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북경에서 강하게 부는 흑풍>
최인범은 사신 일행과 별도로 산해관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두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침상으로 기어 들어오려고 했다.
“저희들 모두 처음입니다.”
“그래? 처음이란 아침도 처음이고 다음날도 처음이니 그 종류가 다르지.”
“진짜 여자로 나리가 처음입니다.”
두 여자 모두 자신들이 모두 숫처녀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하며 하얀 비단 천을 손에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최인범은 두 여자를 향해 엄청난 거짓말을 토했다.
“험! 나는 요즈음 창병을 치료 중이라. 치료가 끝나고 보자.”
“예? 창병이라면?”
“그래, 너희들이 짐작하는 그런 병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에 두 미녀는 입을 떨 벌리며 놀랐다. 주인에 대한 충성 맹세의 신고식을 치르려고 벼르고 달려들던 두 여자는 기겁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주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몸을 바쳐야 하는 하녀인 처지지만 창병에 걸린 주인과의 정사는 너무 두려웠다. 더구나 아직은 숫처녀인 몸이라 더 좋은 주인을 만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지는 창병에 걸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자들은 또 다른 서러움에 빠져들었다.
“흑흑! 앞으로 우린 어찌 살아야 될지.”
“흐으윽. 언니 결국 왕 대인에게 다시 돌아가야 하나 봐.”
잠자리를 안 하게 됐으면 신이 나서 좋아해야 하는데 서럽게 울자 최인범은 너무 이상했다. 그래서 슬며시 여자들에게 물었다.
“왜? 울어?”
“저희는 나리에게 팔려오면서 나리의 몸시중을 들지 못하고 다시 왕 대인에게 돌아오면 많은 몸값을 받고 기녀로 판다고 했어요.”
“뭐라? 그런 조건부로 팔려 왔단 말이지.”
“예. 나리.”
실상은 팔린 것이 아니라 왕담보가 그냥 주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거래 형태로 서류를 정리하니 은괴를 주고 거래한 것으로 정리된 것이다. 이 여자들의 경우 그런 거래 금액은 모두 자신의 몸값으로 기록된다.
조선의 경우 흔히 노비 값이 평균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명나라의 경우 두 가지 경우다. 본래 노비출신이야 조선과 대동소이하게 거래된다. 하지만 집안의 빚 때문에 하녀 신분이 된 여자들은 빚이라는 금액이 몸뚱이의 가치기준이 된다.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연예기획사나 유흥업소에서 흔히 사용하는 계약과 같은 방식이다. 운이 좋아 재력 있는 남자를 잘 만나 빚을 갚으면 하녀에서 풀리게 되는 한시적인 노비인 셈이다.
왕담보는 결국 자신에게 두 여자를 떠넘기면서 여자들에게 빚만 더욱 늘려놓은 것이다.
‘공짜로 줬다고 하지만 완전히 준 것이 아니라 그냥 임대형식이군.’
더 자세한 내막이야 나중에 왕담보를 만나야 속 시원하게 알 수 있다. 여자들의 말로는 몸을 주지 않으면 왕대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어떻게 해서 하녀로 팔렸지?”
“사실 저희들은 모두 관리의 딸들이옵니다. 하지만 아버님이 억울하게 누명으로 억울하게 죽는 바람에 가산이 몰수되고 장례를 치를 방법이 없어 소녀들을 팔아 장례를 치렀지요.”
“뭐라?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몸을 팔아?”
두 여자는 사촌으로 아비들인 형제가 같이 탐관오리라는 누명을 쓰고 태형을 받아 죽었다고 했다. 가산이 모두 몰수되자 결국 딸들을 팔아서 장례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명나라도 예의범절을 지독하게 따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위직이던 아비들은 그래도 묻을 수가 없어 좋은 관도 사야하고 묘를 쓸 땅도 새로 사고 비석도 만들어야 하니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럼 가족들은?”
“모두 친척들 집으로 가서 절치부심 장사를 해서 돈을 모아 우리를 다시 산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게 가능해도 기녀가 되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죠. 그리고 빚이 너무 많아 쉽게 형제들이 저희들을 다시 살 재물을 모으기도 힘들고요.”
“알았어. 내가 나중에 왕 대인을 만나 잘 이야기 해보지.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푹 쉬도록 해.”
“예.”
그러나 두 여자는 자신들의 처량한 신세가 너무 서러워서 그러지 쉽게 잠이 들지 못하고 간간히 흐느끼며 울었다.
“흐으윽! 흐윽!”
두 여자와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자연히 주변 사람들은 다들 첩실이나 또는 함부로 탐해도 되는 여자 몸종을 방에 끌어들인 정도로 오해하고 있었다.
미녀를 둘이나 끼고 잠잔다고 수군거렸다.
“전에 와는 전혀 다르게 행동 하시네.”
“그러게.”
옆방에서 자는 두 부하들도 비슷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오해하는 이유야 야밤에 여자들이 흐느끼며 슬피 울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오해를 하는 이유는 그런 낮은 울음소리는 듣기에 따라서 정사를 벌이며 토해내는 감창소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사신단은 드디어 목적지인 산해관에 도착하게 되었다. 만리장성의 시작점인 산해관은 발해만과 연결된 곳으로 요새지로도 유명했다.
천하제일관이란 거창한 현판이 걸린 산해관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관원들이 정식으로 입국 심사를 했다.
와글와글.
이곳에는 몽골, 여진, 요서, 요동, 조선 그리고 멀리 왜에서 온 상인도 보였다. 최인범은 왜구로 피해를 보는 중인데 왜인상인들이 보이자 이상했다.
‘이상하군. 왜구를 잡자는 거야 뭐야?’
이런 모습으로 보아 명나라 조정은 정책에 일관성도 없고 하부의 지방 조직이 엉망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조선에서 도착한 사신들도 기다렸다가 입국절차를 받았다.
정식으로 보낸 조선사신 행렬이라 이미 명단도 보내져 필요는 없는 절차다. 하지만 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사신단이다. 그래서 간단하지만 잡인이 포함될 수도 있어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조선에서 정식 사신단으로 포함된 이외의 사람들은 서류를 검토하고 소지한 물건도 간단하게 검색했다.
서장관인 양진묵이 관원에게 말했다.
“사신단은 총 99명이요. 그리고 국비유학생 한 명과 그의 노비들이 4명이 있습니다.”
“국비유학생요?”
명나라 관원이 다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윤임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답했다.
“명나라로 와서 과거를 본다는 조선의 국비유학생이니 그렇게 아시오.”
“아, 그렇습니까? 대단한 문장가인 모양이군요.”
“그렇소. 명나라에서 분명히 올해 보게 되는 대과를 보아 급제하게 될 거요.”
“아! 진짜 훌륭한 분이 멀리 유학을 오시는군요.”
관원은 놀란 눈으로 연신 감탄하면서 즉시 서류에 국비유학생이라고 적고 문과 응시자라고 기록했다. 윤임은 혹시 기록이 잘못 됐나 확인해 이상이 없자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북경으로 이동합시다.”
“그러죠.”
윤임 대감의 이런 말에 양진묵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최인범이 국비유학생 신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과를 보기 위해 북경으로 온 것은 아니다. 또한 굳이 본다면 무과라고 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왜? 대감께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지? 정말 이상하군.’
명나라도 조선과 같이 3년마다 과거를 보고 있었다. 물론 보는 방법이야 조금 다르지만 대과에 급제하면 바로 현령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었다.
제일 뒤에서 졸졸 따라서 산해관을 통과하던 최인범은 윤임대감의 이런 미묘한 수작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관원이 별도로 넘겨주는 입국 심사증을 받아 들고 보지도 않고 품속에 넣었다.
그저 새로 적혀 있는 노(奴)가 둘이고 비(婢)가 둘이라는 숫자만 확인한 것이다. 다행인지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소지품에 대한 검사는 하지 않았다.
산해관 안으로 들어와 왕담보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찻집으로 데리고 가서 차를 마시며 두 여자에 대해 물었다.
“여자들을 보내며 조건을 걸었더군요.”
“예, 그 여자들은 고위관료들의 자식이라 조금 오만해서 제가 일부러 그리 했어요. 이미 나리께 드린 아이들이니 그냥 풀어주던 뭐하던 저는 상관은 안합니다.”
“노비에서 풀어 주면 되나요?”
최인범의 물음에 왕담보는 가볍게 응수했다.
“예, 여기는 빚만 갚으면 풀리니 관아로 가서 신고하면 됩니다. 하지만 풀어준다면 그 여자들은 또 다시 기방으로 팔려올 것 같네요. 미모만 뛰어나지 독자적으로 생활할 능력은 전혀 없으니까요.”
“알았소. 그보다 천진으로 가면 언제든지 대운하로 내려갈 수 있나요?”
“예, 여행을 다니고 싶은 지역에서 대규모로 도적 때가 나타나던가. 혹은 연쇄 살인 사건이 터지던가 하는 등의 특별한 사고가 터지면 검문검색이 심해지니 반드시 통행증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평소에도 관아로 가서 통행증 즉 여행증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증 대신에 명나라에서 발행한 신분패가 있으면 상관이 없겠군요.”
“그건 그렇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대운하로 연결되는 천진으로 가게 되었다. 일단 천진에서 상황을 살피고 나서 나중에 남쪽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말을 타고 천진에 도착하자 최인범은 새로 말 2필을 구입해서 여자들에게 주게 되었다.
“말 타는 방법부터 배워!”
몇 칠을 보내며 두 여자에게 승마를 배우도록 했다. 그동안 최인범은 천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북경의 관문에 해당되는 천진은 많은 재물이 몰리는 곳이다. 그 때문에 기루도 많고 그곳에서 마작을 즐기거나 또는 거액을 거는 도박도 아주 심했다.
최인범은 뚜렷하게 목적한 바가 있으니 이곳에서 조용히 각종 내기를 하며 재물을 슬금슬금 모으고 있었다.
그가 천진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산해관에서 바로 북경에 도착한 윤임은 엄숭을 만나자 미묘한 청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꼴 보기 싫은 최인범을 크기 전에 제거해 버리려는 윤임은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움직였다.
‘그놈은 내 인생에 절대로 도움 될 놈이 아니야.’
말하는 싹수나 뭐를 봐도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윤원형을 많이 닮아 있었다. 한미한 가문이라 중전으로 밀어 줬었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윤원형이 이제는 감히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고 하니 윤임은 그런 놈을 또 만들고 싶지 않았다.
윤임은 무술이 뛰어난 최인범이라 학문에 정진할 시간도 없었고 그런 자질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려운 명나라 과거시험에서 문과에 응시하기 위해 찾아온 국비장학생으로 엄숭에게 선전했다.
“조선에서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인재가 국비유학생으로 북경에 왔습니다.”
“그래요? 그런 인재가 왜 과거를 여기까지 와서 본다는 거요?”
먼저 인재라고 하고나서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야, 나이가 어리다보니 조금 건방져서 그런 거죠.”
“그런데 국비유학생이라니 이상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