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46화 (146/519)

146화

<요동 땅에서의 풍운>

압록강의 의주 나루터에서 기찰하는 군관에게 마패를 보여 출국신고를 마치고 배에 올라 강을 건넌다. 사공이 저어서 가는 배는 흔하게 보는 나룻배 보다는 규모가 약간 큰 정도다.

옆으로 보이는 위화도를 바라보며 잠시 ‘이성계의 회군이 없었다면 역사가 어찌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고 있었다.

‘그때 한판 했어야 됐는데.’

아무튼 역사란 큰 흐름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압록강 물처럼 서서히 흘러간다는 느낌이 스쳤다.

자신이 이미 벌인 일들 때문에 조선을 비롯해 왜나 만주 지역이 심하게 원 역사와 달리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만주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대진국(발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문뜩 조상들이 살던 고토를 직접 살피며 가게 된다는 기분으로 심장이 마구 뛰었다.

여전히 추운 겨울이라 압록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위화도 지역은 바닷물이 수시로 들어와서 그런지 살얼음만 보였다. 그래서 배들이 왕래하기 편하게 다소 두꺼운 얼음은 깨서 수로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이런 압록강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슬며시 힘차게 노를 젓는 뱃사공에게 다가가 물었다.

“사공, 평소에도 여기는 얼음이 두껍게 얼지 않나?”

“나리, 아닙니다. 올해는 겨울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얼음이 두껍게 얼지 않았어요.”

“그럼 날씨가 추우면 사람이나 말이나 우마차가 쉽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두껍게 어나?”

“그렇지는 않아요. 여기는 바닷물이 들어와 평소에도 무거운 우마차가 함부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얼지는 않아요. 얼어붙은 강 위를 통해 국경선을 쉽게 넘으려면 겨울에는 이웃한 상류인 삭주 지역을 통해서 가시면 얼음이 항상 두텁게 업니다.”

최인범이 뱃사공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압록강을 겨울에 도하할 때 어디로 통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다. 그런 조건을 미리 알아놓아야 유사시 군사 작전을 펼칠 때 유리하기 때문이다.

‘흠! 그래서 보통은 조금 상류인 삭주 쪽으로 침공을 했었군.’

전에도 분명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깊숙하게 들어가 활동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뭔가 갈구하는 느낌이 계속 치밀어 올랐다.

‘내가 왜 이러지?’

급격하게 흥분되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시적으로 여러 명의 부하들과 약탈하기 위해 몰래 넘어 갈 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 북쪽의 강변에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는 명나라의 관리에게서 종이로 써진 입국 허가서를 받고 나서야 최인범은 자신의 뛰는 가슴이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땅이었는데. 허가를 받아야 다니다니.’

전에는 우리 땅이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시 찾고 싶다는 욕망이 미친 듯이 치밀어 올라 심장이 급하게 뛰었던 것이다.

사신단 일행은 압록강을 넘자 이내 오골 산성(봉황성) 쪽으로 이동했다. 오골 산성은 강변에 위치한 안동(후일 단동)에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국비유학생 신분인 최인범은 사신단과 동행은 하지만 개별적으로 행동이 가능한 위치다. 그러나 처음부터 따로 떨어져 가기가 뭐해 사신단과 같이 가고 있었다.

전부터 아는 사이라 한정문 옆으로 가서 슬며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장군님, 명나라로 가지고 간다는 말은 어찌 되었어요?”

명나라에서 2000필의 말을 보내달라고 해서 조선에서는 동 여진족으로부터 말을 대량으로 구입했었다. 그 때문에 최인범이나 또는 백두상단은 약탈과 거래라는 방법으로 많은 이득을 보면서 말을 조선으로 들여왔다.

최인범의 물음에 한정문은 즉시 답해 주었다.

“워낙 명나라의 독촉이 심해서 평안도 지역에 있는 말들을 모조리 모아 이미 북경 쪽으로 보냈네. 그 때문에 군마나 역참의 말들이 모두 차출되어 보냈어.”

“벌써 그 많은 수를 모조리 보냈어요?”

“늦으면 3000필을 보내야 한다니 어쩔 수 없이 빨리 보낼 수밖에 없었다네. 의주로 오면서 백두상단이 동여진에서 들여온 말들을 겨우겨우 역참으로 보내 그나마 역참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네.”

“그랬군요.”

“자네가 큰 공을 세웠다고 주상전하의 칭찬이 자자하네. 한양으로 들려서 왔으면 뭔가 실직을 받아서 북경으로 같이 갈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군.”

“저야 그런 욕심은 없습니다.”

명나라가 말을 요구하면 조선은 동여진에서 말을 싸게 구입해 비싸게 되팔아 많은 이득을 본다. 하지만 이번처럼 무리한 조공을 원할 때는 조선은 내부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명나라에서 너무 많은 말의 요구로 북방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진을 통해 말을 구입해 백두상단은 많은 이득금을 보고 무사히 끝나게 되었다.

최인범은 마작을 하며 수집한 정보에 대해 말했다.

“장군님, 의주에서 만났던 명나라 상인들 말에 의하면 북쪽의 요동지역에서 마적들이 날 뛴다고 하던데 사신 행렬은 안전할까요?”

“나도 마적들이 날뛴다는 소리는 이미 들었네. 그래서 조금 걱정되지만 설마하니 사신 행렬이야 공격하지는 않겠지. 그리되면 명나라와 조선이 합심해 여진족을 토벌하는 대대적인 군사 활동을 하게 되니까. 그들도 그것은 피하려고 할 거야.”

“마적인데 그런 것을 따지나요?”

“그렇지 않아. 여기서 활동하는 큰 규모의 마적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진족 족장들의 명령을 따르고 있어.”

“그렇군요.”

소규모 마적이야 큰 무리를 이루고 가는 사신 행렬을 공격할리 없으니 한정문은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최인범이 벌인 사건들 때문에 지금 압록강 북쪽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도백하에서 흑풍대라는 새로운 세력이 생겨 말을 약탈하고 사람을 끌고 갔다.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부분을 요동 지역으로 진출한 마적들이 충당해주고 있었다.

최인범이 백두산 주변에서 벌인 군사 활동으로 그 여파가 요동지역까지 점차 번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 앞서 가던 정사인 김안국이 말을 몰아 최인범 옆으로 다가와 천천히 같이 가면서 슬며시 물었다.

“자네는 올해에 무과를 볼 생각이 없나?”

“대감, 저도 무과를 보긴 봐야하는데 주상전하의 명나라로 가게 됐으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봄에 보는 과거를 보기가 힘들죠.”

“명나라로 가면 오래 있을 생각인가?”

“그건 지금은 뭐라 답하기 어렵습니다. 명나라로 갔다가 볼 일을 보고 과거시험 때까지 한양으로 돌아오면 과거를 보고 아니면 다음으로 미루어야죠. 지금 생각이지만 명나라에서 조금 오래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 아무래도 과거는 다음으로 미뤄야 될 것 같습니다.”

벼슬길로 오르는 관문인 과거시험에 목숨을 거는 조선의 양반들이다. 그런데 최인범은 과거시험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가볍게 답하자 김안국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조정으로 출사할 뜻이 별로 없는 모양이군.”

“예, 사실 돌아가신 아버님과 약속 때문에 과거를 봐야 하지. 굳이 과거를 보아 조정에 출사해서 관리로 근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유가 뭔가?”

“그야 관리를 하게 되면 우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태생이 방랑기가 있어서 그런지 한 고장에 처박히거나 또는 조정에 출사해서 붙잡혀 있기도 싫고요. 그리고 제가 아직 관리로 임명될 나이도 되지 않았으니 아직은 별로 생각이 없죠.”

“그거야 관행이고 자네라면 무과에 급제만 하면 바로 벼슬을 하게 될 것인데?”

“그야 과거를 보아 등과해야 되는 일이죠. 경쟁이 심한 과거에 제가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서두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대답에 김안국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뜩 주상전하께서 바라는 대로 최인범을 부마도위로 삼기가 어렵지 않나 생각했다. 이런 방랑기가 많은 사내와 공주가 혼인하면 순탄하게 가정생활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독특한 성품인 청년이군.’

한양으로 돌아가면 주상께 부마도위에 대한 낙점을 포기하도록 권해볼 생각이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방랑벽이 심한 사내와 혼인하면 무척 외로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김안국은 슬며시 국가관이 어떤지 알고 싶어 물었다.

“외국과 전쟁이 나면 자네는 어찌 할 생각인가?”

“그야 외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최전선으로 나가서 싸워야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제가 부하들을 조련시키고 저도 무술을 계속 수련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큰 부대를 지휘할 능력이야 없으니 규모가 작은 기마부대를 지휘에 적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그런 특수부대만 지휘하는 정도면 족합니다.”

“그러면 상당히 위험한 군사작전을 펼치겠다는 생각이군.”

“그렇습니다. 방랑벽이 있는 저는 군대에서도 그런 식으로 교란작전을 펼치면서 적진을 마구 돌아다녀야 제일 적성에도 맡고 좋다고 봅니다.”

“어떻게?”

“기마부대를 이끌면 충분합니다.”

나라를 위해 전쟁에 직접 나서지만 소규모 기마부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후방교란작전을 펼친다니 조금 특별한 생각을 가진 청년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무튼 진득한 성품은 아니야.’

무인 기질이 다분한 최인범은 상업에도 관심이 많아 백두상단을 만들었다. 그러니 관리가 되면 상단을 운영하기가 곤란하다.

직접 개입하지 않고 백두상단을 운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되면 조정신료들의 질시로 탄핵을 받을 여지가 많았다.

그렇다고 무관직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적당히 필요한 업무를 하면서 벼슬이 조금씩 오르는 정도면 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명예직인 검교직이란 벼슬은 다른 사람은 어찌 바라보던 본인은 제일 좋았다.

직급이야 있으니 어디로 가던 양반으로 대접받으며 살 수 있다. 특별히 어떤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으니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김안국은 한양을 떠나기 전에 주상에게서 최인범을 잘 살펴보라는 밀명을 받았다. 그의 생각을 알아내라는 명령이라 슬며시 다시 물었다.

“만약 자네가 조선을 바꿀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뭔가?”

이런 물음에 약간 놀라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대감, 제가 조선을 바꾸다니요? 그것은 조금 너무 과하신 물음이군요. 저야 그저 백성들이 지금보다 잘 살고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면 족하다고 판단합니다.”

“내가 묻는 말도 그런 뜻일세.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지금과는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나?”

“물론 그렇죠. 아무튼 저는 지금 팔도로 나누어진 행정구역을 새롭게 바꾸면 어떤가 생각해 봤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조금 복잡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전혀 사용하지 않는 법도 아니니 설명해 드리죠.”

최인범은 결국 지금 8개로 나눈 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행정 구역 개편을 설명했다.

황해도와 강원도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를 2개로 나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라도에 속한 제주도를 도로 지정하고 동시에 행정 조직을 도, 시, 군, 읍, 면, 리로 나눈다는 내용이다.

물론 왕권 국가에서 지금 사용하는 군현제가 잘못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령과 현감을 읍장과 면장으로 바꾸고 도호부는 시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군수가 읍과 면을 통괄해 다스리고 도지사가 군수나 시장을 통제하는 방식의 행정조직 운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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