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사라지는 유민들>
덕주의 부정부패 정도는 더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아까부터 매랑은 유달리 관심을 보이던 최인범의 건장한 몸을 위 아래로 살피더니 제안했다.
“이따 밤에 다시오면 10가마로 깎을 방법이 있는데.”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하는 제안으로 보아 분명 몸으로 때우면 10가마를 감해준다는 뜻 같았다.
그러자 최인범이 느물거리는 시선으로 매랑의 호리한 몸매를 슬며시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언제 다시오면 되는 거요?”
“술시에 뒷문으로 오면 돼요.”
“알았소. 그때 다시 찾아오죠.”
최인범은 매랑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나서 산동여각에서 나왔다. 산동여각 앞에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잡고 물었다.
“여기 덕주 만두집이 어디냐?”
“저쪽 골목으로 가면 있어요.”
아이가 손으로 지목하자 최인범은 천천히 덕주 만두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만두 가게 근처에서 다른 가게들을 살피는 척 하며 손에 든 작은 거울로 만두집을 살폈다.
만두집에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자주 찾아와 만두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먹는 모습으로 보아 만두소로 야채나 팥을 주로 넣어서 파는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자 안으로 들어가 따로 포장해서 판매했다.
‘평범한 만두집이고 주인인데.’
만두를 사가지고 가는 사람을 슬며시 따라가다가 최인범이 옆으로 지나가며 슬쩍 살폈다. 모양이나 냄새로 보아 만두소로 고기를 넣은 것이 분명했다.
만두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은 백두가 아까 여각에서 하는 행동처럼 그르렁 거렸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만두인데 백두가 자꾸만 경계하는 신호를 보냈다.
‘뭐가 이상하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데.’
결국 최인범은 지나가는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너 저 만두집으로 가서 고기가 들어 있는 만두를 사와. 심부름 값은 줄 거니까.”
최인범은 아이가 사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만두를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흔하게 파는 땅콩을 한 아름 사서 들고 화물선으로 돌아왔다. 선착장 옆 둑길에서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땅콩을 굽고 있었다.
그가 화물선에서 땅콩을 굽고 있는 동안.
덕주 관아로 찾아간 장거웅은 고을수령과 만나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장거웅은 수령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쪽에서 기근 때문에 이곳에 찾아오는 유민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대부분 사라진다니 그 이유가 뭐요?”
“어사님, 유민들이 우리 고을로 오면 사라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저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장거웅은 도찰원으로 보낸 여러 장의 서찰을 내밀며 물었다.
“강소성에서 가족들과 같이 덕주로 찾아온 유생이 자신의 가족들이 여기에서 사라졌다고 찾아달라는 서찰이오. 한 번에 가족 10명이 흔적 없이 사라져 너무 이상하다는 거요.”
“어사님, 그 일가족이 실종된 사건은 저도 잘 압니다. 그 사건은 이유만이란 유생의 가족인데 강소성에서 기근이 들어 떠돌다가 여기로 왔습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 결국 운하에 빠져서 가족 전체가 동반 자살한 것으로 이미 종결된 실종사건입니다.”
“그런데 왜 시체가 단 한구도 없다는 거요? 물이 깊은 강도 아니고 수심이 낮은 운하에서 죽었다면 분명히 시체가 있을 것 아니요?”
이런 말에 수령은 다시 답했다.
“죽은 가족들의 옷들은 운하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유만의 요구로 실종사건을 조사하다가 자살로 판정을 내린 것이고요. 벌써 한 달이 지난 사건인데 또 이런 투서를 도찰원으로 하다니 그놈은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들이 죽자 그 원망을 우리에게 전가하려고 환장한 것 같습니다.”
수령의 말에 장거정은 다시 서찰의 한 부분을 지적하며 물었다.
“여기 내용에는 분명히 많은 은자를 지니고 천진으로 이사를 가던 중이라고 했는데 왜 그들이 돈이 없어 굶어 죽게 생겨 자살했다고 하는 거요?”
“어사님, 그놈이 여기로 와서 마작해 지니고 있던 모든 은자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뭐요? 마작했다는 집이 어디요?”
“선착장 바로 옆에 있는 여각입니다. 상호는 산동여각으로 여자주인인 매랑이 운영하고 있지요.”
“알겠소. 나중에 한번 찾아가 보도록 하죠.”
그러자 수령은 흘리듯이 말했다.
“가서 조사해보나 마나일 겁니다. 저도 몇 번이나 여각 주인이나 점원들을 관아로 끌고 와 조사해봤지만 똑 같은 답변만 들었으니까요.”
“뭐라고 답했는데요?”
“그야, 죽은 사람들은 모두 산동 여각에서 마작으로 많은 돈을 잃었다고요. 그래서 생긴 은자도 증거로 내놓았습니다. 정당하게 내기를 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진술했고요.”
이런 사건이 단 한번만 벌어지면 그냥 지방수령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도찰원으로 도착한 서찰은 여러 장이나 되었다.
두 달 사이에 벌써 수백 명이나 이곳 덕주에서 실종된 것이다. 지방 수령은 이런 실종사건을 대부분 자살이나 또는 아사로 판정을 내려 보고했으나 특이하게도 증거인 시체는 단 한구도 없었다.
그러니 도찰원에서 남하하며 떠나는 장거웅 감찰어사에게 지나는 길에 실종사건을 재조사해 보라고 명령한 것이다.
강소성과 안휘성 절강성에 심하게 기근이 발생하자 대량으로 유민들이 발생했다. 그리고 유민들이 북쪽으로 이동 중에 많이 죽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눈길이 끄는 내용은 ‘덕주에 도착해 가족이 사라졌다.’고 하며 찾아 달라는 서찰이 계속해서 도찰원으로 보내져 재조사하는 것이다.
“근처에 산적이 있는 것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는 그런 산 도적이 전혀 없습니다.”
일단 재조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장거웅은 수령이 내어준 서류들을 확인서를 써주고 나서 챙겼다. 배로 돌아가 사건 조사서나 보고서를 일일이 검토해 재조사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상관이 배에서 지낸다니 혼자서 객관에서 머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같이 조사하면 더 나은 조사가 될 수 있어.’
장거웅 어사는 처음에는 그저 운이 좋아 공적을 세워 벼슬이 높이진 조선 사람이라고 최인범을 평범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바둑이나 마작도 잘 두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에서 뛰어난 점들을 보이자 그를 진심으로 상관이라고 생각했다.
‘첨도어사님과 상의해 재조사를 시작해 보는 것이 제일 좋겠어.’
본시 장강 이남에서만 감찰업무를 해야 하는 순행첨도어사라 최인범의 본래 임무와는 사실 아무 관련이 없는 별건인 실종사건이다.
사실 재조사는 장거웅이 혼자 수행해야 타당했다. 그러나 막상 재조사를 해보려니 단순한 실종사건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최인범에게 협조를 받으려는 것이다.
배가 있는 선착장으로 다가오던 장거웅은 운하 변의 둑에서 땅콩을 굽는 최인범을 보고 다가와 말했다.
“어사님, 뭐하세요. 땅콩이 모두 타도록 놔두시며 만두만 계속 바라보시고.”
“객관에서 지낸다고 하더니 왜 돌아왔어요? 그리고 호칭을 또 그렇게 부릅니까? 제가 신신당부한 말을 벌써 잊었습니까?”
“아, 그렇군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조심만 해서는 안 되죠.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호칭을 쓰지 마세요. 저는 앞으로 콩을 팔러 다니는 상인으로 행동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나서 장거웅은 주변에 사람이 없자 급하게 자기가 도찰원에서 부여 받은 업무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즉시 그에게 답해 주었다.
“괴이한 사건이군요. 사람은 사라지고 옷만 남다니요. 그리고 여기서만 사람들이 시체도 없이 죽어 갔다니 특히 더 이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유민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라지는 것 같으니 생각보다 큰 실종사건이 분명합니다.”
“그리 보신단 말이죠.”
“그야 당연하죠. 이 사건은 내가 보기에는 고을의 수령도 반드시 연루됐어요. 어찌 보고서를 똑 같이 올립니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죽은 방법도 가지가지 인데. 증거인 시체가 있는 음독이나 목매달아 죽은 자살자는 한 명도 없고 모조리 운하에서 빠져서 죽었다고 보고 했으니 너무 이상하죠.”
시체가 없는 상태로 만들려면 그나마 운하에 빠져서 물고기 밥이 되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실종사건이다. 더구나 주변에 산적도 없다면 더더구나 그런 방법 말고는 달리 보고할 수 없었다.
“주변에 산적이 있어 그들이 죽인 것 같다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나요?”
“그러지 않죠. 그러면 반드시 산적들의 소탕 명령이 내려오거나 또 다른 고을이나 상급 기관에서 군사를 보내 해결하려고 하니 복잡해지죠.”
최인범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서류들을 넘겨보며 당부했다.
“앞으로 나를 만나도 아는 척을 하지마세요. 관아로 갔었다면 반드시 다른 일행이 있는지 미행할 것 같으니까요. 아무튼 나도 이상한 점이 있으니 일단 사건에 대한 서류는 나에게 넘겨주세요. 그리고 대인은 제가 해보라는 조사만 하시면 됩니다.”
“무슨 조사요?”
최인범 자신이 사온 만두 8개와 먼지가 묻은 2개의 만두를 보여주며 지시했다.
“이 만두가 조금 이상해 보입니다. 백두가 나에게 만두를 먹지마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요. 그래서 무색무취한 독약이 들어 있나 아니면 수은이나 다른 어떤 약품이 들어있나 알아 봤으면 합니다. 문제는 여기 사람들은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의원을 만나 봐야 하니 서둘러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중요한 증거이니 포장지도 그대로 가져오고요.”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장거웅이 타고 왔던 관선을 되돌려 북쪽으로 올라갔다.
최인범은 서류를 가지고 배로 올라와 계속 읽었다.
이상하게 이곳 덕주에 오면 유민들은 시체가 없는 상태로 실종되어 버렸다. 그리고 가끔 관아에서 조사해 보고하는 경우는 모두 운하에 빠져 자살했다고 보고서가 올려졌다.
“여기에 흡혈귀가 사는 것도 아니고 너무 이상하군.”
흡혈귀가 산다고 해도 시체가 남아 있으니 그것도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만 들지 도무지 무슨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휴! 내가 조사할 사건도 아닌데 공연히 머리 썩이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최인범은 같은 단어 찾기를 사용해 공통점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사라진 지점을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적인 내용은 단순한 유민이 아니고 재물을 가지고 이사하던 사람은 어김없이 여각에서 마작해 재물을 잃어 혼자나 또는 가족 모두가 자살했다는 점이다.
‘헉! 모두 운하에 빠져 죽고 그중에 몇 명의 옷은 발견했단 말인가?’
이때 산으로 사냥을 갔던 삼형제가 노루를 2마리를 잡고 큰 멧돼지도 3마리를 잡아서 화물선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운하 근처에 있는 개울로 가서 사냥물을 해체했다.
형제들 사냥해서 돌아오자 최인범은 그들과 같이 다시 둑으로 가서 숯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물었다.
“너희들이 사냥하던 근처에 산적은 없던?”
“아뇨. 산적이 많던데요? 그들을 피하느라 사냥에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