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북쪽으로 달리는 말발자국 소리에 허둥대던 여진족들은 그제야 적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
“잡아라!”
“와!”
“와! 강쪽이다!”
여진족들 일부는 화살이 허벅지에 깊이 박혀 신음하는 족장을 급하게 눕히며 보호했다. 일부는 최인범이 달아난 북쪽으로 빠르게 말에 올라 내달렸다.
얼어 있는 압록강을 넘어가려고 급하게 말을 달리는 그들의 눈에 검은 색의 옷을 입은 적이 보였다. 멀리 달아날 충분한 시간이 있는데 적은 북쪽의 강변 언덕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 탄 적의 옆에는 눈 색 같이 하얀 개가 한 마리가 보이고 있었다.
순간 무리를 이끄는 두목 녀석의 머릿속에 매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적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크게 외쳤다.
“저 놈 잡아!”
두두두두.
눈이 엷게 쌓여 있는 압록강을 10필의 기마병이 빠르게 내달렸다.
이때 강변의 언덕에 서서 압록강을 넘어 달려오는 여진족들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천천히 강궁을 들고 힘차게 당겼다. 그가 사용하는 화살은 길이가 긴 유엽전이다.
쉬익! 퍽!
“크악!”
쿵!
“어이쿠!”
쿵!
앞장서서 달려오는 여진족의 가슴에 화살이 박히자 말과 함께 쓰러졌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한 녀석도 갑작스럽게 앞에서 말이 쓰러지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엉겨 붙어 쓰러지고 말았다.
쉬익! 퍽!
“크악!”
쉬익! 퍽!
“칵!”
10명의 기마병은 압록강을 넘지도 못하고 연달아 화살의 공격으로 반이나 죽어버렸다. 그래도 남은 놈들이 계속 전력질주로 매섭게 달려들었다. 이윽고 앞선 녀석들은 30미터까지 접근했다.
쉬익! 퍽!
“크악!”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의 가슴에 화살을 깊이 박고 나자 이제 4명만 남아서 달려들었다. 최인범은 급하게 활을 활동개에 집어넣고 장검인 흑선검을 빼어들었다. 말을 급히 몰아 달려드는 녀석들을 향해 내달렸다.
“이럇!”
다다다다.
막차를 가해 급하게 달려가며 앞선 기마병을 향해 흑선검을 크게 휘둘렸다.
“탓!”
쉭!
“크악!”
히이잉!
말의 머리 부분부터 장검이 검을 빛을 발하며 지나갔다. 그러자 말의 목과 함께 기마병의 목이 동시에 잘라졌다. 이어서 바로 왼쪽으로 지나치는 여진족의 몸통에는 어느새 빼어든 대검이 깊이 박혀 버렸다.
“이얏!”
이런 양손 공격과 거의 동시에 질주하는 말에서 높이 튀어 올랐다. 공중으로 높이 도약한 최인범은 내려오면서 정면으로 달려드는 여진족의 머리를 향해 장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악!”
히이잉! 쿵!
힘차게 내려친 장검에 여진족의 어깨가 삭둑 잘려나가며 타고 있던 말의 몸통까지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순간 사람과 말이 토해내는 붉은 피로 비릿한 냄새가 확 풍겼다.
“헉!”
내달리던 남은 여진족이 다들 너무 놀라 외마디를 토했다. 놀라운 무력을 지닌 괴물 같은 최인범을 마주한 남은 여진족들은 급하게 기수를 돌려 남쪽으로 빠르게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남쪽으로 넘어 가지 못했다. 강의 반대편에 있는 최인범이 날린 화살에 의해 하얀 눈이 쌓인 압록강의 중간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으으윽!”
“으윽!”
미쳐 숨을 거두지 못한 여진족들이 길게 신음을 토했다. 모두 살기에는 틀렸지만 마지막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로 눈을 손으로 끓어대며 바동거렸다.
그러자 다시 말에 오른 최인범은 여진족이 들고 왔던 장창을 잡았다. 말을 몰아 천천히 눈으로 덮여 있는 압록강 위에 사방으로 널려 있는 여진족들의 가슴이나 목에 장창을 박아 숨통을 완전히 끓어 버렸다.
푹!
“큭!”
반대편에 남아 있는 여진족들은 안중에도 없는 과감한 행동이다. 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아니고 아주 절제된 동작으로 모조리 숨통을 끓었다.
남쪽 강변에 있는 여진족들은 모두 알 수 없는 공포감으로 덜덜 떨었다. 적은 분명 혼자인데 마치 수많은 적들에게 포위되어 하나 둘 죽어가는 것 같은 위압감과 공포가 심하게 밀려왔다.
‘저런 괴물이 다 있나?’
이어서 말에서 내려 장검으로 쓰러져 바동거리는 말들의 숨통도 모두 끓어 버렸다. 숨을 멈춘 말의 배를 갈라 붉은 피로 얼룩진 아직도 미세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껴내 아득아득 씹어 먹었다.
‘맛나네.’
한동안 심장이나 생간들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여러 명의 여진족이나 말을 무참하게 죽이고 보니 갑자기 강한 욕구가 생긴 것이다.
붉은 피가 흐르는 심장을 맛있게 먹는 최인범을 바라보던 여진족들은 다들 경악했다.
“헉! 저게 뭐야?”
야수와 같은 모습이라 모두 입을 떡 벌리면서 너무 두려워 덜덜 떨었다. 적에게 대항할 의지력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도망칠 생각도 없고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이미 부족장은 중상을 당해 쓰러져 있고 부족장의 측근인 우두머리가 3명이나 죽었다. 무리 중에 무력이 뛰어나던 호위병들도 압록강에서 모조리 죽어 버렸다. 그리되자 여진족들은 이제 완전히 졸개들만 10여명이 남았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기위해 입을 놀렸다.
“어쩌지? 우리가 모두 달려들어도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강한 적인데.”
“빨리 도망쳐야지.”
부족들이 있는 북쪽으로 달아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급해도 부족장을 데리고 가야하고 죽은 족장의 심복들의 시신도 챙겨가야 한다.
허둥지둥하며 천막도 걷고 무기들을 챙겼다. 그러나 강의 반대편에 있는 검은 옷의 적은 어느새 북쪽의 강가로 돌아가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시신을 챙기거나 부족장을 데리고 가도 그냥 놔줄 심산 같았다.
눈치를 보며 접근해 압록강에 쓰러진 시신을 챙겨도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 이런 기이한 행동 역시 살아있는 여진족에게는 경이로운 모습이다. 문뜩 한 녀석이 의견을 냈다.
“혹시 우리보고 살려줄 것이니 그동안 잡아서 챙긴 가죽들은 모조리 놓고 가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군.”
완전히 살려줄 생각이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굳이 훤하게 보이는 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기다릴 하등에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재차 공격할 요량이면 더구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심하게 부상당한 족장을 보호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니 무력이 강한 적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여건도 충분했다. 궁술이 대단한 자이니 화살로도 충분히 공격할 수 있었다.
“이상하군.”
“족장님이나 남은 우리는 그냥 살려두려는 것 같아.”
이때 잠시 정신을 잃었던 족장이 깨어나서 이런 상황을 느끼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 놈은 나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지만 일부러 죽이지 않고 참모인 장수들을 먼저 죽인 거야. 너희들 말대로 저 놈은 지금 우리에게 살려준 목숨 값으로 뭔가 요구하며 기다리는 거야.”
족장의 판단에 중년으로 허약하게 생긴 남자가 물었다.
“족장님, 그럼 어쩌죠?”
“지금 가지고 있는 재물을 모두 강변에 가지런히 쌓아 두고 조용히 떠나자. 내가 사용하던 호피와 반월도와 목걸이도 놔두고.”
“족장님, 반월도와 목걸이까지 모조리 저런 자에게 넘겨주다니요? 그건 너무 과하게 넘기는 것이 아닌가요?”
“다 생각이 있어 하는 것이니 그대로 넘겨.”
“넷!”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모닥불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최인범이 슬며시 일어나 화살을 날렸다.
“헉!”
팍!
커다란 나무에 화살이 깊이 박혔다. 너무 먼 거리를 날아온 화살에 다들 다시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멀리 화살을 날리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더구나 장검을 사용하는 검술도 너무 뛰어났다.
“엄청난 무술을 지닌 자야,”
“저런 놈이 적이라 우린 다 죽었네.”
나무에 깊이 박힌 화살에는 작은 종이가 매어져 있었다. 졸개가 급하게 화살을 뽑아 보려고 하지만 워낙 깊이 박힌 화살은 쉽게 뽑아지지 않았다.
종이를 풀어서 가져와 족장에게 펼쳐 보였다. 종이에는 숯검정으로 쓴 작은 글씨가 있었다.
- 월경즉시사살 일실일생일은(越境卽時射殺 一失一生一恩)-남의 나라 영토로 넘어 왔으니 즉시 활로 쏘아 죽여야 되지만 한 번의 실수라 한 번은 살려 줄 것이니 한 번은 은혜를 갚으라는 뜻이다.
족장은 자신들을 공격한 적이 참으로 대단한 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기습공격을 했지만 30명을 혼자 상대해 궁술, 검술로 12명을 너무 쉽게 죽였다.
자신도 저자가 살려줄 의사가 없었다면 벌써 죽은 목숨이다.
‘조선에 진짜 무서운 놈이 나타났어.’
건주여진족에서 대부족을 이끄는 족장이라 휘하에 무술이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 제일 뛰어나던 심복부하인 장수가 3명이나 졸지에 죽었다. 그리고 그 심복부하들 중에는 조카들이 둘이나 있었다. 자신이 거느린 부족의 전투력이 절반은 순간에 달아난 셈이다.
적이 봐줘서 겨우 목숨을 구하기는 했다. 하지만 족장인 자신에게 일생일대의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 족장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독촉했다.
“빨리, 물건을 놓고 조용히 떠나자.”
“넷!”
언제 적의 마음이 변할지 모르니 이 자리를 속히 떠나야 한다. 상대방의 전투력이 너무 뛰어나니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측근인 무장들이 3명이나 죽었으니 빨리 돌아가 부족을 단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떤 무리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반격하거나 또는 수하가 반기를 들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시체를 수습하고 돌아가서 오늘 일을 절대로 발설하지 마.”
“넷!”
한 사람의 적에게 철저하게 당하고 뇌물을 주고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그 또는 부족을 통솔하는데 큰 문제가 생긴다. 뭔가 다른 구실을 찾아 많은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고 변명해야 한다.
족장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무서운 적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길 원했다. 더구나 허벅지에 화살이 박혔으니 치료도 해야 하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떠나자.”
“넷!”
빠르게 떠날 준비를 마친 족장과 부하들은 목숨 값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잘 보이는 강가에 놓았다. 부하들과 같이 다소 멀리 떨어져 압록강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 강 건너편에서 적의 동태를 주시하며 모닥불을 쪼이던 최인범은 여진족들의 행동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쉽게 상황을 판단하는 것으로 보아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늙은이군.”
적들이 반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느끼고 그제야 말에 올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남쪽 강변에 도착하자 여진족이 남기고 간 물건을 살폈다.
‘흠! 제법 많이 놓고 갔어.’