중에는 자연히 배신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아직은 인육에 대해 거론을 하지 않지만 사람이란 모르니 동창에서 움직였다.
‘빨리 사건을 처리해야 인육거래를 숨길 수 있어.’
그저 사기도박 사건이나 단순한 실종사건을 수사한다고 판단한 동창의 지부장으로 덕주에 와있던 관리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장거웅은 감찰어사지 형옥을 담당하는 위치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의자에 대해 심문할 수 있어도 고문을 가하거나 어떤 형벌을 가할 수는 없었다.
장거웅이 정상적인 관료라 그런 것이다. 평소 다른 감찰어사는 월권해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되었건 장거웅은 자신이 잡아 들여 죄가 없어 보이는 사람은 부드럽게 심문하고 나서 풀어 주었다. 하지만 인육만두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관아로 찾아온 동창의 관리에게 슬며시 인계했다. 용의자에 대한 조사를 담당한 환관이 매섭게 추궁했다.
“너는 재물이 탐나서 손님을 죽였지?”
“아니옵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죄인들은 동창의 관리의 심문을 받으며 쉽게 죄를 자복하지 않았다.
“저 흉악한 놈의 주리를 틀어!”
“예이!”
사지를 결박하고 장대로 마구 비트는 잔인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으아아악! 제발 살려주시오.”
“아직도 죄를 자백하지 않다니. 인두로 지져!”
동창의 관리는 어차피 죽여서 입을 봉할 욕심으로 무서운 고문을 무참하게 가했다. 고문을 받자 용의자들은 인육만두에 대해서는 함봉하고 유민들의 재물을 탐해 사람을 죽인 사실은 자백했다.
“제가 재물이 너무 욕심나서 유민들의 가족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죽은 시체는 어떻게 처리하고?”
“산에다 버렸습니다.”
동창의 관리가 인육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 그들의 가족을 놓고 은근히 협박했기 때문에 순순히 자백한 것이다. 제일 하부조직원은 심한 고문에 이제는 말도 못하는 신세로 변해 버렸다.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저놈의 입을 바숴!”
환관의 잔인한 명령에 용의자들은 하나둘 살아 있어도 자백을 못하는 신세가 되거나 또는 고문으로 죽어 버렸다.
다들 나중에 죽기야 하겠지만 하부조직원은 더 빨리 고문에 의해 죽어갔다. 이렇게 되어 유민들이 덕주에서 홀연히 사라진 사실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
장거웅 감찰어사는 이쯤 되자 슬며시 도찰원으로 유민실종 사건의 전말에 대해 보고서를 올리게 되었다.
시체가 사라진 내용은 아직 동창에서 조사 중이라는 정도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역참을 통해 북경으로 빠르게 보냈다. 이리되어 북경의 조정에서는 유민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마무리를 했다.
자금성에서는 황제와 조정 신료들이 이번 사건을 놓고 논의가 있었다.
황제는 이번 사건을 빨리 마무리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정신 상태야 매우 이상하지만 바보는 아니라 순발력 있게 나름 대처했다.
“그동안 실종된 유민들이 모두 재물이 탐난 여각의 주인과 그 수하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폐하.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빨리 마무리 하는 것이 민심 수습에 좋사옵니다. 그러니 여각의 재물을 압수해 희생당한 유가족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은 온당하다고 보이옵니다.”
“그게 좋겠군. 사건을 재조사해서 잘 처리한 감찰어사에게 상을 내리고 승급하도록 처리하라.”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인육 거래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동창 조직의 의도에 의해 빠르게 종결되었다. 덕주에서 일어난 유민실종사건을 재조사해서 큰 공을 세운 장거웅 감찰어사에게 종6품인 경력으로 승차시키게 되었다.
“속히 파발을 보내 폐하의 교지를 장거웅 감찰어사에게 전해.”
이런 빠른 조치에는 숨은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장거정 감찰어사는 더 이상 덕주에서 벌어진 유민 실종사건에 개입하지 말고 순행첨도어사인 최인범의 임무만 옆에서 도우라는 뜻이다.
최인범은 순행첨도어사로 조사할 권한이 있는 곳은 장강 이남에 해당되니 슬며시 빨리 남쪽으로 가길 원해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유민실종사건을 조기에 마무리하려는 황제나 동창조직의 수뇌인 환관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덕주에서 유민실종 사건과는 전혀 다른 별건사건이 크게 터져 버렸다.
한편 장거웅과 헤어진 최인범은 부하들과 같이 말을 타고 빠르게 덕주로 왔다. 덕주의 외곽에 도착하자 달리던 말을 멈추고 부하들에게 물었다.
“소금창고가 어디냐?”
“저쪽에 보이는 소나무 숲입니다.”
철갑웅의 대답에 최인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명령했다.
“모두 소금창고를 중심으로 흩어져서 살피자. 분명 이곳으로 소금을 나르는 패거리가 있을 것이니 그놈들을 추적해.”
“어사님, 덕주의 인육만두를 만들던 놈들은 어찌 하고요?”
“그건 장 어사가 처리할 것이니 우리는 소금을 운반해 오는 놈들의 조직만 추적하면 돼.”
“알겠습니다.”
소금창고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은밀하게 숨어 창고를 드나드는 놈들의 동태를 살폈다.
이윽고 창고로 와서 소금을 운반하던 놈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10명의 무리가 창고 주변을 세밀하게 수색하고 있었다.
‘숨겨놓은 동료의 시체를 찾은 모양이군.’
그러나 수색을 해도 누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평소와 같이 소금을 창고에 넣거나 또는 나무 상자를 들어 밖으로 꺼내 놓고 있었다. 밖으로 꺼낸 나무 상자는 상인으로 보이는 무리가 와서 우마차에 싣고 북쪽으로 떠나고 있었다.
최인범은 북쪽으로 떠나는 무리를 추적하다가 드디어 운하로 가서 관선에 나무상자를 인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다시 소금창고 주변으로 돌아왔다.
관선에서 나무상자를 인수 받던 무리가 동창의 관리와 무사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추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내 예상대로 결국 황궁이나 아니면 북경 근처에서 단약을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는 거야.’
최인범은 부하들과 합류해 이곳까지 소금을 운반한 조직을 추적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자신이 순행하며 감찰할 구역이라 수사하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추적 중이던 무리가 계속해서 남쪽으로 가지 않고 모두 덕주 남쪽에 위치한 무성현의 작은 마을에 집결하고 있었다.
“어사님, 저놈들이 모이는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전에 저희가 발견했다고 보고 드린 산적입니다.”
“그래?”
평야지대만 이어지는 무성현이라 한곳에 모여든 무리를 산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많은 말을 가지고 있으니 마적이라고 칭해야 적당했다.
소금을 운반하는 놈들이 모여든 마을 주변에는 낮은 구릉에 소나무나 기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이 있다.
다소 은밀해 보이는 숲속에서 허름한 집이 20채가 보였다. 놈들은 대담하게도 모두 병장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그들의 이런 행동을 아무도 눈여겨보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저 마을이나 근처 마을의 주민들 전체가 소금 밀매로 먹고 사는 모양이군.’
최인범 일행은 도적떼가 운집한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에서 야영하며 마을을 살폈다. 그리고 가끔 남쪽으로 떼 지어 가면 부하들이 뒤를 따라가 행선지를 알아내고 있었다.
벌써 이곳에 도착해 감시를 시작한지 10여일이 지나 도적 떼들의 활동 지역이나 그들이 만나는 다른 지역의 조직들도 어느 정도 파악해 두었다.
드디어 덕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아로 끌려가고 환관들이 나서자 감옥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결국 내 예상대로 꼬리를 자르는군.”
최인범은 이런 소식을 듣자 본격적으로 자신이 움직일 때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최인범 일행은 움직일 수 없었다. 늦은 여름의 날씨는 변동이 무척 심했다. 뜨겁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폭우가 내렸다.
쏴아아! 우르르 쾅!
최인범 일행은 낮은 구릉에 있는 소나무 숲에서 여전히 야영하고 있다.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내리자 소형천막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가 너무 오는군.”
“어사님, 저격 작전은 내일로 미뤄야 되겠어요.”
“아무래도 그게 좋겠다. 밭에서 서리해온 콩이나 숯불에 구워 먹자.”
최인범의 이런 지시에 부하들은 들판에서 마구잡이로 거두어 가져온 콩을 숯불에 굽고 있었다. 민간인들과 접촉을 피해서 너무 오래 지냈다. 그러다 보니 지니고 있던 비상식량도 거의 떨어졌다. 넓은 들판만 있는 이곳에서 흔한 콩으로 버티고 있었다.
맛이야 땅콩이 좋다. 하지만 땅콩은 아직 수확하기에는 조금 일러 단단히 여물지 않았다. 먹성이 좋은 이들은 보급품 조달은 이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
“어사님, 마을로 가서 개라도 잡아서 먹을까요? 콩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려니 너무 갑갑합니다.”
막내인 철병웅의 하소연에 최인범은 피식 웃으며 응수했다.
“너 조금만 더 굶으면 백두를 잡아먹자고 하겠다.”
“예? 제가 어떻게 백두를 잡아먹어요? 백두 덕분에 제가 정탐을 안심하고 하는데요.”
철병웅은 적들이 모여 있는 마을의 안으로 정탐을 갈 때는 항상 백두가 앞장서서 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응수하고 있었다.
장거웅이 덕주 관아에서 한창 유민실종사건을 재조사하다가 죄인들을 동창으로 인계했다. 환관들의 무참한 고문으로 죄인들이 죽어갔다. 전에는 같은 편이라고 비호하던 환관들이 꼬리를 잘라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부조직에 대해 살인멸구를 시도한 것이다.
최인범은 막내인 철병웅에게 물었다.
“어떤가? 마을에 있는 도적 떼들의 분위기가?”
“어사님, 엿들어 보니 고문이나 강하게 형을 집행하는 동창의 관리에 대해 불만들이 많습니다. 어사님께서 예상하신 그대로 그들은 벌써 내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됐어. 그렇다면 내일부터 도적들 두목을 저격해도 되겠어.”
그동안 덕주의 소금창고부터 추적해 알아낸 인육거래 조직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덕주까지 소금을 운반해오는 조직이 있었다. 덕주에서 사람을 납치해 인육을 소금에 절이던 무리가 있었다. 덕주에서 북경까지 소금에 절인 인육을 나르는 동창의 조직이 별도로 있었다.
그중에 덕주에 있는 조직은 장거웅이 나서서 일망타진해 같은 패거리인 동창의 환관들 고문이나 형벌로 죽어갔다. 그러자 소금을 운반하던 조직원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도 살인멸구의 대상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중이다. 그런 사실을 정탐을 통해 알아내자 최인범은 그 조직의 우두머리들만 저격해 버리기로 결정했다.
소금을 운반하는 조직은 황하 강변의 제남에서부터 은밀하게 소금을 운반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도 많고 무장하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죽고 나면 저들은 자연히 반발하게 돼.’
쉽게 남의 것을 빼앗아 살던 도적놈들이 갑자기 선량한 농군으로 변해서 새로운 삶을 살기는 무척 힘들다. 그러니 우두머리가 사라지고 비호하는 배경이 사라지면 자연히 잔당들은 마적으로 변하게 된다.
최인범은 철갑웅에게 지시했다.
“너는 접선 장소로 가서 서찰을 받아 와!”
“넷!”
철갑웅을 명령에 따라 비를 맞으며 덕주 쪽으로 떠났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르자 철갑웅은 장거웅이 보낸 서찰을 들고 돌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