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그렇군요. 명나라에는 이런 강한 마취제도 있나 보군요.”
“막내는 보초를 서. 혹시 누가 우리에게 접근할 지도 모르니까.”
“넷!”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이후 어찌 처신해야 될지 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 마취제에 당해 기절해 있는 최인범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리도 잘 모르고 말도 어눌하니 함부로 움직이기 곤란했다.
“이제 어쩌죠? 형님.”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주인님이 깨어나길 기다려야지.”
주변에서 벌어진 상황을 잘 모르니 최인범이 깨어나던가 아니면 북쪽으로 갔던 장거웅이 돌아와 자신들과 합류해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변하게 되자 장거웅이란 사람도 믿기 어려웠다. 앞으로 일이 모두 걱정뿐이다. 첨도어사의 신분을 나타내는 인장을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어찌 사용하는지 전혀 모르니 그것도 무용지물이다.
“형님, 앞으로 어쩌죠. 우리 천진의 발해 여각으로 돌아갈까요?”
“아니, 내가 보기에는 하루 정도만 지나면 주인님은 깨어날 것 같아. 워낙 건강한 몸이시니 그런 정도면 마취에서 풀려 깨어날 것 같아.”
무슨 의술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보다는 그저 느낌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독액이 아니라 살았어.’
주인을 암습한 무리는 인육으로 반출하기 위해 강한 마취제를 사용했다.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독액으로 공격당해 주인은 벌써 죽은 목숨이다.
무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렇게 허망하게 당하는 수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자신들도 이번을 참고해 조심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이야. 그 놈들이 인육으로 팔 생각으로 공격해서.”
“정황으로 보아 어사님의 정체는 잘 모르나 봅니다.”
“그렇군. 그랬으니 독액으로 죽이지 않고 마취를 시켰지. 하지만 진짜 정체를 알고도 마취제를 쓸 수도 있으니 너무 속단하지 마.”
“넷!”
세 사람은 교대로 보초를 서며 물수건으로 최인범의 얼굴을 닦아 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새벽이 되자 사공들이 몰려와 관선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화물을 적재한 것인지 운하를 통해 한척 씩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보초를 서던 철병웅이 철갑웅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우린 어쩌죠?”
“우리야 다시 북쪽으로 가야지.”
“알았어요.”
삼형제는 관선들과 떨어져 조심스럽게 다시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노를 젓기가 너무 힘들 자 운하 변에 정박해 놓고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온전하게 믿기 어렵지만 장거웅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형제들은 자신들이 잡아 놓은 멧돼지 고기를 구워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귀한 소금이 그렇게 많다면 인육으로 팔리는 양이 엄청나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이건 보통 큰 사건이 아닙니다.”
삼형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모질게 목숨을 연명했다. 아주 어려서는 사막이 있는 아랍에서 노예로 살다가 어찌 어찌해 추운 북쪽으로 팔렸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격투기를 벌이는 전사로 키워졌다.
그리고 타타르 부족의 공격으로 주인이 죽고 나자 다시 타타르 부족의 노예로 살았다. 결투에 패해 주인에게 버림을 받아 새로운 주인인 최인범을 만났다. 이제야 처음으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있었다. 이런 주인은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하층계급인 노예로 평생을 살아 왔다. 그래서 운명처럼 자신들의 삶에 순종했다. 그러나 자신들과 똑 같이 먹고 생활하는 최인범은 그들에게는 신처럼 느껴지는 너무 좋은 사람이다.
‘너무 좋으신 주인님인데.’
지금까지 경험한 과거의 주인들은 한 결 같이 자신들을 그저 소나 말처럼 함부로 부려먹었다. 삼형제는 다들 초조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해 과거를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어떤 주인이 제일 싫더냐?”
“저요. 사막에서 사는 여자 주인이 제일 겁납니다.”
“왜? 여자라 나는 좋기만 하던데.”
“무슨 소리에요. 제일 먼저 여자를 죽이고 싶다고 하시던 형님이.”
아랍에서 만난 요사한 여자주인은 밤만 되면 어린 자신들의 배에 올라타서 뜨거워진 욕정을 마음껏 채웠다. 한명이 달려들면 좋기라도 하지만 여러 명이 달려들어 밤새 그런 짓을 벌이니 그것도 너무 힘든 삶이었다. 그러다 그런 사실이 탄로 날까 두려워 여자주인은 멀리 북쪽으로 팔았다.
“그때 죽을 수도 있었어.”
“하긴 그건 그러네요. 그 여자주인은 지금 어찌 됐나 모르겠네요. 대상으로 상단도 운영하던 사람이었는데.”
“왜 보고 싶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첫 번째 여자잖아요.”
삼형제는 사막에서 북쪽으로 팔려 우여곡절 끝에 타타르 전사로 양성되었다. 하지만 발해여각에 있는 소피아와는 관련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충성하는 마음은 한 톨도 없었다. 삼형제는 최인범만 유일하게 복종할 주인이라고 맹세했다.
운하를 오가는 객선들이나 화물선을 유심히 살피던 철병웅이 크게 외쳤다.
“장 어사님이 옵니다.”
“그래? 그럼 신호해.”
이윽고 손짓과 고함을 쳐서 신호를 보내자 장거웅이 화물선으로 다가와 배를 갈아타고 물었다.
“왜? 여기에 있어.”
“어사님께서 암습을 당했습니다.”
“뭐?”
장거웅은 급하게 최인범이 누워 있는 소형 천막으로 들어가 살폈다. 그리고 삼형제로부터 그간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자 급하게 품속에서 약병을 꺼냈다.
“이게 해독제이니 먹여.”
온전하게 믿지 못해 삼형제가 먹이기를 주저하자 장거웅은 급하게 최인범의 입을 벌리고 해독제를 먹였다.
옆에서 바라보던 삼형제가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그러자 삼형제는 매서운 눈으로 장거웅을 노려보았다. 조금만 잘 못되면 목을 잘라 죽이겠다는 화난 표정들이다.
“헉!”
살기가 등등한 모습에 장거웅은 순간 오금이 저려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 이마에서 땀을 주르륵 흘렸다. 최인범의 무술도 놀랍지만 그의 부하들인 삼형제의 표정만으로 주눅이 들 정도로 매서웠다.
‘다들 무서운 무술을 지닌 사람들이야.’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행이 최인범은 몸을 꿈틀 거리며 깨어났다. 머리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누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으으윽! 아이고 머리야?”
마치 술에 만취해서 쓰러져 있다가 깨어난 것처럼 심한 두통을 느꼈다. 해독되어 다행히 깨어나기는 했지만 정신도 여전히 몽롱했다. 팔다리도 너무 나른해 앉거나 일어설 수는 없었다.
‘아이고 배고파.’
너무 허기져서 그저 자신의 최고 영향 섭취인 날고기가 제일 먹고 싶었다. 그렇다고 철씨 형제들에게 지금 상황에 사냥해오라고 할 수 없어 달리 지시했다.
“체력을 회복하려면 생간과 심장을 먹어야겠어. 여기서 잡아먹게 송아지로 사와.”
“알겠습니다.”
장거웅이 급하게 은자를 넘겨주자 철병웅은 빠르게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에 어린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자 운하 옆에서 도살했다.
“주인님, 여기 심장과 생간을 가져왔어요.”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최인범은 옆에서 부축해줘 몸을 일으키고 허겁지겁 심장과 생간을 마구 먹었다. 커다란 바가지에 담아온 피도 마시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어 지시했다.
“철갑웅. 남은 고기는 모두 훈제로 육포를 만들어. 여기서는 함부로 음식을 사먹기가 곤란해.”
“넷!”
깨어남과 동시에 자신이 아주 큰 사건의 단서를 확실하게 잡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놈들은 너무 큰 조직이야.’
인육시장은 보통 점조직으로 소규모로 은밀하게 운영된다. 그러나 이곳 덕주에서는 조직이 너무 광범위했다. 관아도 연루되어 있고 산적도 한 패거리가 분명했다.
최인범은 먼저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 장거웅에게 물었다.
“장 대인은 만두소의 내용물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냈습니까?”
“넷! 제가 평소 스승처럼 모시던 의원 하시는 분이 마침 창주에 사셔서 그분에게 만두를 보여드려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만두소는 인육을 넣어 만들었습니다.”
“허! 인육으로 만든 만두라니. 이건 너무 잔악한 사건이군요.”
그저 짐작한 것과 명확한 사실로 드러나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최인범은 갑자기 속이 너무 울렁거려 급하게 지시했다.
“인삼차를 진하게 타서 가져와!”
“넷!”
속이 매스껍고 울렁거리거나 숙취에는 인심차가 제일 좋아 이렇게 지시했다.
잠시 뒤에 작은 자기에 달여 온 인삼차를 마시자 그제야 뒤틀리던 속이 조금 편해졌다. 같이 인삼차를 마시던 장거웅은 유만의 의원이 자신에게 충고하던 말도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그런 충고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황국에서 의원 생활을 하던 사람이 그런 충고를 누차 반복했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어사님, 아무래도 배후세력이 막강한 것 같습니다.”
“내가 판단하기에 배후에는 동창이 개입되어 있을 거요?”
“어사님, 그게 정말입니까? 저는 동창 조직이 이런 일까지는 한다고 집작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폐하와도 관련이 있겠군요.”
“그거야 모르죠. 그러니 조사도 좋고 사건 해결도 좋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가정제가 벌이던 추악한 행위를 역사를 알기 때문에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기서 벌어지는 인육 만두는 그저 사건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삼형제가 자신을 구출한 상황도 자세하게 보고 받았다.
“인육을 저리기 위한 귀한 소금이 그렇게 많아?”
“넷!”
귀한 소금으로 절여진다는 인육에 대해 보고를 받게 되자 최인범은 자신의 짐작을 확신하자 계속해서 침묵했다. 사건의 진실을 모두 밝히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유만의 의원의 충고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참으로 더러운 사건인데 졸지에 휘말려 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