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홍성철은 놀라는 최인범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소대장님, 소신이 보기에도 같은 파오를 쓰시는 것이 타당합니다.”
재물이 탐나 덜컥 미인을 차지하는 대결을 벌여 승리했다. 졸지에 별 생각 없이 부인을 동시에 세 명이나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미쳐. 이 노릇을 어찌하나.’
아무리 다다익선이라고 해서 여자가 많으면 좋다고 하지만 최인범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조금은 난감했다.
갑자기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3명의 여자들과 같이 지내려니 너무 어색했다. 그래서 슬며시 파오에서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이때 타르족과 거래를 빠르게 끝낸 왕담보가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무슨 좋은 일이 있소?”
“어사님, 타타르 부족장이 화가 나서 우리와 거래도 하지 말라고 하더니 어사님께서 호피를 보내주자 금방 풀려 쉽게 거래를 끝냈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래 뭐와 교환을 했습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랍에서 만든 카펫, 황금과 백은제품, 아랍 말 500필과 바꾸었지요.”
이런 답을 듣자 최인범은 즉시 물었다.
“그렇다면 상으로 내놓기로 한 500필도 모두 아랍종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랍종과 몽골말을 교잡했지만 품종개량에 실패해 다시 몽골말의 혈통을 보존한 여진 말을 구해서 돌아가려고 일부러 왔던 것입니다.”
최인범은 왜 굳이 멀리 동여진에서 구한 몽골말을 조선에서 들여와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나라 서쪽에 있던 타타르 부족은 유럽과 아랍의 말을 대량으로 들여와 교잡종을 만들어 개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타타르 부족은 몽골 고원으로 가서도 순수한 몽골말을 대량으로 구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결국 타타르 부족은 전 시대의 우수한 몽골말에 가까운 동여진에서 사육하는 말들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개량에 실패한 것은 품종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무조건 방목하다가 보니 오히려 말의 능력이 떨어져 버린 것이죠.”
최인범도 조선에서 품종개량을 염두에 두고 있어 물었다.
“우수한 말들은 있나요?”
“말이 1000필이나 되니 고르면 있겠지요. 하지만 타타르 부족이 좋은 말을 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별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저도 그저 짐말로나 사용하려고 싸게 구입했으니까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 타타르 부족 측에서 10대의 우마차가 와서 짐들을 내려놓았다.
“그건 뭔가?”
“족장님이 따님과 조카딸에게 드리는 물건입니다.”
열불이 나서 그냥 작은 보따리만 들려 보내고 보니 조금 마음이 그래서 다시 혼수품으로 보내준 것이다. 물건 중에는 부족장이 사용하는 큰 파오도 있고 많은 전통 복장의 옷이나 또는 유럽풍이나 아랍풍의 가구들이 있었다. 많은 혼수품을 보낸 것이다.
이런 혼수 물건을 보냈다고 해서 안심할 처지는 아니었다. 물건들을 그대로 인수해 쌓아 놓고 최인범은 별도로 소형 천막을 치고 자게 되었다.
앞으로 타타르 부족인 3명의 여자들을 어찌 대해야 될지도 고민이다. 조선으로 언제 돌아가야 하는지 등을 고민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곤하게 잠을 자는 중에 홍성철이 천막으로 다가와 크게 외쳤다.
“소대장님, 타타르 부족이 떠났습니다.”
“뭐? 벌써 떠나?”
“넷! 밤사이 떠날 준비를 한 것인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조리 서쪽으로 사라졌습니다.”
“말은?”
“1000필의 말과 여자들 100명을 놓고 떠났습니다.”
말이야 당연히 상금이거나 또는 대금을 주고 구입했으니 놔두고 가야 하지만 여자들을 100명이나 두고 사라진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여자들은 왜 놔두고 갔다는 건가?”
“여자들 말로는 모두 소대장님의 몸종으로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뭐라? 내 몸종으로?”
“넷! 소인이 보기에는 딸이나 조카딸을 멀리 시집보내며 너무 외로울까 봐 주변에 타타르 여자들을 두고 떠난 것 같습니다.”
유목민들의 특성상 이동 속도는 매우 빠르다. 아무튼 귀신에 홀리듯이 타타르 부족은 자신들이 머물던 곳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어떤 물건이나 쓰레기 한 점도 남지 않았다. 그저 말이나 가축들의 분뇨만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유목민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 때문에 숙영하고 나서 떠날 때는 파였던 자리를 메우는 등의 정지작업을 해서 모두 전과 똑같이 만들고 떠난 것이다.
‘이래서 유럽에서는 몽골부대를 유령이라고 했어.’
최인범은 자신도 북경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찾아온 군관들에게 지시했다.
“이세충 장군에게 연락해서 먼저 말 1000필을 몰고 먼저 돌아가라고 해.”
“넷!”
별로 공적이 없는 그에게 샀던 공짜로 생겼던 말 1000필이라도 직접 몰고 가게 해 공적을 인정받으라는 뜻이다. 지시를 받은 이세충은 말들을 일일이 살피며 수를 헤아리거나 또는 병든 말이 없는지 살폈다.
200명의 목부들이 말에 올라 5마리씩 모는 형태로 떠나게 되자 자연히 숫자는 확인되었다. 소유권이야 당연히 최인범이나 또는 왕담보가 가지고 있다.
그래도 늘씬해 보이는 아랍 말을 가져가니 명나라 병사들은 다들 좋아했다.
“말을 다시 가지고 가니 좋군.”
“아랍 말들이 키가 커서 늘씬하기 보기가 좋지.”
장기간 이동해야 하는 전쟁에서의 전투력으로야 다소 떨어지지만 아랍 말은 우선 보기에는 좋아 보였다.
최인범은 새로 수하로 받아들인 부하를 포함해 5명의 부하와 6명의 여자들과 제일 후미에 떠나고 있었다.
드디어 초원 지대를 이동해 산이 이어지는 남쪽에 도착했다. 초원과 이어지는 끝인 계곡에 도착하자 선물로 받은 파오를 쳤다.
이제는 여자들도 말을 타고 이동해 올 때와는 다르게 이동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러니 내일 저녁이면 거용관에 도착하게 된다. 이번에 타타르 부족과 접촉한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파오로 이세충도 부르고 왕담보도 불렀다. 먼저 말 1천필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 이번에 같이 오게 된 군사나 연경상단에서 말을 보유한 사람의 경우 모두 본인이 원하면 아랍말로 바꾸도록 해요. 그래서 1천필의 수만 채워서 연경상단에서 조금 싸게 조정으로 넘기세요. 조정에서 구입하지 않는다고 하면 연경 상단에서 임의로 판매하면 되고요.”
“잘 알겠습니다.”
의외로 모두 쉽게 답하자 최인범이 이세충에게 물었다.
“이 장군은 다른 의견이 없어요?”
“없습니다. 사실 조정에서 싫어하지 않는 조건이죠. 아랍 말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전투에서는 조금 모자랄지 모르지만 단거리나 또는 의장용으로는 우선 늘씬해서 인기가 좋습니다. 그러니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처리하고 다음에는 여자들 문제입니다.”
“여자요?”
“휘향 공주의 시녀들은 본시 황궁 소속인데 지금 그대로 병사나 군졸 그리고 제 부하들이 차지해도 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일시에 너무 많은 타타르 여자를 입국시킨다는 것도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군요. 그런 문제가 있군요.”
최인범이 이렇게 말하는 뜻은 혹시 조정의 신료들이나 또는 황실 내부에서 많은 여자들을 최인범이 독단으로 처리했다고 시비를 걸지 않겠냐는 의미다.
개인자격이 아니고 호위부대를 감찰하는 위치인 감찰어사 신분이다. 그러니 공적인 임무를 수행 중에 모든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에 신중했다.
미쳐 그런 생각을 못한 이세충과 왕담보가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무작정 데리고 갔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신중하게 처신하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소한 일로도 중상모략을 당하고 또한 최인범이 알기로는 휘향 공주가 시녀와 바뀌었으니 더욱 조심하는 것이다.
그런 일만 아니면 적당히 처리해도 문제가 간단할 수 있다. 하지만 공연히 시빗거리를 만들어 그런 행위가 들통 나면 그건 황제의 명령을 고의적으로 어긴 짓이라 문제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었다.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던 두 부하가 기겁해서 즉시 답했다.
“어사님, 저는 시녀를 포기하겠습니다.”
“저도요.”
과분하게 미인인 시녀를 차지하려다가 자칫해서 황제나 조정 신료에 괘씸죄에 걸릴 수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객사하는 경우가 발생할지 모른다. 우선 안전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 쉽게 포기했다. 시녀들의 미모가 욕심이야 났지만 하나 뿐인 목숨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부하는 포기했으니 장군의 부하들도 시녀를 차지한 사람은 모두 포기하라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하급군졸이 차지한 여자가 3명 그리고 이세창이 차지한 여자와 두 부하가 차지한 시녀까지 6명을 일단 황실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불만이 있는 부하는 다른 여자로 대체해 준다고 하세요. 내 몸종으로 이주하게 되는 여자들이 100명이나 되니 그들 중에서 골라 혼인시켜준다고 약속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큰 불만은 없을 겁니다.”
너무 많은 여자가 주변에 있었다. 졸지에 처지 곤란 여난이 불어 버렸다.
최인범은 일단 북경으로 돌아가 황제의 처분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타타르 족장의 딸이라는 사실은 일단 발설하지 않도록 했다.
“이 장군, 내 생각에는 굳이 부족장의 딸이나 조카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병사가 없으니 철저하게 숨기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명나라 병사는 부족장의 파오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그저 미녀를 걸고 결투를 벌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100명이나 되는 처녀들이 별도로 있으니 얼마든지 그녀들 속에 포함시키면 숨길 수 있었다.
이세창은 이미 황제의 명령을 어긴 입장이라 최인범의 제안에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런 정도로 여자들 문제까지 해결되자 최인범은 명나라 조정으로 올리는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
타타르부족장을 만나 휘향 공주를 넘겨주고 말 2000필도 넘겨주고 이후에 결투를 여러 차례 벌였다고 보고했다. 그 결과 명나라 시녀 6명과 타타르 부족인 여자 106명을 정착시켜 주는 조건으로 말 1000필을 구입하거나 또는 선물로 인수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런 정도면 됐나요?”
“어사님, 그런 정도면 충분합니다.”
“서로 말이 다르면 곤란하니 똑 같이 어디서고 말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달리 쓸 수도 있지만 이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결투를 벌여 시녀를 돌려받은 이세창, 두 부하, 그리고 명나라 병사나 혹은 군졸에 대한 명단도 기록해 보냈다.
많은 여자들을 데리고 입국해야 한다. 그 때문에 일단 서류로 보고를 먼저하고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면 거용관을 통해 들어갈 생각이다.
200명의 호위부대는 자신과 같이 움직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