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전에는 어떤 기준으로 여자를 평가했으나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과거의 어떤 바람 따위는 이미 깡그리 잊어 버렸다.
좁고 잘 조여지는 깊은 속살하며 풍만한 몸매를 접하니 이제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최인범은 품에 폭 들어와 안긴 설화의 탱탱한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폭 자고. 내일 일찍 움직이자.”
“예.”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젊은 몸이라 금방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 열기를 몸으로 느낀 설화는 조금 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애무에 응하며 정사를 벌였다.
이윽고 뜨거운 시간이 흐르고 나자 두 사람은 매우 만족한 듯이 잠이 들었다.
이제 봄이 다가오고 있지만 북쪽인 이곳은 여전히 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그런 추위는 해가 뜨기 직전인 새벽이 가장 추었다.
혼자서 다소 떨어진 바위에서 보초를 서던 장수한은 새벽이 되자 졸음이 갑자기 밀려왔다. 자꾸만 눈이 감기자 고개를 흔들며 애써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오늘 따라 더 졸리네.’
장주한은 설화가 주인의 천막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모습을 봤으니 감히 깨우러 갈 수 없었다. 뜨거운 밤을 보낼 두 사람을 상상하며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다.
‘어휴! 나도 장가가고 싶어.’
전에도 장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혼자서 추운 공기를 쏘이며 외롭게 보초를 서려니 더욱 을씨년스럽고 여자 생각이 간절했다.
이때 옆에 있는 백구가 귀를 세우며 건너편으로 보이는 바위를 노려보았다. 점점 긴장해 공격적인 자세로 변했다. 백구가 긴장할 정도면 상당히 강한 적이다.
‘표범이군.’
이곳에는 무서운 늑대나 여우가 있고 살쾡이도 있다. 하지만 제일 강한 맹수는 매화 꽃 같은 얼룩점이 촘촘히 박힌 표범이다.
만리장성에서 동북부 지역인 이곳이나 몽골 지역에 살면서 밤에 주로 사냥하는 표범은 주변에는 호랑이가 없으니 제일 강자다.
장주한은 조심스럽게 백두에게 신호를 보냈다.
“가서 알려!”
주위에 나타난 표범이 겁나서가 아니다. 다만 사냥감이 스스로 찾아왔으니 반드시 잡고 싶은 욕심에 최인범을 깨우려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사냥감을 자칫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주인인 최인범은 이제까지 발견한 사냥감을 그대로 보낸 경우가 없었다.
설화를 껴안고 잠자던 최인범은 백구가 와서 깨우자 급하게 군복을 입었다. 활과 흑혈검을 들고 장주한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뭐야?”
“나리, 저쪽 바위에 표범이 나타났습니다.”
장주한이 지목한 곳을 바라보니 검은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아직 날이 새지는 않아 어둡기는 하지만 형태로 보아 표범이 분명했다.
최인범은 너부러져 잠자고 있는 설화가 걱정되어 지시했다.
“너는 천막으로 가봐. 설화가 자는 천막으로 다른 표범이 나타날 수 있으니까.”
“넷!”
장주한은 빠르게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갔다.
혼자 남은 최인범은 낙엽을 하늘로 던져보며 잠시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다행히 표범이 나타난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됐어.”
최인범은 활의 시위에 화살을 걸고 조심스럽게 표범이 어슬렁거리는 바위 쪽으로 다가갔다.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 다가가자 낌새라도 차린 것인지 표범이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다행이군.’
빠르게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눈치를 챈 것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표범을 살폈다. 표범은 주위를 계속 살피면서 뭔가 찾고 있었다.
이윽고 적당한 거리에 도달하자 시위를 힘차게 당겼다.
쉬익! 팍!
“캬앙!”
표범은 크게 울면서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몸통에 화살이 깊이 박힌 그대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빠르게 다가가 표범에게 두 번째 화살을 날렸다.
쉬익! 팍!
“케엥!”
두 번째 화살이 다시 몸통에 박히자 표범은 비명을 토하며 땅에 쓰러져 바동거렸다.
최인범이 가까이 다가가서 내려다 볼 때는 이미 숨이 멈춘 상태다. 배 쪽으로 젖꼭지가 크게 보였다.
“새끼를 키우는 암놈이군.”
잡은 표범이 새끼를 키우는 암놈인 것을 알자 최인범은 빠르게 주변을 세밀하게 살폈다. 수놈도 주변에 있을 수 있다. 주변 환경이 분명 표범의 새끼가 자랄 수 있는 곳이라 혹시 새끼 표범이 있는지 찾으려는 것이다.
두리번두리번.
표범 새끼를 숨겨놓을 만한 위치를 추적했다.
이윽고 커다란 바위틈의 움푹 들어간 곳에 의외로 많은 표범 새끼들이 보였다. 모두 어미 고양이만한 표범 새끼들은 5마리나 되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새끼를 낳아서 키우다 보니 다소무리하게 사람에게 접근한 것 같았다.
최인범은 상의 군복을 벗어 새끼 표범을 모두 담아 안고 크게 외쳤다.
“장 상병, 이리 와서 표범을 가져가.”
“넷!”
표범을 잡고 새끼 표범을 가지고 천막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설화가 잠에서 깨어나 군복을 입으며 놀랬다.
“어머, 또 밤 사냥을 하셨네요.”
말을 토하고 보니 조금 이상해 설화는 얼굴이 벌게졌다. 자신도 잡아먹힌 사냥감이라고 말해 버렸기 때문이다.
잡힌 어미 표범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아마도 첫 번째로 새끼를 낳아 키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새끼들은 모두 토실토실하니 건강했다.
장주한은 빠르게 표범 가죽을 벗기고 나서 전과 같이 심장과 간은 최인범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나리, 표범 살코기는 왕 대인에게 줄 까요?”
최인범은 날고기를 맛나게 먹으며 답했다.
“그게 좋겠군. 고기를 조금만 잘라서 굽고 나머지는 지금 바로 왕 대인에게 가져다 줘. 그리고 올 때는 대나무 광주리를 구해서 가져오고.”
“넷!”
이런 지시에 장주한은 급하게 단창에 살코기를 끼어 굽도록 해놓고 남은 살코기를 말에 싣고 빠르게 떠났다.
최인범은 살코기를 구우면서 천천히 3개의 천막을 걷었다. 모포는 설화가 꼼꼼하게 둘둘 말았다. 천막을 걷고 모포도 챙겨 배낭을 꾸리고 나자 살코기는 먹기 좋게 익었다.
반월검을 꺼내 살코기는 백두에게 던져주면서 다시 살코기를 설화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설화, 이 반월검의 내력에 대해 잘 아나?”
“예. 당연히 잘 알죠.”
이제는 사랑하는 남편이 된 상황이라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설화는 고기를 먹으며 자신의 진정한 신분이나 여진족에게 중요한 비밀인 반월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녀가 여진족의 족장에 딸이자 조카라는 말에 매우 놀랐다.
더구나 친오빠와 정혼자를 자신이 죽였으니 정말 미안했다.
“너무 미안하군. 설화의 오빠들을 그렇게 죽여서.”
“이미 지난 일인걸요.”
과거의 원한을 시원하게 떤 설화는 반월도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했다.
오래된 전설부터 시작해 12개의 반월도 중에서 행방이 드러난 것은 현재 6개뿐이고 나머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추측하기에는 일부는 함경도에서 활동하던 여진족들이 조선왕국으로 귀화하면서 2-3개 정도를 가져가 어쩌면 조선 왕실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겠군. 본시 전주 여진족 중의 일부는 함경도 주민으로 변했으니까 그럴 수 있겠어.”
“나리, 저희 아버님이 나리께 주신 지금 가지고 계신 반월도 이외에 하나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서 하나를 쉽게 넘겨줬나?”
“그렇지는 않아요. 아마 나리를 제 동생의 후견인으로 삼기위해 그리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조선인인데?”
“그거야 상관없죠. 접경 지역에 사시니 나리께서 도우실 마음만 있으시면 얼마든지 도울 방법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신 거죠.”
어린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아패록 족장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구상이다.
최인범은 이런 설화의 설명에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되었다.
개마고원을 지금보다 더욱 집중해서 개발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물론 백두산 북쪽의 이도백하로 가서 터를 잡은 부하들과도 더욱 긴밀하게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이런 결정을 한 최인범은 새끼 표범을 보면서 말했다.
“모두 키울 수는 없고 암수 한 쌍으로 2마리만 골라서 설화가 애완동물로 키워 봐!”
“표범을 키울 수 있나요?”
“어려서부터 키우면 주인 말을 잘 듣고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으니 설화가 잘 보살펴서 키워 봐! 나머지는 북경으로 가져가서 적당한 사람 만나면 선물로 주기로 하고.”
“알았어요.”
자신이야 백두를 비롯한 많은 풍산개가 있으니 됐다.
그래서 설화에게도 애완동물로 키워보라고 권했다. 자신과 같이 지낸다고 하지만 항상 같이 지낼 수는 없으니 표범을 길들여 보호하도록 해보는 것이다.
“어미 가죽으로 담요를 만들어 사용하면 새끼들이 쉽게 적응할 거야.”
“그렇군요.”
반월도에 이어 표범 가죽을 선물로 받자 설화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여진족의 풍습에는 청혼할 때는 보통 작은 단검과 고급 가죽을 선물로 주고 많은 가축을 주기도 한다.
비록 정식으로 혼인하게 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귀한 선물도 받았으니 격식은 갖추게 됐다고 판단했다.
‘나를 부인으로 인정하시는 거야.’
일부다처제와 근친혼이 성행하는 여진족이라 이후의 일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최인범에게 따로 여자가 있는지 물어볼 생각도 없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 자신이 남편과 같이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갈 때 그때 생각해 보자고.’
설화는 자신의 추후 거처나 행동은 부닥치면 그때 판단하기로 했다.
여진족의 경우도 첫 번째나 가문 좋은 여자인 정실이 우선한다. 하지만 조선처럼 둘째 부인인 첩이라는 개념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얼마든지 자신의 남편 주변으로 많은 여자들이 다가와도 별로 꺼릴 것이 없었다.
이윽고 사신단의 후미에서 따라가는 왕담보를 찾아갔던 장주한이 돌아왔다. 자그마한 상자와 같은 대나무광주리를 가져와 표범 새끼들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