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북경 과시의 별장원>
그거야 백삼수의 사업이고 윤임 대감은 자신의 계책이 어긋나자 열불이 났다. 그래서 국자감의 유생들 움직임에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 국자감이나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일을 꼬이게 하는 거야.”
“그야 조선을 깔보기 때문이죠.”
“죽일 놈들. 오나가나 유생들이 문제야.”
이제 오직 기대할 것은 무술만을 수련해서 학문에는 별 볼 일 없는 최인범이 황제를 기만한 죄를 받아 곤장 30대를 맞아 병신이 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조선으로 오지 못하도록 막을 계획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왕담보 집에서 머물던 최인범은 결국 예부에서 주관하는 과거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문 실력이 미천한 처지로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큰일이군. 졸지에 다른 나라까지 와서 볼기 까고 주어 터지게 생겼어.”
모험해서 양유승의 집에 침투해 그와 내기바둑을 두어 승리를 거두어 그와 모의해 벌인 계책이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로 끝났다.
명나라의 예부에서 주관하는 회시(會試)는 각각 3차의 시험을 거친다. 최인범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1000자로 긴 문장을 써서 황제에게 넘겨줘야 곤장 형을 면하게 된다. 그러니 보통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
‘미치겠군. 천자문을 써서 답안이라고 제출할 수도 없고.’
아무리 고심해 봐도 곤장은 얻어맞게 생겼다.
‘에이, 쪽 팔리게 외국까지 와서 궁둥이 까게 생겼어.’
드디어 시험 날이 되어 최인범은 맨 정신으로 볼기는 죽어도 맞기 싫었다. 독한 소주에 매실을 담근 매실주를 큰 통에 담아 들어가게 되었다.
시험 보는 장소에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아주 작은 칸막이에서 시험을 본다. 그 때문에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시험장으로 들어간다.
시험을 보다가 너무 고심해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과시 장은 평생 공부한 학문을 다 쥐어짜는 고난의 길이다. 시험 한번으로 평생의 노력이 걸렸으니 이들의 고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웅성웅성
수많은 유생들이 운집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다들 대충 몸 검색을 해서 모범답안이라도 몰래 지니고 들어가는 수단도 있었다. 명나라의 과시장도 많이 부패해 있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오게 된 최인범은 유달리 검색이 심했다.
“두루마기를 여기에다 벗으시오.”
“예.”
두루마기를 훌러덩 벗어준 최인범은 우거지상으로 변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믿던 것도 모범 답안이 적인 옷도 빼앗기게 되었다.
‘김 대감의 고심까지 무산 되었어.’
문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던 김안국은 탄식을 토했다.
“저런······. 그나마도 틀렸어.”
거액의 도박판을 벌여 많은 재물을 잃어서 보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래도 주상전하께서 너무 아끼는 조선의 젊은 인재다. 그래서 학문이 높은 정사인 김안국이 모범 답안을 적어주었다.
검색하는 관리가 유달리 최인범을 심하게 다뤄 두루마기까지 홀라당 벗기고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허! 큰일이야.”
“정사 대감,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은지 모르겠군요.”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게 됐소.”
과시장의 좁은 칸막이는 마치 화장실 같아 그저 작은 책상과 의자만 놓여 있었다.
칸막이에 들어온 최인범은 과시장에서 제일 구석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고심했다.
‘뭐라도 쓰긴 써야 하는데. 진짜 고민이네.’
나오는 것은 그저 한숨뿐이라 최인범은 가지고 들어간 독한 매실주를 들입다 마셨다. 먹을 때는 맛이 달착지근해 좋지만 독한 소주라 점점 만취해갔다. 술에 만취한 사람이 그러하듯이 최인범은 이것저것을 생각해면 사는 만사가 귀찮아졌다.
‘에라, 될 대로 되라지.’
속이 타서 물 대신에 매실주만 마시는 최인범에게 명나라 관원이 와서 슬며시 물었다.
“왜? 먹도 갈지 않소? 시험을 안 볼 생각인가?”
“봐야죠.”
“그럼 먹을 갈아야 되지 않소?”
명나라 관원의 말에 최인범은 그제야 자신이 가져온 문방사우를 꺼내 놓고 벼루에 물을 붙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그래도 시험을 보는 척은 해야 된다. 지그시 눈을 감고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한손으로 부지런히 먹을 갈았다. 오래 갈아야 되니 벼루에 물을 많이 붙고 아주 천천히 갈았다.
사악 사악.
먹을 갈면서도 마시는 매실주에 만취한 최인범은 나무칸막이인 벽에 기대어 먹을 갈며 점점 몽롱한 상태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드디어 완전히 무의식 세계로 빠져들었다.
‘에이! 세상만사가 모두 귀찮아!’
이렇게 되자 요즈음은 잘 오르지 않는 전생에서 대한민국의 영주에서 살던 시절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잡기에 능하고 역사 공부를 하던 기억이나 또한 한문과 관련된 사실들이 점점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키고 있었다.
윙윙.
머릿속이 점점 마구 뒤엉키더니 완전히 비몽사몽으로 변했다.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니게 돌변했다.
시험에서 출제된 내용과는 상관없이 문장만 이어서 1000자를 넘겨야 된다는 사실만 또릿하게 떠올랐다. 그러자 전생의 기억과 이곳에 와서 합성된 정신과 또다시 혼합되면서 뭔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천천히 작은 붓을 들어 빠르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의 정신으로 쓸 수가 없는 전혀 새로운 어떤 내용을 한문으로 쓰고 있었다.
한번 붓을 들자 거침없이 쓰는 그의 동작에 명나라 관원들이 가끔 들여다보며 놀랐다.
“허, 왕희지 필체로 쓰고 있군.”
왕희지는 멀리 동진 시대 사람으로 각종 서체가 유명하다. 최인범이 쓰는 문장은 그중에서 약간 흘리는 글씨에 해당하는 행서로 쓰고 있었다.
가끔 쓰다가 멈추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매실주를 마시기 위해 멈추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다.
이윽고 길게 쓴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나서 옆으로 치워 놓았다. 긴 문장의 끝에는 ‘서포(西浦)가 북경 과시장에서.’란 글을 마지막에 적어 놓았다.
이어서 더욱 길게 이어서 쓴 다른 글의 말미에는 ‘연암(燕巖)이 북경에서.’ ‘ 라는 글을 적어 놓았다. 남의 작품을 도용했으니 최소한 호라도 정확하게 적어 역사서에 기록되게 배려했다. 그리고 답안의 제일 끝에 자신의 신분패인 2두 마패를 힘차게 눌러 찍었다.
쾅! 쾅!
다른 사람은 여전히 낑낑거리고 문구 작성에 힘을 쓰는 중. 최인범은 명나라 관원에게 긴 두루마기 형태의 답안이 적힌 뭉치 2개를 넘겨주고 유유히 과시장을 떠났다.
비틀비틀. 허우적 허우적.
멀리서 보면 몸에 진기를 과거시험 보는데 모두 사용한 모습이다. 하지만 가까이로 다가가면 술에 만취해 몽롱한 상태로 걸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과거를 같이 보는 유생들을 코를 심하게 자극하는 술 냄새에 혀를 찼다.
“즛쯧! 완전히 과거를 포기하고 나가는군.”
“저런 사람이 어떻게 회시를 본다는 건지.”
그러나 답안이라고 받아든 명나라 관원들은 모두 얼이 빠졌다.
분명히 별로 학문이 깊지 못하다고 판단하던 최인범이 아주 긴 문장을 거침없이 쓰고 떠나자 놀랐다. 명나라 관원들은 점점 멀리 사라지는 최인범을 넋이 나가 바라보았다.
‘행정가나 정치가는 모르지만 문장 하나는 뛰어나군.’
문장을 읽어보던 관원은 재미가 단단히 들어서 그런지 계속해서 읽었다. 그가 읽은 글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한문소설이었다. 너무 재미가 있어 멈출 수가 없었다.
‘오호, 너무 재미있어.’
최인범은 과거시험에서 격식이나 어떤 정책에 대한 글이 아니어도 잘 쓴 글이라면 죄를 받지 않는다는 조건에 아주 충실했다.
그래서 그는 그저 재미로 읽어도 좋을 만한 한문 소설을 선택해서 길게 적어놓고 나간 것이다.
물론 본래 작가가 쓴 원본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따서 축약해 쓴 글이고 조금은 야한 내용이 들어 있어 딱딱하지 않고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한참을 읽어보던 관원은 너무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황제에게 보여 할 문서라는 것도 까맣게 잊고 정신없이 읽었다.
옆에 있던 동료들도 긴 두루마기 형태라 뒤에서 줄줄이 서서 따라 읽었다. 그러자 예부상서인 엄숭이 다가와 관원에게 재촉했다.
“자네들 지금 뭐하나. 빨리 황제폐하께 보내 드리지 않고.”
“아! 예.”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움직였다.
‘에이, 더 빨리 읽었어야 다 보는데.’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가 중단했으니 아쉬움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황제에게 빨리 가져다주고 하교를 받아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빨리 폐하께 보내고 모두 읽어 보신 뒤에 우리도 그때 다시 읽으면 되겠어.”
“그게 좋겠군.”
명나라 관원은 과시장에서 제출된 답안이라는 의미로 큰 인장을 찍고 두 소설을 황제에게 올렸다. 그러자 의외로 긴 문장인 두툼한 두루마기라 황제는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오호, 재미있는 글이야.’
잡기도 좋아하고 독특한 취미 생활을 줄기는 황제 역시 최인범이 써 올린 글인 한문소설에 흠뻑 빠져들어 버렸다. 퇴청해서도 정신없이 읽고 있는 가운데 과시의 성적들이 결정되었다.
회시 담당으로 예부상서인 엄숭이 황제께 와서 읍소하며 말했다.
“폐하, 과시에 합격한 명단이옵니다.”
“알았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황제는 이내 지시했다.
“이글의 주인도 회시의 합격자 명단에 넣도록 해.”
“폐하, 그렇다면 이후 전시도 봐야 하나요?”
“그럴 필요는 없어. 이런 정도 실력이면 굳이 전시를 보지 않아도 충분해.”
회시 합격자의 경우 궁중에서 보는 전시를 보게 된다. 인재 선발에 관심이 많은 황제의 경우는 직접 전시 과거장에 나가서 감독하는 경우가 있었다.
소설에 재미가 단단히 들린 황제는 그런 복잡한 절차가 귀찮고 싫었다. 나중에 전시를 봐도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예부상서인 엄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그리되면 조선의 유학생에 대한 시험은 완전히 끝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