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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76화 (176/519)

176화

다음날 왕담보와 이세창은 말 1000필을 몰고 먼저 거용관으로 가게 되었다.

“왕대인, 가서 잘 처리하세요.”

“알겠습니다.”

“이 장군도 잘 처리하시고요. 자칫하면 여러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 언행을 항상 조심하세요.”

“넷!”

그들이 떠나고 나자 최인범은 두 부하와 새로 생긴 3명의 부하들과 같이 주변을 정찰을 겸해 돌아 다녔다. 부족장의 딸이나 조카딸과 계속해서 면대하기가 거북스럽기 때문이다.

호위부대원들이나 타타르 여자들이 쳐놓은 파오나 천막이 훤하게 보이는 언덕에 올라 커다란 바위에 앉아 부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황제가 시녀들을 다시 자금성 안으로 들여보내겠다고 명령하면 너희들은 천진에 있는 두 여자와 혼인해도 되니 그렇게 알도록 해.”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판단해 이렇게 지시했다. 그러자 두 부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거절했다.

“소대장님, 그건 안 됩니다. 아니 소대장님을 남편으로 알고 사는 여자들인데 저희들과 혼인을 안 할 것이고 사실 명문가 출신이라고 해서 저희들은 버겁습니다.”

“뭐라? 미녀인데 싫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번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미녀와 혼인해서 산다는 것은 저희들로는 너무 부담스럽군요. 그러니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가면 저희와 같은 노비 출신인 처녀와 장가를 가겠습니다.”

“이상하군. 미녀라 좋다고 하더니 거절하다니.”

두 사람은 그저 초원에 있을 때는 신분이란 굴레에 대해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신분제도가 확실한 명나라로 입국하게 되자 자신들의 처지가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조선으로 돌아가면 비록 평민으로 풀린 상태라도 과거 신분이 항상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 모두 왕담보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그것도 최인범의 배려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혼인한다고 해서 당장 무슨 살림을 꾸릴 여건은 되지 못했다. 평생 옆에서 모시기로 한 최인범이라 홀몸이 따라다니기 편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다.

“싫다면 하는 수 없지.”

부하들을 통해 두 미녀를 처리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최인범은 자신이 명나라로 올 때 적어 놓은 종이를 펼치고 살폈다. 천천히 읽어보던 최인범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몽골에서 양을 사서 개마고원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소대장님, 그거야 나중에 귀국하면서 준비해야죠. 지금 누가 양을 가지고 조선으로 귀국해요.”

“하긴, 장강으로도 내려가서 할 일이 있으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면 되겠네.”

우선 당장 시급한 일은 새로 생긴 세 명의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 부르기 쉽고 그들의 특징을 살릴 필요성이 있어 곰곰이 생각했다.

칭기즈칸을 추앙하는 몽골 인이라 성은 철(鐵)로 정하고 곰같이 생겨 웅(熊)을 돌림으로 사용해 첫째는 철갑웅, 철을웅, 철병웅으로 정했다.

이번에 북경으로 돌아가면 만사를 제치고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북경으로 돌아가면 두 사람은 집중해서 안경을 제조하는 곳을 찾아보도록 해.”

“전에도 찾아 봤지만 만드는 곳을 찾기도 힘들고 저희들은 안경을 사용하는 재력가를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

“왕 대인에게 부탁을 해봐.”

“알겠습니다.”

원나라 때 이미 안경이 보급되었으나 너무 고가라 일반인은 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안경을 제조하는 사람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최인범은 조선에도 안경을 널리 보급해볼 생각이다. 또한 자신에게 필요한 망원경을 만들기 위해서 안경 제조업자를 만나려는 것이다.

남들이 주변에 있으면 함부로 나누기 곤란한 문제에 대해 이렇게 사냥을 핑계로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아무 것이나 잡아서 돌아가자.”

“넷!”

초원 지대와는 달리 계곡이 있고 숲이 있는 산이다. 숲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10여 마리가 모여 있는 멧돼지 무리를 발견했다. 당연히 활을 쏘아 잡아도 되지만 최인범은 철씨 형제들에게 명령했다.

“멧돼지 잡아.”

“넷!”

부하들의 무술 실력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런 지시를 하는 것이다. 명령을 받은 삼형제는 단창을 들고 내달렸다. 그들은 빠르게 달려 다가가 최인범이 항상 던지는 30미터 정도 떨어져 단창을 힘차게 던졌다.

획! 쿠엑!

고리가 달린 단창을 전에 쓴 경험이 있는지 모두 단창을 익숙하게 사용했다. 비록 활은 쏘지 못하지만 단창으로 충분히 원거리 공격이 가능했다.

세 명 모두 무술 솜씨가 비슷했다. 그래서 세 사람 모두 단창을 던져 크고 작은 멧돼지를 잡고 나자 별로 힘들어 하지 않으며 어깨에 멧돼지를 둘러메고 돌아왔다.

‘됐어. 이런 정도면 충분해.’

힘이 좋으니 무거운 사냥물을 쉽게 나르고 또한 달리기도 잘했다. 옆에서 같이 다니는 호위병으로 쓰면 적당해 보였다. 아무리 무술이 뛰어나도 떼로 달려드는 적이나 또는 전에 호랑이처럼 기습적으로 공격을 하면 자신도 위험할 수 있으니 호위병을 달고 다닐 생각이다.

‘귀찮아도 그게 좋아.’

더구나 명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어 버렸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물었다.

“너희들도 말을 탈줄 알겠지?”

“넷! 잘 타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탑니다.”

체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몽골 말을 타고 다니기는 조금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다시 지시했다.

“홍 상병, 거용관으로 가면 형제들에게 필요한 덩치 큰 아랍 말부터 구해 줘.”

“넷!”

개울가에서 사냥물을 해체해서 간과 심장을 날로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인범은 다른 문제는 쉽게 해결하고 있지만 이제 너무 많아진 주변의 여자들 때문에 고민이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100명은 데리고 있다가 다들 혼인시키면 돼.’

다른 여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타타르 부족장의 딸과 조카딸들이 제일 신경이 써졌다. 그냥 남들에게 줘서 버려버리자니 조금은 아깝다. 자신의 품에 거두자니 세 명은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한 두 명을 가져가지 않나?’

사냥을 하며 최인범이 이런 생각을 하는 중. 명나라의 자금성 안 건청궁에서는 그가 올린 보고서인 장계를 보며 신료들이 황제와 논의하고 있었다.

“폐하, 최 어사가 올린 장계에 대한 처리를 어찌 하오리까?”

“뭐가 문제인가?”

“폐하, 먼저 다시 돌아온 시녀들에 대한 처리를 결정해 줘야 하옵니다.”

“그야 다시 돌아왔으면 전처럼 황궁 안에서 지내게 하면 되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폐하, 결투해서 다시 데려 왔으니 시녀들을 결투해서 승리한 병사들에게 하사하심은 어떠한지요?”

이런 주청을 받자 황제는 발끈해서 노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경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황제인 나의 여자인 시녀를 함부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다니. 그런 발칙한 생각을 어떻게 하나?”

음욕이 유달리 강한 황제는 타타르 부족에게 줄때는 언제고 다시 돌아오자 시녀들을 탐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는 그 시녀들은 자신의 품에서 살아야 될 운명이라 다시 돌아온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가정제는 모두 자신의 품안에 거둘 심산이다.

이런 명령에 신료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들 황당하게 생각했다.

‘무슨 여자 욕심이 저리 많은지. 모두 엄숭이 중간에 농간을 부려서 항상 저러시는 거야.’

명나라의 황실의 경우 조선의 왕실과 조금 다르다.

조선은 궁녀의 경우 시집을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명나라의 경우 시녀들은 황제의 허락을 받아 얼마든지 시집을 보낸다. 그리고 과부들이 재혼하는 문제도 조선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지만 명나라는 다소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자 황제는 또 다시 명령했다.

“타타르 여자들이 100명이나 오고 있다니 그 여자들 중에서 20명을 선발해 황궁으로 보내도록 해. 짐이 그 여자들 중 마음에 드는 경우 후궁으로 삼지.”

“명을 따르겠나이다.”

이런 황제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임인궁변은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아무래도 연사란 큰 줄기는 쉽게 변하지 않는 가보다.

호위부대는 거용관에서 하루가 걸리는 곳에 숙영하고 있었다.

최인범은 새로 합류한 부하들에게 자신이 아는 격투기를 알려주며 시간을 보냈다. 본래 지니고 있던 무술과 많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빠르게 숙달되었다.

그런 가운데 두 부하에게는 안경 제조 기술자를 찾으면 그 후에 무슨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소대장님, 제조 기술을 빼내라고요?”

“그래, 조선으로 가서 안경을 제조할 것이니 기술을 빼내도록 해.”

“잘 알겠습니다.”

방법은 많은 안경을 주문하면서 접근해 제조 공정을 살펴 알아내라는 것이다.

힘들 수 있지만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기술을 알아낼 수 있었다. 조선에도 기술자들이 있겠지만 왕실과 연결되기 싫어 별도로 북경에서 기술을 획득할 생각이다.

며칠간 같이 지내다 보니 소피아와 조금 친해졌다. 틈만 보이면 침상으로 들어올 태세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달래는 중이다. 소피아는 그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성깔이 있어서 그런지 때로는 협박하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나오시면 저 북경으로 가서 다 말할 겁니다.”

“뭐를 말해?”

“제가 모를 줄 알았나요? 명나라 공주를 시녀와 바꿔치기 한 사실요. 그 여자는 지금 이세충이 데리고 있잖아요.”

“뭐야? 이세충이 그런 짓을 했어.”

최인범은 모두 알고 있는 소피아에게도 시치미를 때는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비밀을 폭로한다는 입은 틀어막아야 한다. 그 때문에 최인범은 소피아와 드디어 사냥을 나가 가벼운 입맞춤으로 우선 달랬다.

활을 쏘아 잡은 오리를 구워놓고 자연스럽게 품에 안긴 소피아의 입술을 덮쳤다. 그러자 소피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에 팔을 강하게 두르며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입고 있는 옷을 훌러덩 벗으려고 하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떨어지며 다독였다.

“소피아, 지금 너무 이러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니 나중에 천진으로 돌아가면 그때 혼인하고 같이 멀리 남쪽으로 여행해.”

“알았어요. 약속은 꼭 지키실 거죠?”

“당연하지.”

며칠간 사냥을 하면서 황제의 명령이 오기를 기다렸다. 황제의 입국 허가가 떨어져야 타타르 부족인 여자들과 같이 거용관을 통과할 수 있으니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북경에서 전령이 호위부대가 머무는 숙영지로 찾아와 황제의 명령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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