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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74화 (174/519)

174화

“어사님, 황족들의 여론이 나쁘게 변하면 저야 북경이나 어디서고 장사하기 힘들어지죠.”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았소. 안심하고 기다려 보시오. 내가 최선을 다할 것이니까.”

“어사님, 꼭 이기세요.”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자 최인범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서서히 몸을 푸는 최인범의 등에 생긴 호랑이 발톱 자국이 점점 진하게 붉어졌다. 상처에 호랑이 약을 발라 이제는 모두 아물러 버렸지만 흉터로 남아 있으며 힘을 쓰면 붉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등에 난 상처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크게 외쳤다.

“와아! 용이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용이야.”

최인범 자신은 등이라 확인할 수 없었으나 등에 난 상처는 이상하게 여러 마리의 용 형상을 나타냈다.

자세하게 보면 맹수에게 입은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붉은 용들이 마구 뒤엉켜 꿈틀거리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와! 진짜 대단한 용사야!”

“와! 진짜 멋진 경기가 되겠어.”

이때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타타르 부족장의 딸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치켜뜨며 반짝였다. 그녀는 최인범의 벗은 상체나 얼굴을 보며 놀랐다.

‘표범 같은 몸을 지녔네. 정말 멋지게 생겼어.’

노예는 우람한 불곰과 같아 보이지만 최인범은 그에 비하면 몸도 약간 호리하고 매우 날렵해 표범과 같았다.

부족장의 딸인 소피아는 혼혈로 검은 머리에 파란 눈을 지녔다. 러시아 귀족 출신인 어미와 순수한 타타르족의 혼혈이다가 보니 체구가 크고 또한 다른 부족민들에 비해 키도 매우 컸다.

노예의 주인은 부족의 참모로 나이가 많은 남자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장의 딸인 소피아는 젊고 잘생긴 최인범이 이기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덩치로 보나 뭐를 봐도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늙은이에게 시집을 가야하나?’

정황으로 보아서는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되지만 그래도 뭔가 믿는 것이 있으니 도전했다고 생각했다.

‘이겨야 좋은데.’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꼭 이겨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결투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손에 땀방울이 생기고 초조했다.

이윽고 준비 운동을 마친 두 사람은 중앙에서 마주해 결투를 시작했다. 노예는 주로 레슬링 선수가 상대방을 잡으려고 하는 동작처럼 양팔을 벌리고 움직였다.

그에 대항하는 최인범은 마치 태권도 경기를 하듯이 다소 깡충거리는 가벼운 보법으로 노예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하! 하! 겁나나 보다.”

“잡지도 않고 도망만 다니네.”

몽골 씨름과 같은 경기라 대부분 서로 손을 마주 잡고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인범은 그저 도망만 다니는 형태라 사람들은 비웃었다.

“하! 하!”

“낄낄!”

최인범은 일격필살로 대결을 끝낼 생각이다. 자신이 아무리 힘이 좋아도 상대방도 힘이 더 좋아 보이니 잡히면 불리할 수도 있었다. 상대방이 몸집은 크지만 둔하다고 판단했다.

휘익! 휘익!

양손을 크게 벌리고 휘휘 저어가던 노예가 번개같이 돌진해 최인범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간 드는 형태로 양손에 힘을 가했다.

“으으윽!”

자신을 잡는 동작도 매우 빠르다. 우람한 팔에 온 힘을 가하자 잡혀 있는 허리가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고통이 아주 심했다. 힘도 좋고 동작도 매우 날랬다.

퍽! 퍼벅! 턱! 턱!

손날이나 또는 장권 그리고 정권으로 노예의 근육으로 뭉쳐진 우람한 몸을 아무리 후려쳐도 잡힌 손아귀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허리가 강하게 조여지자 호흡도 가빠지고 또한 눈앞에서 별동별이 보였다.

“와! 와! 조금만 더 힘써!”

“와! 우리가 이겼다.”

정신이 약간 흐릿해지는 순간. 주변에서 구경하던 타타르 족도 느낌으로 알은 것인지 다들 좋아서 환호성을 토하고 있었다.

옛말이 힘자랑하면 더 힘센 사람을 만나 크게 당한다고 하더니 자신이 그 꼴이 났다.

속수무책으로 손만 허우적거리던 최인범은 문뜩 이 경기가 프로레슬링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로레슬링하면 바로 떠오르는 김일의 박치기가 연상되었다.

‘지금은 그 방법이 최선이야.’

기회는 한번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윽고 마지막 힘을 쓰듯이 노예가 더욱 강하게 허리를 조이며 약간 드는 순간. 최인범은 머리를 한껏 뒤로 제켰다가 강하게 노예의 이마를 박아 버렸다.

“이얏!”

퍽!

“컥!”

전혀 생각지 않은 박치기 공격에 노예는 머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그런지 비틀거렸다. 그러더니 조이던 양팔을 풀고 뒤뚱거렸다.

그 순간 최인범은 바깥다리를 걸면서 노예의 두툼한 가슴을 양손으로 힘차게 밀었다.

“탓!”

부웅! 쾅!

“큭!”

육중한 몸이 멀리 날아가서 땅에 처박혀 버렸다. 불곰처럼 보이던 노예는 충격으로 기절해 버렸다. 박치기를 당한 이마는 어느새 아주 큰 혹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다행이 머리가 부서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겼다고 판단하던 타타르 부족민들은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아주 조용해졌다.

처음 보는 기술이고 또 박치기 한번과 밀치기 한번이란 연결동작에 노예가 패하게 되었다. 다들 멍한 시선으로 최인범을 바라보았다. 모두 얼이 빠져 있었다.

명나라 병사들은 너무 빨리 끝난 결투라 어리둥절했다. 정확하게 어떻게 이긴 지도 정확히 몰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와! 이겼다!”

조용하던 장내에서 여자들이 크게 토해내는 환호성이 들렸다. 소피아 혼자서 환호성을 토하는 것이 아니라 상금으로 걸린 모든 여자들이 벌떡 일어나 손을 높이 들고 외친 것이다.

그런 모습에 타타르 부족장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말았다.

‘끙! 내 딸이나 조카딸들이지만 속이 너무 드러나는군.’

부족장은 심기가 너무 불편해지자 얼굴이 벌겋게 후끈 달아올라 수시로 변했다. 대결에서 패하자 많은 말을 주게 되고 아끼던 반월도도 사라지게 됐다.

늙은 부족장은 속이 너무 뒤틀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외쳤다.

“모든 축제는 이것으로 끝낸다. 내일 아침에 일찍 서쪽으로 떠날 준비를 해.”

명나라 공주와 결혼하면 며칠을 이곳에서 머물며 신나게 축제를 열어 즐기려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분이 너무 나빠지자 빨리 떠나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이내 군복을 입고 상으로 걸린 반월도 2자루를 챙겼다. 다른 것은 상관이야 없지만 반월도의 가치가 점점 드러나자 급하게 그것부터 서둘러 챙겼다.

많은 재물과 여자들이 생겨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타타르 부족장이 어떤 시비를 걸지도 몰라.’

부족장이 급하게 떠난다고 하자 이곳에서 교역하려던 연경 상단주인 왕담보도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인범에게 다가와 급하게 말했다.

“어사님, 내일 떠난다니 저도 빨리 물건을 팔아야겠네요.”

“알았어요. 조금 싸더라도 빨리 처분하시오. 호위무사들에게 오늘 밤 경계를 단단히 하라고 하세요. 타타르 부족의 마음이 돌변할 수도 있으니까요.”

“넷!”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게 되자 외모와 달리 모사꾼인 이세충도 부하들에게 급히 명령했다.

“지금부터 모든 군관은 병사들을 챙기고 개인행동을 삼가라.”

최인범은 연경상단과 호위부대가 쳐놓은 파오들이 있는 진형으로 돌아왔다. 마부들에게 우선 보유한 말을 넘겨주어 떠날 준비를 시켰다.

이때 결투를 벌이던 노예를 다른 2명의 노예가 옆에서 부축해서 다가오자 물었다.

“벌써 가라고 하던?”

“예, 옆에 있는 동생들과 같이 보냈어요.”

생김새가 거의 비슷한 녀석들로 그들은 모두 타타르 부족에게서 추방당한 격이다.

‘이건 무슨 행운이야. 저런 놈을 그냥 버리다니.’

최인범은 속으로 신이 나서 좋아했다. 이유는 구하기 힘든 완력이 너무 좋은 노예가 공짜로 생겼기 때문이다. 엄청난 힘을 지닌 노예들이니 앞으로 잘 활용하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현명한 부족장으로 봤더니 속이 너무 좁은 늙은이군.’

아니나 다를까 딸을 시집보내는 격인데 6명의 여자들도 파오로 찾아왔다. 손에는 작은 보퉁이 하나씩만 들고 우울한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시집 갈 때는 항상 많은 지참금을 가지고 가는 풍습인 유목민이라 자신들은 거의 빈 몸으로 그냥 쫓겨 왔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홍 상병, 여자들을 빨리 숙소로 안내해.”

“넷!”

최인범은 여자들이 너무 우울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자 안쓰러웠다. 그래도 많은 여자를 거저줍다시피 생기자 마음을 후하게 먹기로 했다.

“장 상병! 호피를 타타르 부족장에게 보내. 그냥 선물로 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알겠습니다.”

잠시 병사들이나 하급군관들이 보초를 세웠다. 만약을 대비한 전투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최인범은 다시 숙소인 파오로 돌아왔다.

무심코 파오를 들어서다 최인범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이 여자들은?’

분명 타타르 여자들에게 다른 파오에서 지내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파오에서 3명의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이상해서 홍성철에게 물었다.

“홍 상병, 저 여자들은 왜 여기에 있나?”

“이 여자들이 자신들은 신분이 다르니 여기서 지내야 한답니다.”

“신분이 다르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족장의 딸 말고 귀족이라도 되나?”

“그렇습니다. 다른 여자들도 모두 족장의 조카딸 들이라 신분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홍성철은 추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3명은 족장의 딸과 조카딸이고 3명은 그 여자들의 몸종이라는 것이다. 3명은 이제 최인범의 아내라 항상 같은 파오에서 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타르 부족인 여자들이야 당연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몸종들도 옆에서 수시로 심부름해야 하니 파오에서 같이 지내야 한다. 하지만 파오가 너무 작아 우선 세 명의 여자들만 파오로 오게 되었다.

“뭐라? 이 여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더란 말이지?”

“예, 소대장님,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분명 그런 조건으로 직접 결투에 나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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