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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트레인-144화 (144/519)

144화

왜는 전국 시대라 전체적인 어떤 통계가 수집되지 않아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하층민은 왜에는 없었던 호랑이를 직접 보거나 그림으로 보지도 못해 이상한 괴담만 많이 떠돌아 어느 말이 진실인지 알 도리도 없었다.

그러니 조선에서는 왜에서 벌어지는 호환의 심각성을 더더구나 모를 수밖에 없었다.

주상은 당장에 왜로 착호갑사를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왜인들이 불가능한 부탁을 하는군.’

지리도 잘 모르는 상황에 함부로 착호갑사를 보내 호랑이 사냥을 하다가 보면 희생이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육에 맛이 들어 있는 호랑이를 어설프게 건들면 그때는 더욱 난폭하게 변해진다.

“예판, 그 문제는 우선 잠시 뒤로 미룹시다. 왜에도 병졸들이 많은 나라이니 굳이 우리 조선에서 착호갑사들을 보낼 필요까지는 없을 거니 모른 척 그대로 놔두세요.”

“예이!”

주상의 이런 결정은 전에 왜가 하삼도를 침범한 사건들 때문에 보복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니다.

사실 적은 군대라도 외국으로 보내려면 자칫 국론이 분열될 수도 있다. 또한 착호갑사들이 사용하는 각궁이나 기타 편전들이 왜로 전파될 염려도 있어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강한 무기가 전파되면 나중에 큰 화를 불러오는 수가 있어.’

더구나 왜는 전국시대라 어떤 영주의 관할 구역으로 착호갑사들을 보내야 할지도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수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나라라 그런 전쟁 판에서 착호갑사들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도 없으니 보낸다는 것은 어려운 난제다.

일단 파병하는 문제는 뒤로 미룬 주상은 제일 급한 일로 우선 중전을 만나 상황이 꼬이게 된 정황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윤임 때문에 중전의 걱정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멀리 귀양을 보낸 윤원형 형제를 풀어줘야 중전의 고심을 다소 덜어줄 것 같았다. 그동안 너무 윤임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니 조금은 견제할 세력이 필요했다.

주상은 우선 개인적인 일보다 국정이 우선이라 호조판서를 불러 물었다.

“상평청에서 발행하는 상평통보는 잘 유통되나?”

“그러하옵니다. 상당히 빠르게 널리 유통되고 있사옵니다.”

“왜에서만 구리를 들여올 수 없으니 구리광산이나 기타 광산 개발에도 힘써 보시오.”

“예이.”

조선은 중신들의 염려와 달리 새로 발행해 보급한 상평통보가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왜에서 들여온 구리가 많아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 지방의 관아까지 보급한 것이 주효했다.

호환이나 도적의 무리를 퇴치하자 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자연히 화폐의 사용량이 늘어났다.

대궐에서 최인범의 혼사로 약간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최인범은 의주에 도착했다.

압록강 하구에 있는 의주는 크고 번화한 고을이다.

조선에서 명나라로 가는 관문인 의주(義州)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가 이곳 의주에 있는 위화도에서 회군해서 유명한 곳이다.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가 고려를 침입할 때도 이곳을 통과했다. 고려시절에 거란족이 침입할 때도 이곳을 거쳐서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이곳 의주를 매우 중시해 진을 설치해 군사들을 배치해 두고 있었다.

의주에 도착한 최인범은 우선 주막으로 숙소를 정했다.

의주에는 나중에는 만상(灣商)이라고 불리는 거상인 의주상단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라 상업이 매우 발달해 있었다. 그 때문에 주막도 규모가 큰 곳이 여럿 보였다.

행랑채의 방을 하나 빌려 셋이 숙박하기로 정하고 나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말도 좋은 놈으로 세 필만 남기고 모두 팔아. 가죽은 호피만 남기고 모조리 팔아 버리고.”

“넷!”

“면포 2000필의 어음은 의주상인을 만나서 명나라 화폐나 은괴로 바꿔 와.”

“알겠습니다.”

최인범의 지시를 받은 두 사람은 빠르게 움직였다.

말이야 쉽게 거래되지만 사슴이나 기타 가죽은 필요한 장사꾼을 일부러 찾아야하고 면포도 값을 후하게 계산해 주는 의주상인을 만나야 하니 서두르고 있었다.

최인범은 주막에서 과객들과 장기만 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부하들이 물건을 모두 팔고 돌아왔다. 그들은 명나라 화폐 대신에 작은 은괴로 바꾸어 왔다. 명나라는 은본 위주로 화폐를 발행하니 화폐 대용으로 은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어 은괴로 준비한 것이다.

홍성철이 은괴를 꺼내 놓으며 보고했다.

“나리, 관아로 가서 알아보니 진하사 행렬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답니다. 10일 후에나 도착할 것 같다고 하니 어쩌죠?”

“10일 후에 도착해?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 빨리 왔군.”

최인범은 아직 진하사 행렬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호피는 주모에게 맡기고 주막을 나섰다. 그는 의주 남쪽에 있는 우마성(백마산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고구려시절에 축성한 우마성은 후에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내성을 쌓고 크게 확장공사를 해서 나중에 백마산성으로 변하는 곳이다.

대륙과 연결되는 지점인 의주를 방어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막상 백마산성에 도착해 보니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았다.

“성벽도 허물어지고 보수 공사를 안 해서 산성으로 역할을 다하기가 어렵게 생겼군.”

그러나 백마산성을 천천히 돌다가 보니 한쪽에서는 한창 보수 공사와 새로운 축성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겨울이라 별로 많은 사람이 동원된 축성은 아니다. 그저 산성을 쌓기 위해 커다란 나무만 베어내고 있었다.

“우리 여기서 나무나 조금 베어주고 가자.”

“예? 나무를 베는 작업을 직접 하신다고요?”

“조선의 백성으로 나라를 지키는 산성을 쌓는 공사인데 별로 할 일도 없으니 여기서 나무라도 많이 베어주면 보람이 있지 않냐?”

최인범이야 특별한 몸으로 이곳 조선시대에 떨어져 사는 처지다. 그래서 후일에 조선이 외침을 받았을 경우 중요한 방어 역할을 했던 백마산성이라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사노비인 장주한이나 홍성철은 힘든 일을 자청해서 한다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황당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자 최인범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불쑥 한마디를 토했다.

“싫으면 그냥 너희들은 주막으로 가서 방에 처박혀 기다리던가 하고.”

“나리, 정말 그래도 됩니까?”

“내가 언제 헛소리를 하던······. 나무 자르는 일이 힘들어서 하기 싫으면 그만 내려가.”

사노비 처지로 주인이 이렇게 불쾌하게 말하니 두 사람은 속으로야 쓰리지만 감히 자신들만 내려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도 벌목 작업장으로 가게 되었다.

벌목 작업을 감독하는 갑사를 찾아가 호패를 보여주고 말했다.

“벌목 작업을 도와 줄 것이니 도끼나 크고 좋은 것으로 하나 구해 주시오.”

“직접 벌목 작업을 하시려고요?”

“그렇소.”

갑사도 처음 있는 일이라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본인이 원한다니 공사장에 임시로 차려놓은 대장간으로 데리고 가 도끼를 건네주었다.

“이것이 제일 큰 도끼요.”

도끼를 받아 들고 몇 번 휘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끼를 새로 만들어야 되겠군.”

최인범은 대장간에서 두 배는 더 무겁고 날도 넓은 도끼를 하루 종일 쇠를 두들겨 만들었다. 대장장이가 크게 만들지 못한다고 하자 직접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풀무질이야 두 사노비가 교대로 하고 대장장이가 잡아주고 최인범은 큰 망치로 내려치는 동작만 하는 방식의 제작이다.

쾅! 쾅!

웃통을 완전히 벗고 하루 종일 내리치는 동작을 쉬지도 않고 했다. 그런 기이한 모습에 두 부하는 물론 대장장이가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쉬지도 않고 저러지?’

최인범은 전보다 더욱 덩치가 커져 키가 거인과 같이 변했다. 영조척으로 6척이 되는 키라 조선 사람이 보기에는 거인에 해당된다.

최인범의 키는 본래 187센티미터다. 아무튼 평균 신장이 작은 조선으로 와서 그런지 딱 180센티미터 정도로만 크고 더 이상 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힘이야 전보다 2배는 좋아지고 더욱 날래져 도약력도 2배로 높아졌다.

그래서 부하들에게도 자신의 진정한 무력을 보이지 않고 혼자서 무술을 수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체력 단련을 수시로 하는 최인범은 대장간에서 망치질하면서 근육을 집중해서 단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왕이면 더욱 훌륭한 몸을 만들고 싶어서다.

저녁이 되자 드디어 원하는 크기와 무게를 지닌 커다란 도끼가 완성되었다.

“후! 이제야 쓸 만한 도끼가 생겼어.”

도끼 제작을 마친 최인범 일행은 대장간에서 자고 다음날부터는 갑사가 지목하는 장소로 가서 벌목 작업을 시작했다.

퍽! 퍽! 파박! 파박!

아름드리나무가 몇 번의 도끼질로 쓰러지자 혹시 하고 찾아와 살펴보던 공사 감독관인 갑사가 입을 떡 벌리며 놀라고 말았다.

“아니? 저럴 수가 있나? 아무리 덩치가 커도 그렇지 저렇게 큰 나무를 도끼질 몇 번으로 저리 쉽게 자르다니. 대단한 힘이야.”

갑사는 이게 웬 횡재냐 싶어 급하게 부탁했다.

“나리, 저 좀 도와주세요.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은 자르기 힘든 나무를 잘라 주세요.”

“그러죠.”

결국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자르기 어렵게 판단하는 비탈진 좁은 공간에 있는 큰 나무만 골라서 직접 패주는 식으로 벌목 작업을 도왔다.

힘이나 무술이 뛰어난 최인범은 벌목 작업장에서 8일간 일하며 무수한 큰 나무를 잘랐다.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늠해 보기 위한 벌목 작업이다.

자신이 베어낼 만한 큰 나무가 없게 되자 최인범은 그제야 도끼를 갑사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수고 하시오. 아무튼 산성 공사를 잘해주시오.”

“당연히 그래야죠. 정말 고맙습니다. 어려운 벌목 작업을 도와주어서 쉽게 성곽 공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말에 올라 의주로 가는 최인범은 그래도 고생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조금 밥값을 하는 것 같군.’

자신이 조선으로 와서 그저 맨몸으로 뭔가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끼질 덕분에 전에는 안 쓰던 근육도 새롭게 단련되었으니 매우 흐뭇했다. 자신이 지닌 힘을 스스로 측정하게 되자 그 또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전투에서 자신의 무력을 어느 정도로 발휘될지 이제는 정확하게 알았다.

‘이런 정도의 힘이라면 갑옷을 입은 놈도 흑선검을 사용해 몸통을 단 칼에 베어버릴 정도는 돼.’

주막으로 돌아오자 주모가 급하게 다가와 말했다.

“나리, 한양에서 온 높은 분이 찾아요. 빨리 관아로 가보세요.”

“그래요. 사신단이 하루 일찍 도착한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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