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73화 (173/519)

173화

‘대단한 기마술이야. 말을 저렇게 빨리 몰면서 화살을 날리다니.’

마상무술을 겨루는 20명의 미녀들은 대부분 타타르 부족 청년들이 차지했다. 거의 기마무술 대회가 끝날 무렵에 두 부하들이 출전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 장가갈 기회는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보기에 자신들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판단해 참여했다. 상으로 걸린 미녀는 공교롭게 2명 모두 명나라 출신인 시녀들이다.

드디어 50여명이 참석한 상태에서 두 부하가 말에 올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큰 깃발이 내려지자 용사들이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

두두두두

지나가면서 표적에 화살을 날리는 부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최인범이 빙그레 웃었다. 부하들이 선두에 달려가며 화살을 표적지에 10발을 날려 10발을 명중시키고 있었다.

“장군, 이제 2명은 북경으로 데리고 돌아가겠군요.”

“그렇게 되겠군요. 하지만 또 조선으로 가겠죠.”

“허, 또 그렇게 되는 건가요. 나중에 그런 문제는 부하들과 상의를 해보죠.”

사람이 물건이 아니지만 이 시절이야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는 풍습이 만연하니 부하들과 상의해서 다른 조치를 취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결승점에 거의 동시에 도착한 홍성철과 장주한은 휘향 공주의 시녀를 차지했다. 상당한 미모인 여자들은 차지하게 되자 부하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싱글 벙글했다.

“이놈들아! 어지간히 좋아해 그러다 입 찢어진다.”

“헤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그토록 원하던 여자를 항상 품에 안고 자게 생겼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박색이라도 여자라면 좋을 판국이다. 금상첨화 격으로 미녀를 차지하자 다들 평생소원을 한 번에 모두 이룬 것 같았다.

그러나 최인범은 은근히 걱정이다.

‘여자들이 예쁘면 콧대가 높아 속을 썩이는 경우가 많은데.’

더구나 풍습도 다르고 언어도 문제라 은근히 걱정이다. 아무튼 그거야 부하들이 앞으로 걱정할 개인적인 사정이다.

‘하긴 부부 사이에 의사소통이야 되지. 두 녀석이 모두 북경어를 어느 정도는 하니까.’

마상무술 대회가 끝나자 이번에는 맨손으로 다투는 격투기가 벌어졌다. 4번을 연속해서 이기면 미녀를 차지하는 방법이다. 주먹이나 손으로 얼굴을 가격하지 못하는 정도의 규칙만 있는 격투기는 그야 말로 격렬한 싸움 형식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건 자신이 있다는 듯이 이세충도 참가해 결국 4번을 승리해 미녀를 차지했다. 이세충에게 덤빈 타타르족은 의외로 약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무술 실력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되어 이룬 결과다.

“소대장님, 이세충 장군이 허우대만 멀쩡한가. 했더니 제법 힘 좀 쓰네요.”

“또 나가고 싶으냐?”

“아닙니다. 자칫 낭심이라도 호되게 차여 고자 되면 어쩌려고요.”

“하긴 만족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이세충이 출전해 미녀를 차지하자 그에 용기를 얻은 명나라 병사나 군관들도 참여해서 몇 명은 떡이 되도록 주어 터지며 패배했다. 몇 명은 승리자가 되어 미모가 뛰어난 타타르 여자들을 차지하게 되었다.

최인범이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모두 어느 정도 의도된 행동이다.

‘타타르 족장이 교묘한 방법으로 타타르 출신인 여자 첩자를 명나라에 심으려는 수작이군.’

나라 간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계책이다.

드디어 격투기도 모두 끝나고 나자 이제 휘향 공주와 타타르 부족장의 딸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휘향 공주가 앞으로 나와서 앉고 앞에 가려져 있는 붉은 천이 벗겨졌다. 얼굴을 보던 최인범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라, 휘향 공주가 아닌데.’

미모로는 분명 휘향 공주보다 뛰어나지만 아닌 것은 아니었다.

분명 같이 이곳으로 오게 된 시녀들 중에 한명이다. 대명천지에 신부를 바꾸는 짓이 벌어진 것이다. 혹시 잘못 보거나 화장발 때문에 달리보이나 살펴도 기본적인 얼굴 윤곽이 전혀 달랐다.

‘뭔가 있군.’

이동하는 내내 휘향 공주는 일반 병사나 군관 앞에서는 엷은 분홍 천으로 가려 맨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명나라 군사들은 휘향 공주가 바뀐 사실을 전혀 몰랐다.

자신만 우연히 망루에서 딱 한 번 봤을 뿐이다.

아무튼 부족장의 아들이 나와서 격투기에 도전했다. 그에 행동에 짜 맞추듯이 명나라 병사들이 나서서 4명이 패배하고 끝났다. 일방적으로 명나라 병사들이 주어터지는 싱거운 결투였다.

“와! 와! 이겼다.”

마치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타타르 부족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후계자인 아들이 아비인 부족장을 위해 미녀를 바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순서가 되자 타타르 부족장의 딸의 얼굴에 가려진 검은 천이 올려졌다. 검은 천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슬람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모두 짜고 노는 놀이에 불과했다.

‘너무 싱거운 대결이군.’

최인범은 술만 마시며 다른 곳을 살피고 있었다. 진짜 신부인 휘향 공주가 돌연 사라졌다. 그러니 분명 명나라 병사들이 차지한 여자들 중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짐작해 살피는 중이다.

‘이상하네. 여자들 중에서도 안보이고.’

최인범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전혀 내색하지는 않았다.

도전한다고 먼저 나온 용사는 키가 자신보다 한 폄은 더 크고 덩치도 정말 우람했다. 거인이라고 칭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체구를 가진 용사가 나선 것이다. 흑발에 피부는 다소 검고 눈은 파란 이국적인 모습이다.

‘허! 저놈은 떡대가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이네.’

자신이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신분이 노예라 주인을 위해 출전했다. 어찌 되었건 격투기를 위해 특화된 노예가 틀림없었다.

이때 이세창이 늙은 부족장에게 뭔가 작은 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러자 부족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내 딸로 부족하다면 추가로 미녀 2명을 딸려 주지. 그리고 말 200필을 지참금으로 주니 싸울 용기가 있는 용사가 있으면 나와서 결투하라.”

미녀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재물을 준다니 결투를 마다할 최인범이 아니다. 이런 부족장의 발표에 최인범은 귀가 번득해 벌떡 일어났다.

“내가 도전하겠소. 하지만 조건이 있소.”

“무슨 조건이요?”

“나도 재물을 내놓을 것이니 그쪽도 그에 상응하는 재물을 더 내놓고 합시다. 만약 내가 이기면 대결 상대까지 내 소유로 넘겨줘야 하오.”

이렇게 말하고 말석에 앉아 있는 왕담보에게 눈짓했다. 이재에 밝고 눈치가 빠른 왕담보는 과감하게 판돈을 걸어 버렸다.

“우리가 지면 내가 가지고 온 말 300필을 모조리 넘겨주겠소.”

왕담보가 상당한 재물을 내놓자 최인범은 약간 놀랐다. 하지만 기왕에 시작된 내기라 그런 정도로는 뭔가 아쉽고 부족했다.

그러나 당장 걸만한 재물이 수중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이 알면 좋은 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마적에게 탈취한 보물 상자에 들었던 재물을 걸 수는 없었다.

‘어쩌지? 그런 재물을 걸면 나중에 명나라에서 전리품이라며 달라고 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생각하자 그나마 걸 수 있다고 판단되는 반월도를 품에서 꺼내놓고 말했다.

“내가 지닌 반월도와 추가해서 호피 한 장을 더 걸겠소.”

작은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반월도를 보자 부족장이나 그의 참모들은 놀랐다.

“어떻게 그것을 자네가 가지고 있나? 그 반월도는 대칸께서 부장들에게 하사하신 중요한 물건인데.”

“오래전부터 가보로 내려온 것이요.”

“그런가? 그렇다면 우린 오래전에는 한 부족이었던 셈이군.”

몽골족인 타타르 부족장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반월도는 금나라를 거쳐 원나라 때에도 신분 확인용으로 사용되던 것이 확실했다.

내기란 본시 상대방이 걸면 그에 따라 비슷한 것을 걸어야 된다. 그래서 부족장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반월도를 꺼내 놓고 크게 외쳤다.

“우리도 반월도를 내놓지. 그리고 호피에 해당하는 미녀를 추가로 3명을 걸지.”

졸지에 미녀가 족장 딸을 포함해 6명이고 반월도 2자루, 군마 500필이나 걸린 결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서로 상의는 벗고 경기를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최인범도 군복 상의를 천천히 벗었다. 노예는 덩치가 크고 근육이 크게 뭉친 모습이다. 그러나 최인범의 벗은 몸은 근육이 아주 작게 뭉쳐 있었다. 격투기나 무술로 단련되어 아주 단단하지만 투박해 보이지 않는 근육이다.

두 사람은 결투에 앞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노예는 완력을 쓰기 위해서 그런지 힘을 주어 근육을 부풀려가며 몸을 풀었다. 그러나 최인범은 가볍게 손마디나 또는 장권을 앞으로 가볍게 내밀면서 몸을 풀었다.

이때 과하게 많은 말들을 건 왕담보가 옆에서 걱정했다.

“어사님, 이길 수 있겠어요? 노예가 너무 덩치가 큰데요.”

“왜 내가 질까 봐 불안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자칫 잘못해 결투에서 지게 되면 많은 말을 추가로 줘서 염려는 되네요, 나중에 북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구설수에 휘말릴 염려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왕담보의 걱정에 최인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그런 복잡한 문제가 있군요. 우리가 지면 군마를 타타르 족에게 더 많이 넘겨주는 꼴이군요.”

“어사님, 그러니 반드시 이겨야합니다.”

“알겠소.”

무술 실력을 믿으니 큰 내기에 뒷돈을 대는 것이지만 은근히 걱정되어 강조하는 것이다.

왕담보가 걱정하는 이유는 황제가 지금 타타르에게 공주를 보내 교섭하면서 어떤 심중인지 환관을 통해 귀동냥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명나라는 북원이라고 칭하는 알탄 칸이 이끄는 몽골족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서쪽에 있던 타타르 족이 이동해 오자 몽골족의 세력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해 분열을 조장하는 중이다.

그래서 타타르 부족장에게 휘향 공주를 시집보내고 말도 2000필이나 주기로 협상했다. 협상조건은 타타르 족이 떠나왔던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사님, 폐하께서는 이런 협상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군요. 말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공주야 별로 상관이 없지만 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타타르 부족에게 인계되면 기마병이 더욱 늘어나게 되니까요.”

굳게 약속이야 했지만 타타르 족이 혹시 변심해 몽골 족과 합쳐질까 은근히 걱정이다. 그래서 의심이 많은 황제는 대신들의 권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상을 하는 것이다.

우수한 말을 보내고 공주를 타타르 족에게 시집보내는 평화적인 협상을 치욕으로 판단했다. 또한 일부 명나라 신료들 중에는 황제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황실의 많은 황족들은 오랑캐에게 황족을 시집보낸다는 사실에 불만이 많았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언제 또 다른 오랑캐에게 자신의 귀한 딸을 멀리 시집보낼 경우가 생길지 몰라 무척 싫어했다. 그런 황실의 분위기에서 결투에 많은 말을 걸어 패해 빼앗겼다면 좋은 일을 기대하기 어려워 걱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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