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사슴가죽이나 호피 그리고 족장이 사용하던 보석들이 촘촘하게 박힌 작은 반월도와 굻은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많은 재물이 생기자 신이 났다.
‘좋았어! 이 정도면 명나라에서 쓸 여비는 충분하게 챙겼어.’
서로의 거리는 2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하지만 개활지나 다름없는 강에서 서로 훤하게 보이는 위치라 최인범의 행동은 모조리 여진족의 족장 눈에 모두 보였다.
“다시 만나고 싶은 놈이야.”
“족장님, 아주 비범한 놈 같습니다.”
부하의 이런 응수에 고개를 끄덕이던 족장은 명령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넷!”
급하게 사라지는 여진족들을 바라보며 최인범은 태연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놓고 간 재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때 멀리 사라지던 여진족이 갑자기 화살 한 발을 날렸다.
쉬이익! 팍!
눈 위에 박힌 화살에는 작은 종이가 메어져 있었다. 종이에는 붉은 먹으로 쓴 작은 글씨가 보였다.
- 일은반월 반월주왕 (一恩半月 半月主往)- 글씨를 살펴본 최인범은 일은반월이란 뜻은 이해됐다. 살려준 은혜는 귀한 반월도를 줬으니 끝났다는 뜻 같았다. 그러나 뒤에 문구는 해석하기가 난해했다.
‘문구가 조금 이상해.’
깊은 뜻이 담긴 문구로 보이지만 반월주왕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잠시 문구를 해석하다가 문뜩 족장 늙은 모습이 떠올랐다.
최인범은 화살에 자상에 특효약인 호랑이 약이든 종이를 매달고 힘껏 쏘았다.
팅! 피리리릭!
적이 화살이 날아간 곳을 알게 하기 위해 소리를 내는 효시를 날렸다. 그러자 여진족은 급하게 숲에서 나와 압록강 변에 박혀 있는 화살을 찾아 들고 작은 약봉지를 높이 들었다.
뭔지 알았다는 뜻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살려줘서 고맙다는 뜻은 확실했다.
‘싸움은 싸움이고 부상당한 노인이지.’
어차피 살려주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겸해서 치료약을 보내준 것이다.
작은 보석이 촘촘히 박힌 반월도는 보통 여진족들이 단검으로 사용하는 작은 검이다. 길이는 30센티미터 정도고 반달형으로 손잡이 부분은 폭이 10센티미터나 되어 과도하게 넓으나 끝은 빼쪽한 형태다.
이런 반월도는 유목민들이 주로 사냥물을 해체하거나 고기를 잘라먹고 과일도 깎으며 때로는 이것으로 머리를 밀거나 면도를 한다. 물론 호신용으로도 사용한다.
그래서 다용도인 휴대용인 반월도는 때로 지닌 자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많은 보석이 박힌 것으로 보아 사라진 족장에게도 아주 중요한 물건 같았다.
“뭐야? 나중에 복수를 겸해서 반월도를 찾으러 온다는 뜻인가?”
그거야 나중에 일이다. 일단 요즈음은 귀해진 호피가 한 장 생겼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도 있지만 휴대용인 작은 반월도와 마찬가지로 뭔가 상징하는 물건 같았다. 두 개는 팔아먹을 물건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다 보면 혹시 알겠지. 이런 물건을 소장하는 것도 좋고.’
그래서 보석목걸이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목에 걸고 군복 안에 집어넣고 작은 휴대용 반월도 역시 왼쪽의 속주머니에 넣었다. 반월도의 검집에 작은 고리가 두 개가 있어 고리를 주머니에 거니 흔들리지 않고 밀착됐다.
호피나 사슴 가죽을 말 등에 올려놓고 말에 올라 서둘러 압록강 변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최인범이 타고 가는 말은 검은 색의 몽골말이지만 체구가 작은 몽골말 보다는 다소 큰 덩치다.
흑선풍(黑仙風)이라고 이름 지은 말은 여진족의 대목장을 털어서 생긴 2000필 중에서 제일 좋은 놈으로 골라 우수했다. 흑선검(黑仙劍)과 더불어 여진족에게서 얻은 제일 큰 선물인 셈이다.
천천히 남쪽을 향해 이동하던 최인범은 압록강 위에 청둥오리가 날아오자 활을 들고 당겼다.
팅! 쉬익! 툭!
날아오던 청둥오리들이 빠르게 쏘는 화살에 의해 강위에 떨어지자 백두가 후다닥 달려가 재빨리 물어왔다. 몇 마리의 청둥오리를 잡은 최인범은 그제야 조금 빠르게 이동했다.
두두두두. 컹! 컹!
이때 말을 타고 남쪽으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숲에서 숨어 조심스럽게 살피는 말을 탄 여진족들이 있었다. 호리한 체구인 여진족들은 서로 수신호를 하며 다소 멀리 떨어져 최인범을 은밀하게 미행했다.
이윽고 최인범은 남쪽으로 이동해 만포로 가서 두 명의 부하들과 합류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장주한이 다가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리, 조금 늦었네요.”
“오다가 오리를 몇 마리를 잡느라고.”
“호피는요?”
“그냥 땅에 둥글어 다녀서 주었다.”
“예? 호피와 사슴 가죽을 땅에서 주어요?”
“그냥 땅에 흘려 있더라고······. 주인이 없어 그냥 주어 왔다. 의주로 가서 팔고 명나라로 가는 여비로 쓰자. 아니면 명나라로 가져가 팔던가 하고.”
하나마나 한 말이고 들으나 마나한 말이다. 하지만 부하들은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주인이 어떻게 해서 생긴 호피인지 대답을 피하는 것을 보니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여진족을 홀라당 털었어.’
다소 떨어져 조심스럽게 미행하던 여진족의 무리는 말을 버리고 조금 더 가까운 숲으로 다가왔다. 이런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나더니 소리 없이 북쪽으로 이동했다. 마을과 다소 떨어진 숲에 모인 여진족들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무리가 3명이니 여기서 공격해 죽이죠.”
“뭐로? 활로?”
“예, 조심해서 매복을 서서 화살로 죽입시다. 그 놈도 그렇게 공격했으니 우리도 똑 같은 방법으로 죽여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족장님의 명령을 잊었나? 신분과 행선지만 알아내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나?”
“원수를 보고 그냥 놔둡니까?”
이들은 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며 격론을 벌였다. 2명은 활을 쏘아 암살하자는 의견을 내고 3명은 족장의 명령은 적의 행적이나 신분만 알아내고 돌아오라고 했으니 그냥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족장이 지엄하게 내린 명령이라 그들은 암살할 생각은 포기하고 철수를 결정했다. 의주를 거쳐 명나라로 간다는 정보를 알았으니 빨리 족장에게 보고해 추후 새로운 명령을 받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빨리 돌아가서 보고부터 하자고. 그리고 다시 움직이면 되지.”
“그럽시다.”
여진족들은 복수를 생각해 보지만 사실 상대가 워낙 강하니 암살을 시도하는 것도 조금은 겁이 났다. 더구나 보아하니 데리고 다니는 개도 보통 개와는 달라 보이니 가깝게 접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끔 자신들이 미행하는 뒤를 돌아보는 경우가 있으니 적이 이미 눈치를 챘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함부로 암살을 시도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5명의 여진족은 말에 올라 빠르게 북쪽으로 사라졌다.
한편 최인범이 도착한 강변 마을인 만포(滿浦)는 조금은 번화했다. 이곳은 평안도 강계도호부(江界都護府)에 속한 군사 방어진지인 진(鎭)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무인지경이던 곳을 지나와서 그렇지 마을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국경마을이라 장창을 든 군졸들이 많이 보였다. 만포는 평안도의 봉수대 끝으로 압록강 건너에는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집안이다. 그래서 이곳은 여진족과 조선과 교역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세 사람은 마을로 들어가 주막으로 들어갔다. 행랑채와 안채가 있는 다소 큰 주막이다. 행랑채의 방 하나를 얻고 들어가니 온돌과 벽에는 그래도 창호지가 붙어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보리밥에 오리를 요리해 산나물과 같이 밥상을 차려 주모가 가져왔다. 마늘과 산나물을 넣어 끓인 오리탕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문뜩 칼칼한 맛을 내는 매운 고춧가루가 생각났다.
‘고추를 어디서 구하지?’
아무래도 왜나 중국의 남쪽으로 가야 고추를 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식사를 끝낸 최인범은 품속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고추도 적어 놓았다.
종이에는 많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명나라 수도인 북경으로 가거나 대운하를 타고 남쪽으로 가서 알아보거나 또는 반드시 구해야할 물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혹시 빼먹으면 안 되니 생각날 때마다 적어 둬야지.’
자신이 나서서 조선이란 나라를 홀라당 뒤집고 싶은 욕망도 가끔은 생겼다. 하지만 그건 너무 많은 백성들의 희생이 따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선 백성들의 삶에 질을 높이는 농작물이나 또는 꼭 필요한 물건들은 일부 직접 만들어볼 계획이다.
‘명나라에서 알게 된 새로운 문물이라고 선전하면서 보급하면 쉽게 남의 의심을 피하고 보급이 쉬울 거야.’
제국인 명나라의 문물이 조선에 비해 무조건 앞선다고 믿는 부류들이 많다. 그렇게 하면 고지식한 양반들 사이에도 쉽게 설득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종이에 적혀 있는 품목은 실제로는 명나라에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 될 수도 있었다.
‘명나라로 가봐서 있으면 현품을 사가면 설명이 더 쉽고 제작도 쉽겠어.’
의외로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 귀해 고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입할 물건이 많으니 재물도 많이 필요하고 또 여행에 필요한 여비도 많이 들게 생겼다.
‘명나라로 가면 물가도 비쌀 수 있는데 면포 2천필로 가능할지 모르겠네.’
호피 한 장도 있고 말도 몇 필이 있지만 그런 정도의 재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돈벌이에 정신이 없을 백삼수가 떠올랐다.
‘그 녀석이 있으면 쉽게 돈을 벌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최인범은 돈벌이에 재주가 많은 백삼수라면 명나라로 가서도 쉽게 재물을 모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지금 의주로 가서 사신단과 합류해 가려는 명나라의 황제는 1521년에 즉위한 가정제(嘉靖帝)인 주후총이다. 30대 초반인 가정제는 도교에 깊이 빠져 여자를 너무 좋아하고 황당한 사건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최인범은 명나라 황제인 가정제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 그는 역대 제왕들이 한 번도 벌인 일이 없던 사건을 벌인 황제라 기억했다.
‘자신이 무슨 줄기세포를 만드는 과학자도 아니면서 궁녀들의 월경액을 강제로 채취해 비약을 만든다고 지랄하다가 여자들에게 집단으로 공격을 당해. 미친놈도 아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여자들이 집단으로 황제를 공격한 요상한 사건이다.
최인범은 후궁들이 집단으로 달려들어 황제를 죽이려던 임인궁변이라는 사건 때문에 가정제가 엉망진창인 황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황제니 졸때기인 신하들도 개판인 놈들이 명나라에는 무척 많을 거야.’
동방에 있다는 불로초를 구해서 먹어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제도 중국에는 있었다. 아무튼 가정제도 특이한 황제라 지금 명나라는 많이 부패되어 있었다.
관료인 남편들이 부패하면 그의 부인들도 사치나 향락 그러고 특별하게 색욕을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잠시 특이한 몸을 지닌 백삼수라면 명나라에서 돈을 쉽게 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놈의 재주라면 돈을 쉽게는 벌 거야.’
잠시 이런 속절없는 생각을 하던 최인범은 아까 뒤를 따라오던 여진족의 무리가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그는 여진족이 미행하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도 어렴프시 느끼고 있었다. 풍산개인 백두가 더 일찍 눈치를 채고 자꾸 뒤로 돌아보아 미행하는 것을 알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미행하는 놈들이라 그저 모른 척 관망했다.
‘복수하려고 접근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