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가정제는 자꾸만 소설 읽기를 방해하는 관료가 귀찮게 느껴져 쉽게 조치를 내렸다.
“그렇지. 이번에 보는 전시의 장원은 조선 출신으로 정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짐이 보기에는 이글을 쓴 사람이 제일 문장이 좋아 보이니 장원으로 정하시오.”
황제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신료들도 맹렬하게 반대했다. 정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조선 선비를 보지도 않는 미리 장원으로 선발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라고 주청을 드렸다.
황제라고 해도 모든 신료가 반대하자 슬며시 물러났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하시오. 조선의 선비는 특별히 과시를 봤으니 특별장원이라고 칭하면 되겠군.”
이런 지시에도 관료들은 반대했다. 특별장원이란 장원 위에 있다는 의미라 결국 새로운 이름이 정해졌다. 그래서 별장원이라 새로운 장원랑이 탄생하게 되었다.
정기 과거 때와 달리 특별히 황제의 명령에 의해 가끔 별시도 본다. 그 때문에 그런 전례를 참작해서 별장원이라고 정해진 것이다.
황제의 몸으로 자신이 읽어 보아 마음에 들면 큰 상을 준다고 했으니 그것을 뭐로 정할지가 문제다.
“소국에서 온 나이 어린 선비에게 허언할 수는 없고 어떻게 하지?”
아직 소설을 모두 읽은 상황이 아니라 황제는 그 문제는 뒤로 미루고 소설 읽기에 몰두했다. 너무 재미가 있어 한번 읽고 반복해서 읽었다. 주인공이 많은 부인을 거느리게 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가 있는 소설이고 또한 자신이 거느린 수많은 후궁들에게 보여줘서 소설 내용과 같이 사이좋게 지내야 좋다고 판단했다.
황제는 소설을 귀감으로 삼으라는 의미로 신하에게 지시했다.
“이 글은 빨리 소설책으로 만들어 황실의 내명부에도 보내고 많은 사람이 널리 읽도록 하시오.”
“폐하, 명을 따르겠나이다.”
너무 소설 내용이 마음에 들어 이런 지시를 내리고 나서 다른 소설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소설은 재미는 있지만 내용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거 은근히 지금 명나라의 관리들을 비꼬는 것 같은데.’
물론 생각하기 따라서는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조선의 양반들의 형태를 신랄하게 지적하는 글이라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황제는 조선에서 오게 된 최인범에게 벼슬도 내리고 큰 상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시 읽어보던 황제는 내용 중에서 선물을 뭐를 줘야 하는지 결정했다.
‘오라. 그런 내용으로 보아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알겠어.’
이런 황제의 결정 때문에 최인범은 쉽게 벗어날 것으로 판단한 족쇄를 더 무거운 것으로 걸치게 되었다.
한편 회시(會試)를 보면서 매실주를 많이 마신 최인범은 과시장에서 나왔다.
그는 북경의 뒷골목 길로 들어섰다. ‘세상에 술에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최인범은 몽롱해진 상태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풍산개인 백두가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백구는 걱정된다는 듯이 가끔은 바짓가랑이를 가볍게 물고 끌었다. 그러나 거의 무의식 상태가 최인범은 앞으로 걷기만 했다.
비들 비틀.
흐느적거리며 한참을 그러다 보니 좁은 뒷골목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은 겉보기는 매우 화려했다. 하지만 전생이나 지금이나 뒷골목은 아주 지저분하며 좁고 매우 복잡했다.
작은 가게들은 세상의 음식은 이곳에 다 모여 있다고 볼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위생 상태는 엉망이지만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웠다.
와글 와글.
좁은 골목에 작은 가게들도 많지만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그래서 지나가는 행인끼리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혼잡했다. 덩치가 아주 커다란 사내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걷자 사람들은 힐끗거리며 피했다.
사람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최인범을 피하며 투덜댔다.
“대낮부터 무슨 술을 저리 마셔.”
“공연히 시비를 걸려고 저러는 거야.”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
뒷골목에서 설치는 폭력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몽롱한 상태라 누군가 뒤통수를 치면 꼼짝없이 당하게 된 위기의 상황이다. 그러나 큰 덩치 때문에 아무도 함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한 옆에서 따라가는 백구를 보자 다들 옆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크르렁! 크르렁!
“이이익! 개가 너무 무섭게 생겼어.”
조금만 이상한 눈치를 보이며 주인에게 접근하면 백구가 으르렁 거렸다.
수많은 작은 상점들이 가득한 곳에 들어서자 그만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들어섰다. 정상적이라면 길을 물어서 골목을 빠져나오겠지만 만취한 상태라 허우적거리는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드디어 힘을 모두 소진해 나른해졌다.
‘어휴! 졸려!’
무조건 누워서 자고 싶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몽롱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흐릿해진 시선에 뭔가 보였다.
붉은 등이 걸려 있는 여각이다. 잠을 잘 수 있는 여각이 보이자 무조건 안으로 들어가 여자 지배인에게 말했다.
“방을 주시오.”
“예!”
얼굴에 도깨비 화장을 한 뚱보인 여자가 최인범을 2층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주머니에서 은자를 꺼내 넘겨주고 천으로 가려진 칸막이 방으로 들어와 작은 침상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침상은 너무 작아 몸을 온전하게 눕히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다리는 밖으로 뻗고 침상에 눕자마자 깊은 잠속으로 빠져버렸다. 침상 옆에서 백두도 방바닥에 누워 머리를 처박고 눈을 감았다.
“손님!”
이때 가름한 얼룩에 요란하게 화장한 자그마한 젊은 여자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백두가 고개를 쳐들며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으르렁 거렸다.
“어마!”
방으로 찾아온 젊은 여자는 백구가 으르렁 거리자 기겁해 뒤로 돌아 후다닥 도망쳤다.
이곳은 그야말로 순전히 몸을 파는 여자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싸구려 홍등가다. 젊은 여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손님들과 같이 진한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는 진득한 소음들이 들렸다.
“크르렁! 푸우! 크르렁! 푸우!”
최인범은 마치 호랑이가 우는 듯이 코를 심하게 골며 잠들었다.
다음날 술에서 깨어나자 최인범은 침상에서 일어났다. 너무 허기지고 머리가 띵하며 눈앞에서 작은 별똥별이 보였다. 전혀 보지 못한 낮선 곳이라 매우 놀랐다.
“헉!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우선 급하게 저고리의 주머니를 뒤져보니 다행히 지니고 있던 은자는 그대로 있었다. 도대체 자신이 잠잔 곳이 어딘지 몰라 슬며시 귀를 기울였다.
철떡! 철떡! 퍽! 퍽!
“하악! 학!”
간간히 여자의 자지러지는 감창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문도 안 달리고 천의로 막아 놓아 사방에서 요란하게 정사를 벌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아! 여기가 북경의 싸구려 홍등가군.’
주변에서 들리는 감창소리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술에 만취해 찾아 들어온 곳이 싸구려 홍등가라는 것을 느낀 최인범은 한숨을 토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금욕 생활을 해서 만취하니 본능적으로 여자를 찾은 거야.’
추측이지만 전혀 근거 없는 판단은 아니다. 사람이란 무의식중에 취하는 행동이 진심일 수 있는 것이다.
잠시 이렇게 생각하다가 슬며시 일어나 작은 칸막이 방에서 나왔다. 좁은 통로를 지나 지배인이 있는 1층으로 내려와 주문했다.
“소의 생간과 우동 그리고 소고기 삶은 것을 사다 주시오.”
“예.”
최인범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누워 있다가 지배인이 사다준 음식을 먹고 다시 누웠다. 허기졌다가 너무 많이 폭식해서 그런지 식곤증이 밀물처럼 밀려온 것이다. 저절로 눈이 감겨오는 가운데 과시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떠올렸다.
‘취중에 구운몽과 양반전을 써서 제출했어. 어려운 시험보기는 모두 끝났을까?’
어떤 방식으로 썼다는 것은 기억나지 않고 그저 두 권의 소설 제목만 또릿하게 떠올랐다.
서포 김만중이 쓴 구운몽과 연암 박지원이 쓴 양반전이다.
소설의 내용을 뭐라고 적은지는 기억을 전혀 못하니 은근히 걱정이다. 평소에 혹평하던 가정제에 대해 심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면 그 또한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잘못하면 필화를 당하는데. 도무지 뭐라 쓴 것인지 기억이 전혀 안 나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직은 왕담보 대인을 찾아가거나 또는 사신단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일이 잘 못되었다면 공연히 그들까지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기서 지내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그대로 잠적해 버릴 요량이다.
‘몸은 은신해 있기는 이런 후비진 장소가 제일 좋아.’
사신단을 걱정하는 이유는 정사인 김안국과 한정문 때문이다. 그들은 그래도 과시장에서 적어 놓으라고 모범 답안을 이틀간이나 날을 세워 써진 두루마기를 넘겨줬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최인범은 이곳에서 몸의 상태가 온전해 질 때까지 푹 쉬고 싶었다. 과시장에서 빠르게 한문소설을 2권이나 쓰다가 보니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했던 것이다.
최인범은 좁은 칸막이 방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편 자금성 안에서는 최인범 때문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졌다. 두 권의 소설을 읽고 마음에 쏙 들자 황제는 양반전의 비판적인 내용을 보고 최인범에게 도찰원의 감찰어사로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대신들이 나서서 반대했다.
“폐하, 외국인에게 그런 중책을 맡길 수는 없사옵니다.”
“뭐라? 중책이라니·······. 경은 무슨 말을 하나? 한 두 개만 있는 중요한 관직도 아니고 도찰원에는 100명이 넘는 감찰어사들인데 짐의 마음에 드는 종6품인 감찰어사 한 명을 임명하는 것도 반대하나?”
“그게 아니오라 외국인에게 감찰어사는 조금 무리라고······.”
“경은 왜 그렇게 경직된 사고력으로 사나? 외국인의 시선으로 살피다보면 우리가 모르는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도 있지 않나?”
약간 화난 음성으로 이렇게 반문하자 결국 조정의 대신들은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요상한 가정제지만 때로는 제정신으로 정무를 볼 경우도 있어 이런 조치를 내리는 것이다.
역사서에 분명 음란한 행위를 벌이고 별 이상한 짓을 벌이는 가정제다. 하지만 완전히 돌아버린 심한 정신병자의 상태는 아직은 아니다.
황제로 즉위해 오랜 통치 경험이 있어 뭐가 이상한 지는 가끔 느낄 때가 있었다. 동해안에서 생산하는 염전에 큰 문제가 있었다.
“짐이 알아보니 최인범 어사는 전에 대운하를 통해 남쪽으로 가서 돌아보고 싶다고 했더군. 짐이 약속한 바가 있으니 이번 기회에 그의 소원도 들어주고 겸해서 그쪽 남쪽 동해안 지방의 관아들에 대해 감찰하도록 하자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예이,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특히 왜구들이 자주 침입하는 해안을 살피게 되니 경들은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가 감찰어사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지만 관아로 가서 직접 감찰하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야.”
“폐하, 그렇다는 어떤 임무를 부여하시려고요?”
“짐의 생각으로는 별장원인 감찰어사는 지역의 관리들에 대한 민심이 어찌 돌아가는 정도만 파악하게 될 거네. 문제가 생기면 지역의 총독이나 또는 순무 그리고 도지휘사와 협조해서 해결하고.”
“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