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가깝게 다가온 적은 정확하게 한 발에 한명씩 죽어갔다.
쉬익! 쉬익!
적들도 매섭게 망루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런 화살을 피하기 위해 숨어서 쏴야하니 명중률을 조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부는 가죽 방패를 지니고 있으니 활을 쏘아 잡는 것도 어려웠다.
“와!”
“죽여라!”
적들은 드디어 망루에 오르는 계단으로 밀려왔다.
“너는, 화살을 쏴! 내가 계단을 막지!”
“넷!”
최인범은 흑선검을 빼어들고 계단 앞에 서면서 오른 손에 들린 장창을 힘차게 던졌다.
획!
“크악!”
획!
“으악!”
장창 5개를 멀리 던져 적들을 잡고 나자 다른 적들은 어느새 가까이에 다가왔다. 드디어 치열한 접근전이 벌어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검이나 창을 들고 계단 위로 오른 두 녀석을 향해 최인범은 십자 사선 베기로 흑선검을 크게 휘둘렀다.
휙! 획!
“컥!”
“으아악!”
한 녀석은 목이 댕강 달아나서 계단위에서 나뒹굴었다. 한 녀석은 팔이 싹둑 잘라지자 처절하데 비명을 질렀다. 순간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기며 비릿한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퍽!
“컥!”
“아아쿠!”
과다당.
팔이 잘라져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턱을 앞차기로 걷어차자 계단을 오르던 녀석들이 같이 엉겨 붙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런 짧은 순간을 이용해 최인범은 이내 적이 흘린 장창을 들어 힘차게 던졌다.
획! 퍽!
“크아악!”
조금 떨어진 뒤에서 졸개들을 독촉하던 녀석이 장창에 복부를 관통당해 붉은 피를 품으며 쓰러져 버렸다. 그러나 적들은 다시 계단을 통해 망루로 떼 지어 올라왔다.
“와! 와! 죽여라!”
처음과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망루로 오르던 적들은 최인범의 흑선검에 죽거나 또는 장주한이 날린 화살에 하나씩 죽어갔다. 몇 차례 접전이 있었지만 적들은 점점 수가 줄었다. 뒤에서 화살을 날리던 놈들도 장주한이 날린 화살에 하나둘 죽어갔다.
“탓!”
쉬익
“크악!”
“악!”
좁은 계단이라 두 놈만 동시에 오를 정도다. 적들이 아무리 많아도 한 번에 여러 명이 공격을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절없이 죽어가는 부하들을 바라보던 말 탄 녀석이 크게 외쳤다.
“퇴각!”
그 소리에 공격을 멈춘 적들은 급하게 뒤로 돌아 도망쳤다. 그러자 최인범은 이내 장검을 옆에 놓고 활을 틀어 통아를 이용해 편전을 쏘기 시작했다.
목표는 당연히 졸개들을 지휘하다가 달아나는 두목 놈이다.
핑! 쉬익! 퍽!
“크악!”
내리던 눈이 멈추고 이미 날이 밝아 시야가 확보되었다.
최인범이 날리는 편전은 멀리까지 계속 쏘아 말을 타거나 달려서 도망치는 녀석들의 등에 화살들을 박았다. 달아나던 적들은 겁에 질려 더욱 빠르게 도망쳤다.
이윽고 주변에 적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장에는 시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이곳저곳에서는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그러자 최인범은 싸늘하게 명령했다.
“모조리 확인 사살해.”
“넷!”
최인범과 장주한은 망루에서 내려왔다. 아직도 죽지 않고 처절하게 신음을 토하는 적들에게 장창을 찔러 숨통을 모조리 끓어 버렸다.
최인범에게는 이제 부상자들이 불쌍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주변에 몇 필의 말이 남아 있었다.
“말부터 잡아!”
“넷!”
두 사람은 여전히 전장 터에서 주인을 잃고 갈 곳을 몰라 서성이는 4필의 말을 잡았다. 순하고 길이 잘 들어서 그런지 고삐를 잡아도 길길이 날뛰지는 않았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군.’
이제 적들이 다시 공격해 와도 도망칠 수단이 있으니 조금은 여유로웠다. 두 사람은 우선 주변에서 신음하는 적들부터 숨을 끓어 놓고 다소 떨어진 곳에서 쓰러진 적들은 말을 타고 가서 숨통을 끓어 버렸다.
특히 200보 정도 떨어져 죽어 있는 두목에게 다가가 숨통을 끓어 버리고 품속을 빠르게 뒤졌다. 정확한 신분을 알만한 물건을 찾으려는 것이다. 죽은 두목의 품속에는 작은 조각인 은괴와 금괴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흠! 이놈도 재물을 지닌 것을 보니 우두머리군.”
“주인님, 아마도 부족장인 것 같사옵니다.”
“그렇겠어.”
목에는 보석 몇 개가 주렁주렁 달린 금목걸이가 보였다. 또한 허리춤에는 작은 보석들이 박힌 반월도를 차고 있어 그것도 안주머니에 넣어 챙겼다.
‘제법 부자인 부족장이 확실해.’
쇠사슬을 연결해 만든 쇄자갑(鎖子甲)을 보자 벗겨서 챙겼다. 죽은 자의 갑옷을 챙겨 입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몸을 보호할 갑옷이 절실한 상황이다.
의외로 죽은 두목 놈이 전에 여진족 족장에게서 획득한 반월도와 비슷하게 생긴 작은 보석들이 촘촘히 박힌 반월도를 지니고 있자 약간 놀랐다.
‘이놈 봐라! 평범한 마적 떼 같지가 않군.’
그런 것 이외에는 신분을 정확하게 알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인범이 시체들의 품속을 뒤져 작은 은괴들이나 또는 보석목걸이들을 챙기자 장주한도 확인 사살하며 품속을 뒤져 뭔가를 부지런히 챙겼다.
죽어 있는 적들은 50명 정도나 되었다.
화살 공격을 면하고 멀리 달아난 녀석이 대략 30명 정도가 되니 모두 80명 정도가 공격해왔다. 이런 규모라면 분명 나중이라도 뭔가 알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 말이 있으니 빨리 사신단과 합류해야 된다.
“천막을 걷지.”
“넷!”
두 사람은 빠르게 천막을 걷어 배낭을 꾸려 등에 짊어졌다. 화살을 넣어두는 살동개가 텅 빈 것을 느끼고 주변에 널린 유엽전인 긴 화살부터 수습했다.
편전은 모르지만 유엽전은 조선이나 여진족이나 비슷한 모양이라 사용하는데 불편하지 않아 모조리 챙겼다.
화살들을 급하게 챙기며 약간 구부러진 화살은 멧돼지 어금니로 만든 족도리로 잘 펴서 수평을 가늠해 보고 살동개에 넣었다. 살동개 2개를 이용해 20발씩 챙기고 짧은 화살 몇 개씩도 챙겼다.
“쇄자갑은 모조리 챙겨!”
“넷!”
쇄자갑은 만들기가 어려워 그런대로 고가에 팔리는 물건이다. 어차피 벌판에 버려지면 주변 마을 사람들이 수거해갈 전리품이다.
일단 힘들게 거둔 승리니 이런 전리품이라도 최대한 챙기는 것이다. 그리고 쇄자갑은 약간씩 만드는 방법이 달라 자신들을 공격한 무리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다시 시체들을 확인해 쇄자갑을 챙기자 모두 15벌이 되었다.
일단 쇄자갑이나 무기들까지 챙기고 나자 두 사람은 모닥불 옆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빠르게 군복을 벗고 안에 쇄자갑을 챙겨 입었다. 면으로 만든 내의 위에 입고 군복을 다시 겉에 입으니 안에 갑옷을 입은 표자 잘나지 않았다.
‘안에 비단 옷을 입어야 하는데.’
쇠고리의 차가운 느낌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 챙겨 입은 것이다. 갑옷을 챙겨 입다가 보니 자신들도 부상을 당한 것을 그제야 알았다.
언제 베이거나 찔렸는지 모르지만 허벅지나 장딴지 부분에 작은 상처가 나고 군복이 찢어져 있었다. 아마도 발차기를 하며 창검에 베어진 것 같았다.
“장 상병, 호랑이 약 있냐?”
“넷!”
두 사람은 자상에 특효를 보이는 호랑이 약으로 상처를 치료했다. 상처는 미미했지만 싸우는 동안 피는 많이 흘려 바지는 붉게 얼룩져 있었다.
우선 갑옷도 입고 무기들도 챙겼다. 이후 피비린내가 나는 전장에서 사슴고기로 아침을 먹었다. 힘을 과도하게 써서 그런지 상당히 허기졌다.
컹! 컹!
배가 고파 짖으며 꼬리를 흔드는 백두에게도 잘 익은 살코기를 던져주며 말했다.
“장 상병, 느낌이 너무 좋지가 않군. 벌써 와야 할 백삼수가 아직도 오지를 않아.”
“나리, 혹시 홍 상병이 가다가 적에게 당한 것이 아닐까요?”
“그야 모르지.”
최인범의 마음속에는 지금 어떤 의혹이 강하게 밀려왔다. 이유는 두목의 품속에서 챙긴 여러 개의 작은 은괴는 자신이 이미 잘 아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우연에 일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두 번째로 자신을 공격한 무리는 매우 복잡한 사연이 있어 공격한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서 무작정 기다리기 보다는 사신단에 빨리 합류하는 것이 좋았다.
“가자!”
“넷!”
말에 올라 쇄자갑이나 기타 무기를 등에 짊어진 말을 끌고 빠르게 떠났다. 두 사람이 멀리 떠나자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시체들은 물론 말이나 기타 물건들을 빠르게 수거해 갔다.
어지럽게 시체와 물건 그리고 부러진 화살이나 창들이 널려 있던 전투 지역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하얀 눈 위에 붉은 꽃인 혈화만 보이고 있었다.
다소 빠르게 전투 지역을 벗어나 북쪽으로 이동하던 최인범은 계속해서 의혹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두목이 지녔던 은괴는 자신이 의주에서 면포 2000필과 바꾼 은괴기 때문이다.
‘백삼수에게 줬는데 그게 왜 그놈들이 가지고 있지?’
아무튼 백삼수를 만나야 어찌된 사실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서 다소 빠르게 말을 몰아 이동했다.
이때 근처의 숲속에서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악!”
여자가 내지르는 큰 비명소리에 놀란 두 사람은 급히 말을 멈추었다.
“뭐지?”
“나리, 기분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이런 숲에서 여자가 있다니요? 아무래도 적들이 우릴 공격하기 위해 벌이는 수작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포로로 잡으면 되겠네.”
딴은 틀린 말이 아니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숲으로 가자 누군가 급하게 크게 외치며 달려 나왔다.
후다닥!
“헉!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