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그게 조금 이상하게 주상전하께 알려져 헛소문만 무성한 것이죠. 학문을 배워 남보다 조금만 뛰어나면 젊은 놈들이 건방을 떠는 거야 세상의 이치가 아닙니까? 그 녀석은 조선의 과거시험은 너무 시시하다고 당연히 봐야하는 향시도 보지 않았어요.”
“그래요? 이상하군요.”
엄숭은 윤임의 말에 예부로 올라온 서류를 살펴보았다. 산해관에서 보낸 입국심사 서류에 문과에 응시하기 위해 국비유학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흠, 특이한 청년이군. 우리 집으로 가서 이 문제를 상의해 봅시다.”
“그래 주시면 좋죠.”
대형 저택의 접견실에서 윤임은 차를 마시며 예부상서인 엄숭에게 부탁했다.
“아까 제가 말한 청년은 조선에서 특별히 명나라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국비장학생으로 왔으니 지방에서 보는 향시는 생략하고 이번에 예조에서 주관하는 회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엄숭은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감, 조선의 국비유학생이라고 너무 특혜를 많이 주는 것이 아니요? 더구나 하는 행동도 매우 불량하고 더구나 국비유학생은 조선에서 과거를 전혀 보지도 않은 어린 선비인데.”
엄숭의 대답은 당연하다. 그러자 윤임은 의외로 굽실거리며 사정했다.
“그러니 제가 예부상서께 특별히 찾아와서 부탁드리는 거죠. 어린 나이에 학문이 조금 남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우물 안 개구리로 천지분간을 못하는 그 녀석에게 꼭 명나라에서 과거시험을 보게 해 대국의 학문이 얼마나 높은지 뼈저리게 알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사정하자 엄숭은 잠시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알았소. 대감이 특별히 부탁하니 회시에 참석해 시험을 보도록 배려하죠. 하지만 문과시험을 보아 수준 이하의 답이 나오면 대국의 조정을 기만한 죄를 엄중하게 물을 거요. 그러나 어느 정도의 답안을 쓰는 정도라면 국자감에서 3년간 학생으로 수학해야 될 거요.”
“그리 해주시면 그 녀석도 황제폐하의 성은에 감음할 겁니다.”
엄숭은 회시를 보도록 해주는 선결 조건에 대하여 다시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3년을 국자감에서 공부한 이후에도 다음 과거시험에서도 대과를 급제하지 못하면 또 다시 3년간 국자감에서 공부하기로 약속해야만 하오. 과거시험에 합격해야 국자감에서 나올 수 있도록 조건을 걸어야 이번 과거시험에서 회시를 보도록 배려해주죠.”
“아주 좋습니다. 그는 오래 공부해야 과거시험에 합격하게 될 겁니다.”
“남다른 재주가 있으면 한 10년을 국자감에서 공부하면 합격이 가능할지 모르겠군.”
엄숭이 내건 조건을 고려해 윤임은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회시를 보게 해달라는 대상이 하필이면 무과를 본다고 하는 최인범이다.
윤임이 최인범을 견제하는 이유는 그를 부마도위로 삼으려고 하는 중전 때문이다.
‘무력을 지닌 놈을 중전의 친딸과 혼인하게 놔두면 안 돼.’
처음에는 왕세자의 치세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인범을 중하게 쓰시려는 주상전하의 뜻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하지만 중전이 부마도위로 삼으려고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자 그때부터 자신의 정치적 야심에서 걸림돌이라고 판단했다.
자신이 계책대로 흘러가자 윤임은 매우 만족했다.
‘무술만 수련하던 그놈이 명나라의 문과시험에서 절대로 합격할 수는 없어.’
윤임은 뭔가 크게 배려해 주는 것으로 위장해 결국 최인범을 명나라에 아주 오래 붙잡아 놓으려는 수작을 부렸다.
최인범이 국자감에서 학생으로 지내게 되면 조선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최소한 과거를 3번 볼 기간인 10년은 걸린다고 판단했다.
‘그리되면 손을 별도로 볼 필요 없이 10년간 이곳 명나라로 유배를 보내는 거야.’
그쯤 되면 건강이 좋지 않은 주상은 이미 사망하고 조카인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되면 조선 천지는 자신의 수중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되니 이런 치밀한 계략을 꾸민 것이다.
‘주상전하의 사후에나 조선으로 귀국하게 되니 그놈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명대의 과거제도는 조선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그래서 지방에서 보는 향시(鄕試). 예조에서 실시하는 회시(會試)가 있고 마지막으로는 황제가 참석하는·전시(殿試)가 있다.
명도 조선과 같이 3년마다 식년시라고 해서 과거를 보게 된다. 1540년인 올해는 경자(庚子)년으로 조선이나 명나라나 모두 과거를 보게 되는 식년이다.
윤임은 이런 다소 요상한 청탁과 함께 많은 뇌물을 엄숭에게 넘겨줬다.
이번의 다소 이상한 청탁도 있지만 나중에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명나라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 후일도 철저하게 대비하기 위해서 명나라의 실세로 부상하는 엄숭과 선을 대는 것이다.
“그럼 상서 대인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너무 염려 마시오. 과거야 내 소관이 아닙니까.”
윤임이 엄숭을 만나 사전에 공모한 이후·····.
조선의 진하사 사신들은 자금성으로 들어가 황제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황제는 예부상서가 주청한 내용 그대로 움직였다.
황제는 특별히 조선의 진하사와 같이 국비유학생으로 오게 된 젊은 선비인 최인범을 문과의 회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교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문장이 뛰어나다면 문과에서 회시를 보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독특한 성품인 황제는 조선의 젊은 선비가 감히 황제국으로 찾아와서 과거시험을 본다고 요구하자 일종에 호기심으로 승낙한 것이다.
낙방은 분명하니 그저 덕담처럼 후하게 말했다.
“대과에서 합격하면 짐이 아주 큰 상을 내릴 것이니 성실하게 답안을 쓰라고 전하시오.”
“예이.”
황제는 자신이 요구한 많은 말을 쉽게 보내준 조선왕국을 상대로 후하게 배려했다. 앞으로 조공무역 이외에 일반적인 상거래인 무역량도 대폭 늘려 주기로 결정했다.
조선 사신단으로는 일단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조선에서 필요한 물건을 명나라에서 얼마든지 구입할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사안이 있었다.
자금성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온 정사인 김안국은 부사인 윤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감, 황제께서 하신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이요?”
김안국의 물음에 윤임은 전혀 모르는 척 태연하게 답했다.
“무슨 말씀인지?”
“갑자기 최인범에게 문과에서 회시를 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요?”
“대감, 나도 처음 듣는 말이라 황제 폐하의 하교가 잘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황제께서 하신 말씀이 최 사정을 지칭한 말이었습니까?”
“대감, 우리 사신단에 국비유학생이 또 있다는 거요?”
윤임은 자신이 뒤에서 엄숭을 통해 조정하고 시치미를 때고 있었다. 그러자 서장관인 양진묵은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기도 안차는 사건이 사신단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산해관에서 윤임 대감이 왜 그렇게 말한 것인지 이제는 이해했다.
‘오라, 그래서 산해관에서 문과에 응시하기 위한 국비유학생이라고 신고했군. 대감께서는 최 시정을 완전히 명나라에 잡아둘 음모를 벌인 거야.’
일이 이렇게 전개되자 최인범은 팔자에 없는 문과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산해관에서 입국 서류에 이미 문과 응시자라고 신고해 버렸으니 거절하면 대국을 기만한 죄에 해당된다. 더 나아가서는 황제를 기만한 행위로 몰아갈 수도 있으니 문과를 보기는 봐야 한다.
자신의 계책대로 잘 되어 간다고 판단한 윤임은 김안국에게 넌지시 권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당사자에게 연락은 해야죠.”
“그럽시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되는 것 같더니 최 사정의 일은 자꾸만 어긋나게 되는군요. 빨리 연락합시다.”
“제가 사람을 보내지요.”
“그래 주시오.”
회시는 예부에서 3월에 보기 때문에 아직은 보름정도 시간이 남았다. 결국 윤임이 모의하고 마무리는 정사인 김안국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문과는 무리라고 판단한 김안국과 한정문은 급하게 예부를 찾아갔다.
“국비유학생은 무과를 보겠다는 무인입니다. 그런데 사무 착오로 문과로 기록되었어요.”
“그렇다면 더욱 곤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황제폐하를 기만한 것이 될 수 있어요.”
최인범은 문과가 아닌 무과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변명하며 문과시험을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황제가 문과를 보라고 명했으니 이제 와서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황제폐하의 지엄한 명령으로 문과에서 회시를 보라고 했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소.”
“만약 회시에서 떨어지면 어찌되는 겁니까?”
“그야 유학을 왔으니 국자감에서 공부하고 3년 뒤에 과거시험을 봐야죠. 그래도 또 떨어지면 3년 후에 다시 봐야 하고요. 3번을 떨어지면 자질이 없다고 판단해 귀국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럼 10년은 국자감의 학생으로 잡아 둔다는 건가요?”
“그렇소. 그런 정도를 국자감에서 생활하면서 공부해도 안 되면 하고자하는 노력은 가상하다고 봐서 작은 벼슬을 주어 귀국시킬 거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면 10년을 공부하고 명나라에서 벼슬을 얻으니 전혀 손해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큰 혜택을 받는 배려지만 최인범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그리되면 부마도위는 물론 주상이 고려하던 모든 개혁정책을 추진하거나 왕세자나 왕자에 대해 취하려던 배려들이 모조리 틀어져 버린다.
“이거 일이 커지게 생겼어.”
“대감, 무슨 대책을 마련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예부에서 사정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온 김안국은 주상이 명령하신 임무를 하나도 완수하지 못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이거 일이 너무 복잡하게 됐군.”
“그렇습니다. 주상전하께서 매우 진노하게 생겼습니다.”
주상이 원하는 부마도위를 하겠다는 설득은 시도도 못했다.
더구나 유능한 장군 감인 인재 하나를 명나라에 10년은 잡혀 있도록 만들고 조선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더구나 문과를 보아 답도 적지 못하고 백지를 내면 나라 망신을 하게 됐으니 정말 큰일이다.
“그가 학문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 봤소?”
“그야 당연히 병법서나 조금 본다는 것만 압니다.”
“허어, 정말 큰일이군.”
정사인 김안국과 한정문은 속이 타서 고심했다. 하지만 부사인 윤임은 큰 혹을 때어내서 속이 편해서 그런지 여유롭게 북경을 돌아다니며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최 사정이 북경으로 오지 않자 김안국은 한정문에게 물었다.
“아니, 일이 이렇게 되는데 최 사정은 북경으로 안 오고 어디로 간 거요?”
“천진으로 갔습니다.”
“빨리 북경으로 오라고 전하시오. 이런 상태로 과거를 보면 너무 큰일이 아니오? 기본이 3백자인 답안을 3번이나 작성해야 하는데 일단 모범답안을 빼서 두루마기에 적어라도 가지고 들어가야 뭐라도 적을 수 있어 응시한 시늉이라도 내보는 것이 아니요?”
“대감, 부정한 방법을 쓰시려고요?”
“그렇소. 지금 이런 상태로 놔둘 수는 없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