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뭐? 산적이 많아?”
“그렇습니다. 산의 골짜기마다 산적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뭐라? 산적이 그렇게 많아?”
“예, 전에는 화전민인지 유민인지 모르나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자세하게 보니 모두 무기를 휴대하고 있어 산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곳 고을 수령은 분명 문제가 많은 관료다. 산적들이 관할 구역에 있다는 것을 중앙으로 보고를 못하고 숨겨야 할 정도로 더 큰 문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명나라의 가정제도 엉망이고 탐관오리들이 득실거리는 시대다. 하지만 어찌 되었던 무수한 사람이 실종되고 또 산적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자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상하군.’
비밀을 요하는 무슨 반역 무리가 이 고장에서 떼를 지어 살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고을 수령은 물론 지역의 유지나 학자 그리고 백성들 모두가 뭔가를 꼭 숨겨야 할 일이 있으니 비밀은 감추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최인범은 구워 먹던 고기를 조금 잘라서 운하에 풀쩍 던졌다.
퐁! 퐁!
계속 작은 살코기를 던졌으나 운하에서 사는 물고기가 전혀 없는지 물결은 아주 잔잔했다.
이런 사실이 너무 이상해 최인범은 구운 고기는 물론 날고기를 계속해서 물속에 던졌다. 그러나 물고기가 덤비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운하에 물고기가 전혀 없는데.’
이런 현상을 보고 드디어 뭔가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았다.
‘여기 운하에서 자살해 실종된 것은 아니야.’
물고기가 있어야 시체를 파먹은데 물고기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비록 썩어서 퉁퉁 불어나겠지만 시체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시체의 살은 사라져도 뼈나 해골은 한동안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철을웅에게 지시했다.
“철을웅, 네가 북경어를 제일 잘 하니 저쪽에 있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가서 물어봐. 여기에 물고기가 많은지 있으면 얼마나 큰 물고기가 사는지.”
“넷!”
조금 시간이 지나 여러 명에게 물어 본고 나서 철을웅이 돌아와 보고했다.
“대인, 여기 봄에 기근이 시작되자 어부들이 아주 촘촘한 그물로 사그리 잡아서 이 근처 운하에서는 물고기가 거의 사라졌답니다. 그물로 하루 종일 투망질을 해도 작은 금붕어 같은 물고기를 10마리 잡기도 힘들답니다.”
“그런 정도면 물고기가 완전히 전멸한 셈이군. 그런데 그게 언제지?”
“벌써 2달 반 정도 된답니다. 그 후부터는 운하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살던 어부는 모두 장강으로 떠났고요.”
최인범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나자 자신이 추측한 그대로 고을의 수령은 거짓보고서를 계속해서 조정으로 올린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판단했다.
‘고을 수령이 유민실종사건과 관련이 있어.’
이렇게 판단하고 나서 술시(戌時)가 가까워오자 매랑이 운영하는 여각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 매랑이란 여자도 어쩌면 사건에 연루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형제들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지침을 내리고 천천히 후문이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서서 조심스럽게 후문을 향해 전진하던 최인범은 외마디를 토했다.
“컥!”
어두운 골목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던 최인범은 갑자기 목이 뜨끔하더니 비틀거렸다.
순간 ‘독침!’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위기감에 피하려고 했지만 독은 쉽게 그를 마비시켜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쿵!
아무리 무술이 뛰어나고 힘이 장사라고 해도 숨어서 기다리다가 대롱으로 쏘는 독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무술과 힘을 믿고 잠시 방심한 것이 큰 실수다.
최인범이 쓰러지자 골목의 작은 문이 살며시 열리며 매랑이 나왔다. 그녀는 화사한 엷은 비단 옷을 입고 마냥 즐거운 듯이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속살이 보이는 엷은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다가 독침을 날린 것이다.
“호! 호! 사내놈들이란 한 결 같이 여자가 오라면 저 죽을지 모르고 멍청하게 와!”
요사한 웃음을 흘리며 매우 만족한 표정이다.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작은 대롱을 조심스럽게 허리춤에 있는 긴 주머니에 갈무리했다.
매랑은 쓰러진 최인범을 발로 툭툭 차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데리고 가!”
“넷!”
명령은 내린 매랑은 요사하게 웃으며 여각의 후문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골목길의 작은 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 둘이 수레를 끌고 왔다. 덩치가 커서 두 사내가 힘들게 수레에 올로 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이놈이 처음이군.”
“덩치가 커서 두 놈 분은 되겠어.”
이런 소리를 비릿하게 토하며 사내들은 땅에 쓰러진 최인범을 수레에 싣고 빠르게 골목길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골목은 다시 어둠만 깔리고 고요했다. 그리고 좁은 골목은 음산한 기운을 강하게 풍겼다.
그들이 사라진 어둡고 음산한 골목에는 백두가 달려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급하게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선착장에 도착한 백두는 삼형제를 향해 크게 짖었다.
컹! 컹!
그러자 놀란 삼형제가 급하게 단창과 장검을 들고 배에서 내려 백두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백두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급하게 달려갔다. 그러자 철씨 삼형제도 무기를 챙겨 들고 빠르게 내달렸다.
한편 최인범의 명령을 받고 급하게 덕주를 떠난 장거웅은 창주(滄州)에 도착해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유만의 의원을 찾아갔다.
40대 초반인 유만의 의원은 의술이 뛰어났다. 잡과에 합격해 한때는 황궁에서 근무하다가 환관들이 하는 처사가 너무 못마땅해 반발하다가 2년 전에 퇴직했다.
지금은 고향인 창주에서 전염병의 치료약을 만든다고 연구 중이다.
“유 의원님, 이 만두를 자세하게 조사해 주세요.”
“만두는 왜?”
“아무래도 만두가 너무 이상하니 극독물이 들어 있는지 또는 먹어서 안 되는 이상한 것들이 만두소에 들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 주세요.”
유만의 의원은 장거웅이 넘겨주는 만두를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방안에는 유리병에 괴이한 모습의 많은 태아들이 있었다.
장거웅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저게 다 뭐죠?”
“허허! 감찰어사나 되는 사람이 저런 것을 보고 놀라긴. 내가 평소 말에 관심이 많아 모아둔 말의 어린 태아들일세. 큰 상태가 아니라 사람의 태아와 비슷하다네.”
“그렇군요. 저는 진짜 사람의 태아인줄 알았습니다.”
장거웅의 말에 유만의는 뭔가 떠올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전에 진짜로 사람 태아를 모아서 연구한 적은 있었지.”
“예? 그런 연구도 했다고요?”
“다 지난 일이야.”
이런 대화를 나누며 유만의 의원은 만두를 늘여 놓으며 하나씩 검토했다. 우선 독이 들어있나 은으로 만든 작은 침으로 찔러보고 색이 변하나 점검했다.
일단 은침으로 확인해 아무 이상이 없다 만두를 갈라 안에 들어 있는 만두소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내용물이지만 아주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돋보기 꺼내 확대해서 살폈다.
고개를 저으며 다소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던 이윽고 뭔가 확신한 표정을 지으며 유만의 의원은 서성이고 있는 장거웅에게 지시했다.
“만두소의 내용물이 뭔지 어느 정도 짐작은 가나. 너무 중요한 일이라 꼭 확인해야 되겠어. 자네는 빨리 밖에 나가서 소고기를 조금만 사오시게. 반드시 소의 엉덩이 살을 가져오게. 그리고 말고기는 여기 있으니 돼지고기와 양고기도 사오시게.”
이런 지시를 받자 장거웅은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유만의 의원은 돋보기로 만두소를 다시 살피며 너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어! 대명천지에 어찌 이런 일이.”
유만의 의원은 점점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의원으로 평생을 보낸 처지라 더욱 처참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아직도 그런 속설을 믿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리 많다니.’
유만의는 황궁에서 벌어지던 끔찍한 일들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자금성 안에서는 황제의 음탕한 짓을 돕기 위해 별별 사건들이 수시로 벌어졌다. 그런 짓에 대해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하는 의원의 양심에 따라 반발하자 포악한 환관들이 그를 황궁에서 내보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북경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말이나 소를 돌보며 각종 전염병 퇴치를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황궁 안에서는 지금 인간이라면 해서 안 되는 끔찍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인 황제가 그런 지경이니 무지한 백성들이야 오직 하겠어.’
그래도 뭔가 미련이 있는지 유만의 의원은 계속해서 만두소를 돋보기로 살폈다. 아무리 살펴봐도 자신이 알아낸 사실이 확실했다.
이때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밴 장거웅이 고기를 사서 들어왔다. 그러자 사온 고기들을 잘게 잘라 다시 돋보기로 살피더니 드디어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후우! 자네도 이쯤 되면 짐작이 했겠지만 내가 살펴보니 이 만두는 인육을 갈아서 만든 만두소가 들어 있다네.”
“정말 확실한 겁니까?”
“그렇다네. 아무튼 자네가 남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나를 찾은 것으로 보아하니 덕주에서 인육만두를 발견한 모양이군.”
“제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온 최인범이란 분입니다.”
“그래? 그 조선 사람은 어떻게 인육이 든 만두라는 것을 발견했다던가?”
“그분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백두라는 개가 냄새로 금방 알아내 찾았다고 합니다. 개가 만두를 먹지 못하게 방해해서 독이 들어있나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에 유만의는 참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어, 그렇다면 명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은 변방의 작은 나라인 조선의 개만도 못한 것이군. 아니면 알고도 눈을 감는 파렴치한 놈들만 사는 나라야.”
참담한 표정으로 유만의 의원이 이렇게 말하자 장거웅은 뭔가 아는 것으로 판단해 급하게 물었다.
“유 의원님, 혹시 이번 인육만두 사건에 대해 뭐를 아시거나 짐작 가는 점이 있나요?”
“힘도 없고 실력도 없는 내가 이런 복잡한 사건에 대해 알기는 뭐를 알겠나? 그저 소문에 덕주에서 시체가 없는 자살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진다고 해서 혹시 해서 짐작해 봤던 거지. 아무튼 이 사건은 내가 보기에는 너무 복잡해 보이니 자네는 앞으로 매사 조심하게.”
“사건이 너무 복잡하다니요? 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