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81화 (181/519)

181화

소피아는 자신이 개조한 침실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너무 좋아하는 남자와 다른 여자가 격렬하게 정사를 벌이는 것은 생생하게 목격하고 말았다. 더구나 요란한 감창소리를 10여 걸음 정도 떨어진 옆의 침대에서 들으려니 미칠 지경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명나라 방식인 안방을 그냥 놔두는 건데.’

오만하게 부부가 같이 쓰는 안방의 벽을 허물어 완전히 개방해 넓은 공간을 공유하는 파오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그 죄 값을 단단히 치르는 중이다.

‘각방을 써야 하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왕미령은 급하게 옷가지를 챙겼다. 산해관으로 가서 전당포와 여각을 새로 연다니 같이 가서 알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족인 점원들도 데리고 갈 생각으로 양산봉에게 지시했다.

“양 지배인, 점원들도 가겠다는 사람은 모두 산해관으로 가도록 이야기를 해두세요. 나는 주인님과 같이 먼저 떠나니까요.”

“알겠습니다. 왕 부인.”

이제는 남의 아내가 되었으니 전과 호칭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왕미령은 부인이란 호칭이 듣기 좋았는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배시시.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최인범은 산해관으로 가면서 준비할 것이 많았다. 우선 마적에게 빼앗은 재물도 챙겨야 한다. 산해관 근처에 새로 만들 목장으로 보낼 아랍 말도 가져가야 한다.

일단 조선에서 오는 사람들이 제일 많은 산해관 북쪽에 목장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기회가 생기면 별다른 검색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마목장으로 보낼 생각이다.

‘양도 기회에 사놓으라고 해야겠어.’

그러나 목장을 구입하는 것이 급선무라 3명의 형제들에게 지시했다.

“철갑웅은 나와 같이 산해관으로 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여기서 말을 돌보며 기다려. 철갑웅이 와서 연락하면 바로 말을 가지고 산해관으로 오고.”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사를 준비하거나 또는 소피아가 완전히 발해여각을 인수하고 있는 동안. 급하게 바로 옆에 있는 가게를 찾아갔다.

주인을 만나 다소 후한 값을 주고 건물을 사고 목수에게 집을 새로 개조하게 하고 나서 서둘러 관아로 찾아 갔다.

“발해 전당포를 운영할 생각이니 허가를 내주시오.”

“알겠습니다. 이미 연락을 받았어요.”

북경의 양유승이 이미 관아에 힘을 써두어서 그런지 관리는 쉽게 허가서를 써서 넘겨주었다.

전당포는 물건을 맡기고 은자를 빌리기도 하고 또는 토지를 담보해 은자를 대출 받는 곳이다.

은행이 없는 명나라에서는 전당포가 은행 역할을 대신했다. 하루 종일 걸려 전당포를 개설하고 나자 본래 떠나기로 예정한 것과 약간 차질이 생겼다.

발해 전당포 운영권을 소피아에게 넘기며 당부했다.

“전당포는 노름을 즐겨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빌려주지 않도록 해.”

“알았어요. 전당포를 책임질 아이를 선정하면 그렇게 지침을 내리죠.”

자신이 내기를 자주해서 노름을 즐기는 사람의 성품을 잘 안다. 그들은 돈을 빌릴 때는 굽실거리지만 노름으로 재물을 잃으면 나 잡아먹으라는 식으로 나오니 절대 대출을 금하라고 지침을 내리는 것이다.

“이자는 싸게 받지만 담보물이 확실한 사람만 대출해 줘. 그리고 타타르 여자들이 꼭 필요해서 돈을 빌리러 오면 싼 이자로 대출해 주고. 산해관으로 같이 갈 5명의 타타르 여자도 선발해.”

타타르 여자들을 일부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타타르 여자들은 무술을 지녔으니 왕미령을 보호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각에 타타르 부족의 독특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다.

최인범은 결국 하룻밤을 천진에서 더 보내고 산해관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당초 나중에 따라 오기로 했던 주방장이나 또는 양산봉과 점원들이 같이 떠났다. 아랍 말도 데리고 떠났다.

이삿짐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이동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인범은 마차를 타고 천천히 이동 중인 왕미령에게 당부했다.

“나 먼저 산해관으로 갈 것이니 부인은 일행들과 같이 천천히 오시오.”

“알았어요.”

출발은 같이 했지만 최인범은 흑혈풍을 타고 철갑웅과 같이 산해관으로 먼저 도착했다.

산해관으로 와서 급하게 여각과 상점 그리고 저택을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목장 부지를 구입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관리하기 편하게 여각과 가까운 곳을 선정하려니 조금 시간이 걸렸다.

“처음 생각한 그대로 산해관 밖에 목장을 구입해야 되겠어.”

“쓸 만한 목부가 있나 모르겠군요. 아랍 말은 관리가 어려운데요.”

“우선 목장부터 구입하고 구해 봐야지.”

최인범은 타타르 여자와 혼인하고 이곳으로 와서 군관으로 근무하는 사람을 만나 그의 주선으로 산해관 북쪽에 있는 목장을 구입하게 되었다.

필요한 건물이나 토지를 매입하자 최인범은 간단하게 수리도 시키고 여각의 간판을 새로 달게 했다.

여각, 목장, 전당포는 저택 모두를 고려(高麗)라고 지었다. 본래는 산해라고 지으려고 했지만 산해나 산해관이란 명칭을 가진 가게들이 이곳에는 너무 흔해 그리 정했다.

현판도 새로 달고 인부까지 사서 청소를 끝내고 나자 왕미령이 도착했다. 미리 준비해놓게 되자 이주한 사람들은 짐만 풀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왕미령은 오는 내내 자신이 살 집이 어떨지가 걱정했다. 하지만 크기로나 집의 구조로 보아 천진과 똑 같은 형태지만 새로 지어 더 좋아 보이자 얼굴이 환해졌다.

“어마, 집이 너무 좋군요.”

“모두 부인 앞으로 샀으니 여각이나 전당포 그리고 목장이 내 소유라고 말하지 마시오.”

“알았어요.”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고 조선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산해관이다. 이곳에서 크게 사업을 벌인다고 해야 조선 조정에서 구설수에 올리기 쉽다고 판단한 것이다.

왕미령의 신분은 아직은 부친의 누명이 벗겨지지 않아 신원이 불확실하다. 그 때문에 최인범의 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칫 기녀로 살 처지인 자신을 구해준 남편이라 어떤 대접을 받더라도 사실 불만을 토하고 싶지 않았다.

고려목장에서 일할 목부까지 구하고 보니 황제를 만난 지 어느새 벌써 10여일이 지났다.

남쪽지역을 순행하며 감찰해야 하는 순행첨도어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더 이상 산해관에 머물 수 없어 떠나게 되었다.

“부인, 내가 한동안 남쪽으로 가야 하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잘 지내시오.”

“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여각의 명칭도 고려라 아마 조선출신들이 자주 찾아올 거요. 그러니 그들에게 조선의 소식을 알아내서 수집해 두시오. 그래야 나중에 귀국해도 나나 부인이 쉽게 적응하게 될 것이니까.”

“알았어요.”

나중에는 어찌 변할지 모르지만 최인범은 왕미령은 조선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다. 소피아의 경우 조선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명나라는 가끔 외국인들이 보이니 타타르 부족인 소피아가 그런대로 적응하기가 쉽다. 하지만 조선은 파란 눈의 외국인을 본 경우가 드무니 쉽게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명나라에 그대로 둘 생각이다.

떠날 준비를 하는 중에 돌연 고려여각으로 조정에서 대리사의 관리가 찾아왔다. 대리사는 이미 판결난 사건을 재검토하는 기관이다.

“무슨 일이요?”

“아, 순행첨도어사께서 마침 계셨군요. 저희는 왕 부인 가족들에게 전할 폐하의 교지가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교지라니? 무슨 내용입니까?”

“폐하께서 왕 부인의 부친이신 왕정원 시독학사님의 신원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그런 내용을 가족들에게 알리려고 우선 거처를 아는 왕 부인께 연락하는 겁니다.”

이런 말에 왕미령은 너무 기뻐 눈물을 흘렸다.

같이 지내던 왕미미가 황궁으로 들어가 힘을 써서 해결됐다. 왕미미는 한림원 시경학사이던 부친의 명예가 회복되고 나서 황실로 들어가 후궁인 빈으로 책봉되어 이제야 힘을 쓰기 시작했다.

왕미령의 부친은 모함을 받아 처형되었으나 명예가 회복되어 자손들이 본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됐다.

최인범은 아내의 신원이 회복되자 속으로 안심했다.

‘다행이군. 신분이 모호해 여각을 운영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몰랐는데. 관리들에게 불이익은 당하지 않겠어.’

몇 대에 걸쳐 황제가 엉망이고 환관들이 권력을 잡아 휘두르는 명나라다. 이미 관리들도 대부분 부패한 상태다. 그러니 신분이 낮은 여자가 여각이나 전당포를 운영하면 무슨 트집을 잡아 위협해 뇌물을 챙기려고 할지 모른다.

‘내가 있어도 사실 항상 돌볼 수도 없고 힘을 쓰기도 곤란했는데 잘 됐어.’

황궁으로 들어간 왕미미와 같이 고생하며 지냈으니 왕미령도 그녀 덕분에 관리들에게 어느 정도 대접은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인범이 왕미령에게 눈짓을 하자 그녀는 재빨리 찾아온 관리를 여각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뇌물이 관행인 사회라 좋은 소식을 전해주자 고급 차도 대접하고 이어서 고맙다고 인삼을 슬며시 넘겨주었다.

“정말 고마워요.”

“가족에게 연락해 아들이 대리사로 찾아와 정식으로 서류를 받아 가야 될 겁니다.”

“제가 바로 가족이 사는 곳으로 연락해 찾아뵙도록 하죠.”

최인범은 대리사 관리가 떠나고 나자 자신도 떠나기로 하고 왕미령에게 지시했다.

“뇌물을 주더라도 절대로 은자는 주지 마시오. 지금처럼 되도록 인삼을 건네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문뜩 명나라 조정 관리를 보자 조선 조정으로 서찰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리사 관리가 떠나고 나자 서둘러 장문의 서찰을 쓰게 되었다.

조선 조정에서 받은 유학비를 겸한 여비를 모두 돌려줬다. 하지만 세상이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정문에게 안부 편지를 썼다. 그저 잘 지내고 북쪽으로 갔던 업무는 무사히 끝내고 본래 가려던 남쪽으로 떠나게 됐다는 소식만 적었다.

“이 편지는 조선으로 가는 인편을 통해 보내시오.”

“알았어요. 잘 알아 봐서 전하지요.”

남쪽으로 떠날 준비를 끝낸 최인범은 왕미령과 헤어져 천진으로 향했다. 그의 옆에는 아랍 말과 몽골 말의 교잡종으로 덩치가 큰 말을 탄 철씨 삼형제가 따라가고 있었다.

천진의 발해 여각으로 돌아오자 여각에는 장거정 감찰어사가 숙박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적인 볼 일로 너무 지체했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혹시 너무 지체한 것은 아닌 가요?”

“아닙니다. 10일 정도야 항상 통용되는 기간이니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제가 첨도어사님께서 타타르 여자들의 정착 때문에 조금 출발이 늦어진다고 보고는 했습니다.”

“알겠소. 그럼 바로 떠납시다.”

최인범은 발해여각에서 잠시 운영에 대해 소피아에게 여각의 소유권의 이전 절차만 끝내고 바로 떠나게 됐다. bthvl아를 만나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소피아, 산해관에서 너무 지체했고. 감찰어사 업무를 수행해야 하니 이번에는 여행을 같이 떠나기는 곤란해요. 더구나 남쪽에는 가뭄 때문에 기근이 들어 도적의 무리들도 많고 각종 전염병이 만연하니 그대는 여기서 지금처럼 있는 것이 좋아요.”

“그래도 약속했으니 하룻밤은 보내고 떠나야죠.”

“황제께서 출발이 늦다고 독촉하면 곤란하니 바로 떠나야 되요.”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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