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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71화 (171/519)

171화

<변심은 순간에 벌어지고>

폴짝 거리며 사납게 울자 말들이 놀라 마구간에서 튀어 나와 사방으로 내달렸다. 일부 파오가 말들이 날뛰자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자 적은 큰 부대가 공격한 것으로 착각해 우왕좌왕 했다.

“적이 몰려 왔다.”

그런 혼란 속에서 최인범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20명의 마적을 상대로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10명이 다가오자 흑혈풍에 올라 달아났다.

두두두두. 쉬익!

“컥!”

달아나면서도 가끔 뒤로 돌아 매섭게 화살을 날렸다. 그때 마다 추적하는 마적의 수는 점점 줄었다. 이윽고 5명이 남게 되자 달아나던 최인범이 뒤로 돌아 빠르게 접근해 추적하다가 남은 녀석들을 공격했다.

두두두두. 사각! 사각!

흑혈검을 크게 휘두르자 마적들은 힘없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윽고 혼자 남은 놈이 뒤돌아서 달아나자 최인범은 다시 활을 들어 쏘았다. 마지막 남은 추적병까지 처치하자 최인범은 죽은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일부 숨이 붙은 녀석을 서성이는 말에 태워 마적 떼들 쪽으로 보냈다.

퍽!

말 한필에 부상자를 두 명씩 태워 말 엉덩이를 힘차게 두들겨 돌려보냈다.

자비심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투 중에는 부상자가 발생하면 악독한 지휘관이 아니면 반드시 돌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마적들은 그 때문에 전력이 크게 약화되는 것이다.

적의 우두머리가 어찌 나오나 살펴보려고 부상당한 적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안전한 거리를 유지해 적진으로 접근해 살폈다. 마적이지만 악독하지는 않은 것인지 부상당한 녀석들을 돌보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됐어.’

이후 최인범은 공격 방법이 많이 달라졌다. 근거리로 접근해 사살하는 방법이 아니다. 원거리에서 긴 화살인 유업전을 날려 적을 공격했다. 먼 거리라 적에게 즉사시키지는 못하지만 치명적으로 부상을 입혀 적을 교란시켰다.

“적이다!”

마적들이 화살이 날라 오는 방향을 알고 2-30명이 무리를 이루어 달려들었다. 그러자 후퇴하면서 계속 화살을 날려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모두 저항할 상황이 아니면 부상자들을 말에 태워 다시 돌려보냈다.

완전히 치고 빠지는 방법이다. 더구나 주변에 숨어 있던 백두는 공격하는 틈을 이용해 모여 있는 말들을 계속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5번의 공격으로 100여명이 죽거나 크게 부상당하자 마적들은 그제야 상황이 어찌 되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이미 많은 소두목들이 죽고 전에 비해 사기도 급격히 떨어졌다. 마적들의 전열 자체가 많이 흐트러진 상태다.

마적 두목은 부상을 당해 신음을 토하며 지시했다.

“후퇴하자.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어찌해 볼 수가 없어.”

“두목, 후방의 놈은 무시하고 공격하죠.”

“그건 너무 무리가 아닌가?”

“두목,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무려 300명이나 되는 마적들이 혼자서 공격하는 적을 물리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분하고 반드시 잡아서 죽이고 싶었지만 치고 빠지는 수법에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놈이 탄 말이 너무 좋아 추적도 불가능 해.”

두목이 반대하지만 소두목들이 주장해 드디어 모든 졸개들이 말에 올라 후방의 적은 놔둔 상태로 호위부대를 향해 돌격하기로 결정되었다. 모든 부하들이 말에 올라 빠르게 서쪽에 있는 호위부대를 향해 내달렸다.

두두두두.

작은 언덕에 숨어 적진을 살피던 최인범은 이쯤 되면 마적들이 완전히 물러날 것으로 판단하다가 총공세를 시작하자 약간 당황했다.

‘지독한 놈들이야. 전력의 반이 사라졌는데. 총공세를 결정하다니.’

총공세를 펼치자 최인범은 계곡의 주둔지에 남아 있는 녀석들이 부상자를 비롯해 50명에 불과했다. 마적들의 숙영지를 살피던 최인범은 마적 소굴을 직접 공격하기로 했다.

두두두두.

빠르게 말을 몰고 많은 파오가 있는 적진으로 달려갔다. 혼자서는 다소 무리지만 달려가면서 화살을 날려 마적들을 죽였다. 적진에 뛰어든 최인범은 흑혈검으로 접근하는 적들의 몸을 매섭게 베어 버렸다.

쉬익! 쉬익!

“큭!”

“으아악!”

흑혈검은 전과 달리 약간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장검에 의해 무참하게 베어진 마적들이 품어내는 붉은 피 때문에 최인범의 몸도 어느새 점점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한참 칼질하던 최인범은 드디어 저항하는 적이 없자 주변을 돌아보았다. 30여구의 시체가 뒹굴고 나머지는 멀리 도망친 상태다.

최인범은 급하게 큰 파오로 들어가 야전 침상에 누어있는 두목에게로 다가갔다. 피로 범벅된 우람한 체구의 최인범을 본 두목이 놀라 외쳤다.

“허억! 너는 누구냐?”

스각!

“큭!”

놀라 외치는 두목에게 어떤 물음도 없이 흑혈검으로 목을 싹둑 잘라 버렸다. 그리고 급하게 죽은 두목에게 다가가 품속을 뒤졌다. 혹시 반월도를 지니고 있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적의 두목은 여진족의 족장이 분명했다.

‘오호! 있군.’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반월도를 회수하고 또한 목에 걸린 보석목걸이도 챙겼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상자에 들어 있는 보석이나 금괴 은괴도 모조리 챙겼다.

‘마적질을 해서 그런지 가지고 있는 재물이 많군.’

빠르게 두목이 소유하던 재물을 털고 나자 이내 흑혈풍에 올라 마적의 소굴을 떠났다. 마적들의 소굴에는 주인 잃은 말들이 어슬렁거렸다.

이때 멀리서 늑대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피비린내가 퍼진 모양이다. 하늘에는 어느새 사체를 먹고 사는 검은 독수리나 까마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천천히 우회해서 호위부대가 있는 곳으로 가자 마적들이 수없이 죽어 있고 남은 무리는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대부분 화살의 공격에 죽어 있었다.

유능한 소두목이나 두목이 없는 마적 떼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정면 질주 방식으로 공격하다가 패배한 것이다.

‘이제 마적은 50명이 넘지 않겠어.’

시체의 수를 가늠해 보니 100여구가 되자 도망친 무리는 이제 50기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남은 놈들이야 100명이 되지만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으니 집단을 이룰 녀석은 그런 정도라고 판단한 것이다.

호위부대에 합류한 최인범은 즉시 선임군관에게 명령했다.

“적의 소굴이 텅 비어있으니 빨리 가서 시체들의 목을 잘라오고 물건도 모조리 회수 해. 전리품은 병사나 군관이 똑 같이 나누도록 해.”

“넷!”

비록 명나라 군사들이지만 지금은 수하들이라 그들에게 약간의 재물이라도 챙겨주려고 이런 지시를 하는 것이다. 200명의 군사들이 마적 소굴로 가서 그곳에 있던 파오는 물론 사소한 물건까지 모조리 가져오고 근처에 흐트러져 있던 말들도 가져왔다.

선임군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사님, 회수한 물건들이 너무 많은데 어찌 하죠?”

“말이나 물건은 모두 연경상단으로 넘겨. 조금 싸게 넘기면 사게 될 거야. 인두는 전적으로 올려야 하니 잘 챙겨두고.”

“넷!”

조선에서도 산적을 잡으면 공적을 올려 주었다. 그때와 같이 명나라도 비슷하게 공적을 따지고 있어 이런 지시를 내렸다.

물론 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병사들이 알아서 수급이야 챙기게 된다. 하지만 굳이 이런 명령을 내린 이유는 자신이 잡은 마적도 모조리 병사들이 잡은 것으로 처리하라는 뜻이다.

결국 적을 사살했던 못했던 200명의 병사들은 똑 같이 수급을 하나씩은 챙겼다. 연경상단이야 싸게 많은 물건을 차지했으니 그런 대로 공평하게 전리품을 챙긴 셈이다.

신이 난 초급군관들이 모여 최인범에게 읍소하며 말했다.

“어사님, 어사님은 수급을 거두어 공적을 올리지 않나요?”

“나는 공적이 필요 없어. 전투에서 승리한 지휘관이니 공적을 조금 감안해 줄 것이고. 그게 아니어도 벼슬이 높아지고 싶지 않으니 나야 충분해.”

“아, 그렇군요.”

명나라의 허울 좋은 벼슬이 높아지는 것 보다야 지금 차지한 재물이 더욱 소중했다. 이제는 초여름이라 인두가 쉽게 썩게 되니 최인범은 군관들에게 지시했다.

“기마병들에게 수급을 모두 넘겨서 거용관으로 보내. 내가 써주는 장계를 가져가고.”

“넷!”

최인범은 자신은 주변을 정찰하러 나갔고 그 사이에 마적이 공격해 오자 병사들이 200명의 마적을 주살했다는 보고서를 써서 200개의 수급과 함께 거용관으로 보냈다.

지휘관이지만 전투에서 그저 들러리만 섰다는 정도의 이상한 보고서를 쓴 것이다. 이렇게 해야 모든 전공이 군관이나 병사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판단했다.

일단 여진족인 마적 떼를 소탕하고 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많은 전리품을 인수한 왕담보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재물이 없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약속 어음을 써주고 물건을 인수했다.

최인범은 왕담보를 만나 물었다.

“인수한 전리품은 모두 어떻게 처리할 거요?”

“어사님, 전리품이야 모두 타타르 부족에게 넘기면 됩니다. 말이야 상단에서 그대로 쓰면 되고요.”

전리품 중에 많은 물건이 무기라 조금 걱정되어 물었다.

“무기들이 많은데 그것도 같이 넘기는 거요?”

“그야 당연하죠. 여진족이나 몽골 족이나 유목민이라 사용하는 무기나 장비들이 비슷하니 모두 살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상단에서 사용해도 되는 물건은 팔지 않고 쓰게 될 것이고요.”

최인범은 조금 전에 명나라 조정으로 보낸 장계를 쓴 사실을 두고 생각했다. 전에는 어렵다고 느끼던 한문이나 이제는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도 한문 사용이 능숙해진 것이다.

‘아무래도 전에 합쳐진 다른 사람의 정신이나 지적 능력도 이제 온전하게 합쳐진 것이군.’

더욱 놀라운 것은 명나라의 휘향 공주에게 홀라당 반했던 마음이 약간 변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저 단순하게 여자를 접한 지 너무 오래되어 탐하고 싶었었다.

강한 정복욕이 그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사람 마음이란 이렇게도 쉽게 변하는 법이군.’

사람의 마음이란 자신도 모르게 돌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마음의 변화는 정신에서 비롯되는데 새로운 정신이 합성되자 인격체에 대한 가치나 또는 미적 기준이 많이 달라져 버렸던 것이다.

‘여자야 조선 여자가 제일 좋지.’

이런 현상이 갑자기 벌어진 것은 호랑이를 맨몸으로 잡고 또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보니 일어난 사태다. 극한의 상황으로 처하자 실질적으로 내면에 숨어 있던 모든 능력들이 자연스럽게 합성되어 버렸다.

‘이제는 전보다 더 편하게 살겠어.’

한자권 문화로 사는 처지라 한문 실력이 급상승한 것은 많은 유리한 점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이루기 힘든 사랑이라 머리는 아팠지만 그래도 좋았던 감정이 졸지에 변하자 약간은 허망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이야 최인범 혼자만이 벌어진 변화다. 이미 마음이 온통 최인범에게 쏠려 버린 휘향 공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나 정신이 더욱 한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왜? 내 얼굴을 보려고도 안하지? 그 사이 마음이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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