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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68화 (168/519)

168화

실질적으로 호송부대의 지휘권은 최인범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용을 잘 알면서도 어린 사람이고 조선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세충은 모든 권한을 가진 상관처럼 행동했다.

그는 최인범을 위 아래로 살피더니 물었다.

“그런 복장으로 말을 타고 갈 건가?”

“아닙니다. 말을 타기 편한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가야죠. 그리고 제가 평소에 쓰던 개인장비나 무기들도 가져가야하고요.”

“알았네. 그럼 빨리 떠날 준비를 끝내고 내일 아침에 일찍 오문 앞으로 오게. 그곳에서 모여 신고하고 같이 거용관(居庸關)을 통해 만리장성을 지나 북쪽으로 떠나게 되니까.”

“그러죠!”

자금성을 나온 최인범은 급하게 왕담보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자신이 멀리 북원으로 호송무관으로 떠나게 됐다고 말하자 왕담보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응수했다.

“허어! 별장원랑 벌써 폐하로 부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군요. 저도 마침 북원으로 무역을 떠나려는 참인데 아주 잘 됐습니다.”

“아하, 그래요? 가서 뭐를 사오려고요?”

연경상단을 운영하는 왕담보는 즉시 답해 주었다.

“별장원랑, 그야 여기서는 비단이나 도자기들을 가지고 북원으로 가고 그곳에서는 가죽이나 가죽제품 그리고 양모를 가져올 생각이죠.”

큰 상인이다가 보니 최인범이 별장원을 해서 종6품의 벼슬을 받았다는 것을 아니 이제 전과 같지 않았다.

‘조선 사람이지만 앞으로 잘 보이는 것이 좋아.’

이미 최인범의 바둑실력에 반했고 그가 데리고 있는 의원들 때문에 전보다 건강이 좋아졌다. 그래서 평소에도 최인범을 높이 받들고 있었다. 더구나 최인범은 황제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니 앞으로 출세 길은 탄탄대로로 보장되어 보여 더욱 그렇다.

최인범은 혹시 몰라 위생병인 두 부하를 데리고 갈 생각으로 권했다.

“먼 길을 가니 제 노비도 같이 데리고 가시죠.”

“그렇지 않아도 그런 문제를 별장원랑을 만나 상의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같이 가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뒤에서 따라가니 필요한 경우 협력도 가능하니 좋죠.”

최인범은 뒤에 따라 온다는 연경상단행렬이 궁금해 물었다.

“연경 상단은 얼마 정도 뒤에서 따라 오게 되죠?”

“보통은 가깝게 따라가지만 이번의 경우는 한나절 정도 걸리는 거리는 떨어져서 갑니다. 말로 이동하면 별로 멀지 않고 가깝지요.”

“알겠소. 그럼 나중에 필요하면 가다가 만나기로 하죠.”

최인범은 자신이 황제에게서 받은 은자를 가지고 두 부하에게 지시했다.

“이것으로 혹시 개성상인들이 와 있으면 인삼을 사서 가지고 오도록 해. 좋은 말도 새로 2필을 사오고.”

“알겠습니다.”

최인범은 부하들에게 이런 지시를 하고 유엽전을 300발 그리고 편전 300발을 별도로 준비했다.

‘그냥 다녀올 수야 없지.’

그는 얌전하게 호위무관의 임무만 수행하며 몽골까지 갈 생각이 아니다. 기왕에 가는 길이니 몽골 초원에서 사냥해보려고 준비했다. 그렇기 때문에 화살을 많이 필요했다. 말의 먹이로 줄 콩도 많이 사서 준비했다.

부하들이 인삼을 사오자 그것을 잘 갈무리해서 짐을 쌌다.

“너희들도 각자 편전과 유엽전으로 각기 200발씩 준비해.”

“넷! 잘 알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최인범은 자금성의 남쪽 오문 앞에서 모인 호위 병사들과 같이 신고를 마치고 북경을 떠났다.

오문 앞 광장에는 조선의 사신들이 서둘러 떠나고 있었다. 최인범은 부하를 시켜 월녀에게 보내는 편지만 역관에게 몰래 전달했다.

조선의 사신단이 광장에서 떠나는 것을 보고 나자 최인범은 슬며시 부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앞에 서자 호위부대는 서서히 이동했다. 일부는 말을 타고 일부는 걸어가기 때문에 호위부대 이동은 느렸다.

더구나 휘향 공주가 탄 가마는 이동이 늦기 때문에 갑갑하다고 느낄 정도다.

‘이렇게 늦게 이동해 어느 천 년에 몽골에 도착하지?’

그래도 교대로 가마를 메고 이동하게 되어 드디어 늦은 시간에 거용관에 도착했다. 북경을 지키는 철옹성이라고 널리 알려진 거용관은 웅장한 성벽과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또한 많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만 군인들의 자세는 군기가 많이 흐트러진 상태다. 명나라의 정사는 간신인 엄숭이 정사를 농단하면서 매관매직과 부패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엄숭이 윤임의 부탁을 받고 고의적으로 내가 망신을 당할 문과를 보도록 했어. 동족끼리 그런 일을 벌이다니 때려죽일 놈!’

자유롭게 활동하려던 계획이 온통 윤임 때문에 흐트러져 버리자 최인범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아무리 판단해 봐도 전에 요동에서 여진족을 보내 습격한 것은 윤임의 농간이 분명했다.

‘일단 그놈들과 같이 움직이면 신경을 써야 하고 곤란해. 그러니 나는 나중에 돌아가자고.’

본래 그렇게 생각하고 명나라로 왔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해하려는 무리가 확연히 들어나자 그들의 마수는 잠시 피할 생각이다.

최인범은 그런 사실 때문에 조선으로 당분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공연히 돌아가야 주상께서 부마도위를 권하면 거절하기도 곤란했다.

‘나중에 천천히 돌아가자고.’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 몇 년을 명나라에서 지내다 조선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세상사가 모두 자신의 의도와 달리 돌아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현재 생각으로는 그랬다. 이번에 몽골을 다녀오고 다시 대운하 지역을 여행하면 아무리 빨라도 올 한해는 명나라에서 보내게 된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며 거용관의 높은 망루에 올라갔다.

이때 높은 망루에 여러 명의 고급 비단으로 차려 입은 여자들이 보였다.

‘홋! 휘향 공주와 시녀들이네.’

직접 면대해서 인사는 해보지 않았다. 다만 가마 앞에서 비단 천으로 가려진 사이로 호위무관인 최인범이라고 자기소개는 이미 했었다.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자 고개를 깊숙하게 숙여 인사했다.

“공주마마, 어찌 여기를?”

“마지막으로 고국산천을 보고 싶어서요.”

휘향 공주는 슬픈 목소리로 말하며 남쪽의 산하를 멀리 바라보았다. 무심히 고개를 든 최인범은 휘향 공주의 옆얼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와아! 너무 예쁘네. 못생긴 몽골인에게 주기는 아까워.’

사람이란 어느 순간 번개가 치듯이 갑자기 뇌리를 강타하는 충격을 받을 경우가 있다. 최인범은 휘향 공주를 보자 뒤통수가 찌릿 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예쁘다는 생각과 더불어 우수에 찬 휘향 공주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 없었다. 큰 충격과 함께 모든 것을 주고라고 슬퍼 보이는 그녀를 돕고 싶은 보호본능이 생겼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과는 너무 위치가 달라 다른 욕심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몽골인에게 주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쩝! 썩을 자식 하필이면 사촌여동생을 못난 늙은 몽골인에게 시집을 보내?’

공연히 자신과 사실 아무 관계도 없는 일로 열불이 났다. 그리고 못한 가정제가 그렇게 바보처럼 느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최인범은 지금 자신의 처지도 잊고 한마디 토했다.

“어휴! 멍청한 자식. 그런 자식이 황제라고.”

엄청난 말을 무심히 토했으나 다행히 조선어라 시녀나 공주는 모두 알아듣지 못했다. 막상 심하게 황제에 대한 불만을 토하고 보니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느끼고 슬며시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이때 휘향 공주가 최인범의 잘생긴 얼굴을 보더니 매우 놀랐다.

‘어마, 저렇게 멋진 분이였구나.’

비단 휘장으로 가려진 상태에서 인사할 때는 그저 덩치가 큰 장군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도 더 많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젊고 잘 생긴 얼굴을 보자 휘향 공주는 큰 충격을 받았다.

휘향 공주도 최인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었다.

‘이분이 바로 그분이야.’

최인범은 구중궁궐 안에서 사는 여자들 사이에도 빠르게 널리 퍼졌다.

휘양 공주는 본래 왕부에서 지내고 자금성에서 지내지는 않았다. 다만 몽골로 시집을 가기 때문에 자금성에서 잠시 기거했다가 몽골로 떠나고 있었다.

자금성의 후원에서 사는 여자들 사이에서 최인범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무술도 뛰어나고 바둑도 잘 두고 문장력도 좋아 과시에서 소설을 단번에 두 권이나 쓴 천재로 알려졌다.

휘향 공주는 자금성에서 지내며 구운몽을 읽어 보았다. 그런 재미있는 몽환적인 소설을 쓴 젊은 천재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고국을 떠나며 만나게 되었다.

‘후우! 조금 일찍 만났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몽골로 시집을 안가는 건데.’

휘향 공주는 지금처럼 정략결혼을 위해 멀리 몽골로 떠나야 하는 자신이 그렇게 못나고 억울할 수 없었다. 자신의 운명이란 너무 비참했다. 정략결혼을 위해 늙은 몽골인에게 시집가려고 조국을 떠나는 순간에 마음에 쏙 드는 남자를 만났으니 너무 서러웠다.

‘아! 살고 싶지 않아.’

이런 생각이 들자 높은 망루에서 풀쩍 뛰어내려 죽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심한 현기증으로 비틀거렸다.

휘청!

깜짝 놀란 최인범은 급하게 달려들어 휘향 공주의 개미 같은 가는 허리를 휘감아 안았다.

“위험해요.”

사내 품에 폭 안기 꼴이 되자 휘향 공주는 얼굴을 붉히며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고마워요. 장원랑.”

적당이 칭할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그저 장원랑이라고 불렀다. 부르고 보니 연인에게 토하는 호칭 같았다. 그래서 부끄럽다는 느낌과 함께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의 숨결을 느낄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마주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최인범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가해 바짝 잡아당겼다.

‘어마나.’

첫눈에 서로 반한 두 사람은 강하게 포옹한 상태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사람 모두 빛나는 눈에서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휘향 공주는 옆에 있는 등신 같은 시녀들이 정말 보기 싫었다. 이런 정도 분위기라면 알아서 잠깐이라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라고 하면 가볍게 입맞춤이라고 해보련만······.

시녀들은 모두 눈이 왕방울 만해 자신들을 바라보니 참으로 못된 년들이라 때려죽이고 싶었다. 본시 포악한 성품이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매섭게 변했다. 더구나 얄미운 시녀는 더 듣기 싫은 소리를 토했다.

“공주님, 바람이 차니 내려가지요.”

“알았어!”

퉁명스럽게 대답이야 이렇게 하지만 휘향 공주 생각은 전혀 달랐다. 바람에 차기는 고사하고 너무 더운 열기로 얼굴에서 땀이 송송 배어나오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것들이 나의 이 짧은 행복도 누리지 못하게 해서 피를 말리네.’

잠시 서로 껴안고 있는 자세로 있던 두 사람은 급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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