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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67화 (167/519)

167화

지방 관아로 가서 일종에 서류를 확인하는 직무 감찰은 안한다. 하지만 지역 인심을 파악하게 되니 기존의 감찰어사보다 광범위한 권한이 주어졌다.

더구나 각 지방의 총독이나 또는 순무 그리고 군대를 지휘하는 도지휘사와 협조해 문제점을 즉시 해결하게 된다니 최인범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임명이다.

비록 직급이야 지방의 말단 수령인 현령이나 같은 종6품에 불과하지만 수행할 임무는 막강했다.

가정제는 이런 결정을 내리고 나서 명령했다.

“빨리, 최인범 감찰어사를 궁으로 불러오라. 그를 별장원으로 확정한 사실은 조선의 사신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래야 그를 여기에 잡아둘 수 있으니까.”

“예이.”

황제의 명령을 받은 조정의 관료들은 신속하게 조선의 사신단에게 연락했지만 최인범을 만날 수 없었다.

“폐하, 별장원랑은 과시를 보고 돌연 사라져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그러자 황제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에 그를 찾아서 내 앞으로 데리고 와.”

“예이.”

결국 많은 명나라 관원들이 동원되어 최인범을 찾게 되었다. 그들은 무작정 찾다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과시장부터 목격자를 수소문해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조선의 사신단도 영문을 모른 채 같이 찾아다니게 되었다. 한정문이 직접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최인범이 어디로 사라진지 수소문했다.

“키가 크고 옆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 봤소?”

“예, 며칠 전에 저쪽 뒷골목으로 갔어요.”

“주변에 개가 있었소?”

“예, 하얀 색의 개가 졸졸 따라다니더군요.”

그렇게 해서 명나라 관리들과 한정문은 싸구려 홍등가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던 최인범을 드디어 만났다. 그들이 최인범을 만났을 때는 과시를 보고 나서 6일이 지나서다.

한창 여각의 지배인이자 주인인 뚱뚱한 여자 그리고 여각을 찾아온 손님들과 마작을 두고 있는 최인범을 만나자 어이가 없어 물었다.

“자네,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건가?”

“과시도 끝나서 잠시 쉬고 있었죠.”

“뭐라? 사대부인 사람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니. 정말 큰일 낼 사람이군.”

입고 있는 옷도 너무 남루했다. 싸구려 홍등가에서 창기들과 같이 시간을 보냈으니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더구나 마작이나 하면서 지내니 더욱 그랬다.

한정문은 이제 잘나보이던 최인범이 개망나니로 보여 부마도위 감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처벌을 받아야 하는 최인범을 명나라 황제에게 인계하고 조선으로 빨리 돌아갈 생각이다.

“자네, 황제 폐하께서 찾으니 빨리 자금성으로 들어가야 하네.”

“예? 무슨 일이죠?”

“그건 잘 모르지만 벌을 주는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돼.”

황제는 감찰어사의 임무를 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조정 신료들 중에서도 일부만 알게 하고 비밀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2권의 소설을 써서 제출해 별장원을 했다는 사실도 숨겼다. 그래서 조선의 사신단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운이 좋아 곤장을 맞지 않은 정도만 알았다.

황제가 급하게 찾는다니 최인범은 사신단이 머무는 숙소로 돌아왔다. 적당한 옷이 없자 덩치가 조금 비슷한 한정문의 무복(武服)으로 갈아입고 자금성으로 가게 되었다.

자금성의 오륜 문 앞에 도착하자 초조하게 기다리던 내관이 다가와 급하게 말했다.

“빨리 나를 따라오게.”

최인범은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앞서가는 내관을 따라 오문, 금수교, 태화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건청문을 지나 드디어 황제가 머무는 건청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동하는 동안 내관은 황제를 만나면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절대 실수하지 말게.”

“예.”

황제를 만나서 취해야 하는 기본적인 예절이야 대충 전생에 중국의 역사드라마를 봐서 잘 알고 있었다. 큰절을 여러 번하고 뭐 고개만 쳐들지 않고 엎드려 있으면 그만이다.

‘뭐 닥치면 닥치는 대로 하는 거지.’

최인범은 지금까지 자신을 위압하는 경우를 체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금성으로 들어와 이동하면서 느끼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압박감을 주었다. 수많은 큰 문을 통과하면서 수시로 몸수색을 당했다.

‘허! 문이 많기도 하군.’

황제의 집무실이자 침전인 건청궁으로 들어가 드디어 황제를 만나게 되었다.

최인범은 내관의 눈짓으로 여러 번 절을 올렸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그저 바싹 엎드려 있었다. 가정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소문으로 듣던 대로 기골이 장대해 대장군 감이야.”

가정제는 성격이 독특하고 변덕이 아주 심한 인물이다. 막상 기골이 장대한 최인범을 만나자 어느새 마음이 변했다.

황제가 마음이 변한 이유는 비밀 정보감찰 기관인 동창에서 보고한 내용 때문이다. 동창에서는 조선의 사신이나 상인들을 만나서 비밀리에 최인범을 조사해 보고했다.

보고에는 최인범은 무술도 아주 뛰어나 사냥도 잘하고 바둑도 최고수급으로 매우 잘 둔다고 했다. 가정제는 바둑도 좋아하기 때문에 바둑고수라는 그가 좋게 보였다.

‘직접 만나보니 동창에서 조사한 그대로 무술이 뛰어나 보여.’

자신의 사촌여동생인 휘향 공주를 몽골로 시집을 보내게 된 황제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오랑캐인 몽골로 황족을 시집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명나라의 힘이 약하다는 증거다.

신하들의 주청 때문에 결국 몽골로 시집보내기로 결정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무너진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무술이 뛰어나다고 동창에서 조사된 최인범을 만나자 묘안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어.’

휘향 공주를 시집보내며 딸려 보내야 하는 호위무관으로 최인범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호위대장이야 명나라 장군에게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가게 되지만 별도로 공주가 탄 가마를 옆에서 호위하는 호위무관으로 최인범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몽골 즉 북원(北元)은 나라에 큰 경사가 있으면 부족들이 모여 서로 맨몸으로 겨루는 격투기, 마상무술로 결투를 벌인다. 그런 무술 대회의 최종 승자는 뭔가 큰 선물을 주는 관습이 있었다.

‘군마라도 일부 돌려받을 수 있어.’

완전한 바보가 아닌 황제는 기마병이 위력을 보이는 몽골로 2000필이나 되는 많은 군마를 보내는 것이 매우 불만이라 이렇게 판단했다.

사촌여동생이야 무슨 정이 있을 턱이 없으니 어찌 되던 상관이 없었다. 그저 몽골에서 벌어질 무술대회에서 최인범이 혹시라도 우승하면 군마의 일부라도 다시 가져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결투를 벌이다 죽거나 다쳐도 그가 조선인이라 별로 문제될 것은 없어.’

오랜 한족들의 오랜 전통인 이이제이 수법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황제는 자신의 구상을 매우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주로 변방의 나라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제압한다는 의미로 대륙을 차지한 국가들이 주변 국가들을 다스릴 때 사용하던 전략이다.

큰 군사적이나 경제적인 전략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인범이 조선 출신이라 그런 쪽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판단한 황제는 드디어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감찰어사는 이번 휘향 공주를 북원으로 보내는 호위부대에 속한 감찰어사이자 호위무관으로 임명하니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라.”

“예이.”

이런 명령과 더불어 조금 지나자 명령서인 성지가 내려지고 그에 따른 감찰어사이자 호우무관이란 종6품의 신분패가 주어졌다. 아울러 하사금이라고 해서 은전이 그에게 내려졌다.

자금성으로 들어와 내관으로부터 도찰원의 정7품인 감찰어사보다 한 단계 높은 경력(經歷)인 종6품으로 결정되었다고 이미 들었다.

또한 대운하 지역을 다니며 감찰 한다는 업무에 대해서도 들었다. 도찰원의 기록 담당인 경력이지만 경험이 없고 필요에 의해서 그냥 감찰어사 업무를 보도록 했다.

그런데 졸지에 임무가 변했다.

‘갑자기 임무가 바뀌다니 이건 또 무슨 이유야?’

새로 주어진 임무가 호위무관이기 때문에 겸직이 주어졌다. 오호도독부의 도독첨사를 보좌하는 종5품에 해당하는 경력(經歷)직도 주었다. 명나라도 무관보다는 문관을 우대해서 직급이 다르지만 명칭은 같았다.

이미 내정된 임무를 갑자기 감찰어사를 겸하는 호위무관으로 바꾸어 새로운 임무를 주는 명령을 내리니 어리둥절했다.

‘무슨 개수작이야?’

그러나 최인범은 감히 그 이유에 대해 황제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어차피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몽골이라 이내 답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경을 명나라를 대표하는 무술인으로 보내는 것이니 잘 싸워주기 바란다.”

이런 명령 역시 처음 듣는 말이라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최인범은 찍 소리로 못하고 그저 망극하다고 읍소했다. 자칫 조금만 요상하게 행동하면 자신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조선인이라 외교적인 문제로 크게 번질 수도 있어 조금은 쪽 팔리지만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자꾸만 요상하게 꼬이는군.’

밖으로 나와 성지를 자세 읽어보고 해석해 보니 비록 직급은 낮으나 호위대장의 명령을 받는 위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호위대장인 이세충의 행동을 감찰하는 위치로 적혀 있었다.

‘별스럽게도 구는군. 이런 사람까지 감시를 하다니.’

명나라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군대를 이동시키면 항상 부대장의 행동을 감시하는 관료를 딸려 보내고 있었다.

자금성으로 들어와 황제를 만나 전혀 생각하지 않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건천궁에서 나왔다.

‘졸지에 명나라에서 벼슬을 다하고.’

휘향 공주를 호휘해 북원으로 떠난다는 호위대장인 이세충을 만났다.

그는 정5품인 경력사로 장비수염이라고 부르는 턱수염을 길러 부리부리했다. 타고 난 무골로 보여 조금은 다혈질 같고 또한 성격이 단순하고 과시욕이 많아 보였다.

“자네가 감찰어사를 겸한 호위무관인 경력으로 우리와 같이 가게 됐다고?”

“예.”

“폐하께서 자네에게 10명의 시종이나 군사를 데리고 가도 된다니 어찌 하겠나?”

“그냥 혼자서 갈까 합니다.”

“그러면 너무 불편하지 않겠나, 가다가 보면 초원에서 노숙하게 되는데.”

“저는 상관없습니다. 말이나 두필 따로 가지고 가면 됩니다.”

“그래도 좋다면 그리 준비하고 오시오.”

“그러죠.”

오호도독부의 경력사나 경력이 모두 종5품이지만 황제의 신임을 받고 감찰어사라는 직분 때문에 최인범이 사실은 호위부대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셈이다.

호송부대를 감찰하는 위치인 최인범이 요구하는 대로 이세충은 부대를 움직여야 되는 입장이다.

휘향 공주가 황제의 조카가 아니고 친딸이라면 이런 정도의 낮은 직급들이 호위하지 않고 더 높은 사람이 호위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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