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인육을 만두소로 만들어 파는 행위는 도저히 그냥 덮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다. 그러나 배후에 반드시 황실과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황제 놈이 인육을 이용해 단약을 만든다고 저지른 사건 같아.’
가정제는 불로장생을 꿈꾸며 사람의 몸을 이용해 단약을 제조하는 잔악한 행위를 선호했다. 그런 잔악한 행위를 옆에서 돕는 무리들의 중심에는 환관들이 장악한 동창이다.
명나라의 사법 조직인 동창은 나라의 기본적인 관아 조직보다 막강한 권력을 차지해 움직였다. 권력도 막강하지만 그들의 조직 자체가 행정 조직을 능가할 정도로 방대했다.
‘동창이 배후라면 조심하는 것이 좋아.’
환관들이란 자신들의 신체적 결함 때문에 황제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는 무리다. 물론 그 중에는 특별하게 그런 신체적 결함을 극복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쉽게 어둠의 세계로 빠져 버리는 속성을 지녔다.
이런 엄청난 배후에는 동창이 개입하지 않고는 벌어질 수 없는 사건이었다.
‘분명 황제의 비호아래 동창 조직이 저지른 사건이 분명해.’
이렇게 판단하자 최인범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노릇을 어쩌지?’
자신의 조국인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죽은 한이 있더라고 진상을 명확하게 밝혀야 된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진 곳은 엄연히 남의 나라인 명나라다. 그러니 최인범은 굳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인육거래 사건의 진상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편하게 남쪽으로 가서 나나 조선에게 꼭 필요한 정보나 물건을 얻으려고 했더니 세상의 일이란 공짜가 단 하나가 없는 법이군.’
이제 와서 이번 인육 만두 사건에서 완전히 발을 뺄 수는 없었다. 더구나 마취제를 사용해 자신을 어육으로 만들 음모를 꾸민 무리를 그저 놓아 줄 정도로 마음이 너그럽지 않았다.
‘겁도 없이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런 놈을 용서하면 안 되지.’
최인범은 성품이 사실 적에게는 매우 모질다. 그래서 자신을 해하려는 무리는 반드시 몇 배로 갚아 주는 그런 성품이다. 그러니 자신이 당한 분풀이는 혹독하게 해줄 심산이다.
‘그년이 요사한 웃음으로 나를 완전히 병신으로 만들었어.’
은근히 추파를 던져 상대방이 방심하게 하고 독침으로 공격해 쉽게 제압해 버렸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일방적으로 당했다.
최인범은 요사한 얼굴인 매랑이 떠오르자 분노했다.
‘어휴! 허접한 그런 똥갈보 같은 년에게 당하다니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복수를 위해 뭔가 움직이기는 해야 하지만 매우 조심해야 된다.
‘함부로 움직이다가 보면 내가 다치는 수가 있어.’
성격이 소심해서도 아니고 그보다는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아끼기 때문이다. 뭔가 남다른 몸을 지녀 조국을 위해 큰일을 도모하려는 입장이다. 졸지에 남의 나라의 추악한 음부를 들추다 위해를 당해 죽는다는 것은 너무 허무해 신중을 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실수로 족했다.
‘나를 노렸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희들 뒤통수를 노리지.’
상대는 이미 자신의 정체를 잘 안다고 판단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첫 번째로 장사웅에게 지시를 내렸다.
“장 어사, 그대는 이미 완전히 신분이 노출되었으니 차라리 표면에서 완전히 몸을 드러내 활동하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 모든 일은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소.”
“어사님, 어떤 방식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은밀하게 움직이다 보면 나처럼 암살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다시 덕주로 돌아가면 바로 객관으로 가서 지내시오. 물론 그런다고 음독이나 암살의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요. 하지만 설마 객관에서 지내는 감찰어사를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요.”
“알겠습니다. 저보고 호랑이 굴로 가라는 뜻이군요.”
“그렇소. 아무튼 극독을 사용하는 놈들이니 음식을 제일 조심하시오.”
일단 장거웅 감찰어사는 객관으로 들어가 지내며 고을수령을 조종해 산동여각에 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재조사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장거웅은 매우 놀라고 말았다.
최인범이 제시하는 방법은 인육만두 사건은 절대 거론하지 말고 그저 산동여각의 위법에 의한 마작 행위만 추궁하라는 것이다.
“어사님, 그리되면 반드시 배후세력들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겁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거요. 그들은 인육사건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하부조직인 꼬리를 자른다고 생각하게 될 거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잘라지는 꼬리도 결국 자신의 몸통 일부라 그들도 무척 괴롭고 아플 겁니다. 일거에 무리를 소탕하기보다 그들의 수족을 먼저 철저하게 자르자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되면 그들 내부에서도 분란이 생기고 반발이 있을 수 있으니 그런 정도면 충분해요.”
“어사님, 그렇다면 동창의 막강한 힘을 역으로 이용하자는 것이군요.”
“그렇소. 스스로 자신들의 수족을 잘라내게 하는 것이 제일 좋소.”
명나라 조정은 황제가 너무 엉망이라 간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올바른 정신을 가진 관료도 있으니 동창이 움직여 자칫해서 사건이 커지면 자연히 그들이 나설 것으로 판단했다.
최인범의 계획을 듣게 되자 장거웅은 이제야 자신이 부여 받은 유민실종 사건에 대한 재수사의 정확한 진행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넷! 어사님, 저는 바로 덕주 관아로 가겠습니다. 근처 관아에 제가 아는 고을의 수령이 있으니 거기서 하급군관을 차출해 호위무사를 더 데리고 가죠.”
“그렇게 하세요. 여기 놈들은 믿을 놈이 없으니 그게 좋겠소. 우리는 이제부터 육로로 이동하니 배는 모두 그대가 가지고 가시오.”
“알겠습니다.”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자 최인범은 자신이 쳐놓은 소형천막을 걷었다. 그리고 군장을 꾸리고 필요한 무기들을 삼형제와 같이 몽땅 챙겨 놓고 지시했다.
“이동을 빨리하기 위한 것이니 말은 모두 우리가 가져가겠소.”
“넷!”
최인범은 인적이 약간 뜸한 곳에서 화물선을 멈추고 말들을 모조리 내렸다. 4명이서 말 12필을 가지고 빠르게 남쪽으로 이동했다.
두두두두.
빠른 속도로 최인범이 떠나자 장거정은 그제야 자신을 수행하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우리도 덕주로 빨리 가자.”
“넷!”
장거웅은 증거품인 만두를 가지고 서둘러 객선을 타고 화물선 2척은 뒤에 따라오게 하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뱃사공이야 단연히 새로 구해서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이동하지 않아 작은 고을인 현에서 하급 군관을 골라 호위무사를 새로 합류시켜 떠났다. 그들에게 무슨 특별한 업무를 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안전만 확보하기 위해 데려가는 것이다.
장거웅은 빠르게 배를 이동시켜 덕주에 도착했다. 덕주 관아에 도착한 장거웅은 최인범이 알아낸 운하에 물고기가 없다는 점을 들어 고을 수령을 압박했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시체가 사라졌다는 운하에는 물고기가 전혀 살지 않는데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은 믿을 수 없소. 그리고 산동여각은 불법으로 도박을 벌이니 우선 조사해야겠소.”
“불법이라면?”
“그들은 얼마 전에도 콩 장사를 마취해서 죽여 버린 사건을 저질렀소.”
“예, 콩 장사요?”
“그렇소. 나와 운하에서 우연히 만난 콩 장사인데 같이 가자더니 홀연 사라졌소. 더구나 산동여각으로 간다고 하더니 사라졌으니 본관이 판단하기에는 여각의 여주인이 의심스럽소.”
정작 조사해야 하는 인육만두에 대해서는 최인범의 지시대로 단 한마디 거론하지 않았다. 그저 도박을 벌이고 있는 산동여각에서 홀연히 사라진 콩 장사를 찾기 위해 조사하는 것으로 추궁했다.
“여각과 관련 있는 모든 사람을 잡아들이시오.”
“그러죠.”
감찰어사의 신분이라 지방수령은 어쩔 수없이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관아의 군졸을 동원해 산동여각을 덮치게 되었다. 여전히 많은 손님으로 북적이는 산동 여각에 군졸들과 고을 수령이 들이 닥쳐 크게 외쳤다.
“여각에 있는 사람은 모조리 포박해!”
“저는 밥만 먹으러 왔는데 잡다니 이런 경우가 있어요?”
“나중에 관아로 가서 해명해!”
군졸들은 죄가 있건 없건 주방장이나 여주인인 매랑까지 모조리 잡아들였다. 그저 식사하기 위해 여각을 찾아 온 손님들까지 잡아들여 관아의 감옥에 가두었다.
그렇게 해 놓고 장거웅은 우선 손님들을 대상으로 심문에 들어갔다.
“산동 여각은 왜 갔나?”
“좋아하는 마작하러 갔죠. 그것이 불법은 아니잖아요.”
“뭐라, 너는 사기도박 판에서 바람잡이로 활동하기 위해 산동여각을 자주 들락거린 것이군.”
“아이고. 어사님 전혀 그게 아니옵니다. 그건 짓은 다른 놈이 합니다.”
“뭐라. 그게 누군가?”
사람이란 죄가 있건 없건 관아로 끌려와 무서운 심문을 받게 되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엉겁결에도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속성을 지녔다.
산동여각으로 찾아와 마작을 즐기던 손님들은 변했다.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판단해 즐기던 마작들도 모두 여주인이 조작에 의한 사기노름이라고 고발했다.
“어사님, 저도 사기마작으로 많은 은자를 잃었습니다.”
“그래, 너는 어떤 수법에 당했나?”
“그야, 제가 재물을 따면 항상 마취되어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알았어. 그때 같이 도박하던 사람을 아나?”
“예, 여기에 끌려온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자백에 장거웅은 집에서 쉬고 있는 애매한 사람도 관아로 끌고 와 심문했다. 그러다 보니 덕주는 일순 부녀자들의 울음소리가 퍼지는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다.
실제로는 약간 다르더라도 여러 사람의 진술이 있었다. 그러자 여각에서 기생하며 노름을 벌이던 놈들은 먼저 사기도박의 죄로 걸려들어 감옥에 처박히게 되었다.
‘누군가 만두에 대해 거론해야 만두집 주인을 잡아들이고 가게를 압수수색하는데.’
드디어 한 노름꾼이 너무 억울하다는 듯이 하소연을 토했다.
“어사님, 저는 만두를 먹고 기절해 은자를 잃었습니다.”
“뭐라? 만두에 마취제를 넣었단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기다리던 그물에 걸려들자 장거웅은 속으로 신이 났다. 이제는 합법적으로 만두집을 압수수색하고 만두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을 잡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당장에 마취제를 넣은 덕주 만두집 주인과 종업원 그리고 만두를 배달한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