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여난은 가정제의 몫>
교지를 내려 간단하게 타타르 여자들의 입국과 정착을 허락한다고 했다. 거용관으로 갔던 왕담보도 같이 돌아오자 최인범은 그에게 물었다.
“왕 대인, 북경에서 다른 소식을 없습니까?”
“어사님, 있습니다. 타타르 여자들 중에 20명은 자금성의 시녀나 후궁으로 들인다고 합니다. 거용관에서 동창소속인 내관들이 와서 심사해 선발할 것이라고 하옵니다.”
“알았소! 그럼 됐소.”
자신의 예측대로 황제는 탐욕스럽게 여자들을 황궁으로 끌어들인다고 명령했다. 황제는 동창을 통해서도 수많은 처녀들을 황궁으로 들여오고 있으니 이미 예상한 일이다. 아무튼 너무 여자를 탐하고 싹수가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야 더욱 깊어졌다.
‘등신이 꼴에 여자를 엄청나게 탐해요.’
아무리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에 황제의 명을 무시할 힘이 없으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왕 대인, 다른 타타르 여자들은 어떻게 정착시키고요?”
“다른 여자들의 경우는 별도로 오호도독부에서 지침이 내려오게 될 겁니다.”
“오호도독부에서 그런 지침을 내려요?”
“예, 그냥 병사들의 임지를 정하는 정도만 명령서로 내리고 나머지는 구두로 지침을 통보할 겁니다.”
중요한 내용이라 최인범은 이런 사실을 즉시 소피아에게 전했다.
“소피아, 20명은 따로 황궁으로 들어가야 된다는군. 그러니 네가 어떻게 처리할지 잘 생각해 봐.”
“알았어요. 제가 잘 처리하죠.”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되자 소피아는 최인범에게 시집을 왔다고 주장하는 사촌들을 설득시켰다. 사촌이라도 신분차이가 있는 처지라 사실상 소피아와 두 여자는 전혀 다르다.
“어때, 황궁으로 들어가 사는 것도 좋지 않아.”
“알았어요. 저희들은 황궁으로 들어가죠.”
두 여자는 합류하고 보니 최인범은 명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멀리 조선에서 온 사람이고 또 언제 귀국하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옆에서 있다고 해서 반드시 부인으로 받아 줄지도 모른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자 황궁으로 들어가 사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피아와 달리 두 여자는 무척이라 사치하는 것을 좋아하고 화려한 생활을 기대했다. 그러니 처음 예상과 달리 최인범이 아주 평범하게 아주 검소하게 생활하자 마음이 변한 것이다.
결국 황제의 탐욕 때문에 타타르 부족의 귀족에 해당하는 두 여자는 황궁으로 들어가기로 정해졌다. 그리고 18명의 시녀 후보자들도 미리 선발했다.
선발된 여자들은 즉시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허름한 옷을 벗고 다소 화려한 비단옷으로 갈아입거나 또는 화사하게 화장했다.
대상은 미모도 보고 또한 북경어를 조금은 할 수 있는 여자로 정해졌다. 소피아가 나서서 일시에 여자들의 거취를 일사천리로 정리하는 것을 바라보며 최인범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타타르 부족이 명나라에 첩자를 심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한 것 같아.’
의심되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멀리 서쪽으로 떠난 타타르 부족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성이 있나 싶었다. 뭔가 북원 세력과 밀약하고 미래를 계획해 황궁이나 북경 주변에 다수의 첩자를 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사실을 여자들에게 물어보거나 또는 추궁해 꼭 확인할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명나라가 어떤 해를 입던 타타르 여자들이 첩자로 활동해 어떤 정보를 빼내던 자신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왕담보는 북경으로 가서 알아낸 소식을 전달했다.
“어사님, 천진에 있는 왕미미는 황궁으로 들어갔습니다.”
“뭐요? 황궁에는 왜?”
“그 여자의 아버지 죄가 이제야 억울하다고 밝혀져 신분을 회복했습니다. 폐하께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시며 후궁으로 받아 준다고 해서.”
자신의 여자를 채가는 형태라 최인범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뭐요? 아니 누명을 써서 억울하게 부모를 죽여 고생을 시켰으면 보상으로 많은 재물이나 줄 일이지 왜 후궁으로 들인단 말이오?”
최인범은 놓친 고기가 더 커보여서 그런지 왕미미의 고운 얼굴이 떠오르며 아쉬움이 생겼다. 아내로 받아들이라고 할 때는 거절하더니 이제 와서 이러니 왕담보는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그게 뭐 이상한가요? 어사님, 그 여자의 처지로 보나 가문으로 봐도 모두 영광인데요.”
“영광은 무슨.”
“어사님, 제가 보기에 어사님이 너무 이상하시네요. 다 끝난 일에 미련을 가지시고요.”
“험! 나는 그 이야기가 아니고 황실에는 후궁이 너무 많으니 왕미미가 불행할 수도 있어서.”
“그렇지 않아요. 왕미미는 가족들도 이제 벼슬하게 됐다며 좋아하면서 황궁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니 너무 그런 일에 마음 쓰지 마세요.”
최인범은 꼭 왕미미의 미모가 탐나서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왕미미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원 역사대로 돌아가면 왕미미가 죽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데.’
황제를 후궁들이 떼로 달려들어 죽이려고 한 임인궁변이 그대로 진행될까 그게 제일 걱정이다.
또한 최인범은 특별한 몸이다. 그러니 여자들의 인권이나 미래를 보는 관점과 왕담보가 바라보는 시각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도 조선과 비슷했다.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가문이 아닐 경우는 자신들의 딸이 황제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후궁으로 들어가면 가족들의 출세가 보장된다.
‘앞으로 천진의 사업은 왕미령과 소피아가 담당하는 수밖에 없겠어.’
주변에 너무 많은 여자들이 포진되어 은근히 머리가 아팠는데 황제의 탐욕 때문에 그런대로 잘 해결되었다. 물론 약간의 아쉬운 점은 있었다. 그래도 본인들이 황궁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죽자 살자 반대하지는 않는 처리 방식이다. 그래서 그럭저럭 마음이야 편했다.
“어사님, 미리 선발된 여자들이니 먼저 데리고 거용관으로 가겠습니다.”
“아, 그래도 됩니까?”
“그렇습니다. 동창의 환관들이 사실 별의미가 없어 선발을 귀찮아합니다. 왕미미나 새로 후궁으로 들어가게 되는 여자들은 모두 서궁에서 같이 지내게 된다니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알았어요. 그럼 먼저 들어가세요. 나는 남은 여자들에 대한 거처를 정해주고 북경으로 가죠.”
이어서 공적이 있는 병사와 하급군관들에게도 오호도독부에서 명령이 내려졌다. 200명의 호위부대원 중에 분가해도 되는 차남들이며 총각인 사람을 선발해서 타타르 여자들과 혼인해 정착시키라고 했다.
황제가 일일이 소소한 문제까지 하명할 경우는 없었다. 그 때문에 오호도독부에서 타타르 부족 출신 여자들에 대한 조치를 내린 것이다.
최인범은 이런 명령을 받게 되자 전령에게 물었다.
“타타르 부족 여자와 혼인하는 병사는 앞으로 어디서 정착하지? 서로 문화가 달라 같이 모여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어사님, 그건 크게 염려 안 해도 될 겁니다. 이미 오호도독부에서 마적을 소탕한 호위부대원들은 공적을 인정해 직급도 올렸어요. 다들 한 단계나 두 단계씩 올려서 천진과 산해관으로 배치했으니까요. 타타르 족과 혼인하는 병사들은 모두 그쪽으로 발령이 날겁니다.”
“오라, 그래서 분가해도 되는 차남을 대상으로 정했군.”
호위부대원들은 본시 거용관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용관에 너무 많은 타타르 여자들이 정착하는 것을 꺼린 명나라 조정에서는 멀리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호위부대원을 대상으로 조건에 부합되는 사람을 확인해 보니 60명 정도가 되었다. 설사 장남이라도 총각이고 이주가 가능한 사람은 대상에 포함되었다.
호위부대가 북경으로 가서 무슨 해단 식을 별도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거용관으로 들어가 입국한 사실만 보고하면 모든 임무는 끝난다. 그래서 초원의 끝자락인 이곳에서 집단으로 혼인시키게 되었다.
나중에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형편에 따라 또 축하 잔치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장의 딸이 있어 조금은 배려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혼인을 시켰다.
졸지에 많은 타타르 여자들의 친정아버지와 비슷한 후견인 자격이다.
최인범은 큰절을 받으며 덕담과 함께 신혼부부에게 선물을 주었다. 거용관에 있을 말을 1필씩 차지하게 약속하고 약간의 은자를 주었다.
“잘 살도록 해. 나중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고 발해 여각으로 연락하고.”
“감사합니다.”
“특히 내가 그곳에 전당포를 열 것이니 급전이 필요하면 반드시 찾아와. 너희들에게는 싼 이자로 필요한 자금을 빌려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정말 감사합니다.”
소피아는 자신이 혼수라고 가져온 많은 옷이나 비단 그리고 카펫을 여자들에게 넘겨주었다. 혼인을 끝내고 나서 마지막으로 초원에서 축제가 열렸다.
타타르 여자들은 모두 말을 타고 초지나 숲으로 가서 신혼 방을 꾸몄다. 그저 말에 모포만 가지고 사람들의 눈만 피해 야외에서 정사를 벌였다.
주둔지 주변은 수많은 남녀들이 토해내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그러자 다소 자중하던 소피아도 그런 열기 때문인지 후끈 달아올라 독촉했다.
“저도 오늘 결혼하면 안 돼요?”
“어허, 또 그러네. 여자가 조금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고.”
소피아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그러나 최인범은 소피아의 이런 행동이 어째 많이 놀아난 여자와 같은 기분이라 망설이고 있었다.
서로 문화가 너무 다르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최인범은 아직은 완전히 명나라로 진입하지 못했으니 자중했다. 만약 지금 정사를 벌이면 소피아의 하는 행동이 전보다 많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리 되면 거용관에서 기다리는 동창의 관리들이 눈치를 챌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완벽하게 속이려면 조금 기다리는 것도 좋아.’
휘향 공주를 뒤로 빼돌린 이세창은 그녀를 남장을 시켜 군사들 틈에 섞어 거용관을 통과했다. 그런 행동을 알고 최인범은 너무 놀랐다.
‘이세창이 생긴 것과 달리 야심도 많고 지모가 뛰어나.’
최인범은 모르지만 사실 이런 계획은 모두 휘향 공주의 아비가 계획한 것이다. 그리고 몰래 빼돌린 휘향 공주는 이세창이 부인으로 맞이하기로 약조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최인범은 호위부대원과 타타르 부족인 여자들과 같이 거용관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용관에는 동창 소속인 환관들이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왕 대인 무슨 일로 내관들이 북경으로 안가고 우릴 기다린 거죠?”
“어사님, 자신들이 직접 살펴서 선발한 형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타타르 출신 시녀나 후궁에게 명나라 황실의 예절을 가르치려는 거죠.”
검은 두건을 들추며 한 명씩 확인하던 환관이 소피아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중얼거렸다.
“허, 너무 아깝군. 얼굴에 흉터만 없으면 미인인데.”
“그렇군요.”
이런 소리에 최인범은 태연하게 지켜봤지만 내심 뜨끔했다.
‘소피아가 준비를 철저하게 안했으면 모조리 탄로 날 뻔했어.’
소피아를 비롯한 남은 20명의 타타르 여자들의 반은 상당한 미모를 지닌 미인들이다. 소피아는 자신 옆에서 몸종으로 지낼 여자들은 따로 뽑아 놓았다.
높은 경지에 다다른 무술 실력을 지닌 최인범이 보기에 타타르 여자들은 달랐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변에 남은 여자들이나 이미 황궁으로 들어간 여자들은 모두 전사들이다.
‘그 여자들이 혹시 황제를 죽이려고 시녀로 숨어 들어간 것이 아닐까?’
남아 있기로 결정된 타타르 여자들은 거용관으로 들어서며 이상하게 행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